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철원 고대산을 군제대후 처음 가게 된 것은 우리 가족이 한창 경기도 산을 뒤지면서 다닐 때---
1994년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전방부대의 민통선 통제를 해제하는 바람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산과 강과 바다가 열린 후에 가능했으니까---
소위 38선 이북에 위치한 여러개 의 산을 입산하는 영광(?)을 안은
것이고, 호기심이 발동해서 더 자주, 더 멀리 쳐들어간 것같다.


경기도,강원도 전방에 있는 내가 답사한 산을 적어본다.
감악산을 비롯해서 종현산, 관음산, 사향산,명성산,지장봉, 금학산, 종자산, 금주산,복주산, 복계산, 상해봉, 광덕산,박달봉, 각흘산, 사명산,용화산, 화악산, 촛대봉,석룡산,신로봉,국망봉, 백운산, 가리산,명지산, 수덕산,북배산,가덕산,계관산 등이다.

그 중에 하나가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에 걸친 고대봉이다. 지금은 고대산으로 불리지만, 예전에는 봉우리이지 산이 아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판이 서 있는 경원선 철도 종단점이 바로 고대산의 등산로인 신탄리 초입에 서 있다.
남북통일의 염원이 담긴 역사의 현장이 이 곳이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제3땅굴과 통일전망대,북한 노동당사 자리, 도피안사가 나온다.

나는 20대 초반에 군생활을 철원 와수리, 동송, 다목리, 명월리,사창리,화천에서 했다.
그 때는 진짜 호랑이가 출몰할지도 모른다는 최전방 부대에서 무시무시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무서운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밤마다 초병을 데리고 벙커에 들어가 날밤을 새는 수색중대에 배치되어, 나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장교생활을 해야만 햇던 기억이 난다.

밤마다 넘어오는 간첩과 특공대요원과 싸우는 전장터--- 매일 사상자가 나서 비상이 걸리는--- 험악한 상황이 계속되곤 했었다.

요즘 실미도란 이름으로 영화화되어 알려진 사실이지만, 나는 북파공작원을 북으로 안내하는 소임을 맡아, 철조망을 통과한지 몇시간 안되어 북방한계선에서 퍽---퍽' 땅---따---딱 하는 소리가 들리면 아--또 한명이 갔구나!하고 가슴을 쓸어안고 한없는 슬픔에 잠기곤 했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동족을 죽여야만 사는가??? 원망도 하고, 분노까지도 일었던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나는 군대 3년을 그런 산골,오지에서 살다보니 수염이 덥수룩한 산적같은 몰골이 되었다.
진짜 사나이' 군대노래를 불러가며, 초병들의 점호를 취하며, 하늘에 걸린 구름을 보며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생명의 소중함을 생전 처음 느껴본 군대 생활이 왜 그리도 고달픈지 서럽고 슬픔과 눈물이 앞서 우리의 선조와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었다.(그 때 전방에서 쓴 일기장이 상세히 말해주지만,)

6.25 한국전쟁의 참상을 직접 눈으로 보며 후퇴와 전진을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이제는 한낮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한 종이 위에 쓴 옛날이야기로 사라지고 있다.


고대산은 그 때, 그 시절 나의 추억이 담긴 전방산이다. 매일 훈련으로 이 산 저 산을 행군으로 넘고 넘어 실전과 똑같은 지옥훈련을 한 곳중의 하나다. 그래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산이고 계곡이고,풀이고,나무가 아닌가!!! 철의 삼각지대는 6.25 당시 38선을 긋기전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가장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곳이다. 피어린 산하---가 바로 이곳이다.

이제 산천은 의구한데, 반길 이(동무, 친구,전우)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는 시조가 절로 생각난다. 내일 다시 그산을 오른다. 지금은 들어가지 못하는 대성산 OP, 적근산OP, 백암산 OP,녹슬은 철조망과 DMZ, GP,GOP가 바로 그 앞에 펼쳐진다.

지금도 해마다 고대산 근처에서 산나물을 캐다가 지뢰가 폭발하여 사고가 나는 곳이니 정해진 길을 잃지말고 등산로로만 다닐 것을 당부하며... 그 때 설치한 대인지뢰와 대물지뢰,대전차지뢰가 어디에 박혀 있는지 알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7/11 장맛비에 주눅든 겁쟁이 일죽산사람


▣ 진백골 - 백골부대에서도 근무를 했어나 보군요..그렇게 힘들어 했는데 무척이나 그립네요 그 시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