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친 고기가 커 보이는 것은 거의 다 이루어 졌다고 믿었던 것이 어느 한 순간에 바로 눈앞에서 무위로 돌아갔을 때 느껴지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어제 지리산 종주산행이 그러했습니다. 하늘을 뚫고 내리 꽂는 장대비로 32년만에 시도한 종주의 꿈을 접고, 연하천에서 하산할 때의 그 아쉬움은 다 잡은 대어를 놓친 강태공들에 비유한 다고 풀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제(2004.6.18일)도 하루 종일 간헐적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기상대에서도 19-20일에 계속해서 큰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를 내놓았기에 회사직원들도 다음기회로 미룰 것을 권했습니다만, 다음 주 일요일에 서울대 AFB 산악회의 지리산 등정이 예정되어 있어 사전 답사를 겸하여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그제 밤 10시 사당역에서 안내산악회의 버스를 올라탔습니다..
많은 분들이 1무1박3일의 지리산 종주 산행에 참가해 뒤늦게 신청한 제게는 맨 뒷자리인 43번의 좌석이 배정될 만큼 버스에 빈자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사당역을 출발한 버스가 대전 - 통영간의 고속도로를 달려 어제(2004.6.19일) 새벽 1시 30분 함양휴게소에서 정차, 이곳에서 아침식사로 순두부찌게 한 그릇을 사 들었습니다.

3시 40분 성삼재에서 하차한 저희들은 비옷을 꺼내 입고 지리산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리산에 처음 오른 것은 대학3학년 때인 1970년이었습니다. 그 해 3월 바위를 타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주말이면 선배들을 쫓아 바위를 하느라고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6월 들어 큰맘먹고 저 혼자 서울을 떠나 지리산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경남 함양의 마천에서 시작하여 백무동을 거쳐 천왕봉을 오른 후 능선을 따라 노고단까지 내달려 화엄사로 하산, 종주 산행을 마무리 짓기 까지 산 속에서 이틀 밤을 야영을 하며 보냈는데 , 지금도 구름사이로 숨바꼭질하는 별들과 더불어 지리산 자락들을 가득 채운 운무가 아침햇살에 밀려 산마루로 올라오는 신비스러운 광경이 눈앞에 선합니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에 두 해 여름을 더 보냈습니다. 1973년 디스크에 걸려 척추 수술을 받고 나서는 지리산 종주를 엄두도내지 못하고 이제까지 가슴에만 안고 살아 왔는데, 마침 어느 한 산악회에서 이틀간 산행으로 성삼재-노고단-천왕봉-대원사 코스를 뛰어 완전히 종주를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였기에 큰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무릅쓰고 참가신청을 했습니다. 그 동안 하루에 15시간을 뛰어 종주를 마치는 무박의 산행프로그램은 제게는 너무 벅찬 듯 싶어 주저해왔는데 이틀에 걸친 종주라면 한 번 해볼만하다는 자신이 서 지리산 종주산행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4시 30분 밤을 뚫으며 빗속을 걸어 노고단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들머리를 제대로 찾아 쉼 없이 노고단으로 올랐습니다만, 밤이 그 자락을 거둬들이기에는 아직도 이른 시간이라 넓은 평원을 보지 못한 채 임걸령으로 내달렸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어느 전직 대통령의 1970년대의 외침처럼, 여명은 드센 빗줄기를 헤집고 어김없이 찾아왔으며, 그 덕분에 아침 5시 12분 자연의 밝기만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고자 플래쉬를 껐습니다.

두 곳의 헬기 장과 피아골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 5시 54분 임걸령에 도착했습니다.
주위가 자연탐방코스로 잘 정돈되어 옛날의 소박함은 찾아 볼 수 없지만 물 맛은 이를 데 없이 시원해 좋았습니다. 1971년 여름 두 번째 종주 때 이곳에서 점심을 해 먹었는데 하도 많은 왕파리들이 덤벼들어 약간 떨어진 곳에 따로 상을 차려 주어 그들을 분산시켰던 일이 생생하게 생각났습니다. 비가 멈추지 않아 시야는 트이지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주위의 풍경을 몇 커트 찍어 사진으로 남긴 후 15 분 여 휴식을 취했습니다.

깊숙한 폐부를 씻어 낸 시원한 냉수로 성삼재에서 여기까지 2 시간 여 달려오느라 소진된 원기를 되찾고, 6시 10분 삼도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 6시 44분에 반야봉을 지났습니다. 이번으로 네 번째 지나면서도 꼭대기는 오르지 않고 트래퍼스만 하여 반야봉에 미안했는데 일행 중 선두의 몇 분들은 해발 1,732 미터의 반야봉을 올랐다 합니다.

아침 7시 10분 삼도봉에서 두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해발 1,550 미터의 삼도봉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어떤 다른 산들의 삼도봉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데, 삼도의 경계를 알리는 표지석은 민주지산의 그 것보다 훨씬 초라했습니다. 네 번에 걸친 종주 산행 중 이번처럼 비구름에 시야가 막힌 적은 없었기에, 카메라에 담을 만한 정경들이 모두 가려져 언제 다시 와서 담을 까하고 애를 태우기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잘 다듬어진 나무계단을 밟고 한참을 걸어, 해발 1,315미터의 화개재에 내려섰습니다. 잠시선 채로 숨을 고른 후 토끼봉을 향하여 계속해 걸어 올라갔습니다. 숲에 가려서인지 한북정맥에서 쉽게 보았던 야생화들이 눈에 띄지 않아 서운했습니다.

8시 20분 해발 1,510미터의 토끼봉에 섰습니다.
준비해 온 오렌지로 영양을 보충한 후 연하천으로 내달렸습니다. 산장과 대피소가 별로 없던 1970년대에는 화엄사에서 출발하면 연하천에서 야영을 했는데, 이번에는 그 곳에서 점심을 들고 약 9 키로를 더 뛰어 세석의 산장에서 머무를 예정이어서 산행을 서둘러야했습니다. 빗줄기는 멈출 기세가 아닌 듯 더욱 세차졌고, 습기 찬 안경을 벗어 들고 맨 눈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아야 했으며, 산행을 시작한 지 5시간이 넘어서자 배낭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러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9시50분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산악회의 가이드 한 분이 집중호우로 공원에서 하산을 명령해왔다며, 지리산 종주계획을 포기하고 음정으로 하산할 계획임을 말해주었습니다. 준비해간 떡으로 요기를 하고, 젊은 두 분의 호의로 맥주 반 캔을 마시고 나자 기운이 되살아 나 그냥 내려가기가 아쉬웠지만, 안전 상 하산해야 한다는 데야 달리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기에 종주의 꿈을 이곳 연하천에서 접었습니다.

10시 43분 연하천을 출발하여 하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일산에 사신다는 어느 분과 함께 하산하면서 32년만에 종주를 해 보겠다는 모처럼의 시도가 무위로 끝나는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천재지변이니 어찌하겠느냐고 체념을 해보지만,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산행을 강행한 산악회에 얘기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쏟아진 비로 하산 길이 질펀하고 미끄러워 스틱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 고생을 했겠구나 싶었습니다.

12시 20분 음정을 4.2 키로 남겨둔 해발 870 미터대의 임간도로에 내려섰습니다.
이제부터 아무리 큰 비가 내린다 해도 위험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발걸음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12시 50분경 배낭을 내려놓고 페트병의 물을 쏟아 버리고 오렌지를 까먹고 나자 배낭의 무게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하산 길의 길섶에 자리한 달맞이꽃의 꽃송이가 여느 달맞이꽃보다 훨씬 커 보였습니다. 산중의 달이 도시의 달보다 세속의 먼지에 찌들지 않아 보다 크고 둥글게 보여, 그를 맞는 달맞이꽃도 탐스럽게 자란 듯 싶습니다.

13시 40분 경남 함양의 음정 주차장에 도착, 9시간 동안의 긴 산행을 마쳤습니다.
1970년 지리산을 처음 올랐을 때부터 벽소령을 관통하는 도로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궁금했는데 이곳 음정이 그 시발점임을 확인했습니다. 지리산의 한 자락을 차고 들어앉은 깊고 깊은 시골 마을 음정에서 들은 저녁식사는 어느 성찬보다 풍성했고 맛이 있었습니다.

16시 20분 음정을 출발, 20시 30분 과천 집에 돌아왔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연하천에서 멈춘 지리산 종주산행이 놓친 고기처럼 커 보였고, 그래서 세석산장의 숙박비만을 환불하겠다는 첫 번째 입장에서 1인당 2만원씩 환불 또는 다음 산행비용에서 감해주겠다고 물러선 산악회의 처신에 화가 났습니다. 산악회에서는 천재지변으로 강변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폭우를 무릅쓰고 프로그램을 강행하다 중단하는 잘못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산악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제 뜻을 산악회대표 분에 전했습니다. 더구나 집중호우로 산행을 도중에 멈출 수도 있으며 그 경우 환불규정이 어떠함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고 뒤늦게 시혜를 배푸는 양 환불을 해주는 것이 고객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하는 회사가 할 일은 아닙니다. 이 기회에 안내산악회에서는 합리적인 환불규정을 정립하여 사전에 고지해줄 것을 요청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 드래곤 - 아쉽지만 다음으로해도 늦지않겠지요,,수고많아어요,,잘보고가요
▣ 겁쟁이탐험가 - 수고하셧습니다!~ 담에 다시 가시자구요 홧팅!!!
▣ jirisan - 사람은 변해도 지리산은 영원합니다..힘내세요 그리고 꼭 지리산으로 오세요..7월에.
▣ 걷는 돌 - 놓친고기나 잡은고기나 같은고기인데 다른 것은 나의 마음인 것 같읍니다. '노인과바다'에서 보면 어느 순간에 노인이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고기와 교류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님의 고기는 항상 그 곳에 있을 터이니 언젠가는 님이 고기를 잡을 것으로 믿읍니다. 노인처럼.........
▣ 빵과 버터 - 저는 6월 14-16일 종주를 무사히 마쳤지만.....살다보면 아쉬움이 남을때가 더 오래 기억되고 아름답습디다...건승하시길....
▣ 눈깔사탕 - 산행중 일기불순이나 기타사정에 의해 일정이 변경될수도 있다라고 되어 있더만,그 산악회 회비 반환까지 생각했다면 회원들께 미안한 생각은 가진거 구만........나 같으면 그만인 것을..........
▣ 길 벗 - 천재지변,천재지변 참 핑게 좋습니다. 이번 비로 고압선이 끊어져 태백선열차가 영동선으로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4시간 연착. 청량리역에서 전액환불 받았습니다. 전혀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너무 천재지변 핑게대지 마세요
▣ ? - 산악회는 열차가 아닙니다,착각하지 마세요,열차는 수송목적을 상품으로 한 만큼 수송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환불하게 돼 있습니다,그러나 산행은 상품이 아닙니다,다 함께하는 안전을 담보로하는 통일된 동참의식에 불과합니다,
▣ 참나 - 히말라야 원정대 지원하다가 조난사 하면 지원자 책임인가?헷갈리네........대산련 돈 없으면 원정대 보내서는 안되겠는데........
▣ 우 명길 - 제 졸고를 읽어 주신 모든 분에 감사드리며, 산행기 끝부분의 환불에 관한 제 생각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 우 명길 - 저는 안내산악회의 산행프로그램은 상품(용역 포함)이라 생각하며, 그래서 안내산악회에서 사전에 천재지변으로 산행이 중도에 취소될때 합리적인 환불규정을 만들어 고지해주면 분쟁의 소지를 앨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올렸습니다. 때문에 안내산악회에서 선심쓰듯 환불하는 것에 동의할 수없으며, 안내산악회와 대산련 또는 대학산악회와는 영리단체이냐,아니냐의 관점에서 볼때 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는 안내산악회가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권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래야 고객들이 질좋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의견이 다른 많은 분들의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