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어떤 분이 소개한 적이 있는 부자 백두대간 종주기

[감사하지 않은 게 없었다](김연수, 푸른사상)를

읽어 보았는데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도 산행기나 대간 종주기를 많이 읽어보았습니다만

이건 보통 있는 산행기나 백두대간 종주기 차원이라 아니라

완전히 명 수필이나 자연의 설법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국문학박사이시고 겸임교수 경력까지

다년 간 지닌 분이 아들과 함께 종주하며 쓴 책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 구절 한 구절이 부드럽고 한번 잡으면 놓기가 싫을 정도로

감동적인 글이네요.

한번 사서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군요!

특히 아내와 아들에 대한 정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것이

너무 고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난삽하지도 않아

읽는 재미가 나고 마음의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아래에 재미 있는 부분 좀 소개할테니 한번 읽어 보세요!!

백두대간 종주기도 이렇게 재미 있으면서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

아내는 오늘 오전 9:20분 기차를 예매해 놓았다. 나는 아내를 전송하고 출발했다가는 오늘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인정을 뿌리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매일 일찍 출발하던 습관이 들어서인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좀이 쑤시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방 안에 있을 수 없어 먼저 출발하겠다고 나섰다.

“마누라 혼자 모텔에 남겨 놓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기차 시간에 맞춰 나가서 타고 가면 되지 뭘 그래?”

“여자가 어떻게 모텔 문을 혼자 나가요? 챙피하게.”

“미안해!”

나이 50을 바라보는 여자가 웬 내숭이냐고 한번 쏘아붙이려다가 갖가지 반찬과 장비를 싸들고 태백까지 찾아 와준 것이 고맙고, 마음 여린 아내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꾹 참고는 농담만 한 마디 던졌다.

“영화 ‘셀부르 우산’ 봤지. 백두대간 종주 마칠 때까지 딴 맘 먹지 마! 영화 속에서 ‘기’가 너무 불쌍하잖아!”

‘셀부르 우산’에서 쥔비에브를 남겨두고 알제리 전쟁터로 떠나는 ‘기’의 마음이 되어 짐짓 한 마디 해본 것이다.

“피~,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해!”

내 농담을 자못 진지하게 받아넘기더니 가방에서 쪽지 편지 하나를 꺼내 주었다.

“이거나 받아가지고 가요! 여기서 읽지 말고 오늘 걷다가 제일 분위기 좋은 데서 읽어 봐요.”

“연애편지야? 우리 마누라가 이런 멋도 있었나?”

태백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7:20분 완행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20분만에 피재에 도착했다. 매봉산 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자 대간 길은 곧바로 산길로 들어서고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졌다.

포장도로를 걷다가 또 다시 산길로 들어서서 폐목장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진행했다. 이윽고 배추밭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어 밭고랑을 타고 통과했다. 남의 밭에 들어서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대간 길이 그렇게 나 있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채소밭가에 놓인 콘테이너 창고 앞을 통해 본격적으로 매봉산을 향해 진행하는데, 구름이 하늘을 덮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시원해서 좋았다.

매봉산 정상에는 통신 철탑이 있어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는데, 주변 언덕에는 동자꽃, 초롱꽃, 산나리 등이 만발해 들꽃 화원을 이루고 있다. 아래로는 저 멀리 개발이 한창인 태백시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외곽으로는 꽤 넓은 도로를 개설하려는지 중장비들이 땅을 고르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매봉산에서부터 이어지는 길도 온통 골짜기 사면과 대간 길이 배추밭으로 뒤덮여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밭둑을 지나거나 염치 불구하고 밭고랑을 타며 지나기도 했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다 비단봉으로 올라가 오전 10시 쑤아밭령에 도착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좋은 길인데다가 굴참나무가 무성하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널찍한 등산로가 분위기를 돋웠다. 더구나 길옆 나무 사이사이에는 이름모를 들꽃들이 기기묘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 잠깐 배낭을 풀어놓고 오늘 아침 아내가 준 쪽지가 궁금해서 펴보았다.

“별을 좋아하는 사람은 꿈이 많고,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슬픈 추억이 많고, 눈을 좋아 하는 사람은 순수하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이 모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라고 크리스토퍼 몰리가 말했대요. 꼭 완주하시고 항상 사랑으로 충만한 남편이 되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세요.
2003. 8. 2. 당신의 아내가


20대의 사랑은 환상이고 30대의 사랑은 외도이고 사람은 40대에 와서야 비로소 참된 사랑을 알게 된다고 하더니, 아내도 이제야 참사랑을 깨달아가고 있는 걸까? 이렇게 쪽지에 마음을 적어서 전해준 것이 고마워 아내에게 전화를 하자 기차 안이라고 하며 받았다.

“따뜻한 남편이 되어 돌아갈게.”

오랜만에 쑥스러운 말을 하려니 겸연쩍었지만, 꾹 참고 간신히 통화를 마쳤다. 아내도 오랜만에 듣는 말에 감동했는지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 순간 들꽃송이에 앉아 마구 뽀뽀를 해대던 나비 한 마리도 사르르 날개를 떨며 내 머리 위로 날아갔다.


▣ 아하! - 자꾸 올리리는 걸 보면.. 책 선전하시누만.... 욕보요... 이곳 산하가족들은 다 알꺼요.. 그리고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아무도 안 사볼꺼요.
▣ 그러네 - 책 선전이라도 재미는 있구먼!!
▣ 이희선 - 글쓴이의 착상과 아이디어가 빛나는 글입니다.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