[사진]回甲記念지리산 종주(대원사 ~ 화엄사)를...(제2편)
지리산(智異山) 국립공원
노고단을 품고있는 지리산은 금수강산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답고 넉넉한 산으로 1967년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천왕봉,반야봉,노고단등 수많은 봉우리들과 장엄한 능선 그리고 뱀사골, 백무동, 피아골, 중ㅎ산리등 많은 계곡들을 간직하고 있다 넓고 깊고 맑고 아름다운 지리산은 우리나라 그 어느 곳보다 만흔 야생 동식물들을 품어 기르고 잇으며, 우리들이 지리산에서 겸손하다면 , 우리도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산이다
화살표를 선택후 지도를 더블클릭하시면 크게 확되된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출처:한국의 산하)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시는 산님들에겐 필수적인 참고사항들입니다 (한국의 산하 발췌)
지리산 종주를 꿈꾸는 산님들이 알아야할 상식(한국의산하에서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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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2004년 6월 12일 03:00 ~ 6월 14일 16:00(1박 2일)
산 행 지: 국립공원 지리산
산행코스: 대원사 = 세재(유평) = 세재마을 유평 갈림길 = 치밭목산장 = 써리봉 = 중봉 = 천왕봉 = 통천문 = 제석봉 = 장터목 대피소 = 연하봉 = 삼신봉 = 촛대봉 = 세석대피소 = 영신봉 = 칠선봉 = 덕평봉 = 선비샘 = 세석대피소갈림길 = 벽소령 대피소 = 형제봉 = 연하천 산장 = 명선봉 = 토끼봉 = 화개재 = 삼도봉 = 노루목 = 임걸령 = 피아골 삼거리 = 노고단 대피소 = 무냉기(코재) = 눈썹바위 = 집선대 = 중재 = 국수동 = 참샘터 = 연기암 갈림길 =화엄사
참가인원 : 4명
산행시간 : 28시간
산행기
나혼자가 아닌 일행들이 있는 상태에서 어제저녁 숙소문제로 신경을 곤두세우다 잠이들고보니 장거리 산행으로 몸도 맘도 많이 피곤할텐데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 가없다 평상시 일상생활의 잠자는 시간이 매일같이 새벽 2시 30분경에 잠을청하여 아침 6시면 기상을 하는 습관 때문인지... 어떨결에 잠이들었다 깨어 시계를 확인하니 자정이다 내 생각같아서는 내친김에 일어나 새벽길 산행을 나설까 생각을 하여 보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안될일이다
잠이 제대로 오지도 않는 시간을 곤히자고있는 여러 산님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보아 일어나지도 못하고 두눈 멀뚱멀뚱뜨고 있자니 정말 곤혹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모처럼 함께한 친구 가족들을 생각할때 리더로서 무사히 종주를 마치고...오직 나만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영광의 종주를 이끌어야 하기에 내일에 산행 계획으로 머리를 굴리다보니 어느결에 그래도 한시간 정도는 더 잠을잔듯하다
벼란간 아차하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30분이다 옆에서 곤히자고 있는 친구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우니 친구도 아마 깊은잠이 들지 않었었던지 서둘러 기상을 하여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오니 새벽찬 공기을 쏘이는 기분이 상쾌하기 이를대없고 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니 어린시절 고향마을에서 별을 헤이며 하늘만 바라보고 길을 가다 논틀아래 벼논으로 빠져 흙범벅이 되었던 아련한 추억이 생각이난다
실로 참으로 오랫만에 하늘에 별이 있는것을 실감을 하게되니 아마 오늘의 날씨도 무더위로 산행길이 결코 만만치도 쉽지도 않으리라는 생각이든다 이생각 저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친구는 아내와 처제를 깨워서 다시한번 산행을 위한 배낭점검을 마치고 04:00시 정각 우리들은 벽소령 ~ 연하천 구간을 산행길을 나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구간은 산행 들머리부터 거짓말 보태지않고 집더미만한 돌덩이리들로 위험스럽게 조성된
왕 너덜구간을 만나게되고 하도 가는길이 험하다보니 아무래도 우리들이 혹시나 길을 잘못들어선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고 나중에 공연히 긴 시간에 걸친 알바를 하느니 차라리 지금처럼 여력이 있을때 되돌아 확인을 하고길을 떠나자는 생각에 일행들을 제자리에 서있게 하고 나홀로 다시한번 십여분간이나 진행을 한 구간을 되짚어 확인을 떠나 그여코 그길이 맛는다는것을 재확인후 우리들은 마음을 놓고 산행길을 재촉을 한다
새벽산행 출발전 찍은 그믐달이 마치 여인의 눈썹처럼 아름답게 밤을 지새고 산행을 떠나는 일행들을 반기워준다
왼쪽 나무사이로 보이는 힌점이 그믐달인데 ...... 바로옆에서 일출이 솟아오르고있다
어떻게 저런일이 있을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하여보아도 이해가 쉽지가 않다 형제봉 정상에서 찍은 사진인데 그믐달과 일출이 같은 동녁하늘에 떠있다는것은 처음보는 희안한 현상이라 생각이든다 아침일찍 출발을 서두른 덕택도 있었지만 지리산 일출을 보기 위하여서는 삼대가 빌어야 일출을 볼 수 가 있다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우선 나혼자만이라도 산행길을 재촉 하느라 거의 뛰다시피한 속도로 형제봉 바위에 올라 일출을 기다리고 있으니 일행들도 뒤질세라 함게발길을 재촉하여 운좋게 4사람이 형제봉에 바위에 올라 일출을 만끽한다
찬연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는 친구와 가족들 모습
형제봉 바위에서 바라본 주변의 절경들...
형제봉 바위에서 바라본 주변의 절경들...
이른 아침부터 무수히 많은 험준한 너덜길들을 걸어야한다
연하천 산장에서 만난 이우원님 부부산님과 함께
연하천 산장에서 우리들은 아침식사를 누룽지를 푸짐하게 끓여서 맛있게 먹고 오늘의 산행길 점검을 하니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12시 까지는 노고단에 도착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이곳부터는 다소 산행길이 그다지 어렵지않게 생각이되어 발길을 나홀로 말없이 재촉을 하면 일행들은 이미 나의 마음을 간파한듯 일언반구도없이 묵묵히 잘들도 따른다 무엇보다도 두분 여성분들이 오히려 나를 앞질러 나가며 서로 밀고 당기며 호읍을 마추는 산행이 이어진다
이러한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제 천왕봉부터 형님먼저 아우먼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산행을 하며 우리들뒤를 바짝 추격을 하던 현대중공업 일개부서 젊은 산님들이 슬그머니 우리일행을 보이콧하며 추월을하여 앞으로 나간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우리들은 새마을호이고 자신들은 KT고속철이되어 먼저 추월을 한다고 하며 천천히 오시라고 하면서 스쳐지나간다
나는 어제부터 이팀들과 역주행 산행을 하면서 저래서 젊음이란 좋은거여 처음본 우리들을 결코 듣기싫치않게 새마을호로 표현하여 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나는 웬 새마을호 내가 생각에는 마치 느림보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행을 하였는데 연하천 대피소에서 추월을 당한후 이젠 속으로 이 젊은이들의 행군 속도를 따라 잡을 수 가없겠구나 생각을하며
철저하게 50분 걷고 10분 쉬기를 지켜가며 속보산행을 하다보니 이마에 흐르는땀을 주체가 할 수 없고 등에 흥건하게 젖어드는 땀으로 마치 목욕을 하는듯한 느낌이다 그런 체험을 하도 오랫만에 감당을 하다보니 옛날 어린시절 이맘때쯤이면 농촌에 보리베기를 위하여 보리밭 고랑을 차고앉아 낫으로 보리를 베려면
그 보리 특유의 깔깔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쏟아지는 폭양아래 흘러내리는 땀을 닦기위하여 보리짚을 양쪽을 잡고 땀을 훑어 내리던 똥구멍이 찢어져 나가게 가난하던 시절의 추억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렇게 가난하던 시절을 겪으며 자란 촌부의 아들이 어느덧 세상 잘만나 자신의 회갑이라고 팔자좋게 지리산 종주를 회갑여행을 하고있다는 생각을 하고보니
새삼 평생을 못난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시며 고생만하시다 호강한번 못하고 돌아가신 두분 부모님 생각에 왈칵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앞을 서린다 이제 곧 아버님 기일이 닥아오는데 이번 아버님 기일전에 조상님들께서 함께 납골묘에 모셔진 묘소에 성묘라도 하고 나를 돌아보는 반성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행을 하며 쓸대없이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와 그동안 내가 살어온 세월을 뒤돌아보는 시간에 몰두하며 오직 앞으로 앞으로 땅만 처다보며 행군을 강행하다보니 앗 뿔사 꽝하는 소리와 함께 머릿통이 띵하게 느껴진다 세상에 아래 그림에 가로누어 생명을 유지하고있는 나무에 그만 머릿통을 부디치고 말았다 마치 1500산 김정길님께서 가리왕산 산행에 부딪친 경험처럼 말이다
1500산 김정길님 정말 앗 하는 순간에 눈에 별이 번쩍하도록 세차게 부딪쳤답니다 그날의 김정길님의 황당함을 어느정도 잘 이해를 할 수 있을것같은 생각을 합니다 다행히 짱구머리에 흘러내리는 땀을 방지하기위하여 머리에 두른 스카프 덕을 톡톡히 본셈이다 그렇치않았으면 가뜩이나 짱구머리통에 얼마나 흉물스런 혹을 붙이고 다니는 꼴이 웃으웠을까 상상을 하여본다
토끼봉을 지나며...
35년전 현역시절 맺어진 전우애가 우리들에겐 평생을 함께하는 인생의 동지로 남게될줄이야 그시절 친구는 법무참모부 행정병으로 나는 민사참모부 행정병으로 근무를 하며 25사단 사령부 사병들 사이에서 인기좋은 트리오로 근무도 잘하고 놀기도 열심히 잘놀았는데 어느덧 나보다 몇살이나 아래인 친구의 머리에도 연륜은 속일 수 없는지 머리에 백발리 휘날리는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비록 몸은 백발의 모습을 보일지라도 친구또한 열심히 걷기운동과 등산으로 다져진 체력은 젊은 어떤 사람들에게 뒤지지않을 정도로 좋아져 보여 친구로서 그보다 더 기쁠 수 없다 3년전만 하여도 우리나라 성인 남성들이 대부분 많이 걸리기쉬운 혈압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를 관악산 등산길에 끌고 나섰을때 숨을 몰아쉬는 친구를 보며 걱정을 하던때가 엇그제 같은데
이젠 친구가 오히려 나보다 더 산에 중독이 들린듯 시간만 나면 산으로 아내와 동서 가족들과 동행산행을 할 정도로 매니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작년 지리산 산행때만 하여도 동행을 하였던 친구는 그당시 다리가 아프고 발톱이 다 뽑혀나갈 정도로 산고를 겪으며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등정후 중산리로 하산을 하며 지리산 종주의 어려움을 맛 볼 수 있었는데...
얼마나 비장한 마음으로 이번 종주를 대비하였는지 치악산 두타 청옥산을 예행연습으로 강행군 연습을 거치고 나더니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인지 아내와 처재까지 동행을 하여서도 모두들 오히려 리더인 나보다 한 수 를더 떠서 앞장을 설 정도이다
또한 친구는 작년도에 성삼재에서 시작하여 중산리로 하산을 하는 지리산 종주 코스를 다녀왔는데 대학생인 아들이 아버지의 지리산 종주는 진정한 종주길로 인정을 할 수 가없다는 말을 하는것을 들었다며 이번엔 꼭 제아무리 산행길이 험난하다 하드라도 화엄사로 하산을 마치고 아들앞에 당당하게 지리산 종주의 의미를 말할것이라고 우스게 소리를 하며 보무도 당당히 어떤때는 리더인 나를 앞질러 나가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아들에게 확인이 필요하면 화엄사 스님에게 싸인받아준다고 하니 형님 그건좀 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천진 스러워 보인다
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우리일행이 지리산 역종주 산행길을 선택하여 산행을 하던중
가장 많은 산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모습
三道峰
전북 경남 전남의 3도 경계가 표시된 곳에서 기념촬영도 한컷 찍고...
노고재에서 ...
와 드디어 멀리 노고단의 모형물이 보이고 노고단을 경유하여 천왕봉을 향하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장사진을 이루고있는 모습들...마치 영화 한프로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는 모습들처럼
노고단(老姑壇)
노고단에는 신라 초부터 고려말까지 약 1500년 동안 지리산 산신을 모시던 사당이었다 신라때는 지리산 산신을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라고 했으며, 고려에서는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지리산의 산신으로 모시기도 하였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태조 이성계의 조선건국을 이곳 산신이 반대하였다 하여 이곳의 사당을 산 아래로 옮겨 버렸다 노고단은 학문으로 늙을 노와 시어머니고 넉넉한 자태처럼 지리산의 산신은 모두 어머같은 여성들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ㅈ리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르기도한다
노고단 생태계(아고산 초원지대)
아고산 초원지대 (해발 1,500 ~ 2,500m)에 속하는 노고단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아고산 생태계를 나타내는 초원지대이다 이곳에 초원이 형성되는 것은 구름과 안개, 강한바람 그리고 낮은 기온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키큰 나무가 거의 자라지 못하며, 철쭉같은 키작은 관목류나 풀과 야생화 같은 초분류들만 자라고 있다 이러한 가혹한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만, 일단 한번 훼손되면 스스로는 거의 회복 될 수 없다 소중한 아고산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우리가 도와 주어야 할때이다
사람이 주인이었던 노고단
지리산 그리고 노고단의 주인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에 사는 야생 동식물들입니다 그러나 과거 일제시대의 간섭이 시작되었고, 1948년 여순사건 이후 빨치산의 거점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교사 별장을 불태우면서 피해을 입었다 그 이후 노고단에는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그리고 수많은 탐방객들이 말치 이곳의 주인처럼 행세하면서 마음대로 밟고, 꺾고, 파헤쳤다 노고단은 자기모습을 잃어버릴 정도로 너무 많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다시 이곳의 동식물들이 주인이 되도록...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91년부터 이곳 노고단 일원을 자영휴식년제 지구로 지정하고 이곳의 동식물들에게 노고다능ㄹ 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훼손된 지역이 되살아나도록 노력하고있다 이제 조금씩 그 노력이 결실을 맺고, 이곳의 동식물들들이 주인노릇을 하고있다. 탐방객 여러분들은 귀한 집을 방문하는 점잖은 손님처럼 노고단을 아끼시고 이곳의 동식물들을 보호하여 주시어야 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남부지소 팜프렛 참조)
노고단 정상부 자연탐방 가는길
자연탐방을 원하시는 탐방객들이 노고단 대피소까지 오시려면 화엄사 계곡을 통해서 오르는 7km의 캄바로(3시간 소요)와 차량으로 성삼배 휴게소까지 오신후 걸어오시는 3km의 탐방로(40분 소요)가 있으며 다시 대피소에서 자연탐방 입구인 노고단 고개까지는 도보로 15~20분 정도 올라야 자연탐방이 시작됩니다 (이곳을 탐방 하실땐 반드시 노고단 대피소)에 예약확인 및 접수를 하여야한다
노고단 자연탐방은 이렇게
@ 정해진 탐방로만 이용합니다.
@ 큰소리를 내거나 뛰지 않습니다.
@ 주류 및 음식물을 드시지 않습니다 .
@ 동식물들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노고단에는 발작ㄱ도 남기지 않습니다
모형 노고단을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하고...
2004년 6월 12일 03:00에 지리산 입산후 세수도 하지못하고 이도 가글로 간신히 대충 행거버리고 말다 노고단 대피소의 공동 취사장에엘 들르니 수돗물이 콸콸 쏫아져 나오고 간이 통나무 의자까지 준비된 곳에서 모처럼 편안하게 점심을 먹느라 배낭에 남은 부식 일체를 모두다 비워 버린다 얼마나 준비가 체계적이었으면 점심을 먹고나니 남는것은 오직 소주 안주로 준비하여온 햄소지만 남았을정도였다
지리산 체류 시간동안 막상밥을 누룽지를 끊여서 굶지않고 먹긴 하였지만 언제나 촉박한 시간으로 얽매이며 식사를 하다보니 밥을 먹는것이 오직 살기위하여 먹는다는 목적 이외의 아무런것도 생각할 수 가 없었다 그러다 이렇게 편안한 시설에 앉아 오랫만에 남은 소주 한잔을 나누면서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이 너무도 즐겁고 여유롭게 생각이든다
노고단 대피소 전경
노고단 대피소를 떠나기전 친구의 가족들...
이제부터 우리들은 화엄사 구간길을 따라 하산을 하여야한다 그동안 내가 말로만 듣기에 화엄사 구간이 산행을 하기가 상당히 힘이 들다는 소리를 들어왔기에 얼마나 대단한 구간이기에 이곳 산행로을 통하여 노고단을 오르는 사람들 마다 그렇게 어렵다는 표현을 하였을까 궁금증이 난다 서둘러 노고단을 뒤로하고 성삼재 가는 신작로길을 걸어 황엄사 가는구간 (눈썹바위)로 들어선다 화엄사 노고단 구간은 지루하게 급경사는 아니드라도
산행로 전체가 넓고 커다란 돌로 산행로를 조성한 길이이어지고 있으며 나무숲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산행로는 잘 다듬어진 길인데 이곳길을 들머리구간으로 선택을 하여 오르는 등산객들의 직감엔 당연히 힘이든 깔딱고개길이 될것이 분명하다 그 이외는 내가 생각하고 겁먹으며 두려워 하였던 것처럼 험준한 산행로가 아니라 생각이든다
게다가 이길은 지리산 종주구간중 특별히 자랑을 할만한 절경같은 자연의 풍요로움을 만날 수 가없다 내가 생각을 하기에는 지리산 전체 산행구간중 가장 자연미가 없는 즉 볼거리가 없는 구간임을 직감하였다 다만 산행로 주변에 오후 3시경인데 웬놈의 산에서 가장 귀찮게 여겨지고 무서운 작고 새까만 모기떼들이 편대를 지어 얼굴을 공략하기위하여 얼마나 끊임없이 날아드는지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랴 모기를 쫓으랴 신경이 가장 많이 쓰이는 구간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곳 구간을 지나며 아름다움을 표하는 내용의 산행기를 읽은바 있는데 나는 새벽이 아닌 멀쩡한 대낮에 제 아무리 눈을 크게뜨고 찿어보아도 눈에 뜨이는 자연적인 볼거리는 전혀 없다 이상한 일이다 왜 나의 눈에는 이 화엄사 구간이 가장 볼거리가 없는 구간으로 보이는것일까? 내눈에 뭐가 씨웠나 하고 아무리 다시 눈을 씻고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바람한점 불어오지 않는 지루한 화엄사 하산길을 터덜터덜 내려오는 우리 일행들에게 마침 참샘터라는 푯말이 보이며 좌측을 향하여 바라보니 이 무더운 날씨에도 제법 줄기찬 물줄기의 시냇물이 흐르고있다 우리 일행은 잠시 모처럼 발이라도 물에 담그며 휴식을 취하려는 생각으로 참샘터 냇가에 내려가니 옛말에 앉으면 눕고 싶고 뭐하면 뭐한다더니...
우리들이 그짝이다 이미 하산구간 내내 노고단을 향하여 오르고있는 사삼들은 아주드물게 드문드문 대여섯명을 보았을뿐 하산을 하는 사람들은 일체 볼 수 가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냇가에 흐르는 물을 보니 몸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다 그런데다 바로 냇가 기슭에 커다란 바위가 마치 경계벽이라도 되는것처럼 서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여자 들은 아래로 내려가 바위 뒤에서 발을 닦고 친구와 나는 참새가 방아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훨훨 옷을 벗고 팬티만 입은체 한길이 넘는 냇물에 첨벙 빠져드니 앗뿔사 냇물이 얼마나 차거운지 마치 얼음장속에 들어온 정도로 냉동이 되는듯한 기분이 들며 아무리 견디어 보려고 하여도 단 일분을 물에서 참고 서있을 수 가 없다
하여간 어떨결에 지리산 종주길 산행을 하면서 한가로히 계곡물에 미역을 감는 행운까지 앉았으니 우리 일행들의 지리산 종주는 그야말로 알먹고 꿩먹는 격이다 내 평생 어떻게 또 다시 화엄사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미역을 감는 행운을 맛볼 수 있을까 생각을하니 두고 두고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다시 하산을 서두른다
시원하게 미역도 감었겠다 또다시 하산길을 서둘러 내려오니 드디어 노고단 화엄사 연기암 가는 아스발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길가에 세워지 차량을 볼 수 가있다 우리 일행들은 누구랄것도 없이 와 이제 하산끝이다 하고 주변환경을 살펴보니 화엄사 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을 더 내려가야한다 간단히 연기암에 대한 사진을 몇컷만 찍고 우리 일행은 다시 아래로 화엄사 길을 향하여 하산을 서두른다
연기암을 사이로 두고 화엄사로 내려가는 구간엔 내 평생 쪽대나무가 이렇게 많이 자라고있는 구경은 처음일 정도로 쪽대밭 터널길을 지나게된다 마치 쪽대로 울타리를 만들어놓은듯 길게 쪽대밭 사이로 뚫린길을 하산을 하게된다
드디어 시야에 화엄사 사찰이 보이고 짜증이 날정도로 이어지는 아스발트길을 약간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가는 인도를 찿아가니 화엄사로 가는 징검다리 돌다리를 지나니 세상에 집더미 같이 커다란 자연석 바위로 사찰의 담장이 쌓여져 있는것을 볼 수 가있다 너무나도 의외의 담을 바라보니 정작 화엄사는 아직 들어가 사찰 경내를 돌아보지도 않었는데도 직감적으로 화엄사의 규모가 국내에서는 손가락 사이에 들 정도로 큰 사찰이라는 생각이들며 위엄을 느끼게된다
화엄사는 신라 불교의 중심사상인 화엄의 근본 도량의 하나로 웅대한 지리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유서 깊은 명찰이다 지리산은 넓은 품이 넓은 마큼 절도 많지만, 그 가운데 화엄사가 제일로 손꼽히는 명찰이다.
지리산 대화엄사는 백제 성와 22년(서기 544년)에 인도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최초로 창건하셨다. 그후 선덕여왕(645년)때 자장율사께서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4사자 3층석탑에 보안하여 적멸보궁으로 중창, 670년 의상조사께서 2층 4면 7칸의 사방벽에 두룬 화엄석경과 황금 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을 건립하여 화엄성지의 원찰인 연화장법계 도량이 되었다
통일신라 경덕와(764년)때 다시 중창하였으며, 도선국사께서 헌가왕 원년(875년) 비보사사에 의해서 대가람으로 중창하여 다우가 1300여동의 총림대도량으로 면모를 갖추었다.
임진왜란으로 온 국토가 병화에 시달릴 때 당시 화엄사 스님들은 승병을 조직하여 수군에 가담하여 이순신 장군을 도와 싸웠고, 진주성 저누에도 참가하여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주지 설홍대사는 157명의 승병과 함께 구례의 요충지인 석주진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그로인해 임진란이 일어난 이듬해 왜군들은 화엄사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후 조선인조 (1630~1636)때 벽암선사께서 대웅전 및 여러 전각을 중건하시고 숙종(1702년)때 계파선사의 각황전 중창과 더불어 현재 선교양종 대라람으로써 스님드르이 수행 중심도량으로 그역활을 다하고 있다.
화엄이란 아름다운 꽃, 그것도 한동안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는 그런 꽃이 아니라 영원히 지지 않는 꽃으로 장식함을 뜻한다. 즉, 이는 청정하고 올바를고 덕스러운 보살의 행에 비유한 것이니 불법의 진리를 체득하여 정각을 이룬 공덕의 꽃은 결코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출가나 재가 또는 사회적인 신분이나 명예등 외형에 있지 않고, 다만 지혜와 자비심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화엄사상은 말하고있다.
오늘날 우리는 저마다의 울타리 안에 갖힌 채 타인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비인간의 늘에서 혜어나려면 보는 시각과 생각을 전혀 다른 쪽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웃이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요. 이웃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것이 화엄경의 가름침인 것이다.
대웅전 (보물 299호)
4사자3층석탑(국보 35호)
서오층석탑(보물 제 133호)
각황전 앞 석등(국보12호)
어마어마하게 큰 사찰의 모습
우리나라의 국보를 배경으로 사진도 한장 찍고...
모처럼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화엄사 사찰내 전경을 돌아보고 우리 일행은 구례를 나가기 위하여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사찰 경내가 얼마나 넓은지 걸어서 나오는 거리만도 30여분이 걸리고 도로 우편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관하는 浮圖전을 볼 수 가있다
화엄사 일주문(智異山 大 華嚴寺)
대원사를 기점으로 출발한 우리들의 지리산 종주는 화엄사 경내를 돌아보는것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종주산행을 마치게 되었다 나의 일생일대에 한번뿐인 회갑기념 지리산 종주에 동참하여 주신 친구와 아주머님 그리고 처제에게 감사를 드리며 별로 글 같지도 못한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4년 6월 12일 23시 17분 구례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있는 모습
아래 꽃 그림사진들은 내가 종주 구간중에 만난 아름다운 야생화들의 자태입니다
함박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