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알프스 종주)

 

구    간  :  제 1구간 (구병산-신선대-형제봉-피앗재)

도상거리  :  23.6km

일    자  :  2004년 9월 26일(일) 추석전전일

참여인원  :  혼자

소요시간  :  10시간 30분

 

 

 

04:20  대전 출발

05:50  서원리

06:00  산행 시작  

07:42  서원리 4.5km   구병산 4km

08:12  삼가저수지 3km 구병산 2.6km  서원리 5.9km

09:18  구병산

09:46  무명봉

10:23  구병산 1.5km  형제봉11.7km  절터 1.3km

10:33  신선대

11:24  헬기장

11:46 ~12:10  식사

12:15  장고개

12:32  헬기장

13:13  비포장도로

14:15  백두대간 능선

15:15  형제봉

16:00  피앗재

16:30  만수리

 

                   

                                                                       (선계입문)

 

난 이틀동안 속세를 떠날 예정이오

청솔과 바위 그리고 구름과 바람이 흐르는 곳에서 세상 일을 모두 잊을 작정이오.

난 이속의 무릉으로 가오

 

 

이틀 간의 절대적 자유가 보장되는 추석연휴.

난 4남 2녀의 차남이다

형님을 제외한 동생들은 트렁크에 바리바리 추석선물을 싣고 고향으로 오는 길에다 꽃 비처럼 시간과 돈을 뿌리며 금의환향할 것이다.(허기사 올해는 지난 해 보다 조금 낫긴 하겠다)

다 저 먹을 밥그릇은 차고 나온다는 낙천적인  어머님의 사고방식 덕분에 명절이면 우리집은 풍부한 노동력으로 넘쳐 난다.

괜히 쓸데 없이 복잡한 집 안팎을 어슬렁거리다 간 눈총 먹기 딱 알맞다.

추석전날 까지 동생 3명과 며느리들 4명 그리고 떼까치 같은 조카들로 어머님 댁은 난전을 방불케 할 것이다.

추석날 저녁이면 여동생들 가족 까지 합류하면 불국의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린다.

태생적으로 귀성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인생이라 명절 연휴면 으레껏 귀성인파를 피해 명절의 추억 만들기에 골몰하느라 나 역시 한가할 틈이 없다.

 

작년에는 백두대간 결행구간 이었던 신의터재-개터재 구간을 땜통 했고 올해는 추석 전 연휴가 2일이라 이미 오래 전에 추석 여행 길로 충북알프스를 낙점했다.

대략적인 산행 루트와 개요는 이미 정리되었고 썩어도준치 강산애 최선생님 산행기는 완전히 독파되고 분석되어 가보지 않은 여행 길의  개념도는 내 머리 속에 훤히 그려졌다.

 

2일간 움직일 식량이라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신선의 나라에 입국하는 예의로 취사도구는 빼버린 게 이모양이다 

 

속세를 떠나는 차는 대전 발 04시

백두대간이 겹치는 속리산 권을 제외하고 처음 내 발자국을 남길 충북알프스의 기대를 싣고

애마는 어둠 속으로 떠난다.

 

 

선계입문의 이정표는 마을 앞 다리를 건너 시멘트를 포장한 논둑 길에 서 있다.

밝아오는 날은 약간 흐린 듯 조용히 가라 앉아 있고 가을은 시원한 바람을 타고 온다.

 

무릉입적이 어디 쉬우랴

예비동작 없이 가파르게 일어나 앉아 있는 등산로가  잠이 덜 깨서 내린 버스에서 차고 오르던 백두대간 오름 길을 닮았다

 

구병산 7.1km 표석이 선 봉우리에 올랐다.

앞에는 평화로운 마을 풍경과 결실의 색깔로 물들어 가는 가을 들판

홀로 인 산정에 쏴아아 불어가는 시원한 바람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세속에서 떨어진 먼 곳 이란 지명처럼 속리권은 일반 사람들이 인식하는 법주사와 문장대 인상만으로는  그 심대하고 당당한 기맥의 진수를 파악할 수 없다.

그 내밀한 세계는 심원하고 너무도 예술적이어서 오랜 옛날 신선들이 살았음에 틀림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이름도 속리 아닌가?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 구병산을 거쳐 신선대로 이어지는 길은 거친 능선이 긴 해도

호젓한 가을의 상념이 살아 있는 길이다.

신선의 땅에 부는 바람과 산길에 뒹구는 낙엽 그리고 푸른 청솔 틈에서도 성급하게 물드는 나뭇잎들이  해발이 낮은 이곳에서도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인적은 없고 너무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결이라  긴 팔 상의를 벗어 버리고 맨몸으로 바람을 받았다.

웃통을 벗고 배낭을 맨 꼴이라니..

명절에 기댄 새벽산행 덕분에 누리는 호사(?)가 아닌가?

조금을 더 가다가 구병산이 가까워 지면서 아얘 반바지로 갈아 입고 반팔 상의를 걸쳤다.

반나체로 산행하다가 구병산 근처에서 혹시 사람들이라도 만나면 내 몰골이 너무 남사시러울 것 같아.

 

길 섶에는 이름 모를 들꽃 들이 피어 있고

가지를 드리운 청 솔은 벼랑 끝에서 아직 푸르른데

능선의 나무는 가을 빛 조락의 잎새를 걸고

바람은 성급하게 가을을 날리고 있다

계절을 잃어버린 매미는 어느 산모퉁이에서 힘 없이 울고

아름들이 미인송 자태에 한숨이 절로 난다

 

 

 

                                                                        (신선의 땅)

 

갈 길은 멀어도 발길은 가볍다.

첩첩의  산주름과 그리고 내려다 보는 정겨운 들판이 호젓한 가을 날의 산책을  여유롭고 푸근하게 만든다.

시간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어도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가장 효율적으로 최적화 되어 있다.

일반적인 등산로는 약간 빠른 걸음으로 스쳐지나 지만  경관이 빼어난 곳에서는 한 없는 게으름을 피우며  청솔 가지 끝에 머무는 바람을 즐기고 때론 쉽게 사라져 갈 기억의 실마리를 위해 카메라의 눈으로 그 아름다움을 표구한다.

 

바람부는 절벽 계절에 초연한 푸른 소나무 아래 앉아

가을이 내려가는 계곡을 굽어 보고 지나온 봉우리를 바라 본다.

그저 바람 따라 무심으로 흐르다 보니 이만큼 왔고

능선이 휘돌아 이어지는 형제봉은 아직 아득하다.

목적지가 있어도 딱히 그곳으로 가야 할 이유란 없는데 

가자고 보채는 길동무 마저 없으니

세월아 네월아

말 없는 청산인데 쉬어간들 또 어떠랴?

 

구병산 등산로에서는 우회하지 말아야 한다.

신선봉 가는 길의 위험한 등산로 표지판은 관람불가 영화처럼 훨씬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풍광을 유보하고 있을 뿐이다.

그 표지판은 나그네의 호기심과 기대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광고 문안이다.

 

 

                                                                        (신선골 가을)

신선이 노닐던 곳인가?

신선대의 풍광은 예사스럽지가 않다.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의 가을 색감이 수채화처럼 은은하고 여전히 우수에 찬 하늘은 묽은 회색 빛으로 가라 앉아 있다.

버섯 캐는 아줌마 둘 아저씨 하나

싸리버섯 , 능이버섯 , 바구니가 철철 넘친다.

등산로가 아닌 곳을 헤집고 다니느라 피곤 하겠지만 신선의 땅에서 누리는 수확의 기쁨이 남다르지 않을까?

왜 내 눈엔 아무것도 뵈질 않는 겨?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큰 흐름을 따라 가면 놓칠 수 없는 길이고

산의 마음이 되어 걷다 보면 산릉이 흐르는 길로 자연스레 발길이 따라 간다.

하지만 길은 잃어도 좋다.

신선의 땅에 길을 잃고 방황하다 보면  전설의 무릉원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지 혹시 아나?

설령 무릉원을 찾았다 손 치더라도 그곳에서 하룻밤을 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루 밤 자고 내려 가서 노파로 변한 마누라를 만나면 낭패 아닌가?

 

이정표가 잘 정리되어 있고 많은 선답자들이 독도 주의 구간으로 강조하던 헬기장 이후의 묘터 갈림 길엔 선명한 충북알프스 표지판이 걸려 있다.

여기서부터 충북알프스는  왼쪽 능선으로 완전하게 방향을 틀어 거침 없이 장고개로 내리 꽂는다.

분명 확실한 길인데도 하도 가파르게 하강하는 터에 알바의 추억이 언뜻 언뜻  되살아 나지만 미심쩍은 길목에는 여지 없이 대충산사 청록님의 반가운 노란 표지기가 바람결에 나부 끼고 있다.

번거로움을 마다 않고 많은 사람의 길잡이를 자처하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니 고마운 분이다.

게다가 감초처럼 가끔 끼어 있는 강산애 님의 리본에는 핸드폰 번호까지 써 있으니

유사시엔 핸드폰 때리면 되지 ..

(근데 귀연팀은 여기 댕겨 온 걸루 알고 있는데 리본은 죄다 어디간겨?)

하염없이 내려오는 길에 허기가 져서 고개가 얼마 남지 않는 숲 길에서 혼자만의 식단을 차렸다.

 

가을 산책은 거기 까지 였다.

이후 비포장 도로 까지 내려 섰다가 형제봉 가는 길목의 망바위에 오를 때 까지는 가을산책과 무관한 체력단련 코스였다.

그 길의 가을은 속살이 훤히 내비치는 11월 중순이나 되어야  느껴볼 수 있겠다.

급속히 고도를 낮춘 충북알프스는 장고개에서 휴식하고 다시 가파른 길을 올라 헬기장  하나를 더 지나고 산신각을 지나 다시 비포장 도로로 내려 선다.

비포장 도로를 만나기 까지 바람 길은 막히고 무성한 잎새들이 시야를 가려 버린다.

낙차가 큰 오름과 내림이 반복되는 단조롭고 변화 없는 숲길이 계속되고 거친 호흡과  장단지에 실리는 뻐근한 무게가 백두대간의 추억을 일깨운다.

 

비포장도로에 내려서서 건너편 등산로 입구 무덤가에서 휴식한다.

깎을 풀이 없는 무덤이라 자식들이 돌보지 않았는지 힘겨운 세월의 무게가 부모를 찾아 볼 여유를 거둬 갔는지 바람 길에 쓸쓸히 앉아 있는 무덤 위에는 잔디는 간데 없고 잔돌만 소복하다.

망자의 한처럼 서글픈 소리를 내며 바람은 청솔가지를 털어 댄다.

굴참나무와 소나무에 걸리는 바람결이 드세지며  흐린 날씨가 더 스산해진다.

비가 오려나 ?

 

가파른 산 길은 오르는 중에 가는 비가 뿌린다.

가을비 까지?

가을은 멀리 까지 마중 나온 셈이다.

 

형제봉 가는 길 바위지대에서 비로소 갑갑했던 조망이 터진다.

오르막이 계속되어도  풍광이 살아야  가을산행의 멋이 산다

빗 줄기가 제법 많아 지고 가파른 등산로가 힘겨운 차에  망바위에 올라  잔뜩 찌푸린 하늘아래 사계를 조망하다 반석 위에서 대자로 누웠다.

이 편한 세상

후드득 거리는 빗소리 말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의 발자취는 어디에도 없고 차가운 빗방울만 내 얼굴을 적신다.

배낭엔 방수포를 씌웠으니 문제될게 없고 몸을 적시는 비는 상관 없는데 달아오른 열기를 시원하게 날려주던 그 시원한 바람결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변하여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정지된 보온을 공략하니 망바위에서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이젠 가을비와 가을바람이 발길을 재촉한다.

 

능선에 올라서서 조금을 가자니 반가운 백두대간 리본이 펄럭인다.

여긴 내 발자욱이 남아 있는 길이구나 !

나부 끼는 무수한 백두대간 리본들

그 수많은 사람들의 땀의 의미를 알고 있을 표지기가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갈령 삼거리

천황봉에서 솟구친 백두대간이 형제봉에서 다시 힘 한 번 쓰고는 건너편 대궐터산의 위세에 눌려 가파르게 고도를 낮추어 봉황산을 거처 화령재로 내려서는 곳.

그 옛날 마지막 휴식의 여운이 아직 이정표에 걸려 있다.

그 전에 앉았던 그 자리에서 휴식하고 원기를 보충한다.

나는 백두대간과 충북알프스의 중복구간을 리바이벌하고 있다.

 

작년 6월 하늘의 무더위가 숨을 막히게 하던 형제봉은 비 멎은 흐린 하늘 위로 세찬 바람이 불어 간다.

거침 없이 조망은 터지는데 핸드폰은 터지지 않아 여기서도 흐린 하늘에게 가을편지를 쓸 수가 없다

 

 

 

                                                                      (형제봉 조망)

 

피앗재 까지의 능선 길은 황갈색의 가을이 더 가까이 있었고

그렇게 가을이 날리는 능선 길을 천천히 걸어 피앗재로 내려섰다.

날씨는 흐려도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는 오후 4시 만수동으로 난 계곡길을 따라 첫날의 가을산책은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10시간 30분 만이다.

오후 4시 30분 이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가벼운 산책 길로 보기에는 다소 체력의 소모가 있긴 하지만 추억의 한 페이지에 접어 둘만한  인상적인 가을 여행 길 이었다

신선대  까지에서 버섯 캐는 5명쯤 만나고

장고개에서 부터 피앗재 까지는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으니 조용한 사색에 방해 받고 싶지 않을 때 찾으면 좋을 산행길이다

 

 

계곡의 물길을 따라 천천히 흘러 내리다 민박 집에 들러  식사와 방을 묻는다.

식사가 되는 곳이 없다.

취사도구를 챙겨오지 않아 어디에서 식사를 하고 오는 수 밖에……

지나는 차를 무조건 세우고 내 차가 서 있는 서원리 까지 태워 달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차는 속리산 쪽으로 가는 길이라 갈림길 근처에서 내려야 했다.

마을 슈퍼마켓에서 맥주한잔을 마시며 할머니에게 이것 저것 물어 보니 이 근처에도 식사할 마땅한 곳이 없다 .

마침 시내버스가 올 시간이라고 해서 4살 짜리 할머니 손녀와 장난치다 버스를 타고 서원리 입구까지 왔다.

지도상으로 보아 만수리와 서원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걸어서는 두 시간 이상 소요될 상당한 거리였다.

피앗재의 작은 물길로 이루어진 만수동 계곡은 내려갈수록 수량이 풍부하고 삼가저수지를 지나 서원리 쪽에서는 상당히 넓은 계곡의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청정의 물길과 심원의 계곡의 울창한 수림은 내륙 깊숙한 곳을 관통하며 우리 국토에 깨끗한 물과 신선한 공기를 충분히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국토의 허리는 튼튼하다. 

우리 국토의 등뼈에 해당하는 백두대간  중에서도 요추 부분인 속리산권은 강건하고 힘있는 암릉의 기골이 장대하고 바위에 기댄  청솔이 조화로운 풍광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백두대간과 충북 알프스의 중복 구간의 수려한 풍광이야 이미 알고 있는 터라 문장대에서 관음봉을 거쳐 활목고개로 떨어지는 바위 능선 길에서 마주칠 감동의 기대가 자못 크다.

 

둑길엔 애마 혼자 쓸쓸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보은에서 식사하고 여관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려 했으나 창 위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여행 길을 쓸쓸하게 한다.

흥청거리는 명절 전야에 가장 없는 밤을 보낼 마누라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구..

합리화의 명분은 또 있다.

이틀 연달아 10시간 이상의 산행을 편성한 무리한 일정 수립이 가을 여행의 낭만을 반감 시킬 지 오른다.

다음주 공룡의 가을도 만나야 하는데..

서원리 입구를 빠져나가 나는 보은 반대편  관기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11월쯤 다시 충북알프스를 연결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면서 아쉽지만 중추절 기념 가을 여행을 접기로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

여행 길의 피곤함으로 충분히 늦잠의 휴식을 취하고 나서 충북알프스 대신 한 권의 책과  일년에 단 한번 뿐인 추석의 자유를 속절 없이 바꾸어 버렸다.

그날 밤 무료한 채널 돌리기 끝에 아무 생각 없이 고정한 한 편의 영화가 내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그 우스꽝스러운 귀도라는 유태인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였고 마치 전염병처럼 행복을 주위에 뿌리고 다닌다.

나는 호시탐탐 다른 채널의 유혹을 염탐하다가 그 귀도라는 친구에게 홀딱 빠져 버렸다.

그에게 있어서 행복은 살아 있는 사람의 당연한 권리이고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가장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신과 인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지켜 가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요즘의 수 많은 책들이 내게 주지 못했던 감동을 읽었고 나는 또 한 명의 스승을 찾았다.

낭만과 순수가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가슴으로 일깨워주는 감동의 여운과 오랜만에 만난 좋은 영화의 뿌듯함이 오래 따라 다녔다.

 

 

                                                                        (귀도family)

 

인생은 가벼운 수필과도 같다.

그가 보여 주는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처럼 즐겁고 경쾌하고 날렵하다.

그의 인생이 홀로코스트라는 극단의 상황과 맞닿아 있을 때 조차 그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로 그 대학살의 현장에서 자신의 아들을 지켜 냈다.

마지막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가 보여준 마지막 윙크와 여전히 게임을 가장하는 우스꽝스러운 행진의 모습이 역설적인 비감으로 코 끝을 찡하게 한다.

 

사랑과 자연처럼

한편의 좋은 영화가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이미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요즘의 영화에서 감동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세상이 변하고 내가 변해가고 있으니..

자칭 영화 애호가가 오래 된 이 영화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이태리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리우는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과 주연의 통반장을 모두 다한 영화이며  아카데미 영화제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아카데미 외국인 영화상과 남우 주연상을 받고 칸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영화가 보고 나서야  알았다.

누가 만든 작품이건 무슨 상을 받았건 그 사실이 무얼 그리 중요할까?

홀로코스트를 농담거리로 만들었다고 혹평한 좌파 비평가들의 독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 영화 한편을 통해 이 무거운 세상을 대하는 삶의 지혜를 얻었는데.

진정한 용기와 그 따뜻한 사랑에 콧날이 시큰했는데.

그 한편의 영화가 보여 주는 인생은 즐겁고 아름답고 그리고 그렇게 장엄한데..

 

그 영화 속의 주인공이 간직한 아름다운 인생의 비밀과  가슴 시린 사랑을 만날 수 있어서 추석 이브가 행복 했다.

가족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이야기 했더니 딸은 이미 보았단다.(오잉?)

 

 

(달구경)

저녁을 느지감치 먹고 하늘을 올려다 보니 웬 달빛이 저리 좋은겨?

즉흥적으로 랜턴을 챙겨 마누라와 막내를 데리고 뒷동산으로 달구경 가다.

(우리 딸은 시험 공부한다고 해서 열외)

달 빛에 길이 훤하다.

백두대간을 휘영청 밝히던 달 빛과 쏟아질 것 같은 강원산간의 별 빛만 못하지만 그래도

뒷동산 숲길에서 바라보는 보름달도 낭만적이다.

어둠의 베일 위에 창백하게 앉아 있는 달 빛이 교교하다.

 

 

                                                                        (동네 보름달)

 

어스름 달 빛 아래 여기저기 묘지의 실루엣에 바람 까지 스산한데

인적이 없는 산길로 자꾸 들어가니 마누라가 무서운 모양이다.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은 어슴프레함이 가져오는 두려운 상상력과 그 모호한 공포에 자극되어 오감이 민감해진 마누라는 내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괜히 따라 왔다고 후회가 막심하다.

막내는 색다른 산행이 좋아서 후랫쉬 불 하나를 켜고 내 앞에서 잘도 간다.

월평공원 쪽에는 산 위에도 일정한 간격으로 태양열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어 보름달 아래 불 빛의 은은한 분위기도 좋다.

내년에는 계룡산으로 가자고 했더니 마누라는 다시는 안 따라 온단다.

우리 달구경은  뒷산을 올라 월평공원 등산로와 도솔산을 거쳐 내원사 길 하산으로 마무리 했다.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 온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  가족 야간 산행이었고 명절 연휴의 마무리 의식이었다.

내려와서 생각해보니 아무도 달에게 소원을 빌지 않았다.

(난 별로 소원이 없지만 마누라는 남편의 역마살 좀 재워달라고 달님에게 빌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