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지산 산행기

 

ㅇ 일시 : 2004. 12. 27(월)
ㅇ 위치 : 충북 영동군 용화면, 상촌면/전북 무주군 설천면/경북 김천시(높이 1,241m)
ㅇ 코스 : 물한계곡-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물한계곡(14km. 5시간)
ㅇ 찾아간 길 : 경부고속도로-황간 I.C - 물한계곡 표지판 따라 약 20분 진행


   연속하여 3일째 산행이다. 25일 갈기산, 26일 기백산, 오늘은 민주지산. 내가 생각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오늘은 좀 피곤하여 쉬고 싶지만, 회원들하고 약속한 것도 있고 민주지산을 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 하여 무리하지만 강행하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무리하는 나를 아내는 이제 말리지도 않는다. 나의 성격을 알기 때문일 게다. 이러다 몸살이라도 나면 한마디하겠지. '당신이 어린얘유 하여간 그 성격하고는---'

  

   민주지산.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4음절로 되어 있는 특이한 이름과 '민주'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흡입력으로 인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민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을까? 이곳저곳 싸이트를 뒤지고, 산과 관련된 책들을 뒤지다 보니 궁금증이 풀린다. 볼민(眠), 두루주(周). '두루두루 산을 볼 수 있는 산'이란 뜻이다. 어떤 곳에는 '민'자가 산이름민(岷)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도 있어서, 영동군청에 직접 문의하였더니 볼민(眠)자가 맞는 한자라고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그 산을 월요일인 오늘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오른다.

  

   장비의 차가 09시 10분경 유천동을 출발하여 물한계곡에 도착하니 10시 30분. 간단하게 복장을 점검한 후 바로 산에 오른다. 처음에는 삼도봉 쪽에서부터 민주지산 쪽으로 오를 예정이었으나 황룡사를 지난 첫 번째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선택하여 민주지산 쪽으로 오르게 되었다. 약간은 가파르고 잔설이 남아 있는 비탈길을 1시간 30여분 오르자 민주지산 정상에 오른다.

 

    민주지산 정상. 정상은 너무나 평이한 육산이다. 1,241m 높이의 산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자 왜 민주지산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저절로 알게 해준다. 덕유의 줄기를 시작으로 사방 어느 곳을 둘러봐도 막히는 곳이 없다. 보통의 산들은 자신의 몸으로라도 조망을 가리는 것이 보통인데, 이 산은 주변의 산들이 높아서인지, 아니면 마음씨가 좋아서인지, 석기봉, 삼도봉 너머의 산들도 전혀 가림이 없다.  덕유산. 마이산. 대둔산. 서대산. 속리산. 주흘산. 백화산. 황학산. 금오산. 가야산. 거망산. 그리고 그 사이의 크고 작은 이름 모를 산들의 물결. 어제는 장쾌한 일획의 산들에 가슴 뜨거웠는데, 오늘은 넘쳐나는 산들의 파도에 치여 마음이 전복될 것 같다. 어느 한 곳에 서서 이렇게 많은 산들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약간 바람이 거세어 내려가서 점심을 먹자는 장비의 주장을 뿌리치고 민주지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으며 산들의 바다를 한없이 바라본다.

  

   컵라면에 찬 밥 한덩어리, 정상주 한 잔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동안 산들의 파도는 끊임없이 몰려와 가슴을 때려대고, 가슴은 어느새 얼얼하게 멍이 들기 시작한다. 어제 기백산에서 느꼈던 뜨거움과는 또 다른 뜨거움이 가슴 한쪽을 달구며 일어선다. 열심히 살자, 그리고 모든 것을 잊자. 저 싱싱하면서도 꽃처럼 아팠던 청춘의 시절. 불혹의 나이로 들어서기는 참으로 힘이 드는구나---또다시 몰려드는 저 ---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였다가는 회원들 앞에서 실수를 할 것 같아 서둘러 몸을 일으킨다.

 

   능선 길을 따라 이제 석기봉으로 향한다. 약 1시간 정도 능선을 타자 석기봉 암봉 앞에 도착한다. 암봉 앞에 서니, 오르는 길이 험할 것 같아, 일부는 우회를 하고 일부는 스릴을 즐기겠다고 직접 오른다. 어제의 무리도 있고 하여 우회로를 통하여 오르는데 우회로도 상당히 가파르고 힘이 든다. 직접 올라온 코스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주의를 하여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우회로를 올라와 보니 석기봉을 지나와 있어 역방향으로 암릉을 올라 석기봉에 오른다.

  

   석기봉. 석기봉은 암봉이다. 밋밋하던 산 능선이 일순간 활기에 찬다. 역시 산은 바위가 있어야 제 맛이다. 바위를 통하여 보는 산들의 물결이 민주지산에서 본 물결보다 한결 운치가 있다. 그 위험한 정상에서 눈싸움하고, 태극기 휘날리며 사진 찍고, 이야기하다, 30여분을 소비 한 후에야 삼도봉 능선으로 접어든다.

  

   석기봉에서 삼도봉까지는 채 15분이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가까운가? 시계를 다시 보지만 이상이 없다. 삼도봉에 올라서자 너무도 화려한 삼도봉 대화합 탑보다 경상도 쪽의 산들이 먼저 눈에 띤다. 참 대단한 산들의 물결이다. 만약 저 물결 위에 눈이라도 내린다면, 저 굴곡과 출렁임과 드러나는 뼈대들의 명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 눈이 쌓이면 꼭 다시 한번 와 봐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천천히 하산길로 발길을 돌린다.

  

   하산길. 하산길이 너무 좋다. 한적하고, 넓고, 완만하고--- 이쪽으로의 오름질은 누구나가 가능 할 것 같다. 특히 하산 마무리 부분의 낙엽송 지대는 그 곧고 시원한 나무 줄기들이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낙엽송, 히말라야시야 등 꼿꼿한 나무들을 볼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곧고도 곧게 하늘로 뻗어 있는 나무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삶을 저렇게 살아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부러움을 갖는다. 삶이라는 것이 옹이도 있고, 가지도 갈라지고, 때로는 옆으로 휘어지기도 하는 것인데---저런 삶은 과연 행복할까? 모르겠다. 전에는 분재와 같은 삶이 아름다워 보였는데 지금은 저 곧디 곧은 낙엽송도 좋아 보인다.

  

    물한계곡에 내려와 시래기국과 동동주 한잔으로 산행을 마무리한다. 어제와 오늘. 몸은 피곤하지만 산을 마음껏 보니 기분이 좋다. 처음에 산에 오를 때는 '왜 산에 오르나' 하는 화두를 가지고 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화두를 애써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산이 좋다. 산에 올라와 바라보는 풍경이 좋고, 몰랐던 지역을 알아 가는 것이 좋고, 산을 오르며 흥건히 흘리는 땀. 시원하게 열리는 가슴.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맑은 정신. 그냥, 그런 것이 좋다.  

 

(민주지산에서 본 덕유산 방향)


  

(석기봉에서 본 민주지산)


 

(석기봉에서 본 무주군 설천면 쪽)


 

(석기봉 바위)


 

(석기봉 바위)


 

(삼도봉에서 본 석기봉과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본 김천방향)


 

(삼도봉 대화합탑)



  

(삼도봉 하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