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흐리거나 비가오는 주말이면 추억의 명화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이 생각나 다시 보고 싶다. 쇼팽의 야상곡을 들으며 갓 볶아낸 은은한 향을 맡으며 원두 커피를 마시고 싶다. 아니 낮잠을 자다 일어나 게으름을 피우며 찐 감자를 먹고 싶다.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 다 접어두고 산행을 가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장마철이라 비올 걱정이 앞섰다. 7시 반에 광주를 출발한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잔뜩 흐린 날씨에 간간히 짙게 낀 안개 지역을 벗어나자 날씨가 개기 시작한다. 오히려 적당히 구름이 끼어 산행하기에 그만인 날씨다. 하늘은 우리의 산행을 축복해 주었다.


 오늘 산행지는 청풍명월의 고장 단양에 있는 도락산(道樂山, 964.4m)이다. 이 산은 충북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에 있는 바위산으로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도락산은 조선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도를 깨닫고 스스로 즐길만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단양하면 단양팔경이 유명하다.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이 그것이다. 이 8경중 도락산을 끼고 북쪽으로 사인암이 있고 서쪽으로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4경이 이 곳에 있다.


 지난 해 팔십이 가까운 노부모를 모시고 2박 3일 동안 단양팔경을 두루 답사한 적이 있다. 단양팔경은 물론 단양 시내를 지나 고수동굴, 천동동굴과 온달산성, 구인사 그리고 수안보온천과 왕건촬영장, 주흘관과 조곡관, 청풍문화재 단지와 촬영셋트장, 그리고 청풍호라고도 하는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타며 무더운 여름을 지냈다. 그런데 오늘은 도락산을 가니 그 아니 기쁜가. 이전에 소백산과 월악산, 구담봉과 옥순봉 그리고 건너편의 가은봉과 금수산도 가보았으니 단양팔경 구석구석을 많이 돌아다본 셈이다.
 
 우리 산행 가족은 12시가 넘어서 단양 상선암 휴게소에 도착했다. 다리 위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아뜨리에가 보이는 다리를 건너 산행 들머리에 들어섰다. 곧바로 오르기 시작했다. 숲길과 저 아래 상선암의 멋진 계곡을 내려다보며 제봉(818m)까지 계속 오르막길이다. 군데군데 기묘하게 휘어진 소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쉬기도 하며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철제와 목제를 오르며 암릉길 암봉에 서서 산아래를 내려다 보면 백세주가 아니어도 풍광에 취한다. 어느덧 1시가 넘었다. 제봉 부근에서 자리를 잡아 도시락을 펼쳐 점심을 먹는다. 반찬은 별로 없어도 김치에 풋고추 된장이어도 좋다. 곁의 일행 쪽을 넘겨다보다 머릿고기에 김치 한가닥을 입속에 넣었다. 산에 오면 나눠먹는 인정이 푸근하다. 잘 익은 자두도 한 두개씩 나눠먹는다.  


 제봉에서 주능선을 따라 신선봉을 향해 산길을 걷노라면 일락장송이 군데군데 서있는 멋드러진 암릉지대다. 급경사를 올라서면 또다시 암릉과 암벽이 펼쳐진다. 신선봉에 이르면 마당바위처럼 넓게 펼쳐진다. 저쪽 독야청청 소나무는 절벽 바위 틈에서 동양화를 그려낸다. 온갖 풍상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은 노송과 절벽,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단양천 계곡, 암봉과 슬랩으로 정상까지 이어지는 암릉길은 아기자기하다. 암반으로 되어있는 이 신선봉은 도락산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이 곳에는 1m 정도로 패인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다. 이 웅덩이는 숫처녀가 물을 퍼내면 바로 물이 찬다는 전설을 가진 바위 연못이다. 일행 중에 숫처녀가 없으니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도락산 표석이 어울리지 않게 자리잡고 있고 옆에는 돌무더기 탑 1기가 있다. 도락산은 남서쪽으로 황정산, 동북쪽으로 소백산이 보이는 조망과 경관을 갖춘 멋진 산이다. 휘휘 둘러보며 카메라에 풍광을 담고 마음에 단양팔경의 추억을 담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단양팔경은 조선왕조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과 퇴계 이황, 토정 이지함 등 많은 인걸들이 쉬어갔던 곳이다. 이 지역은 역사와 문화적으로 유서깊은 명승고적들이 산재해 있다. 퇴계 선생도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극찬했던 곳이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하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시조는 자연과 인간의 물아일체를 그려냈다.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山)절로 수(水)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 중(中)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자연 속에서 자연의 순리대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연인의 여유로운 모습을 노래했다. 인간의 본성을 자연에서 찾아보는 성리학이나 무위자연설을 추구한 도가사상이 스며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되 역시 자연은 자연이다.


 그렇게 정상까지 이어지는 암릉길은 설악산 공룡능선을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암벽 바위 틈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천년 세월 비바람을 견디고 꿋꿋하게 자라온 푸른 소나무의 자태다. 분재를 연상케하듯 절벽 바위 틈에서 자란 청솔의 절묘한 조화로움은 한 폭의 산수화다. 또한 도락산의 멋은 지리산처럼 곳곳에 고사목이 우뚝 서있어 나름대로 풍치를 더해주며 절경을 연출한다. 도락산은 절벽 단애의 경관과 암릉미가 일품인 좋은 산이다. 계곡도 좋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그래서 한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이 몰려든다.
 
 정상에서 되돌아나와 신선봉을 거쳐 갈림길에서 형봉, 채운봉, 검봉을 지나면 범바위, 큰선바위, 작은선바위로 이어지는 암릉길이다. 뒤돌아보니 정상 아랫쪽 암벽이 하얗다. 또다른  절벽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산 길 곳곳에 철제나 목제, 쇠고리줄 등 안전시설과 이정표가 있어 길잃을 염려는 없다. 검봉은 차라리 남근석이라 해야 좋을성 싶다. 큰선바위를 올려다보면 육중한 바위에 위압감을 느낀다. 그렇게 능선을 넘어 계곡 다리에 이른다. 다리 아래 맑은 물이 흐른다. 일행 몇몇은 이 곳에서 땀을 씻고 발을 담근다. 다리를 넘어 내려가면 들머리 원점 휴게소가 나온다. 산사람과 함께 맑은 계곡에서 온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상쾌하고 개운하다.


 도락산 자락에는 신라시대 때 축성한 도락산성의 유적이 있고 광덕사라는 암자도 있다. 도락산은 풍광이 좋고 숲길과 암릉을 오르내리며 산길을 걷는 산행의 재미를 흠뻑 맛볼 수 있는 산이다. 도락산의 암릉 산행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다. 국내 어떤 산의 암릉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암릉미와 자연미가 빼어난 아름다운 산이다.
 
 오늘 산행 코스는 가산2리 상선암휴게소-제봉인 상선상봉-능선갈림길-신선봉(바위연못)-정상-신선봉-능선갈림길-형봉-채운봉-검봉-범바위-큰선바위-작은선바위-다리-원점회귀형으로 이어졌다. 대략 10km 정도로 너댓 시간이면 족하다. 오늘 하루도 산행의 맛을 보니 흡족하다. 한 주간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40626)




▣ 산초스 - 멋진 경치와 바위사이의 낙락장송등 너무 좋은산인데 아직 별로 알려지지 않아 깨끗한 도락산이지요. 지난 4월다녀온 기억이 새롭습니다. 정말 한주간 삶의 활력소가 충분히 되실것 같습니다.^^**
▣ 맷돌 - 근교에 오셨네요 멋진 산행 축하드립니다 제비봉도있고 둥지봉도있어요 언제 다시한번오시죠 참 그옆에 말목, 동산,작은동산도있지요
▣ 본인 - 정말 좋으 ㄴ산이었습니다. 감사를 드리고 건강하세요. 제비봉,둥지봉 이름도 호기심으 ㄹ 주네요. 틈내서 가봐야겠네요.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