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4년 6월 19일
산행인원 : 홀로
산행구간 :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약 50km ?)
산행시간 : 총 16시간 45분

03:10 불암초등학교
03:25 학도암
04:20 불암산 정상
04:30 석장봉
05:10 덕능고개
05:45 철탑위 마당바위
06:10 도솔봉
06:40 수락산 정상
07:25 도정봉
08:10 동막골
08:30 회룡역, 아침식사
09:05 회룡매표소
10:00 포대능선 진입
11:15 신선대
12:25 우이암
13:15 우이동매표소
13.20 식당, 점심식사
14:40 백운대매표소
15:55 백운대
16:10 위문
17:10 동장대
17:50 대남문
18:40 비봉
19:20 족두리봉
19:55 독바위역


서울의 산

서울에는 흔히 다섯 산이 있다고 말한다.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그리고 관악산이다.
이 산들은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정상 부위는 모두 당당한 바위 봉우리로서
쉽게 대하지 못할 기품과 멋진 자태를 지니고 있다.

산세 또한 바위와 나무가 조화를 이루어
산수화에서 볼 듯한 멋진 경치를 보여주고
암벽타기를 비롯한 다양한 산행의 맛을 제공하기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서울의 산을 사랑하고 특히 북한산을 사랑한다.

서울사람이 가족, 친구들과 제일 먼저 가는 산이 북한산이다.
서울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친근한 산이기 때문이다.
산을 좋아하게 되면 서울 경기의 근교산도 가게 되고
점차 산에 빠져들면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등
산꾼들이 애기하는 좋은 산을 호기심 가득안고 찾아 나선다.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소꿉장난하며 같이 놀았던 옆집 순이가
숨은 보석임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처럼
가장 가까이에서 부담 없이 오르던 북한산이
‘아, 이 산이었구나’하는 희열이
가슴 한 가운데로 다가오는 순간을 맛보기도 한다.


불수도북(佛水道北)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줄여서 불수도북이라 부른다.
지리산 주능선 종주가 초보 산꾼의 딱지를 떼는 셈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불수도북 종주는 서울 산꾼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서울을 떠나온 지 5개월, 서울의 산이 그리워진다.
마침 서울에 출장갈 일이 생겨 하루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짧은 일정임을 감안하여 서울의 산을 가슴에 많이 담고자
아직 해보지 못한 불수도북(佛水道北)을 하루에 종주하기로 한다.

서울에 간 김에 불수도북 하고 오겠다고 하니
주말에 서너 시간씩만 산에 다녀도 건강에 좋을 텐데
마흔이 넘어 왜 힘든 산행만 골라서 하느냐고 걱정이 많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직은 젊다고
도전할 수 있는 젊음이 좋은 것 아니냐고
쉬운 길, 가던 길로만 다니면 재미가 없지않냐고

오늘 산행은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혼자서 가야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봉우리는 많다.
체력이 달려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까
나이는 못 속인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않을까
이것이 가장 두렵다
산행 전에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멀리 부산에서 달려왔는데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불암산(佛岩山)으로 들어가며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밤 10시이다.
7호선 중계역까지 부근의 찜질방에 가서 쉬려고 했는데
여기 저기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시각은 자정이다.
할 수 없이 PC방으로 가서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PC방에서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려 의자에 머리를 눕히지만
게임하는 젊은 친구들의 소리로 잠이 오지 않는다.
결국은 한잠도 못자고 2시 40분에 PC방을 나선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오후에 비 온다는 예보를 들었는데 벌써 시작하는 것 같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장거리 산행을 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오늘 비가 오는가, 고생을 각오해야겠다.

불암초등학교 앞 24시 편의점에서 빵과 캔 커피로 간단한 요기를 한다.
03시 10분, 헤드랜턴을 머리에 차고 불암산으로 들어간다.
야간산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할 수 없다.
산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야간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둠 속의 길을 찾는 것 보다는 꽃, 나무, 바위 등을 바라보며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직 예불시간이 안 되었는지 학도암(學道庵)이 조용하다.
뿌연 가로등이 빗속에 노란 색으로 빛난다.
새벽의 산사에서 비 오는 가로등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학도암부터 헬기장 넘어 깔딱고개까지는 편안한 길이다.
가족들의 손을 잡고 오르는 부담 없는 길이다.
오늘의 긴 여정을 감안하여 천천히 몸을 풀면서 오른다.

깔닥고개를 지나면 본격적인 바위지대가 시작된다.
불암산은 높지는 않지만 정상부분이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바위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구간도 많지만
나로서는 오금이 저리는 곳도 있다.

올라갈수록 바람은 세차게 분다.
자욱한 가스가 끼니 헤드랜턴 불빛이 앞을 비추지 못한다.
위험한 구간이 시작되는데 어려운 상황이다.
랜턴을 손에 쥐고 움직이니 바위들의 그림자가 생기면서 조금 잘 보인다.
비바람을 맞으면서 랜턴을 손에 쥐고 위태로운 바위를 올라가려니 힘이 든다.

불암산 정상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빨리 내려간다. 어두우니 석장봉 가는 길이 잘 안 보인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 길을 찾았다.
평상시 같으면 바로 옆에 보이는데 비 오는 야간이라 그런가 보다.

석장봉에 도착하니 04시 30분이다.
간식을 먹으며 한숨 돌린다. 오늘 산행의 가장 어려운 구간을 통과한 것 같다.
불암산 정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태극기만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만 들린다.

이제 랜턴이 없이 손목시계의 시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은 짙은 구름 속에서도 때가 되니 찾아온다.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여기저기 들린다.
숲이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덕능고개로 내려가면서 작년 11월에 불암-수락을 타면서
석장봉부터 수락산 도솔봉 가는 길에 달아놓은 리본을 찾아본다.
두 개 정도만 보인다. 일년도 되지 않아 다 떨어졌는지 떼버렸는지 모르겠다.


수락산(水落山)으로

덕능고개의 동물이동통로를 넘어 수락산으로 옮겨간다.
도로에 내려서서 군부대 담을 따라 걷다가 흥국사 쪽으로 올라갈까 생각했으나
가능하면 능선종주하기 위해 우회하지 않고 예비군 훈련장 펜스를 따라 간다.

예비군 훈련장을 벗어나 철탑 위 마당바위에서 휴식을 취한다.
땀을 흘리니 몸이 부드럽게 풀린 것 같다.
물을 마시며 사과 하나를 먹는다.
산행하다가 땀을 흘린 후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싱싱한 과일을 먹는 기분은 정말 좋다.

가파른 길을 숨 한번 몰아쉬고 올라오니 도솔봉이다.
도솔봉에서 바라보는 수락산 경치가 수려하다.
코끼리바위, 치마바위, 철모바위 등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자신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바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수락산은 좋은 놀이터이다.

철모바위를 지나 06시 40분에 수락산 정상에 도착한다.
자욱하던 구름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지나온 불암산과 가야할 도봉산, 북한산이 보인다.
‘오늘은 저기 도정봉, 동막골을 거쳐 회룡골을 올라가
도봉, 북한산의 능선을 타고 보이지 않는 불광동으로 가는거야‘

도봉산의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봉우리가 눈앞에 강렬하게 보인다.
누가 저리도 멋있고 힘찬 바위봉우리를 만들었을까?
근심 없는 바위들이 하늘 향해 쭉쭉 뻗은 것 같다.
서울 산의 바위를 보면 “유치환의 바위”가 절로 떠오른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불암산에서 여기가지 오는 동안 사람을 못 만났는데
정상 부근에서 두 사람을 보았다.
젊은 사람이 혼자 있길래 회룡역 가는 길을 물으며 얘기를 잠깐 했다.

기차바위라고도 하는 유명한 홈통바위이다.
홈통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로서도 아찔한데
스릴을 즐기는 용감한 아줌마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밧줄 잡고 내려오니 손바닥이 따끈따끈하다.

도정봉을 거쳐 동막골까지 내려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다.
비 내리는 오솔길을 신나게 걷는다.
아침시간 우산 쓰고 산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동막골에 내려서서 회룡역까지 시내를 통과하여 간다.
맑고 조용한 산길을 걷다가 자동차의 매연가스를 맡고
시끄러운 사람들의 동네를 거쳐 다시 산으로 가는 것이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지리산 종주와 덕유산 종주의 좋은 점의 하나는
만나는 도로 하나 없이 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회룡역 주위 분식집에서 김밥 두 줄을 아침으로 먹는다.
밤에 잠을 못자고 새벽부터 산행을 하여 5시간을 걸었더니
입안이 칼칼하여 잘 넘어가는 않지만 갈 길을 생각하여 그래도 집어넣는다.

회룡매표소를 09시 05분에 통과하여 회룡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예전에는 석굴암 뒤편 길을 타고 능선으로 자주 올라갔으나
오늘은 회룡계곡으로 올라 포대능선으로 간다.


포대능선(砲臺稜線)과 신선대(神仙臺)

회룡계곡을 따라가니 밤꽃 향기가 가득하다.
시원한 바람이 날리는 밤꽃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유월, 밤꽃이 한참 필 시기이지.
자고로 밤나무는 집안에는 심지마라고 했는데
이 길을 걷다가 설레일 여심(女心)이 있을까, 후후

땀을 제법 흘리고 포대능선에 올라섰다.
여기서 왼쪽은 도봉산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사패산 가는 길이다.
사패산에 갔다 온다면 꽉 찬 5산종주가 되겠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남겨두기로 하고 그냥 신선대로 향한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관악산의 팔봉능선, 도봉산의 포대능선, 북한산의 의상능선을
서울의 3대 능선이라 한다고

그러나 굳이 3대 능선이니 하는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포대능선, 이 길은 정이들대로 든 길이다.
친구들과도 걸었고 혼자서도 많이 걸었다.
바위 하나 나무 하나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제는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친구 같은 길이다.

능선을 걸으며 조망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여
서울 산들의 모습을 많이 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시계(視界) 제로이다.
포대봉에서 조차 선인봉, 만장봉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유명한 V자 계곡을 쇠밧줄을 타고 내려간다.
직장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로 지체가 심하다.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인 듯 감탄사가 많다.
겁먹은 여직원 주위에 서로 손을 잡아주려는 용감한 남자 직원들이 많다.
힘들게 계곡을 올라와서 신선대에 오른다.

비 오는 날이라 별로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바람이 심한 신선대에 사람들이 꽉 차있다.
말씨로 보아 경상도에서 온 단체 산행객 같다.
신선대에 내려와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우이암(牛耳岩)과 원통사(圓通寺)

신선대를 우이암 방향의 밧줄을 타고 내려온다.
뜀바위, 칼바위, 주봉(柱峰)을 지나 오봉(五峰)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오랜만에 오봉과 여성봉(女性峰)도 보고 싶지만 아쉽다.
안개비 내리는 날 여성봉의 분위기를 아시나요? ㅎㅎ

목제계단을 올라 우이암이 보이는 봉우리에 오른다.
서서히 몸이 지쳐간다. 다리가 뻐근하고 발바닥이 따끈따끈하다.
원통사에 오니 앞 샘물에 가물어 말라는지 물이 없다.
원통사는 올 때 마다 느끼지만 분위기가 따뜻하고 고즈넉하다.
잠시 쉬었다 가고 싶으나 갈 길이 멀어 호흡만 가다듬고 길을 나선다.


우이동(牛耳同)

우이동매표소를 통과하니 13시 15분이다.
우이동에 올 때 가끔 들리는 갈비집에서 점심으로 곰탕 한 그릇 먹는다.
10시간을 걸었더니 발바닥에 불이 나는 것 같아 신발끈을 풀고 발을 편하게 한다.
앞으로 6시간은 더 걸어야 되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니 비가 다시 내린다. 비방울이 제법 굵다.
백운대매표소까지 아스팔트길을 걸어 올라간다.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자동차의 매연가스를 맡으며 비를 맞으며 올라가니
청승맞다는 생각이 든다. 산이 얼마나 좋아서 새벽부터 이 고생을 하는가.


북한산(北漢山) 오르며

백운대 매표소에서 도봉산에서 산 입장권을 보여주니 그냥 통과하라고 한다.
하루재까지 오르막이 힘이 든다.
백운대 매표소를 같이 통과한 싱싱한(?) 사람들 모두가 나를 추월하여 지나간다.
지난 달 설악산 갔다가 처음으로 무릎이 아픈 경험을 했기에
오르막에서는 최대한 천천히 걷는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징후는 없다.

인수산장을 지나고 인수봉을 바라본다.
구름 속에 묻혀 아랫부분만 보이지만 멋있고 늠름하다.
대인(大人)의 풍자(風姿)를 느끼게 한다.

비는 점점 많이 내린다. 회룡역에서 일회용 비닐우의를 사길 잘했다.
백운산장(白雲山莊)에 도착하여 새콤한 맛이 도는 막걸리를 한잔한다.
백운대에서 내려오다 막걸리 한잔 걸치면서 산행 피로를 잊곤 했는데
오늘은 한잔 마시고 백운대로 올라간다.

위문(衛門)은 북한산성의 암문(暗門)이지만
백운대와 만경대의 험준한 바위봉우리가 옆에 서있어
장판교에 홀로 서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향해 호통을 친 장비처럼
용맹한 장수 한 명이면 만 명의 적을 막을 수 있을 만한 천혜의 요충지로 보인다.


백운대(白雲臺), 너에게 가는 길

위문에서 백운대로 올라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듯
그리운 백운대, 나는 너에게 간다.

자욱한 구름속이라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
백운대 바위도 하얗고 구름도 하얗다.
하얀 색 외에 다른 색(色)은 없다. 천지가 하얀 색이다.
오직 검은 철난간만이 하얀 색을 배경으로 하늘 위에 떠있다.
하, “Stairway to Heaven” 이다.
작년 11월 이후 7개월 만에 백운대에 선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에서- 황지우


백운대(白雲臺)!
거대한 암괴(巖塊)가 우뚝 솟아올라
천지 사방을 호령하는 듯
우리의 역사와 인간사를 굽어보는 듯 하다.
이렇게 위풍당당(威風堂堂)한 봉우리를 보기 쉽지 않다.

나는 백운대를 무척 좋아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빛나는 모습을 좋아하고
사방을 내려볼 수 있는 시원한 조망을 좋아하고
신선이 사는 듯한 유장(悠長)한 이름을 좋아한다.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 북한산과 백운대에 대한 많은 시와 글을 남겼으나
나는 아직 백운대에 대한 글을 한줄 밖에 쓰지 못했다.
“청천유재백운대(靑天悠載白雲臺)”라고


흰 구름도 노닐다 가는 곳
오랜 세월
파란 하늘 머리에 이었어라


비바람이 세찬 백운대에는 구름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을 즐기고 싶었으나 오늘은 비와 바람과 구름을 즐긴다.
젊은 친구들이 몇 명 있다.
한 친구가 “야, 좋다. 정말 좋다. 미치도록 좋다.”며 고함을 지른다.
나도 속으로 말한다.
‘너도 좋으냐, 나도 미치도록 좋다.’

바람 부는 쪽을 향해 온몸을 맡기고 비를 맞아 본다.
백운대에서 이런 경험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왜 좋은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좋다.

어디서 왔는지 젊은 친구에게 물어보니
대학생인데 결강한 수업에 보충수업으로 전원 백운대에 오른다고 한다.
등산화라도 제대로 신지 않고 비 내리는 백운대에 오른 것이 조금 그렇지만
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백운대 내려가는 길에 학생들은 저마다 노래를 부른다.
창(唱)을 하는 친구도 있고
내가 즐겨 부르는 “나 어떻게”를 가사를 고쳐 부르는 친구도 있다.
남학생, 여학생들의 얼굴이 환하다.
땀으로, 빗물로 세수한 스무 살의 얼굴이 너무 예쁘구나.


대남문(大南門)으로

위문으로 내려와 만경대 옆을 돌아간다. 험한 곳이 많다.
겨울에 얼음 언 이 길을 가다가 많이 미끄러졌다.
쇠밧줄을 잡고 올랐다가 내려갔다 하면서 노적봉 앞으로 간다.

용암문, 동장대를 지나서 대동문에 도착한다.
구름 속의 대동문이 주위와 어울려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역광 속에 소프트 필터를 끼우고 촬영한 사진 같은 모습이다.

보국문에서 대남문까지 가는 산성 주능선길
많이 걸어 다녔지만 오늘은 너무 힘들다.
체력은 떨어지고 다리 근육은 서서히 아파온다.

대남문에 도착하니 17시 50분이다.
집에 전화를 하고 여기서 구기동으로 내려갈까 하고 생각도 한다.
지금 내려가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비 오는 산속에서 날은 쉽게 어두워질 것이고
벌서 비를 맞으며 산행한지 14시간이 지났다.

한편으로는 불수도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큰 마음먹고 왔는데.
비봉능선을 타고 향로봉, 족두리봉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언젠가 불수도북하면 타리라고 정해놓은 코스였지 아닌가.
여기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고 해가 가장 긴 때니 야간산행은 안 할 것 같다.
‘가자. 오늘은 작심하고 걷는 날인데 계획대로 가자.’
그래서 비봉능선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청수동암문, 비봉과 의상능선의 갈림길이다.
여기까지 오니 의상능선이 보고 싶다.
의상능선, 참으로 아름다운 바위 길이다.
화려하지만 날카롭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설악산 공룡능선보다
함부로 못할 굳건한 힘이 있으되 아기자기하고
나의 손과 발로 올라갈 수 있는 의상능선에 정이 더 간다.


비봉능선(碑峰稜線)을 타고 하산하는 길

청수동암문을 통과하여 비봉능선으로 가는 길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힘이 솟는 것 같다.
15시간을 걸었기에 발바닥과 무릎이 편치 않지만 아직은 견딜 만하다.

비봉능선의 길도 좋아한다.
적당히 오르내리고 바위도 타면서 가되 그다지 힘든 길은 아니다.
비봉, 향로봉을 우회하고 족두리봉 능선으로 올라서는
마지막 오르막길을 힘들게, 힘들게 올랐다.
오늘의 종착지 독바위역에 도착하니 19시 55분이다.

길고 긴 산행이 끝났다.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의 능선 길을 17시간 동안 걸어
4개산의 정상에서 올라 감회와 각오를 새롭게 하고
목표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나의 마음속으로 몰려온다.


사랑하는 사람아,
장거리 산행을 준비하는 나의 몸과 마음은
시합을 앞둔 운동선수처럼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날이 되면 배낭 메고 산에 들어가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 먼 거리를 다 채우고
산에서 받은 맑은 기운과 뿌듯함을 가득 안고
돌아오는 마음을 그대도 알게 될 것이다.


▣ 산모퉁이 - 멀고 힘든길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불수도북... 저도 언제 한번 해 보리라 맘을 먹고 있습니다. 멋진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bogo - 옆집 순희가 최고라고 깨닫는다는 표현 재미있군요..북한산은 서울의 보물 입니다.
▣ 샘터 - 백운대님...대단한 인내에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 걷는 돌 - 짝짝짝짝....(컴 자판으로 두드리는 저의 박수소립니다) 님의 다음산행이 정말로 기다려집니다
▣ 유풍 - 우중에 불수도북 ... 님의 체력과 인내력에 찬사를 보냅내다.늘 즐산 하시길...
▣ cws - 뿌듯하다니....... good.
▣ 올챙이 - 아빠 축하해요. I love you.
▣ 김학준 - 불수도북종주!! 처음 접하는 산행기군요. 고르지 못한 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 세영아빠 - 우중에 장거리 산행..그 힘든 여정인데도 불구하고 한편의 잘 쓰여진 수필같은 산행기!! 잘보았습니다.. 다음글이 기다려집니다..^^늘 즐산하세요..꾸벅~
▣ 최병국 - 말로만 듣던 불수도북 종주! 경하드립니다.
▣ 初者 - 무릎연골 조심하시쇼~! 그거 아작난 사람 여럿 봤쑤다. 관악청계 아니면 청계광교 함 같이 가세나. 좋은 코스 봐뒀으니..
▣ 불암산 - 불수도북, 여기에 사패산을 합하면 불부사도북이 되지요. 사패를 합치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왠만한 사람들도 해내지 못하는 불수도북종주 , 무탈하게 끝내셨음을 축하드립니다. 즐산하시고 특히 비오는날 안전에 최우선을 두시길 바랍니다.
▣ 김찬영 - 그 힘든 불수도북을 해내셨군요 . 축하드립니다. 사패산은 다음에 하시면 되지요. 마음은 있엇도 행하기가 어려운데.. 수고했습니다
▣ 운해 - 사패산은 양념으로 한 번 다녀 오세요. 어려운 불수도북 종주 잘 하셨습니다.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