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가 가득한 어둑한 산길에서 불쑥 나타난 삿갓재 대피소 마당입구의 은은한 보름달 같은 가로등은 도시 근교 잘 가꾸어진 고깃집 가든같은 정취가 풍긴다. 7시지만 흐린날씨에 운무가 가득해 어둑 어둑하다.

조용하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개두마리가 배가 고픈지 연신 낑낑거리며 보채고 있다. 조립식 화장실의 송풍기가 나란히 팔랑개비를 열심히 돌리고 있다.

우선 오른쪽 나무계단길을 따라 내려선다 샘터로 가는길이다. 계단을 내려 가는데 젊은 친구 하나가 물을 담아 올라선다. 샘터에서 세수를 한다. 시원하다. 큰통 작은통 물을 받아 산장 뒤쪽 취사장에서 저녁을 해먹고...

9시 40분 서울 남부 터미날을 떠난 버스는 12시 50분 안의 터미날에 도착했다. 1시30분 영각사행 버스표를 끊고 슈퍼에 들러 방울 토마토를 사는데 주인 식구들이 너무나 맛있게 보이는 물국수를 먹고 있다.

다리건너 실내 포장마차에서 판단다. 가격도 2000원이고 국수라면 사족을 못쓰는지라 시식을 안하고 갈수야 없지.... 맛이 기가 막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고...

다 떨어진 도시형 시내버스에 올랐다. 아마 도시에서 실컷 써먹다 시골 구석으로 밀려난것 같다. 마을 노인들이 올라 타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순박하고 정겨워 보인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수 없는 풍경이다.

아무것도 없는 산골짜기 산길가에 덜렁 내렸다.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소강 상태이던 장마가 오늘부터 활성화되어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가 올 기미는 안보인다. 오히려 잔뜩 찌푸린 하늘은 어느덧 맑게 개여있다.

매표소(2:30)에 샘이 하나 있어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운다. 7월의 첫날 조용하고 호젓한 산길에서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고 계곡길을 따라 꾸역 꾸역 오른다. 물소리 새소리 숲사이로 파고드는 햇빛이 청량하다. 기온도 높고 숲길에 습도가 높아 매우 덥다. 육수 엄청 흐른다.

조용함이 좋다. 고요함이 좋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올라온 계곡쪽은 맑아 올라온 산자락이 발아래 먼발치로 뻗어 있는데 산등성이 반대쪽은 구름과 운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반쪽은 맑고 다른 반쪽은 구름이 자욱하다. 계곡을 따라 올라온 잿빛 운무는 햇빛에 반사되어 새하얀 빛을 띠며 산등성이 위로 피어 오르다 사라진다.

점차 산등성이 반대편에서 몰려 오는 구름이 능선을 넘어 반대편까지 타고 넘는다. 운무가 피어오르는 남덕유 정상에서 김밥을 먹는다. 어느덧 구름은 사방으로 깔리고 음산한 바람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담요를 한장 받아들고 숙소방으로 들어가니 아까 샘터에서 마주친 젊은 친구 한사람 뿐이다. 구천동 쪽에서 오는길이란다. 저친구만 없으면 오늘 대피소 5000원에 전세 내는건데..어쨌던 기분이 좋다. 넓은방에서 전방낙법 후방낙법 좌로굴러 우로굴러 내세상이다.

감미로운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마당 밴치에서 곡차를 마신다. 오늘 이밤 남도의 산등성이에서 즐기는 곡차맛이 유별나다. 커다란 두꺼비 한마리가 자기 몸을 주체 못하고 힘들게 한걸음 내딛는다. 간간이 빗방울이 하나 둘 느껴진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적막한 산장에서 외롭다.

새벽3시 후둑 후둑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을깬다. 잠이 오질 않는다 현관앞에 나가 어둠속에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마지막 남은 담배를 피워문다. 주체할수 없는 마음 뭔가를 느끼고 싶은데 다시 잠을 청하나 쉽게 잠들지 못하고...

먼동이 트고 비는 속절없이 주룩주룩 내리고 나한테 딱 들어 맞는 백만불짜리 분위기다. 비는 어차피 즐기러 온것이고 대피소 소장님(?) 뭐 민들렌지 채송환지 태풍이 올라 온다나 일단 아침을 해먹고....

어제 출발때 까지도 태풍에 태자도 들어 보질 못했는데 태풍이라면 좀 곤란한건 아닌지 황점으로 탈출할까 망설였으나 밤사이 발생한 태풍이라면 아직 도착 할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가야지 못 먹어도 고~~~~~

9시반 빗줄기가 잦아들어 출발 했다. 향적봉까지 5시간 잡더라도 더운 여름날 5시간 정도야 샤워하는셈 치자 출발하자 말자 잦아진 빗줄기는 다시 요란스러워졌다. 웃통을 벗고 런닝 샤츠위에다 1회용 비옷을 걸쳤다.

비바람은 두두둑 두두둑 비옷을 내려치고 좁은길은 숲이 무성해 밑바닥 길은 빤한데 가슴 앞부분은꽉 막혀있다. 나뭇가지들을 밀치며 나아간다. 나뭇가지에 머금은 빗물들이 바지를 타고 등산화 속으로 스며든다. 발걸음을 옮길때 마다 등산화에서 찍찍 김빠지는 소리가 난다.

길 곳곳에 물웅덩이 이왕 버린몸 이제 피할 이유도 없다. 오름길에서는 길따라 타고 내리는 물줄기...

지리산에서 줏은 박달나무 자연산스틱을 가져오길 잘했다. 요긴하게 쓰인다. 버스를 탈때나 시내길을 갈땐 이 자연산 스틱이 쪽 팔리고 창피하기도 했는데 내생각과는 달리 쳐다 보는 사람도 없었다. 스틱으로 가로막힌 나뭇가지들을 내리치며 가는게 무척 재미있다. 뱀에 대한 방어용 무기도 되면서....

비바람이 시원하다. 하얀 운무가 내앞에서 덩실 덩실 춤의 향연을 벌리고 이제 앞뒤 사방 4,50미터 밖에 시계가 없다. 온통 구름안개에 덮혀 덕유의 잘빠진 몸매는 그 살을 볼수가 없다. 그냥 길따라 나아갈뿐이다.

아주 조그만 귀여운 살모사 새끼가 길가운데서 비켜 주질 않는다. 비가와서 길을 잃었나? 스틱으로 땅을 쳐도 비켜 주질 않는다. 살짝 찔러 보니 꿈틀하면서 예의 공격 자세를 취한다. 햐 그래도 독사라고 날렵하게 머리를 내밀었다 뒤로 빼면서 경계를 한다. 이럴때가 아니다 비도오고 갈길도 먼데 독사새끼랑 장난이나 치고 있을때인가 이러다 저친구 어미라도 오면??? 어미는 자신 없어~ 바짝 쫄아서 얼른 크게 뛰어 넘었다.

동엽령이다. 빗방울은 잦아들었다. 구름도 조금 걷히고 멀리 시야가 보이는 곳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검은콩을 넣어 만든 찹쌀떡 꿀맛이다.

덕유평전 또다시 운무가 몰려들고 진눈깨비도 아니고 빗방울이 갯수는 적은데 단단한고 야무지다. 바람은 뽀얀 입김을 내뿜으며 매섭게 내려친다. 운무는 강한 바람에 미친듯이 머리를 풀고 사방으로 널뛰고 노출된 곳이라 바람을 피할 방법이 없다.

바람은 나를 쓰러 뜨릴려고 안간힘을 쓰고 평원의 잡풀들 틈에 간간히 피어있는 오렌지색 원추리꽃이 강한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한다. 나는 신선이 되어 한발작 한발작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오른다.

비옷은 겨드랑이가 양쪽 다 찢어지고 옷자락은 바람에 질려 오두방정을 떨며 아우성이다. 옆으로 걸었다. 바람을 등으로 맞을려고.... 비는 좋은데 바람은 영 체질에 안맞다. 중봉까지 바람은 나와 원추리꽃과의 데이트를 시기하며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운무는 더욱 자욱하고 난 신선이되어 중봉에 섰다.

중봉부터는 산허리를 뒤로 돌아 숲도 있고 바람을 막아 주었다. 향적봉 대피소 2시 비는멎고 운무만 자욱하다. 아무도 없다. 취사장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데 산장지기가 언제 왔느냐고 인사를 한다. 혼자 심심했나보다.

발을 씻고 등산화를 씻고 양말도 빨고 젖은채로 신었다. 운무 자욱한 향적봉 정상에 섰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덕유 주능선 오늘 난 전세를 내었다. 덕유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비바람속의 덕유 깊은 추억이 될것이다.

비도 멎고 백련사서 부터 사람들이 보인다. 구천동 골짜기가 지루하다. 아스팔트길 발바닥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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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1600원
삿갓재 대피소 취사장에 물나옴 때묻고 떨어진 슬리퍼 많음 화징실 청결 곡차 팔지않음(중요) 여관비 5000원 깨끗한 담요 천원 샘터는 황점쪽 60미터 아래 계단

서울남부터미날(9:40)에서 안의 우등고속 15400원 안의(1:30)에서 영각사 2400원(약 40분?)

구천동서 대전 6천 얼마(기억 잘안남) 대전서 강남고속터미날 우등 11200원

우중 배낭꾸릴시 여벌의 옷은 꼭 비닐 봉지에 싸서 그리고 다른 물품도 소단위로 비닐봉지에...


▣ 두타행 - 여유로운 덕유주릉 종주를 하셨군요. 혼자의 호젓한 길 참으로 좋지요. 백련사에서 삼공매표소 길이 좀 지루합니다. 항산 안산하시고 즐산하세요
▣ 정상 - 노래처럼 물같이 바람같이 즐기시다 오셨겠군요 부럽습니다 . 매일 매일 생활전선 신경안쓰고 산만 다닐수만 있다면...
▣ 오재신 - 홀로... 훨훨 털고 산으로, 훨훨 털고 집으로. 참으로 부럽습니다.
▣ 하얀능선 - 신선이 되어 한발작한발작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오른다. 너무 멋집니다.
▣ 권경선 - 덕유산을 통째로 전세를 내시고... 통크시고 여유로운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안산, 즐산하시길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