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5. 27일

            *소재지  :대구시/경북 군위, 영천, 경산

            *산높이  :1,193m

            *산행코스:한티재-서봉-비로봉-동봉-갓바위-갓바위주차장

            *산행시간:7시31분-17시29분(9시간58분)

            *동행    :총6명

              (대구 권재형, 기경환님/서울 범솥말, 성봉현, 조부근님.

               대구의 임상택님은 갓바위에 올라 하산 길 합류)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가 치산치수였던 옛날에는 산경표와 수경표는 바로 경국의 바이블로서 가치를 가졌을 것입니다.

산경표를 펴낸 여암 신경준과 대동수경표를 편찬한 다산 정약용은 이 일 하나만으로도 후손들로부터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2백여 년 전인 1800년경에 여암 신경준이 이 땅의 물줄기를 가른 전국의 산줄기를 1대간1정간13정맥으로 규정하고 여기에서 가지쳐나간 기맥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산경표를 펴내지 않았다면 그 후 60년 후에 고산자 김정호가 축척 21만6천분의 1의 대동여지도를 내는 것이 엄청 힘들었거나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토록 소중한 산경표가 오래 잊혀져 있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고지도연구가인 이우형님에 의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반도 남녘의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을 모두 밟은 대구의 몇 분들을 만나 이들 산줄기를 소재로 산행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간과 정맥길 모두를 종주하고 벌써 기맥종주에 들어선 대구의 임상택/권재형 두 분이 뒤늦게 뒤를 밟고 있는 서울의 저희들 넷을 초대해 팔공산을 함께 올랐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내려가 케이블카로 산세를 조망한 후 한티재 너머 산자락에 자리한 레스토랑 “꿈의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우의를 다졌는데 처음 만난 자리가 서먹서먹하지 않고 편안했던 것은 참석자 대부분이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기초한 대간과 정맥길 종주를 이미 마쳤거나 한창 진행 중이어서 밤늦도록 술잔을 주고받으며 스스럼없이 종주산행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였습니다. 술자리를 파하고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을 정도로 과음한 제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팔공산 종주 길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여암 신경준이 열어놓은 대간과 정맥 길을 종주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한 덕분이었습니다.


 

  아침7시18분 팔공산의 한티재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전날 밤 쭉 자리를 같이했던 임상택 님은 급한 회사일로 한티재에서 헤어지고 친구 분인 기경환님이 종주산행을 같이 했습니다. 전 날 밤 기경환님은 물론 부인께서도 산을 좋아하는 친구 분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하며 저희들을 반겨주어 그동안 산에 다닌 보람을 느꼈습니다. 한티재에서 권재형님의 부인이신 임채미님이 싸 갖고 온 김밥을 받아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길 건너 계단에 발을 들여 들머리에 들어섰습니다. 대구의 권재형, 기경환님과 서울의 범솥말, 조부근님이 선두로 나섰고 이번 미팅을 주선한 서울의 성봉현님이 걸음이 늦은 저와 보조를 맞추고자 후미로 빠졌습니다. 한티재의 해발고도가 700m가 다 되어 동봉을 거쳐 갓바위까지 능선 길을 종주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서는데 6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임상택님의 얘기는 준족의 프로급에나 해당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9시간 안에는 산행을 마쳐야 너무 늦지 않게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터인데 오랜만의 과음으로 숨소리가 여니 때보다 가빠 이 시간조차도 그리 녹록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대구시내를 30도 넘게 달군 초여름의 태양이 하루 더 이 온도를 유지하겠다는 일기예보로 은근히 걱정을 했습니다만, 막상 산속으로 들어서자 아침공기가 선선하고 청량해 전혀 더위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능선 길에 완전히 자리 잡은 초여름의 신록이 그늘을 만들어줘 바람만 살살 불어준다면 한 낮에도 시내의 더위와는 관계없이 쾌적한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습니다만, 넉넉한 너럭바위는 보이지 않고 날카롭게 날을 세운 바위들만 직립해있어 팔공산의 성깔이 보통이 아닐 것이라는 예감도 같이 들었습니다.


 

  8시46분 삼각점이 세워진 해발991m의 파계봉을 올랐습니다.

한티재출발 후 처음 만난 헬기장에서 7-8분을 걸어 사거리안부인 파계재에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파계사가, 왼쪽으로는 남산 길이 나있는 안부사거리 파계재에서 똑바로 직진해 파계봉에 올라서자 표지석 대신 삼각점이 서 있었습니다. 파계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봉우리를 하나 넘어 두 번째 헬기장을 통과했고 삼거리안부인 마당재를 지나 톱날능선으로 향했습니다. 암릉길을 왼쪽으로 에돌아 다다른 산 중턱의 전망바위에서 목을 축인 후 7분을 쉬는 동안 좌측사면에서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거대한 팔공산이 안온하게 느껴졌습니다.


 

  10시32분 톱날능선을 다 지나고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산 중턱 능선 길에서 앞서 간 일행들이 한참동안 저희 후미 팀을 기다려 처음으로 함께 쉬었습니다. 전망바위를 출발해 암봉을 지난 후 삼거리안부 병풍재에 내려선 시각은 9시56분으로 한티재에서 4.9Km의 거리를 시속2.0Km의 속도로 2시간 반가량 걸은 후였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17.4Km를 걷는 이번 종주산행이 9시간은 족히 걸릴 것으로 보여 7시간이면 충분히 주파할 수 있는 다른 일행 분들에 미안했지만, 성경말씀대로 기다리는 자에 복이 있다면 이분들이 받는 복의 일부는 저의 늦은 걸음 덕분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며 미안한 생각을 얼마만큼은 덜었습니다. 톱날능선의 암릉 길을 그늘진 좌측사면으로 우회해 바위가 뿜어내는 복사열과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열을 모두 피했습니다. 톱날 능선을 통과해 올라선 능선 길에서 일행들과 함께 잠시 쉰 후 서봉으로 향했습니다.


 

  11시32분 해발1,150미터의 서봉에 도착했습니다.

톱날능선을 지났어도 곧추선 암괴들은 여전히 많았고 이 바위들을 우회하느라 빤히 보이는 서봉에 다다르는데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파계재로 향하는 한분은 ”정상등산로120”지점이 서봉이라 일러줬는데 그 지점을 한참 전에 지났어도 작은 암봉에 가린 서봉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적이 뜸한 곳에서 면팬티를 기능성팬티로 갈아입고 나자 사타구니가 시원해 속도가 붙었습니다. 미량의 황사가 날아든다는 일기예보대로 하늘이 쾌청하지는 않았지만 서봉에 올라서자 작년 12월에 올랐던 수태골 계곡과 동봉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동봉과 서봉이 좌우에 포진한 이산의 주봉에 방송중계탑과 군사기지가 들어서기 전의 비로봉 원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궁금했지만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12시8분 해발1,193미터의 비로봉정상 바로 아래로 올라섰습니다.

서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비로봉 오른 쪽으로 우회하다가 중간쯤에서 똑바로 올라 자연바위 벽에 약사여래좌상을 돋을새김 한 석불을 들러보았습니다. 바깥의 돌부처는 대웅전에 안치한 정교한 부처님들보다는 투박하기는 해도 중생과 많이 닮은 것 같아 가까이 다가서서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정감이 갔습니다. 진리의 빛이 가득한 연화장세계의 교주이신 비로자나불이 앉아 계실 비로봉의 아래 쪽 깊숙한 곳에 현세 중생의 모든 재난과 질병을 없애주고 고통에서 구제해주는 약사여래불이 숨어 있어 산 아래 중생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었겠나 싶었습니다. 다시 치켜 올라가 도착한 정상 바로 못 미쳐 철조망 앞에서 이 길을 같이한 권재형/성봉현님 함께 사진을 찍은 후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너덜겅을 지나 왼쪽으로 진행하다 이번에는 높이가 6m나 되는 높다란 입상의 장군부처를 만났는데 이분도 역시 약사여래부처님이었습니다. 갓바위 부처님으로 대표되는 약사여래부처님이 팔공산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어 이 산 전체가 병들지 않고 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부대가 들어서 등정이 불가능한 비로봉을 대신해 해발 1,155미터의 동봉이 주봉 역할을 하고 있기에 동봉은 불과 5m 밖에 낮지 않은 서봉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붐볐기에 꽤 긴 계단 길을 걸어 힘들게 올랐어도 정상에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바로 내려서야 했습니다.


 

  13시5분 식사를 끝내고 갓바위로 향했습니다.

동봉에서 조금 내려가 바위아래 공터에 빙 둘러앉아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이곳까지 후미에서 동행해준 서울의 성봉현님은 선두에 서서 내달리기로 하고 대구의 기경환님이 저와 보조를 같이했습니다. 대구에서 섬유기계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분과도 전 날 밤 함께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습니다. 이제까지 어느 한산을 정해 오르내리는 점의 산행을 주로 해와 능선 길을 이어가는 선의 산행에는 익숙지 않으며 백두대간과 9정맥을 모두 종주한 친구 분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다는 이분도 저와 같이 한티재-갓바위구간의 팔공산 종주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좋아했습니다. 지난 12월 눈이 내려 병목현상을 빚었던 염불마당(?)에서 줄을 잡고 어렵게 통과한 길을 사뿐히 내려선 후 그 때 눈이 많이 쌓여 우회해야 했던 암릉 길을 이번에는 한번 올라서볼까 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단념하고 전에처럼 철저하게 암릉 길을 에돌았습니다. 팔공산최대의 폭포인 공산폭포와 가장 큰 사찰인 동화사 가는 길이 좌우로 나있는 안부사거리인 신령재에 내려선 시각은 14시11분으로 술독이 몸에서 빠져나가서인지 오전보다 조금 빠른 시속 2.5Km의 속도로 걸었습니다.


 

  14시45분 팔공약수터에서 목을 축였습니다.

한티재에서 서봉사이를 오르내리는 산객보다 동봉에서 갓바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보였습니다. 팔공약수터까지는 선두팀도 암릉길을 오르내리느라 우회하는 후미의 저희들과 진행시간이 거의 같았습니다. 저보다 체중이 더 나가는 범솥말님도 생각보다 주력이 뛰어나 선두팀에서 결코 쳐지지 않았습니다.  신령재에서 왼쪽으로 지능선이 나있는 봉우리에 올랐다가 헬기장을 지나 팔공약수터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능선 길에서 왼쪽 아래로 70m 떨어진 팔공약수터의 샘물은 문자 그대로 생명수였습니다. 지도상에 나와 있는 약수터만 믿고 물을 조금 준비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 수인 것은 능선 길 가까이의 샘터 대부분이 가물 때는 물이 고갈되고 장마 때는 지표를 흐르는 유수가 섞여 들어가 일년 내내 샘물을 마실 수 있는 샘터가 그리 많지 않아서입니다. 여기 팔공약수터는 물도 시원한데다 수량도 넉넉해 뱃속의 알코올 기를 깨끗이 씻어내고 페트병에도 샘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팔공산 주능선을 종주하는 저희들을 시원하게 만든 것은 샘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좌측사면에서 쉬지 않고 불어오는 산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주어 과체중으로 더위를 유독 많이 타는 제가 계속해서 봉우리를 오르내렸는데도 전혀 땀이 배지 않았습니다. 잠시 그늘에서 벗어나 바위 길을 걷거나 바람이 막힌 우측사면을 걸을 때는 이내 몸이 땀에 젖을 만큼 기온은 높았지만 에어컨바람보다 한결 더 시원한 골바람이 계속불어와 30도를 웃도는 대구의 악명 높은 더위를 깔끔하게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15시42분 능성재정상이라는 표지목이 세워진 897.6봉에 올라섰습니다.

팔공약수터 안부에서 봉우리를 올라서자 우측사면에 들어선 골프장이 선명하게 보였고 대찰 동화사의 웅장함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왼쪽으로 은혜사 길이 갈리는 능성재정상에 올라서자 까치 두 마리가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대부분의 까치들은 산 들머리에서 잘 다녀오라고 환송인사를 건네고, 높은 산위에서 어서 올라오라고 환영인사를 하는 새는 까마귀인데 8-9백m대의 능선에서 까치를 만난 것은 이번 산행이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받침대에 앉아 목을 축인 후 정남쪽으로 1.8Km 떨어진 갓바위로 향했습니다.


 

  16시50분 갓바위에 도착했습니다.

능성재정상에서 1km를 걸어 다다른 전망바위에 올라서자 갓바위 바로아래 선본암이 선명하게 보여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인봉(?)왼쪽으로 놓인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와 갓바위를 향해 능선 길을 걷다가 밧줄이 늘어진 왼쪽으로 꺾어 선본암 한참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수많은 돌계단을 걸어올라 선본암을 지났고 더 많은 돌계단을 따라 걸어 갓바위 아래 넓은 터에 올라섰습니다. 높이 4m의 좌불 머리 위에 평평한 바위가 올려져 있어 갓바위로 불리는 이곳의 돌부처도 현세이익적인 약사여래불로 효험이 높다고 널리 알려져 전국 각지에서 소원을 빌고자 모여든 불자들로 많이 붐볐습니다. 종주산행에 참여하지 못한 임상택님이 이곳 갓바위에 올라와 저희들을 반겨 맞아 고마웠습니다.

 

 

  17시29분 갓바위주차장에 도착해 10시간 만에 종주산행을 끝냈습니다.

갓바위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급했습니다. 한 없이 돌계단을 내려가 관음사를 지났고 또 다른 절을 지나 주차장 상가에 도착했습니다. 한북정맥의 8지맥을 모두 종주한 조부근님과  지맥종주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하산했는데도 무릎이 새큰거리기 시작해 아무래도 이틀 후의 호남정맥 종주는 다음 주로 늦추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1,500개나 된다는 돌계단을 거꾸로 올라가 소원을 비는 불자들의 간곡한 정성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무슨 수로 외면할 수 있겠는가 싶어 자연 소원을 많이 들어주실 것 같았습니다. 대도시 근교의 산치고는 산줄기가 엄청 장대하고 주능선에 암릉길이 꽤 여러 곳 있는 팔공산을 종주하며 산자락에 들어선 크고 작은 사찰들과 편하게 누워있지 못하고 똑바로 서있는 능선 길 바위들에 자주 눈길을 주곤 했습니다.  뒤풀이로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함께한 후 대구분들의 차로 한티재로 옮겼습니다. 반기에 한번 만나 하는 합동산행은 다음에는 북한산의 숨은벽을 오르기로 정하고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칠곡IC까지 길안내를 해주고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는가를 물어온 대구팀 임상택/권재형/기경환님의 세심한 배려와 서울팀을 승용차로 실어 나르느라 고생한 성봉현님의 수고가 더할 수 없이 고마웠습니다. 긴 시간 산행을 같이한 범솥말님과 조부근님, 점심을 준비해준 권재형님의 반려자인신 임채미님, 저녁 시간 짬을 내어 저희들을 환대해준 기경환님의 부인 분과 친구 분들에도 감사말씀 올립니다.  산경표가 저희들의 만남을 엮어 주었기에 뒤늦게나마 여암 신경준 선생께도 저희들 모두의 고마운 뜻을 모아 올립니다.  


 

  “길에는 주인이 없다.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일 뿐이다.”

여암 신경준은 산경표를 펴내면서 수많은 산길을 냈을 것입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 김정호도 더 많은 산길을 새로 내고 밟았을 것입니다. 힘들여 낸 산길이  결코 자기만의 길이 아님을 갈파했기에 여암 신경준은 길에는 영원한 주인이 따로 없고 그 길을 걷는 순간만 그 위에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지적재산처럼 어느 누가 길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거나 점유하고 있다면 대구 팀과의 팔공산 종주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분의 말씀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어느 누구도 대간과 정맥 길을 영원히 가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힘들게 걷는 순간만은 그 길을 걷는 산객들의 것이기에 귀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고된 종주 길에 나서지 않았겠는 가 싶어서입니다. 한티재에서 갓바위까지 팔공산을 종주한 저희들이 잠시라도 함께 공유한 능선 길을 팔공산에 되돌려주고 주차장으로 하산하면서 이 땅의 일부를 빌려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같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암 신경준과 고산자 김정호 두 분 모두 지도에 산길만 낸 것이 아니고 이 땅에 살아가는 길도 함께 낸 훌륭한 분들임을 되새기며 팔공산 산행기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