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저에겐 꿈만 같습니다.

산이라곤 동네 휴양림 천천히 걸어 30여분 매일 올랐던 것도 아니고 어쩌다 마음내키면 오르곤 하던 것이 전부인 제게

지리산은 너무 거대했습니다.

9월 19일 천안에서 23시 50분 구례구행 열차에 몸을 싣고 떠나면서 마치 연인을 만나러가는 처자처럼 마음은 무척 설레였습니다.

잠을 좀 자 두라시는 형님의 채근이 있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더군요.

처음 가보는 지역이라(원래 머리가 나쁜탓도 있음) 지명도 잘 모르겠고 구례라고 해서 도착해 보니 작은 역에 불과하더군요

그곳에서 내리는 모든 분들의 복장이 산을 찾아가는 분들의 복장이었습니다.

구례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옮기고 그곳에서 해장국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남자분 몇이서

문앞에 계시더군요. 어디에서 왔느냐 코스는 어디로 잡았느냐 또 맛있는 것 많이 싸갖고 왔느냐...는 등 별스럽지 않은 대화를 걸어오기에

난 흥미없다는 듯 흘려버렸는데 형님은 그 분들하고 대화를 잘 나누고 계셨습니다.

차가 출발할 시간이 되어 서둘러 차에 승선했고 다시 차로 이동 도착한곳이 노고단 매표소앞.

세상은 아직 어둠속에 있었고 그 어둠을 후레쉬 하나로 의지하며 산을 오르기 시작한 시간... 05시정도였습니다.

노고단까지 가는 길이 너무 만들어진 길이라 조금은 실망을 했었구요. 그 평탄한 길을 오르며 제게 재차 물었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산엘 오는가? 왜 사람들은 산엘 오는가?

제 자신도 그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면서 건방지게 사람들까지 들먹이고 있으니... 좀 한심하단 생각이...

등에 걸머진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던데 형님것은 제것보다 훨씬 더 무게가 나가더군요. 연신 어깨가 아프단 말씀이 있었지만 워낙이

내것도 힘에 겨웠던 지라 덜어드릴수가 없었습니다.(난 초보니까...)

그렇게 걷다가 눈앞에 나타난 곳은 노고단 대피소. 그곳에서 잠깐 얼굴 세안하고 볼일을 보고나서 서둘러 노고단 정상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일출을 보자고... 원래는 천왕봉 일출이 절경인데 그곳은 삼대가 잘해야 일출을 볼수 있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일출이 정경이라고.

노고단 정상에 올라 사진 몇장 찍고 동쪽하늘 발개지는 노을만 구경하다가 다시 길을 재촉하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노고단 오르던 길과는 달리 양 옆으로 나무들이 늘어서고 숲의 오솔길 같은 길이 계속 이어져 있어 내가 산속에 있음이 정말 실감이 나더

군요. 구경하며 걷다가 잠시 쉬어 준비해간 초콜릿이나 과일등을 먹으며 멀리 산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들을 감상하며... 정말 내가

그곳에 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구름이 굽이치는 계곡마다는 바닷물 출렁이는 해안가 같았고 아~ 그곳에서 발견한 풍경은...

  

세상은  호수

겹겹의 산들은 연꽃잎들

그 안의 구름은 연꽃의 수술이어라

  

해발 1500피터에 피어난 연꽃한송이

호수 정화하려

이른 새벽부터 저리 부산한데

  

나름대로 홀로 흥얼거리며 부지런히 형님의 뒤를 따랐는데 때는 끼니를 알리는 12시가 가까워오고 있었고 지나는 곳은 뱀사골대피소.

200여미터를 내려갔다 올라와야 하는 단점때문에 그 대피소를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연하천 대피소로 향했습니다.

가다가 젊은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난 기억을 못하는데 형님은 함께 버스를 타고 노고단 대피소까지 왔다고 하더군요.

그 분들한테 왜 산에 왔느냐 물었더니 자기들은 대학원생들인데 식물 연구차 지리산에 왔노라 했습니다.

두 가지 식물을 연구중인데 지금은 '투구꽃'을 연구중이라고... 보라색으로 길섶으로 자주 눈에 띄이곤 하던 꽃. 사진으로만 봐 왔던 꽃을

처음 발견하곤 참 좋아라 했던 꼿이었는데... 고산지대라 생각지도 못했던 '여뀌'나 '고만이'같은 꽃들도 눈에 띈다 했더니 사람들의 옷에

묻어오는 경우도 있다 하더군요. 제가 또 묻기를 "지금 하는 일을 하면 돈 벌어요?" 했더니 "돈은 안되지요" 그래서 무엇때문에 이 일을 하느냐 했더니 그냥 좋아서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그 분들의 얼굴이 빛남을 보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함께 사과를 나누어 먹는데 곁에 와 털썩 주저앉는 사람이 있어서 그 분께 물었습니다. 왜 산에 왔느냐고...

그 분은 회사를 사직하고 잠시 쉬는중에 산에 꼭 와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더군요. 10월초부터 다시 출근하게 되는데 시간은 지금밖에

안될것 같다면서...또 젊은 두 연인한테도 산에 왜 왔느냐 물었더니 산이 불러서 왔다는 대답을 쉽게 했습니다. 다시 쉬는 것을 중단하고

걷기 시작. 형님과 나와 둘만의 산행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날씨는 그런대로 괜찮았었는데 조금 걷기시작하자 흩어졌던 구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마음은 점점이 조급해질수 밖에 없더

군요. 그렇게 지친걸음을 내딛고 있는데 새벽에 만났던 그 아저씨들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만남이었죠. 그 아저씨들은 4분이 함께 오셨는데 그 중의 한 아저씨도 저처럼 왕초보라 했습니다.

처음엔 이까짓것 하며 잘 걷더니 자꾸 뒤로 쳐진다고... '앗싸' 라고 부르며 뒤에서 잘 따라오는지 연신 확인하며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어찌어찌하다 형님하고 이야기가 잘 되었고 형님이 손에 들었던 냄비따위를 한 아저씨가 들어주셨는데 형님의 짐을 덜어질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랐습니다. 점심때는 이미 지나 있었고 나타나야 할 연하천은 나타나 주질 않았고 비는 간간이 뿌려지기 시작했

고... 급기야는 배낭에서 우의를 꺼내 입어야 했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연하천 대피소가 보였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라면과 준비했던 햇반으로 요기를 달래고 다시 벽소령 대피소를 향하여 질주를...

비는 조금 멈칫한 상태였고 또 연하천과 벽소령 사이는 그리 먼 길이 아니라 여유가 좀 있다했지만 산의 날씨는 맞추기 어렵다면

아저씨들과 같은 일행이 된 우리는 걸음을 재촉하며 벽소령을 향했습니다.

길이 지금까지 거쳐왔던 길과는 달리 좀 험난했고 비를 몰아보려는 바람의 위세가 너무 강해 몸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정도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마음에선 알지못할 희열같은 것이 목구멍을 타고 뜨겁게 넘어오고 있었음을 느낄수가 있었는데 참 나같은 사람 어쩔수 없

다고 처음 타보는 산행에 갖가지 체험은 다 하고 싶노라는 내 욕심이 올라오는 뜨거움이었답니다.

멈추는 듯 했던 비는 다시 내려쏟기 시작했고 벽소령을 알리는 이정표가 다 왔음을 알려주더군요. 오후 5시 30분경 벽소령에 도착했고

그곳은 유난히 바람을 맞이 타는 곳이라서 식수있는 곳과 화장실, 취사실까지의 이동이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저녁은 거의 포기하고 방 번호나 배치받아 쉬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침에 만났던 (편의상 당진아저씨들) 아저씨들이 저녁을 해

놓을 터이니 취사장에 함께 내려가자 하시더군요. 입고 있던 옷을 다리 끝까지 올려붙이고 일회용 우의에 이지하며 바람에 날릴듯 간신히

찾아 들어간 취사장안은... 건물 귀퉁이에 덧 달은 곳이라 여기저기 비는 새어 들어오고 꼭 물에 빠진 생쥐들 모양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우습기도 했지만 소꼽장난처럼도 느껴졌지만 왠지 마음이 들떠옴을 또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삼겹살에 소주한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저녁의 밥물은 빗물이었다 했지요. 그래서 밥맛이 꿀맛이었나 봅니다.

소주한잔하고 너무 피곤하여 먼저 올라와 자리에 누워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습니다.

아침밥은 역시 당진아저씨들이 해 주셨는데 내려가보니 김치 찌개에 진수성찬 이었고 여유있게 준비한 탓에 옆 자리에 앉았던 세분께

나누어 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청소년 상담소라? 잘은 모르겠는데 한분은 결혼을 하신 분이고 담당하고 있는 일이 청소년 문화담당

나머지 두 분은 연인사이냐 했더니 그냥 직장 동료라며 모두 다른 부서에서 일한다 하더군요. 아마도 산이 좋아서 함께 뭉쳐진 동료같았

습니다.  벽소령에서 만난사람이 또 있는데 여자의 몸으로 홀로 산에 온 아가씨입니다.

지금은 영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휴가차 고국에 왔다가 산에 오고 싶어서 혼자 왔노라하면서 웃음을 지었는데 산의 웃음이 이럴

것단 생각을 그 아가씨의 얼굴에서 보았습니다. 산이 참 좋습니다. 산이 좋음을 산에 오르니 산의 맛을 알겠다고...

벽소령 대피소로부터 백무동까지는 그리 먼길이 아니니 여유롭게 가자면서 우리 일행(당진아저씨들까지 포함)들은 오전 9시경 묵었던

곳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첫날보다 다른 사람들은 길도 좋아 쉽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에겐 첫날보다 더 어렵단 생각이

들더군요. 간신히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여 점심... 역시 라면으로 때우고 다시 장터목으로 향했습니다.

장터목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찌개와 밥으로 저녁을 해결했고 준비했던 소주가 너무 작아

구걸을 나서게 되었는데 저보고 말을 잘 하니 나가서 얻어오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재주는 정말 없다고 발뺌하기를 수차례

할수 없이 취사실에 가서 동정을 살피는데 나이드신 아저씨 한분이 저보고 어디에서 왔느냐 말을 붙이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

는데 우리 아저씨들중 한 분이 내게 오셔서 기회는 이때라 술 이야기를 하라 재촉하여 정말 죄송하지만 준비한 술이 여유가 있느냐고

나이드신 아저씨께 물으니 줄것은 없지만 정말 좋은 술이 있으니 한잔 하고 가라시며 따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내 입이라도 더는 마음으로 그 잔을 받아 마시며 어떻게 이렇게 산에 오르게 되었느냐 물으니 그 분들은 전직 교사들이었고 지금은

정년하여 가끔 산에 오르곤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참 보기에 좋다하며 그 자리를 떠 밖에 나오는 또 젊은 분 넷이서 라면을 먹고 있는 것

이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다가가 혹 술 남은 것 있느냐니 역시 없다며 여기 조금 있는 것 한잔 하라며 또 한잔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더는 마음으로 한잔을 쭈욱~ ... 이 꼴을 보고 일행 아저씨가 우리쪽으로 가자시며 나보고 배신자라네요.

혼자만 다니면서 술을 얻어먹었다고... 그래서 내 한입이라도 줄여 보겠다는 어여쁜 마음이었는데 서운하세요? 했더니 저보고 맥주를

다섯병이나 벌도 사라더군요. 그래서 알았다며 물주는 우리 형님이니 형님이 사 오셔야 겠다고 하니 방 번호 배정받으러 가는 길에 사다

주마 약속을 하셨는데 후에 가서 맥주를 알아보니 대피소에선 술은 판대가 안된다고... 아쉽다해야 할지 잘되었다 해야 할지...ㅠㅠ

장터목에서 당진아저씨 일행들은 회사 동료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은 이번 사진공모전이 있는데 그곳에 출품할 사진을 찍으러

천왕봉을 여러번 오르고 있었다했습니다.  마지막의 밤은 그렇게 흘렀고 일생일대의 일출을 보기 위해 우리는 새벽 4시부터 서둘러

천왕봉을 향하여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새벽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을 보고 일출을 볼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출발을 했는데

가면서 점점이 덮쳐오는 구름은 점점이 그 희망까지 덮어오고 있었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을 여러차례... 산이 우리를 공처럼 튀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빙긋한 웃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통천문'을 지나 조금 더 오르는데 고지가 바로 저 앞이라는데 너무 가파른 길 때문에 현기증이 나고 다리에 힘까지 빠져 버리고...

올라가는 길은 그런대로 위만 바라보니 괜찮겠지만 내려올때 난 죽었단 생각밖에 없더군요.

그렇게 죽기살기로 올라간 천왕봉 도착시간... 5시 40분정도. 해는 6시 10분에 뜬다는데 안개(아님 구름)이 너무 심해 일출은 아예 포기

그래도 올라왔으니 시간이나 맞추어 보자시는 형님을 졸라 철수하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6시경.

노을도 느끼지 못할정도의 짙은 구름떼인데 일출을 보여주겠느냐는 것이 제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 구름이 많을때

내려가야지 고소공포증이 심한 저에겐 길이 수월할 것 같아서...

당신아저씨들과는 천왕봉에서 헤어졌습니다. 서로 내려가는 길이 틀리기도 했고 장터목에서 만난 회사 동료의 차를 이용하기로 했다해서

우리는 장터목 대피소로 옮겨와 아침도 해결하지 못하고 (캠핑가스로 이용하는 가스렌지에 부탄가스만 있었음 - 장터목엔 캠핑가스가

없었음)  가다가 초콜릿으로 배고픔을 때우고  도착하여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장터목에서 만난 아줌마와 약속을 하고 숙소

밖으로 나왔는데 사직서 내고 출근하기 전에 산에 올라왔다는 그 청년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우리일행은 넷이되게 되었고 가까울줄 알았던 백부동길이 참 먼거리임을 느끼며 힘겹게 내려온 시간은 12시 40분정도...

지리산 종주를 자축하며 도토리묵 안주로 동동주 한잔씩... 그리고 주린배를 채우려 먹어치운 비빔밥 한그릇씩...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고하며 그렇게 지리산을 빠져 나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번 여행이 얼마만한 의미로 다가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초보의 몸으로 아무 사고없이 무사한 종주를 끝낼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산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가슴엔 모두 산을 하나씩 품고 있더라는 것.

눈으로 보고 느꼈던 그 모든 것들을 애써 기억해 두려 노력은 하지 않을것입니다. 아니 차라리 잊고 싶습니다. 잊어서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산은 내가 되지 말라 하셨습니다.

산은 너도 되지 말라 하셨습니다.

산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되어라... 너희가 되어라고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내가 산에 오른 이유... 궂이 말하라 하신다면

오뒤세이가 고향 이타카를 찾아 헤매이는 그 마음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