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산 산행기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산/ 2004. 9. 19(일)

태양산악회 따라> *세 번 놀라게 하는 팔봉산

 

 

 

팔봉산은 등산객을 세 번을 놀라게 한다. 바라보는 산 높이가 겨우 302m라서 놀라고, 그 높이게 비하여서 산이 너무 만만치 않아서 놀라고, 팔봉산이 홍천 강이란 수반(水盤) 위에 놓인 수석 같이 아름다워서 놀라게 한다는 산이다. 거기다가 하나 더한다면 팔봉산은 두발로 오르는 산이 아니라 네 발로 오르내려야 하는 산이다.

 

 

 

지금 우리 태양산악회 버스는 그 팔봉산을 향하여 양수리의 환상적인 경치를 지나가고 있다. 젊어서 홍천강의 모곡을 수없이 찾았지만, 팔봉산이란 명산을 두고도 강만 보고 다녔다. 직장동료들과 등산하러 팔봉산을 찾았을 때에도 그들이 산행하는 동안 나는 흐르는 홍천강 강 속에서 허리까지 몸을 담그고 견지낚시를 하고 있었다. 산보다 낚시에 깊게 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다시 가 보고 싶은 산보다 처음 가는 산은 언제나 신비로운 법. 나는 이제야 팔봉산을 찾아 주차장을 지나, 팔봉교를 건너, 그 팔봉산 매표소 앞에 서 있다.

 

 

매표소 앞 장승이 하염없이 웃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앞에 우뚝 서있는 나무 장승이 남근목(男根木)이다. 그래서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좋아서 웃고 있었던 것인가. 그런데 남근석이 여기에 왜 있는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간다. 의미 없이 억지로 웃기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았다면 말 그대로 웃기는 치졸한 일이 되는 건데-. * 암릉 따라 이 봉에서 저 봉으로 8봉산 등산은 매표소를 지나 왼쪽으로 철다리를 넘어가는 길로 시작해야 한다. 오른쪽 길은 하산하여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리본이 요란한 돌길 따라 얼마를 오르니 이정표가 있는데 예쁜 비둘기 집을 위에 인 나무기둥으로 서서 묻고 있다. 쉬운 길로 돌아 가겠는가. 험한 길로 그냥 가겠는가. 302m의 낮은 산이지만 함부로 대할 산이 아니라고 은연 중 겁을 주는 말 같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난 코스 1봉을 피해 2봉으로 직접 가는 편한 길도 있지만 모두들 가는 가파른 1봉 가는 길을 따라 가니 이 보란 듯이 가파른 오름 길이 로프로 시작된다. 대롱대롱 매달려 로프와 보조 쇠 디딤 철조물이 아니면 올라가기 힘들 정도의 암릉이었다. 한 발을 내 디디기도 두려운 바위 길을 오르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시원한 전망이 휑- 하게 뚫리기 시작하더니 바위와 노송과 하늘이 어울린 지점이 팔봉산 1봉 정상이다. 눈 아래 한국의 산하를 뚫고 하얀 도로가 먼 산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다. 1봉의 가파른 직벽 암릉에 질려 다음에 넘어야 할 2봉이 송림 사이에 의젓한데 1봉에 질려 더럭 겁부터 앞선다.

 

 

이 팔봉산의 매력은 봉과 봉이 이마를 마주대고 있듯이 이어져 있어서 철 층계나 밧줄을 조심조심 오르내려서 안부에 서 10m 내외의 거기가 바로 다음 봉의 오름 길이고, 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돌아서 그 다음 봉으로 직접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고마운 것은 위험하다 싶은 모든 구간마다 튼튼한 밧줄 아니면 쇠사다리나 디딜 쇠 발판, 바위에 굳게 박혀 있는 'ㄷ' 자모양의 손잡이가 바위에 굳게 박혀 있어 산을 찾아온 나그네에게 안도의 마음을 갖게 해준다.

 

 

 

 

2봉 정상에는 바위와 나무 사이에 뜻밖에도 깨끗한 기와집이 있어 호기심을 발하게 한다. 3부인을 모신 당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인 이조 선조 무렵에 이 산 아래 어유포리에 살던 효부(孝婦)였던 이씨, 김씨, 홍씨 신을 모신 당집이다. 그 옆에 있는 이보다 더 큰 집 삼선당(三仙堂)은 그 당굿을 하던 곳인가 본데 속을 살필 수 없게 굳게 잠겨 있었다. 여기서 삼선(三仙)인 칠성(七星). 산신(山神), 삼부인(三婦人)을 모시고 굿을 하는데, 팔봉산 주변 마을 사람들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며 액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는데 요즈음은 거기에다가 등산객의 안전한 산행을 하나 더하였다. 이 당굿 팔봉산 부락제가 시작되는 음력 3월, 9월 보름이 되면 전국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 당굿을 보는 이 모두가 무병장수하고 각자의 소원이 성취 된다 하여서다. * 8봉산 정상에서

 

 

산은 멀리서 보아야 멋있지만 그 산을 구성하는 봉들은 가까이서 보는 것이 제격으로 더욱 아름답다. 2봉에서 건너다 보는 3봉은 산을 배경으로 소나무에 싸여 신선의 세상을 만들어 놓고 어서 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3봉을 오름길의 안부에는 2봉의 정상에 있어야 할 표지석이 있는데 거기에 등산객들이 성황당처럼 정성 드려 작은 돌을 쌓아 놓았다. 태풍 등으로 떨어져 굴러 내려온 것을 그대로 두었나 보다. 긴 쇠다리를 가파르게 오르니 이번에는 긴 로프가 정상으로 이어져 있다.

 

 

 

이 3봉이 302m의 팔봉산의 정상이다. 팔짱을 끼고 서있는 듯한 8형제 중 장남이 되는 봉이다. 오대산맥이 매봉산과 두릉산을 일구고 이곳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1봉 2봉을 솟구고, 왼쪽 홍천 강까지 4, 5, 6, 7, 8봉을 빚어 놓은 것이다. * 팔봉산의 하이라이트 해산 바위

 

 

4봉을 향한 오름 길에서는 3, 40분을 속절없이 기다려야 했다. 일요일로 등산객이 몰리어서 병목 현상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여기는 팔봉산에서 가장 등산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곳으로 가장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10m 가량의 수직 바위굴은 몸 하나가 겨우 빠져 나갈 구멍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서로가 우리가 되어 함께 도와 가는 미덕을 저절로 체득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굴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팔봉산 4봉에 태고의 신비를 안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이 굴은 통과하는 과정의 어려움이 산모가 아이를 낳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 하여 '해산굴'이라고 부르며 여러 번 빠져 나갈수록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있어 일면 '장수굴'로도 불립니다.“

 

 배불뚝이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가방을 멘 채로는 절대로 통과할 수 없는 곳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배를 위로하여 우선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 몸을 틀면서 다리로 서서히 밀면서 손으로 당기면서 용을 써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는 비좁은 터널이다. 생각해 보라. 비 오는 날 이 곳을 통과한다면 옷이 어찌 되겠는가. 그래서 눈 비 올 때나 음주 후에는 입산 통제를 하는 모양이다. 이 굴을 통과한 한 부인이 말하더라.

 

'내 엄마 배를 청소하고 나와서 이렇게 멋진 산은 처음이네.' * 시흥에 겨워 다시 또 철 층계를 오르고, 밧줄을 부여잡고 기를 쓰고 오르니 눈 아래 펼쳐지는 홍천강의 굽이쳐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이 수없이 카메라의 눈과 시심을 열개한다. 시성 두보도 이런 풍경에 취해 '강촌'(江村)이란 시를 썼으리라. 강촌을 읊조리다 보니 나도 저절로 시흥에 겨워 즉흥시 한 수를 끄적여 보았다.

 

 

 
 
江村(강촌) 맑은 강의 한 굽이가 마을을 안아 흐르니 긴 여름 강촌의 일마다 그윽하도다. 절로 가며 오는 것은 집 위의 제비요 서로 친하며 서로 가까운 것은 물 가운데의 갈매기로다. 늙은 아내는 종이를 그려 장기판을 만들거늘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고기 낚을 낚시를 만드나다. 많은 병에 얻고자 하는 바는 오직 약물이니 이 보잘 것 없는 몸이 이것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두시언해에서 8폭의 병풍이 부챗살로 날개 열고 산을 휘돌아 흐르는 홍천 강을 굽어보는 함부로 犯接할 수 없는 直壁의 매운 고추여 -8봉산 정상에서
 
 

슬슬 시장기가 느껴진다. 이럴 때는 몇 년 전의 생활이 그립다. 등산을 갈 때는 아내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이 유랑의 남편에게 싸아준 보온밥통을 정상에서 열면 거기서 풍겨오는 온기에 따뜻한 아내의 정이 눈물겹도록 산상의 행복을 누리게 하였는데, 요즈음 전철역 근처에서 밤새워 팔고 있는 한 줄에 1,000원 짜리 김밥 장사가 그런 행복마저 앗어가 버리고 말았다. 산봉우리를 타다보니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하는데 또 봉이 나타나고, 밧줄이나 철 층계도 이게 고만이었으면 하는데 또 계속되니까, 지금까지의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던 다양한 암릉 코스가 오히려 귀찮아 진다. 네발로 오르내리며 험란한 코스의 아기자기하고 기기묘묘하던 등산의 묘미도 시들해 진다. 지쳐있기 때문이다.

 

 

'여기가 8봉이지-' 하면서 신나게 한곡조 뽑는 부인네를 뒤로 하고 하산할 준비를 하는데 저 밑에 우뚝 진짜 8봉이 괴물 같이 우뚝 솟아 있다. 지금껏 지나온 봉과는 그 격이 사뭇 달라 올라갈 마음을 잃게 하는데 안내 표지판 또한 요란하다.

 

 

이 팔봉산 등산로 코스 중 8봉은 가장 험하고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코스라고-, 등산에 풍부한 경험과 체력이 없으신 분이나 노약자는 현 지점에서 하산하라고-, 8봉 하산 길은 아주 위험하니 여기서 그냥 하산하라고 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등산이란 산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이다. 몸과의 다툼이 아니라 마음과의 다툼이다. 마음이 몸을 이기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 등산의 세계다. 땀 흘려 정상에서 찾는 보상은 어느 물질적인 세계를 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도 충분한데 어찌 여기서 포기할수 있을까.

 

 

7봉에서 보던 까마득한 8봉 꼭대기에 내가 지금 서 있는 것을 보면 시작은 반이 아니다. 반도 더 되는 것이다. 이 순간만은 나는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 노송 사이의 찬란한 홍천강과 주차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듯이 푸르스름한 산들, 익어가는 벼, 짙어가는 가을 속에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굽어보는 찬란한 세상을 차곡차곡 마음에 압고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긴 로프를 타본 일은 없었지- 하면서 질퍽한 직벽의 하산로 따라 내려오니 바로 홍천 강인데 걸어야 할 길 없는 그대로가 강이요 절벽이다. 홍천군에서는 물 위쪽에 로프를 연결하여 놓고, 바위를 뚫어 긴 철판을 깔아 사람이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군대 유격 훈련처럼 두 손으로 밧줄을 잡고 옆으로 게걸음으로나마 갈 수 있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일부분이 아니라 거의 전부였다.

 

 

어떤 부분은 디디는 철판이 물에 잠겨 있었다. 만약을 위해 카메라를 보자기에 고이 쌓아 배낭 속에 깊숙이 넣고 등산화에 물이 스며 드는 것을 감수하며 건너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수많은 산을 다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여름철 장마로 물이 불으면 이것도 불가능하여 왔던 길도 되돌아 가야 한다. 그래서 이 산 봉의 중간 중간에 4개의 하산 길이 있었구나.

 

 

강물은 여울로 소리를 내며 급히 흐르는데 강 건너 쪽 물 중간쯤에서 낚시군들이 몸을 허리까지 담그고 수장대를 꽂고 설망을 띄우며 견지낚시를 하고 있다. 산보다 낚시에 미쳐 살던 20년 전의 나의 모습이었다. 그 때는 수석(壽石)이 한창이었을 때라 낚시에 쏟는 정성을 수석에다 쏟았더라면 8봉은 못되어도 삼 봉에 호수 석과 평원 석을 겸한 오석(烏石) 하나쯤은 마련했을 텐데-. 철판 길을 지나 모래사장 길에 들어섰더니 높은 나뭇가지에 비닐이 주렁주렁 열렸다. 2m도 더 되는 높은 저 위치까지 지난 여름 무서운 태풍에 강물이 흘렀다는 말이다.

 

 

등산로 입구였던 매표소를 지나 팔봉교를 건너오니 오석의 비석 하나가 팔봉 다리를 놓게 된 슬픈 사연을 말해주고 있다. "1981년 5월 12일 해가 질 무렵 고요히 흐르는 홍천 강 나루터에 때 아닌 재난이 올 줄이야--. 철부지 아들딸들의 꿈 많은 소풍 준비를 위하여 광관시장을 바쁘게 다녀오던 그날, 세찬 물결과 돌개바람으로 나룻배가 뒤집혀 우리 이웃의 여덟 분이 유명을 달리하시는 뜻밖의 참변- (중략) 팔봉의 영산 아래 가신님들이시여. 한 많은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다리를 놓았노라. 영령들이시여! 그토록 오랜 우리들의 소원이 이룩되었으니, 눈물을 거두시고 고이고이 잠 드소서 -1982년 6월 팔봉 주민 일동" 그래서 이 홍천강 유원지의 안전 시설로 그 옆에 우람한 사이렌 구조물을 만들었나 보다. 그래서 우리가 이리 편하게 팔공산 등산을 하게 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