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백오동과

 

산행구간: 남교리-십이선녀탕계곡-안산갈림길-안산-안산갈림길-대승령-귀떼기청봉-귀떼기청봉갈길
          -끝청-중청대피소-희운각-양폭대피소-비선대-설악동
     총 36키로

 

산행시간 : 2005년 12월 첫째 날  05시 20분-24시 (18시간 40분)
                                                  12월 둘째 날  08시 30분-14시 30분 (6시간)  합 24시간 40분


 


 


 

        12월에는 꼬옥 가야지, 이 해가 가기전에
       먼 나라 찾아가는 여행은 아니지만

지난 여름에 그렸던 그 선을 따라
       산골짝 깊은 곳에서 밤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속에
 자연의 영혼을 느끼고 추운 겨울 눈 속에 파묻힐 수 있고
        지금

 이 산속의 밤과 별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생각으로 설렌다.

 


        초저녁에 별이 안 보인다고 오늘은 별이 많이 안 뜨는 날이구나
 생각해서는 안된다.
        전라도에 눈이 너무나 많이 왔다고 그리워 해서는 안된다
 참나무 숯불에 구리주전자를 얹어 데운 물로 차 한잔 마시는 옛날 기억의
 온기를 품어선 안된다.
 상봉터미널 저녁 5시 50분 남교리행 버스는
 어두움을 헤치며

 추위는 강도를 더 높이고 있었다.


 
 요즘에는 어째서일까,
밤에 별이 많이 뜬다. 어두운 산 골 남교리에도..
초저녁에 별자리가 안 보이다가도 한 밤중은 별밭이다.


잠이 오질 않는다.
민박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로 날 밤을 새우는 건 예사다
먼 길 또 나서려면 잠을  자 두어야 되는데.
오늘도 백오동과 요물은 그렇게 날이 새 길 ...

 


어둠 속으로 난 길은 참 길기도 하구나.
46번 국도가 밤 중 한적한 마을의 나그네  마음 쓸쓸하다.
계곡물 소리 유난히 세차게 들리고
새벽녘 낯설은 아낙 발자욱 소리에 짖어대는 개가 이렇게
겁나는 것은 왜일까?


당단풍나무 고로쇠나무 털진달래 느티나무 복장나무들은 
이제 알몸의 가지만으로 겨울 앞에 서 몸부림치며
계곡을 이어주는 다리와 철계단을 건너고 또 넘어서
응봉폭포 복숭아탕을 지니고 사는 십이선녀탕 계곡은
옥색의 물결과 얼음꽃 별천지가 따로 없다.

 

 


온 세상의 눈이 눈을 부시게 한다.
하이얀 눈이 뒤 덮힌 설악의 깊은 골은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추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초라한 것도 
모두 품어 주었다. 


서북능의 안산에서
너무도 칼바람을 맞이한 요물은 등 떠밀기 당하고
사방으로 들어오는 눈 속 세상 눈요기는 바쁘게 돌아가고
은빛세계의 꿈 속 같은 요지경 속은
산호초같기도 하고 실타래 풀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하는 백오동
그 무거운 입도 떨어지고 만다.
덮고 있던 눈 속을 우린 머리에 담아갈까 ,
아니면 아주 눈을 감아 버릴까?

 

 

하늘엔
안개 속 구름들이 희뿌연 색칠하고
하이얀 몸둥이 봉우리
지나 또 봉우리  어찌 높아 보이는지!


사계절 푸른 주목에도
하이얀 눈을 이고 섰느라  무척 힘겨워 보인다.
당단풍나무의 초라한 알몸도 바람에 몸부림치며
살려달라 애원하지만 나도 찢기고 갈켜서
숨이 가쁘다.


서북능의 굽이굽이
엮어내는 멀티비젼
내 生 풍화되었다.

 

 

 


귀떼기청봉의 칼바람!
요물 귀떼기 날아갈까,
아님 백오동 귀떼기 날아갈까?


하늘 땅이 만든
너덜지나 또 너덜겅
벌써 또 어두움을 같이한
1,577.6미터의 혹독한 눈보라와
추위 속에서 살아 버티는 힘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육기통 엔진을 달아 날 쎄다는 울 언니도
오늘만은 엔진 고장이다.
등짝의 땀들이 콧물로 변하여
수없이 흘러 내리고
두툼한 요물 입술 더 퉁퉁 부어
입인지 입술인지 감각되지 않고
그래도 그 바람 이기고
사진 한 장 찍어 이내 몸 다녀갔다고
고 해보려 하지만
알 손 내 밀기도 전에
꽁꽁얼어 동태되어만 간다.

 

 

02-12 현위치표지목에서 눈이 쌓여
갈 길이 보이지 않아 돌고 또 돌아 보아도
그 자리,
그 자리를 잃어 버리지 않으려
안간힘 쓰며 간신히 찾아 낸
또 가야 할 길


눈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고
온 세상은 어두움속에
살아 숨쉬는 것은
반짝이는 별이 있고, 현위치 표지목이 있고
다이아몬드 세상처럼 눈 속이 빛난다.

 

 


한계령 갈림길
중청가는 길 5키로 정도,한계령 가는 길 2.3키로
표지목을 보면서 다시 중청으로 오른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있고
그래도 잘 자리가 있기에
어두움과 추위와 바람과
반짝이는 하이얀 눈 속을 걷고
또 걸어 오른다.


그래도 이 길은
누군가 걸어 간 발자욱이 있고
서북능보다 눈이 없어서 위안이 된다.

 

대청에서 내려 오기만을 고집했던 길,
얼마 전 혼자 내려갔던 길,
여름에 대간 길에 또 혼자 내려 갔던 길이건만
오늘만큼은 느낌이 너무도 다르고 힘에 겹다.


손폰 밧데리 다 떨어져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분들 목소리 끊어지고
갈 길 알려주는 요물단지 기름 떨어진지도 이미 오래 전
중청에 왔을땐 24시
어두움 속의 고요, 추위, 바람뿐
목 말랐던 중청은 너무도 힘에 겨웠다.

 

 

추운밤은 힘들었다 ??? 

 

 


어느때보다 아침의 라면이 반가웠다.
 맛 보다 그냥 삼켜 버렸다.
중청과 아침과 같이했던 분들과
멀어지면서 그리려 했던 공룡능선을
서고  걸어가는 것이 이제 두려워
그냥 양폭으로 비선대로 발길을
돌린다.

 

 

너무도 따사롭다.
눈도  칼바람도 없고

남들이 좋아하는 그냥 남쪽나라
딴 세상 속을 걸어가는 것이 이렇게 좋은 걸!

 


삼각형 꼭지점 하늘에 두고
서있는 아름다운 암봉들의 호화로움을 보면서
쌍곡구곡들의 일구어내는
물소리 얼음꽃 눈 가득이 들어찬다.


내가 밟아가고 있는 발자욱
투벅 투벅 철계단 소리 귓가에 장단 맞추어
어제의 세상은 꿈이었다.

 

 


도란도란 얘기하며 양폭대피소앞
철다리 건너는데 귀에 번쩍뜨이는 소리가
들린다.
"내려가지 말고 아예 설악에서 살아요"
내가 원했던 목소리. 내가 어제 같이 하지 못했던 목소리!
너무도 반갑다.
따사로운 계곡을 타고 왔던 마음속의 미움과 원망을

양폭식구들에게
나도 모르게 한 동안을 토해내고 있었다.

 


네 발로 기었던 너덜도
어두움과 추위와 칼바람과 싸워야 했던
어려움 모두 이 곳에 묻어 버리고
하이얀 눈 속이   세상에 펼쳤던
서북능  은빛세상의 반짝거림만 가지고
떠나 가리라!

 

그리려 했던 겨울속의 공룡능을
그렇게도 기다렸는데,
여름에 만났던 안개속의 줄기차게
내리던 빗 속에서의 외로웠던 싸움이 생각나는
그 능선을 가고 싶었는데
이제 그 아쉬움과 예쁜 추억만을 머리에 이고
떠나 가리라!

 


내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가
무진장 그리웠다.


여름부터 그려 놓았던 서북능과 공룡능을
이제는 한동안 원하지 않겠다.


사랑하지 않겠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어느 해보다 즐거웠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산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으며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그동한 저에게 베풀어 주셨던

아낌없는 사랑과 보살핌

정성어린 답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을 사랑하고

산과 같이하며

그리운 마음으로

내년을

기다리겠습니다.

산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황명옥(요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