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08:00 어제 저녁 꾸려놓은 배낭을 메고 집앞 정류장에서 수락산행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거리는 아직 한산하고 하늘을 보니 꽤 좋은 날씨가 예감된다.

버스에 오르니 승객은 나를 포함해 두세명 정도.
수락산역을 지나며 창밖을 보니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이 몇명 보인다.
아마도 한두시간후면 이곳은 울긋불긋 차림을 한 등산객들로 넘쳐나리라.

08;30 수락산유원지입구에서 하차하여 슈퍼에 들린다.
산사춘 1병,오이 몇개를 사서 배낭에 찔러 넣는다.

유원지 입구에는 좌판을 준비하는 노점상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삶의 휴식을 위하여 산을 찾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상대로 생존을 위하여 산에 오는 사람들.

덕성여대 생활관 옆을 지날때쯤이면 낡은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 소리가 들린다.
묘하게도 찬송가소리에서 흘러간 옛날가요(뽕짝)의 감정이 묻어난다.
찬송가 소리와 함께 프라스틱 바구니를 앞에 놓고 엎드려 있는 장애인
그러나 그 장애인은 아직 출근 전이다.

좌측에는 수락산 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고
고개를 들어 올리면 초록의 나뭇잎들 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두 팔을 벌리고 숨을 들이쉬니 조금은 비릿한 밤꽃향기가 코끝을 스치며
싱그러운 수락의 공기가 가슴에 가득찬다.

배드민턴장을 지나며 나타나는 마지막 휴계소(매점),
< 마지막 > 이라는 글자가 "뭐 빠트린거 없나 잘 생각해보세요" 하면서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다.

장승이 서있는 곳을 지나고 조금 더 오르면
그 유명한(?) 수락산가수 의 공연장이 나타난다. 이 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비교적 한적하게 능선에 오를 수 있으나
수락산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중의 하나인 암릉구간을 놓치게 된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깔닥고개를 향해 발을 옮기는 데
이미 배낭을 맨 등어리는 땀으로 축축하고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은
눈가를 따라 주르르 흘러내린다. 하지만 발걸음에는 아직 여유가 있다.

호흡을 고르게 조절하며 한발 한발 깔닥고개를 올라 능선에 서니
아이스박스에 얼음과자를 담고 파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온다.
정말 기가 막힌 곳에 자리를 잡고서는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반갑게,반갑게 맞이한다.
하지만 이곳은 앉아서 쉬기에는 장소도 비좁고 전망도 없다.

잠시 숨을 고르고 우측 암릉을 향해 전진한다.

두세 구간정도 오른후 비로소 코스에서 살짝 비켜있는 작은바위에
배낭을 내려놓는다.
땀을 식히며 잠시동안 저 멀리 보이는 도봉과 함께 지나온 수락의
암릉을 조망한다.
철모바위까지 계속되는 암릉은 수락을 대표하는 인상중의 하나이고
어느정도의 지구력과 인내력을 필요로 하는 그런 구간이다.

철모바위에 도착하니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이 곳 주점은 아직
개장 전이다.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정상이지만, 나의 마음은 다른곳에 가 있다.
정상을 좌측에 두고 상계동방향능선으로 내려선다.

10:30 드디어 나의 목적지인 이곳.
수락산 전체를 들어 최고의 명당이라할 수 있는
이 곳에 도착한다.
이 곳은
앞을 가리는 것 하나 없는 탁 트인 전망이 있는 곳.
계곡의 물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그대로 분재가 되어버린 소나무한그루
그 소나무의 가지가 그늘을 드리우는 곳.
한 팀 이상 앉을 수 없어 자연히 나만의 공간이 되는 곳.
등산로에서 한발 비껴있어 다른 등산객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곳.
저녁이면 수락산 최고의 일몰을 볼 수 있는 곳.

작년만 해도 이곳은 항상 나의 별장이 되어주곤 했는데
지금은 운이 좋아야 이곳에 앉을 수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의 끈을 푼다.
양말과 상의를 벗어 나뭇가지에 널어 놓고나니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몸에 젖어있는
땀들을 모두 날려보낸다.
맑은 계곡물에 발담그는 것은 여기 비하면 세단계쯤
아래이다.

수건 한장을 넓게 펴고 머리맡에 배낭을 놓고, 모로 누워
컵에다 술한잔을 가득 따른다. 저 멀리 도봉이 보이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니 'song of joy'훌리오이글레시아스
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세를 바꿔 큰대자로 누우니 푸른하늘에 점점이 박혀있
는 흰 구름들............ "세상부러울 것 하나 없다."
바로 지금 할수 있는 말이다.

11:30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치마바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치마바위주점 또한 철모바위와 같이 전통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능선을 따라 계속
진행한다.

능선에 등산객들은 점점 늘어가고, 나의 두 다리는 이미
자동이다. 나의 머리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다리가
스스로 알아서 능선을 따라 걷는다.

수락산의 능선길, 특히 철모바위에서 마들역방향으로의
능선길은 암릉과는 또다른 편안한 느낌을 준다.
능선 양측으로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나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불암산, 우측으로는
도봉산을 조망할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하늘과 구름, 얼굴에 스치는 바람, 나무들,
마주치는 등산객들 모두가 하나되어 내 안에 들어온다.
내가 그들 모두의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더 걷다보면 내 자신도 사라져 없어진다.

마들역방향으로 진행하다보면 나타나는 마지막 주점.
토요일,일요일만 장사하는 곳인데 항상 만원이다.
1시간이 안걸리는 거리에 수많은 아파트들이 자리하고 있어
장사터로서는 그만인 곳이다.

그러나 이 곳의 진면목은 새벽 동틀 무렵에 나타난다.
저 멀리 덕릉고개와 불암산을 배경으로한 일출을 전후하여
변화하는 풍광들... 그리고 새벽 수락산의 정기가 모이는 곳.

얼마후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오고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로 내려선다.
횡단보도를 지나 아파트단지로 들어서니 사람의 손으로 조성된
인공의 자연이다. 하지만 아직은 하늘과 나무가 보이는
자연속이다.

엘리베이터 홀로 들어서니 완전한 인공의 공간이다.

13:30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초인종을 누르니 교회에서 돌아온 아내가
문을 열어주며 "잘 다녀왔어요" 한다.
그 소리에 나는 비로소 일요일 오전 나만의 꿈에서 깨어 또다시
아내의남편, 아이들의 아빠가 된다.


▣ jkys - 정말 님의 산 , 수락산입니다.

(걷는돌) 리플 감사드립니다. 답글다는 방법을 몰라서.. 본문수정으로 들어가면
되는군요. 저는 산이 좋아 주로 주말에 근교산행을 하는 사십후반의 평범남입니다.
항상 jkys님의 즐산,안산을 기원하겠읍니다.

▣ 김찬영 - 수락산 불암산 같은 좋은산을 가까이 두어 행복하겠습니다. 일찍이 덜붐비는 시간에 다녀온것이 부럽습니다..지는 수락산까지 지하철타는시간이 7호선 한번타고도 1시간30여분 걸려 마음만 있고 가끔 찾아봅니다...

(걷는돌)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산하의 산행기를 읽으며 김찬영님의
팬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발이 짧아 멀리 가지 못하는 저에게 산하의 구석구석을
소개해주시는 찬영님에게 항상 감사드리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