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년 10월 3일
목적산 : 내장산 (전북, 정읍)
일행 : 부산 새한솔산악회 일행 36명
산행코스 : 일주문→ 백련암→ 사랑의 다리→ 비자림→ 원적암→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금선폭포→ 용굴→ 금선계곡→ 내장사→ 매표소(5시간30분 소요)



내장산은 불붙는 듯한 단풍으로 매년 가을철이면
최대 관광인파를 기록할 만큼 절경이어서
대한8경의 하나로 꼽히는 등 '남금강'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명산중의 명산이다.

또한 봄에는 철쭉과 벚꽃, 여름의 울창한 숲과 계곡의 녹음 등
사철 모두가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고 있다.
내장산은 내장사를 중심으로 주봉인 신성봉을 필두로
동쪽으로 문필봉, 연자봉, 장군봉
그리고 서북쪽으로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월영봉 등
기암 괴봉들이 말 발굽형의 능선으로 둘러서 요새 같은 지형으로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10여종의 단풍 숲을 비롯 바위떡풀, 굴참나무, 숫명다래나무 등
129과 666종의 식물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19호 굴거리나무 군락과 비자나무 수림이며
백양사 경내의 제153호 비자림을 포함 23종의 짐승과 125종의 조류,
180종의 곤충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렇게 전국 제일의 가을단풍을 자랑하는 곳이라 절정에 달하는 11월 초순을 피해 약 40일 먼저 다녀왔다.

오늘은 단풍객이 적어 관광버스가 일주문 가까이 들어갈 수 있었다.


12:00 일주문 앞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항상 산행에는 A,B팀으로 나누어지기 마련이라
B팀은 내장산의 최고의 멋진 비경을 자랑하는 월영봉과 서래봉을 가지않고
바로 불출봉으로 오르기로 했다.

백련암에서 걸음이 늦은 B팀을 인솔하여 원적암으로 향했다.
산책로와 같이 대체로 잘 열려 있었지만 주위의 나무는
아직 단풍으로 물들 생각을 하지않고 있다.


12:20 원적암으로 가는 도중, 약 100m의 돌길이 이어진다. 사랑의 다리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이 돌길을 딸각 소리가 나지않게 정성들여 지나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또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는 곳인데
이곳은 어떻게 된곳인지 소리내지 않고 지날수가 없었다.


12:45 비자림에 도착했다.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목은 300~500년 된것으로 잘 보존되어 관리되고 있어
주위 비경과 함께 매우 아름다웠다.


12:30 원적암에 도착했다.
보잘것 없는 사찰이지만 암자 뒤로 불출봉의 위험한 암릉이 묵묵히 자리하고 있었다.
먹뱅이골로 내려가는 계단길 끝부분에 산사약수라 이름붙인 약수터가 있다.
원적암안에 있으나 등산객들이 암자안으로 드나들자 지금은 호스를 이용해 이곳으로 뺴두었다고 한다.

더운날씨라서인지 물이 시원하지 아니해 약수같지 않다.
암자 옆 청동불상이 좀 특이하고 크지만
산중의 암자고 차가 오르지 못하는 곳이라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원적암을 구경하고 다시 비자림쪽으로 나와 불출봉으로 오른다
.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같이가는 일행중에 다리 아프다고 하소연 하는 사람이 생긴다.
쉬면서 올라가지만 A팀은 서래봉의 철계단을 오르느라 더욱 고생하고 있는가 싶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내장산 주능선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멋진 전경이 펼쳐진다.
망해봉, 까치봉이 바로 건너편에 보인다.


13:10 불출암터에 도착했다.
옛 절터였다고 한다. 자리는 아담하고 좋았지만 뒷쪽의 바위가 흘려내릴까 걱정이다.
마지막 힘을 내어 5분을 더 오르니


13:15 불출봉에 도착했다.
이제 건너편의 신선봉을 비롯한 까치봉, 망해봉, A팀이 올라있는 서래봉까지
어깨를 나란히 견주고 있다.
A팀이 서래봉에서 식사를 한다기에 우리 B팀도 불출봉을 조금 지나 점심식사를 했다.
능선에 올라 주능선에서는 아까 오를때 보이지 않았던
능선 너머의 경치도 눈에 들어온다.
내장저수지의 시원한 물과 이곳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다.


14:05 망해봉에 도착했다.
지금은 A팀이 뒤 따라오고 B팀이 앞서서 진행하고 있다.
망해봉에서는 경치가 더욱 좋다.
남쪽으로 백암산과 서쪽으로 입암산이 보이고
그너머로 방장산이 막고 있으나
날씨가 너무 맑아 방장산 오른쪽으로 서해 바다도 보인다.


아까 보이던 내장저수지도 보이지만
이곳 발아래는 용산 저수지의 푸른물이 시원하게 보이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정읍시내와 내포평야의 넓은 들도 눈에 들어온다.

잠시 인원을 통제하고 행동하는 회원들을 확인하면서 망해봉에서 기다리는 동안

반가운 한국의 산하 1500산 김정길님과 백운산 및 여물봉님을 만난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역시 사람이란 정을 주고 정을 받고 정답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했으므로 아쉬운 이별을 하고 헤어졌다.


망해봉에서 연지봉으로 오르는 길은 정말 동네 뒷산처럼 부드러운 산이었다.

그리고 잠깐 오르니 까치봉이다.
까치봉에서 다시 다리아픈 사람은 하산하도록 하고
잠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얼마전 통영의 이수영 아우가 백양산, 내장산 종주시
약간 길이 헷갈렸다는 소죽엄재를 거쳐 순창새재를 거쳐
백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잘 열려 있는데
그날은 날씨가 좋지못했나 보다.
오늘은 맘이 좋은 사람들이 찾아와 이렇게 맑은 날씨가 되었을까 싶다.
이글을 수영아우가 읽는다면 기분 나쁘겠지만
하늘은 사람맘을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실레]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뒤로 하고 최고봉인 신선봉으로 향했다.

15:40 신선봉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오늘 오르지 못한
건너편의 서래봉에서 월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너무나 아름답다.

신선봉에서 금선대를 지나 금선계곡으로 내려섰다.
가파른 길이라 미끄러질듯이 내려간다.
금선계곡에 도착했지만 계곡의 물은 거의 없다.
그래도 금선폭포를 안 볼 수 없어 가보니
물이 없어 폭포의 위력을 잃고 있었다.


다시 용이 승천했다는 104 철계단으로 이루어진 용굴을 올라보았다.
이곳에 임진왜란때 이조실록을 숨겨놓았다고 하나 굴이 너무 얇고 보잘 것 없었다.
철계단이 없다는 오르내릴 수가 없어 숨겨두기는 좋았다고 생각이 된다.

금선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내장사에 도착했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37년(636년) 영은조사가 창건한 것으로서
본시 지금의 내장사 어귀인 부도전 일대에 50여동의 절을 짓고
영은사라 했다고 한다.
고려 숙종과 조선 명종 때에 전각과 당우를 크게 고쳐 세웠으나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됐고 그 뒤 정조 때에 다시 일으켜 세웠는데
이렇게 역사가 깊은 이 절은
1925년 본사를 백련암으로 옮겨 백련사라 하고
옛 절터에는 영은암을 두었다가 1938년 지금의 자리에 내장사를 세웠다.

내장사를 중심으로 말굽처럼 빙둘러 산세의 골짜기를 이루고 있으니
이곳에 많은 인원이 들어와도 어느 골짜기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어
양의 내장과 같다하여 내장사라 바뀌었다고 하니
얼마나 깊은 골짜기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장사절에서 일주문까지의 단풍터널은
지금부터 100여년전인 1892년 내장사 스님들이 인위적으로 꾸민것이다.

모두 108그루의 단풍나무를 심어 지나면서
백팔번뇌를 모두 벗어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주었다 한다.

108그루 중 7그루가 죽었으나 1990년경 다시 108그루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고목이 되어 단풍의 위력을 잃고 있다고 본다.

일주문 밖으로 집단시설지구가 있는 약2.5Km의 공원에는 1970년 도립공원이던 시절, 심은것으로
지금은 30~40년 생이 더 붉고 더 멋진 단풍을 자랑하고 있다.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아니했지만 감나무 감이 빨갛게 익어 주위는 울긋불긋 하다.
이렇게 산책로를 따라 하산하며
17:30 내장산의 철이른 단풍구경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