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6. 4 금요일 쾌청
달궁을 지나 성삼재에 오르는 관광도로에 다람쥐 몇 마리가 겁 없이 중앙선까지 나타나 두발을 치켜들고 무언가를 먹다가 시커먼 괴물(자동차)을 보고는 혼비백산 줄행랑을 치는데 바퀴에 치일까 걱정이 앞선다.
N자형으로 굽이굽이 돌고 도는 성삼재 길을 넘어가는 자동차가 힘이 드는지 그렁그렁 쉰목소리를 내지르며 숨이 가쁘다. 나는 내친김에 주차비 20,000원을 아끼기 위해 바로 아래 시암재로 향했다.
아직 7시가 채 안된 이른 시간으로 대형주차장은 2대의 승용차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본격 등산차비를 차리고 배낭을 어깨에 걸머지는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07:25 지리산 종주의 첫 걸음이 시작되는 성삼재를 출발한다. 주차장 위편의 휴게소는 간밤의 영업으로 아직 문도 열지 않아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고 등산객도 나 말고는 찾아 볼 수가 없는데 택시 한 대가 60대로 보이는 부부를 토해낸다. 여수에서 왔다고 하는 그의 옷차림은 등산을 하기 보다는 시집 보낸 딸 집을 찾아 가는 순수한 시골 아저씨의 차림이다.
07:49 성삼재에서 노고단은 쉬지않고 한달음에 올라가는 길이건만 1박을 하는 종주 산행이라 배낭무게가 어깨를 짓눌러 중간지점의 침목을 깔아 만든 전망대에서 기어이 배낭을 내려 놓고 어깨 쉼을 한다. 전망대 앞으로 천년 고찰 화엄사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전망대를 돌아 화엄사골로 떨어지는 계류의 시원한 물 흐름소리가 피로를 한꺼번에 씻어준다.
08:03 6.25 때 폭격을 맞아 기둥만 남아 있다는 서양인의 수련원 건물을 돌아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한무리의 산악회원들이 다리 쉼을 하고 있다.
나는 취사장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아침을 먹기 위해 버너에 불을 지폈다.
내 옆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 젊은이 둘이 말을 주고 받으면서 시발놈이란 말을 너무 쉽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 여과없이 들리는 내게 거부감을 안겨주고 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못들은 척 라면에 김치를 넣고 뚜껑을 닫는다.옆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를 보니 천왕봉까지 25.5km다.
08:47 식사를 마치고 시원한 물을 받아 배낭에 챙긴 후 돌짝 밭을 따라 십여 분을 올라가니 어느 새 노고단이다.
노고단은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사전 예약제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아직 문이 닫혀 있는데 여기서도 천왕봉이 25.5km 라 적혀있다. 어? 방금 전 대피소에서도 25.5km로 되어 있었는데…...!! 완만한 능선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코 앞으로 반야봉이 손짓을 한다.
09:27 멧돼지가 들끓어 돼지평전이라 하는 곳을 지나니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구상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어 나타나는 피아골 삼거리의 이정표에 천왕봉 22.3km , 피아골 대피소 2.0km 라 적혀 있다.
09:34 임걸령이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야영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야영,취사금지 구역이다. 걸리면 50만원을 국가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니…
변함없이 샘터의 파이프에서는 시원한 물이 콸콸콸…..목마른 길손에겐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을 터,
10:12 산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등산로가 시원하기 그지없는데 어느 새 반야봉 갈림길이다. 어린아이 머리통 만한 참나무 줄기에 배낭 두 개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두 사람이 배낭을 벗어놓고 반야봉에 오르고 있나 보다.
나는 2년 전 종주 때 반야봉을 올랐던 기억을 더듬으며 조망이 탁 트인 바위에 걸터앉아 푸르름이 넘쳐 나는 지리산 자락을 굽어본다.
겹겹이 푸르름으로 온 산하가 산뜻하게 옷을 입고 있는데 시선이 머무는 한 곳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다름아닌 달궁에서 성삼재에 이르는 길이 마치 산허리를 뭉텅 잘라 내어 여인네의 하얀 속살처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10:29 마당처럼 평평한 바위가 펼쳐지고 있는 삼도봉에 도달 하였다.
전남과 전북 그리고 경남을 알리는 삼각뿔이 바위에 박혀 있고 하단의 원형표지기에는 “3도민이 서로 마주보며 천,지,인 하나 됨을 기린다.98.10월”라고 둥글게 씌어 있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침목으로 이루어진 550계단이 시작된다.
10:58 화개재에 도착을 했는데 안부 끝 자락으로 훌륭한 휴식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역시 침목으로 쉼터를 만들어 놓았는데 마치 시골의 원두막 형태로 그늘이 드리워 시원하기 그지없건만 여나믄 명이 아예 전세를 내놓은 듯 배낭을 내려놓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어 내가 차지할 공간이 없어 보인다.
11:20 화개재를 뒤로 하고 묘봉으로 가는 길목은 시나브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벌써부터 발이 안 떨어져 결국 묘봉까지 한달음에 내달리지 못하고 나무 그루 턱에서 주저앉고 만다.

11:27 토끼봉은 일명 묘봉이라 부르는 곳으로 지난 번 종주 때 이곳에서 서울대 교수 한 분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그 분에 말에 의할 것 같으면 반야봉에서 보았을 때 방위가 묘방이라 하여 토끼봉으로 이름 붙였다 한다.
지리산의 보호를 위해 자연휴식년제 도입 구역임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
12:38 묘봉에서 연하천 산장에 이르는 길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산행을 할 수 있는 코스다. 잠깐 스치는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지리산 자락을 굽어보면 정말 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빨치산이 이곳을 은신처로 삼아 마지막까지 저항을 했던 것이리라.
연하천 산장은 그리 크지 않은 대피소로 개인이 운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햇빛이 제법 따갑고 배도 고픈데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서둘러 연하천까지 가야 한다. 사람들의 두새두새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으로 보아 다 온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나는 세 줄기 물이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는 파이프 아래 머리를 디밀고 세수부터 하기 시작한다.
얼굴에 맺힌 땀이 식으면서 소금덩어리가 손에 만져지는 걸 느끼며 얼음처럼 차거운 물을 얼굴에 연신 끼얹는다. 가슴속까지 얼얼하며 시원하다.
냉장고가 따로 필요 없었다. 산장에서도 커다란 용기에 물을 받아 캔 음료수를 담아놓고 팔고 있을 정도였으니….
바리케이드가 쳐있는 곳으로 약간 올라가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꺼내는데 웬 파리가 이다지 많은가! 쫓아도 쫓아도 그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금새 열어놓은 반찬 그릇에 큼직하고 징상스런 똥파리가 스멀스멀 날개를 접고 앉는데 밥맛이 싹 달아난다. 내 옆으로 천안에서 밤새워 기차를 타고 왔다는 내 또래의 한 부부도 파리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들은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이곳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연하천에서 잠을 자야 한단다.

13:20 어쨌든 점심을 먹었으니 다시 출발을 해야 했다.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약 1시간이 소요될 것이었다. 그 다음 벽소령에서 마지막 힘을 보충하여 세석까지만 가면 오늘의 일정은 끝나는 것이다.
13:30 음정으로 갈라서는 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음정 6.6km 라는 이정표가 반겨준다. 음정은 여기 말고도 벽소령 대피소에서 가는 길이 또 있다.
주말이 아닌 평일인데도 지리산을 찾는 사람이 엄청 많아 때론 길을 양보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도 하지만 모르는 이들과 지리산을 찾았다는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즐겁게 양보를 한다. 작은 고개마루를 막 넘어가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반갑습니다 하며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왼편의 커다란 바위에서 “아저씨, 여기 올라와서 쉬었다 가세요,너무 시원해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제법 높은 바위에 혼자 올라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재차 나를 보고 웃으면서 당돌하게 “아저씨 우리 애인해요” 한다. 바위 뿌리를 잡고 간신히 올라서자 거기엔 감춰진 지리산의 비경과 벽소령 대피소가 한 눈에 들어오고 때맞춰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한줄기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시원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서울에서 왔다는 아주머니는 세 가족이 산행에 나섰는데 한 팀이 자꾸만 낙오해서 이렇게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다며 푸념이다. 나는 좋은 산행이 되기 바란다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바위에서 내려왔다.
14:08 힘없이 지루한 오르막을 한동안 오르는데 갑자기 거대한 암봉 두 개가 턱 버티고 길을 막고 있다. 이른바 형제봉이다.
내가 형제봉의 위용에 압도되어 감탄을 쏟아내며 눈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두 개의 바위 벽 사이 하늘이 열린 공간사이로 한 남자가 웃통을 벗어 제치고 갖은 폼으로 앉아 내 앞에 느리게 걷고 있는 여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소리친다.
14:50 연하천을 출발한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벽소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좀 늦은 행보였다. 지난 번 이곳에서 하루 밤을 유숙하며 천왕봉엘 갈거라고 했지만 태풍 루사 때문에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렸던 그 현장에 내가 다시 온 것이다.
벽소령은 지난 60년대 후반에 의신과 북쪽의 삼정으로 연결하는 도로를 낸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산장이 들어서서 옛날의 동동주 팔던 주막의 정취가 사라져 아쉽기도 하다
대피소 입구에 마치 영화에서나 봄 직한 빨간 우체통이 새롭게 산객들을 맞아주고 있는데 지난 번엔 없었던 걸로 글쎄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심산에서 편지를 쓰며 우체국 직원은 과연 여기까지 배달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2년 전 대피소 출입구 측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에서 충청도 서천 총각들과 웃고 떠들며 식사와 술잔을 나누었던 그때의 그 왁자지껄했던 저녁 풍경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지금은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와 깊은 산 중에 내려 쬐는 뙤약 볕 만이 자갈을 뜨겁게 달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취사장 쪽 그늘을 찾아 배낭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아래 샘터로 내려가 물병의 남아있는 물을 쏟아내고 새로 시원한 물을 담았다.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대피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 저기 그늘에 앉아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 이래 노고단에서부터 줄곧 핸드폰을 꺼 놓고 있다 그리운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어 전원을 켰지만 안테나가 터지지 않는다. 한 아가씨가 안타깝게 이리저리 방향을 옮겨가며 시도를 하다 여의지 않은 듯 탐방로 펜스에 올라가 기어이 통화를 한다.
16:08 나는 의신,하동,쌍계사 라고 적힌 이정표를 지나치며 마지막 세석산장을 향해서 길을 떠났다.지리산은 능선을 타고 내내 산행을 하는 곳으로 구상나무,소나무,참나무 등 숲이 우거져 더위를 별로 느끼지 않는데 나무가 없는 곳을 지날 땐 제법 햇살이 따갑다.
선비샘터를 지나는데 식수가 풍부하게 흐르고 있다. 이름도 재미있는 이 선비샘터는 이곳에서 멀지않은 의신에 한 농부가 살아생전 천대만 받다 죽음을 맞이하자 자식들이 이 높은 지리산 자락에 묘를 썼는데 신기하게도 묘 아래서 물이 펑펑 솟아나는지라 지나는 사람이 물을 먹기 위해선 자연히 엎드려 절을 하게 되므로,천대 받던 설움을 죽어서 나마 보상을 받았다는 애틋한 전설이다. 지리산은 무엇보다 중간중간 이렇게 시원한 물을 만날 수 있어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17:05 생각보다 산행이 지체되고 있는 것은 배낭의 무게 때문이었다.
칠선봉에 도착을 했는데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다. 아침 7시부터 걸었으니 어느덧 열 시간째다. 다리 쉼을 하고 있을 동안 나물이라면 문외한인 나에게도 취나물은 지천으로 널려있어 쉽게 채취를 할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맞는지 어쩌는지 모르지만 취나물이 웃자라 이파리가 손바닥 만하다.
칠선봉은 해발 1,558 m 로 일곱 선녀가 놀다 갔다는 봉우리로 정상인 천왕봉이 가까워짐에 따라 서서히 그 고도도 높아지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기암괴석으로 둘러서 있고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친 나를 반긴다.
18:00 한창 피어났던 철쭉이 한 잎 두 잎 땅에 떨어져 쓸쓸히 나뒹구는 영신봉에 오르니 커다란 헬기장이 바로 옆이다. 지도상으로 세석산장이 코앞이건만 산자락에 가리어 보이지 않고 대신 촛대봉으로 오르는 완만한 능선사이로 등산로가 훤하게 들어 나 보인다. 이제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보폭이 작아지고 느려짐을 느낄 수 있지만 마지막 힘을 내기로 한다.
18:15 드디어 세석산장에 도착을 하였다.
대피소 아래 식탁이 놓여져 있는 로비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각종 취사도구를 꺼내 라면을 끓인다,찌개를 끓인다 장터를 방불케 하는데 나도 그들 틈을 헤집고 자리를 잡아야 했다. 마침 누군가 식사를 하고 철수를 했는지 빈 곳이 하나 띄었다.
배낭을 내려놓자 그때까지 짓눌렸던 어깨가 풀리며 시원하다.
나는 사무실에 올라가 예약을 확인하고 2호실 115번을 배정 받은 다음 배낭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코펠과 버너 등을 꺼냈다. 찌개를 끓이기 위해 작은 참치 캔 하나를 샀는데 2500원으로 완전 바가지다.
햇반이 보글보글 끓고 있을 무렵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내 있는 곳으로 오더니 그들도 식사 준비를 한다. 나는 막걸리를 한 잔 따라 우선 그들에게 건넨 다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았던 막걸리 한 사발을 주우욱 들이켰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잘 뎁혀진 햇반은 김치와 참치를 넣고 끓인 찌개와 더불어 맛이 아주 그럴 듯 했다.
혹시 누군가 아는 얼굴이 있을 까 하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빠르게 훑어 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잠시 후 샘터에 가서 설거지를 하려던 나는 공단직원에게 보기 좋게 들켜 소득도 없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계곡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설거지는 물론 치약을 묻혀 이빨을 닦는 것도 허용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금새 그러한 정책들에 백 번 이해를 하며 이어 휴지를 꺼내 코펠을 대강 닦은 다음 담요 두 장을 빌려 숙소로 들어갔다.
식사를 할 때 웬 어린 학생들이 왔을 까 하고 의문을 가졌는데 그들이 2호실에 배정을 받아 인솔 교사와 함께 있었다. 순천의 한 초등학교 1개 반이 천왕봉 등반에 나섰다 한다. 나는 준비한 귀마개를 꺼내 양쪽 귀를 틀어막고 이내 잠을 청했다.

2004.06.05 토요일 쾌청

05:00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코고는 소리에 몇 번을 깼을 까? 계획보다 좀 서둘러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 담요를 반납하고 산장을 빠져 나왔다.
앞서 한 팀이 인원점검을 하며 먼저 천왕봉을 향해 출발을 하고 있다. 아직 어둠이 완연하게 걷히지 않은 희뿌연 새벽이지만 날씨는 오늘도 좋은 것 같다. 세석평전이란 말답게 산장이 있는 주변에는 큰 나무는 보이지 않고 진달래와 철쭉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꽃들은 이미 시들어 없었지만 만개를 하면 합천의 황매산과 쌍벽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장에 개는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05:20 촛대봉에 올랐다.
촛대봉의 크고 작은 바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데 아마도 일출을 보려는 것 같다. 정상인 천왕봉이 바로 코 앞으로 천왕봉을 남쪽으로 비켜 붉으스런 태양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모습을 조금씩 들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카메라를 꺼내 열심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바위에 참선하는 자세로 태양을 향해 가부좌를 한 채 무슨 기체조 같은 것을 하고 있기도 ….
06:12 이제 정상이 서서히 가까워짐에 따라 산의 고도도 어느덧 1,700 m 를 넘기
고 있다. 방금 도착한 연하봉의 높이가 1,730 m 인 것이다.
장터목 산장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06:27 장터목 산장에 도착하여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곳은 중산리의 덕산과 백무동의 마천 사람이 이곳에서 장터를 열고 물물교환을 했던 자리라 해서 장터목 이라고 불렀다 하는데 그보다는 마천장과 덕산장을 보러 가는 길목이라 해서 붙여진 명칭이 더 그럴 듯 하다.
난 일단 물병에 남아있는 물로 물을 끓여 햇반을 덮히기로 하고 버너의 스위치를 밀어 점화를 하였다. 파란 불꽃이 퍽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샘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마다 아침 식사로 샘터엔 벌써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데 얌체 젊은이 몇 명이 세수를 하고 있다. 두 물줄기에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는데 쌀을 씻어 물을 맞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바라 물통에 물을 가득히 받는 철면피도 간혹 있어 눈살을 찌프리게 한다.
이 곳도 여느 대피소처럼 똥파리들이 극성을 부려 식사를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손을 휘둘러 그들을 막아 보지만 역부족이다. 세상에 입장료 받고 대피소 사용료도 받으면서 아프리카도 아닌 대한민국의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에 파리 떼라니,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난 이 한심한 현실에 분노하여 며칠 후 지리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 고소를 하였는데 공감한다는 리플이 꽤 달려 있었다.
07:18 장터목을 출발하자 이내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급경사길이 나타나 초반부터 진을 뺀다. 배낭의 무게가 줄긴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잠시 후 장터목의 자랑거리 고사목지대가 나타났다. 광활하게 펼쳐지는 초원에 천년세월을 버티고 죽어간 고목이 부끄러움도 모른 채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탐방로의 펜스 안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사진 작가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나이가 탐방로를 벗어나 멀찍이 고급 카메라를 장착한 채 무언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고사목 하나를 골라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보았다.
07:35 고사목지대를 벗어나니 바로 제석봉(1,808 m) 이다. 이제 천왕봉이 1.1km 로 지척이다.
07:50 통천문을 통과했다. 통천문은 바위 벽 사이를 또 하나의 바위가 걸터앉은 형태로 공간이 아주 협소해 머리를 부딪힐 위험이 있어 조심을 해야 했다.
08:10 드디어 정상이다.
지리산의 정상은 온통 바위 투성이었다. 그리 크지않은 정상석엔 한자로 天王峰이라 음각하고 검은 페인트로 칠을 해놓았다. 재작년 큰 맘 먹고 단독 종주에 나섰다가 태풍으로 중도 하차를 한 경험이 있어 정상에 오른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여기가 남한에서 두 번째 높은 산으로 해발 1,915m 다. 정말 정상에 서니 이곳보다 높은 데는 없고 모두 발 아래다.
사람들이 힘들게 올라온 탓인지 얼굴에 희색이 가득하고 정상석을 배경으로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좀처럼 차례가 돌아오질 않는다.
08:43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산코스로 여기는 중산리를 버리고 더 먼 대원사로 방향을 틀고 혼자서 정상을 내려왔다. 갑자기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등산객의 발길이 뚝 끊어진 듯 너무 적적하다. 혹시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의구심과 반달곰이 나타나면 어찌하나 하는 두려움이 머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이런 기우는 곧 나타난 중봉이란 표지석을 보고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중봉은 그 높이가 무려 1,874 m 로 아주 높은 산이건만 지리산의 천왕봉에 가려 높이에 대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종 하산지인 대원사까지는 아직도 10.8km를 더 가야 하는 먼 여정이었다.
앞에 치밭목 산장이 숲에 둘러 쌓인 채 시야에 들어오고 뒤로는 여전히 천왕봉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모습이 보인다.
09:15 써리봉을 지났다.대원사까지 거리도 9.5km 로 조금 줄어들었다.
09:55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원사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치밭목 산장에 도착하였다. 몇 사람이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코펠 주변에 여전히 파리 떼가 새카맣게 몰려있다.
10:35 새재 삼거리다.
왼쪽 발이 약간 시려온다. 이제까지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약간 걱정되는 맘으로 계곡으로 내려왔다. 배도 출출하여 마지막 남은 오렌지를 베어 물고 양말을 벗어 탁족을 하니 발이 시원하다 한다.
계곡물이 너무 차가워 발을 물속에 오래 담그기가 힘들다.
12:13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이다지도 지루할까?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이 툭 터지며 민가가 나타난다. 유평에 온 것이다.
12:30 대원사 도착.
유평에서 대원사에 이르는 계곡으로 수정같이 맑은 벽계수가 마당만한 바위를 휘감아 돌며 철철 흐르는데 옷을 훌러덩 모두 벗어버리고 금방이라도 뛰어들고 싶다.
방장산 대원사 라 써있는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도 한없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12:53 드디어 지리산 종주의 대장정을 마감하는 주차장이다. 총산행시간 18시간 43분 동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단독종주를 마치게 되어 우선 기쁘기 그지없다.난 자가용이 있는 시암재까지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진주행 버스 시간을 물어보았다. 13시3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하여 산채비빔밥으로 우선요기를 한다.마침


▣ 지리산 - 단독 지리종주를 축하합니다. 올 여름에 갈 계획이라 산행기를 곰곰히 읽어 보았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읽어 내려가는 동안 다소 눈이 피곤함을 느끼면서 이왕이면 간격을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참고가 많이 될듯 합니다. 늘 즐산과 안산하세요. 내가 갈땐 파리가 없어야 할텐데...
▣ 운해 - 대원사 계곡으로 이어진 지루한 종주 성공을 축하 드립니다. 지리산님의 말씀대로 문장간 단을 두었으면 합니다.줄산 하세요.
▣ 정식 - 글을 쓰실때 3-4줄 쓰고 한줄 띄우고 그런식으로 쓰세요. 답답하고 갑갑합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 잘읽었습니다.그런데 마라톤입니까?08:43분천왕봉출발-쓰레봉을 09:15분에 통과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