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지리종주에 서방눔은 쌍코피(성삼제 -백무동)


긍께 지리종주다 뭐다혀서 일찌거니 때이른 저녁을 들고는 북통같은 배를 부여안고 방바닥을
쓸고 있으려니 곁은 천덕꾸러기 두예삐를  아빠가 쉬어야 한다는 핑계로 지들방에 몰아 넣고는
금족령을 발동한다.
잠을 청했으나 초저녁 석식이 자위도 돌지 않은 터에 무슨 숫잠이래도 들까 ..
오지도 않은 잠을 청하느라 연신 선하품을 넙죽거리며 일력을 닦아 공을 들이나 제출몰로 잠이
들기에는 애당초 틀린 일이였다.


넌짓 주방을 기웃거리니 피둥거리는 무거운 엉덩이를 두르며 설것이가 한창인 곁이 제법 화사해보여
슬몃 곁을 부른다.
"부인, 이리 좀 오시오 "
"왜요...?"
"오라면 좀 오시오."
물묻은 손을 잡아끌어 옆에  앉히니 궁금함을 주체 못하는 두눈은 천렵 삼태기에 쫒기는 피래미 같이
이리저리 설레발을 친다.


"그 이불좀 펴시오."
"아니 금방 있다 나가실 양반이 눈을 좀 붙이지 않고.."
앙탈이 드센체하나 그러기나 말기나 이불 널찍이 깔아놓고 자리를 잡는다.
지들방에 갇힌 두예삐인들 초저녁에 무슨 잠이 있을까? 
깔깔, 키득거리는 소리가 문 밖으로 스멀스멀 새어나온다.


11시가 넘어 드디어 어부인 모시고 지리산 종주길을 나선다.
낼모래가 추석인지라 밝은 달빛은 봉평 메밀밭이 아니래도 흐뭇이 부드럽고 잔잔히 깔린 구름은 드넓은
하늘 가마솥에 수제비를 뜨놓은듯 용용하다.
인월에 들어서 뭐든 요기라도 할 요량으로 몇칸 되지도 않은 시내를 기웃거리니 마침 치킨집에 야식
이라는 글귀가 뵈고 왁자한 손님의 술푼세가 밖에까지 낭자하다.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의 육두문자로 이어지는 고해성사를 찬으로 라면 한그릇을 들고  나온다.


예약한 택시로 성삼제를 오르니 작년  지리종주때 벽소령에서 실패를 보고 하산한 경험이 있는 곁인지라
얼굴에 비장감마저 어린다.
동안 지리종주를 위해 필승 지리종주란 머리띠를 메고 팔공종주와 가지종주,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하느라
했건만 긴장감은 어쩌지 못하나 보다.
곁의 애타는 속과는 달리 너덜너덜한 서방은 부스스한 상판이 천상 썩은 무우청같이 시퍼래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무도 없는 성삼제엔 공허한 바람만이 차갑고 노고단 산장으로 오르는길엔 구름낀 달빛이 휘부옇게 깔렸다.
신통찮은 보따리 매듭에서 딸랑거리는 워낭은 허청거리는 주인의 걸음새에 따라 포병객의 해소기침처럼
한꺼번에 자지러졌다  멈추고 또자지러져,자발없는 쥔장의 구색을 맞추노라 이마빡이 깨어질 지경이였다.
크게 한구비를 감돈길은 노고단 산장으로 턱살을 치켜 올린다.
산장엔   나라를 근심하는 맘으로 여태 잠못 이룬 선객 두엇이 꼴같잖은 벙거지에 필경은 올라오다 줒었을
법한 나무 지팡이를 든 촌티가 물씬거리는 객부부의 꼬락서니를 구경 됨직하게 쳐다보더니 가래침을
걸게 뱉으며 화장실로 사라진다.


노고단 능선 분기점 돌계단을 타박타박 오르니 종주꾼으로 보이는 산객 너댓명이 라면을 끓여 새벽동자가
걸판지고 저아래 불빛 두어점이 흔들거리는 걸로 봐 벌써 70리 지리길을 떠난 부지런한 축도 있나 보더라.
곁에게 호환 당하지 않을려면 서방 꽁무뉘에 엿을 붙여 따라오라 농으로 이르고는 한발을 먼저 내딛는다.
시간은 벌써 축시말이(2시30분) 이 좋이 되었더라.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내닫는 길은 거대한 범의 등짝 같은 편평한 돼지평전을지나 물맛이 가장 좋다는
임걸령을 낳고는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불쑥 일으켜 놓는다.
전남,북,경남의 삼도를 어루만지는 삼도봉은 그 중중한 위세를 불무장등에 실어 섬진강까지 이르게 하고
 옛날 내상의 왕래가 가장 잦았다는 화개재는 나즈막한 안부가 가장 인간적이다.
명선봉 굽이길은 든든했던 뱃구레를 여위게 해 중화참을 알리고 연하천 석간수는 석삼년 보리 흉년을 살려낸
공적이 크기도하다.


돼지평전으로 닫는 부부의 발길은 미끄러운 돌길에 굽 닳은 노새마냥 연신 서로를 염려하는 안부가 춘향과
몽룡 만큼이나 애절하고 각별하다.
기복없는 길을 슬금슬금 따르니 임걸령 샘터가 어느새 졸졸거리며 문안을  여쭤온다.
샘터 주위엔 풍찬노숙을 감행하는 군들이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깔렸고 셈평이 빠른이는 벌써  코펠에
물끊는 소리가 청아하다.
시원한 냉수 두어대접을 들이키고는 노루목 된비알을 훠이훠이 오르는데 갑자기 못견디게 졸음이 밀려온다.


양쪽눈을 번갈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해 보지만 도대체가 요지부동이다.
졸음에 겨운 걸음은 자연 힘이없어 이리저리 바람앞의 갈대처럼 천방지축으로 흔들린다.
두서없는 걸음을 염려하는 곁의 사자후가 몇번이나 주의를 일깨우지만 당최 역부족이다.
지난번 지리종주때도 수마에 혼겁이 뜰지경이였는데 이번에 또 몽니를 부리니 이 무슨 애꿎은 해꼬지란 말인고..
어찌 갔는지도 모르고 노루목과 삼도봉을 지나 화개재로 터덜터덜 내려서니 깔끔히 만들어 놓은 쉼터
벤치가 제일로 반갑다.


봉충답이 소나기를 피하랴..  만사 제쳐놓고 몸부터 뉜다.
곁의 말로는 누운지 10초도 안되어 가는코를 가르릉 거린다네 .
언뜻 귓결에 수런거리는 산객들의 소리가 들려 어섯눈을 뜨고 겨우 일어선다.   
조금 더자고 가라는 곁의 만류를 뿌리치고 하품을 베어 물고는 토끼봉 비탈길을 게으른 상좌 탁발 가디끼 기어
른다.  객은 졸음에 발목이 묶였고 곁은 너덜거리는 서방 챙기느라 자연 걸음이 늦어져 연하천 가는길이 더디고
더디다.


불불거리던 길이 총각샘 어름에 이르니 동이 터오고 얼마안가 환하게 밝아온다.
연하천엔 많은 꾼들이 아침  준비에 부산해 쉴자리가 없다.
산장을 지나 한참이나 더 아래로 쳐졌다가 겨우 안돈할 구석을 차지해 고구마와 빵 우유로 간단한 식사를 한다.
집에서 타온 커피를 이슬 받아 만들었다는 만리 설향차 처럼 폼나게 마시니 가위 구름위의 신선인듯 게트림이
절로인다.
대충 상 걷우어 벽소령으로 품위있는 걸음을 내딛는다.


연하천에서 벽소령으로 내려서는 길은 주위 풍광과 능선의 수려함이 단연 돋보이는바 형제봉이라는 걸출한 기암과
송죽과 암릉을 비껴도는 길은 참으로 산중 절경이다.
벽소명월로 잘 알려진 벽소령은 부연 설명이 사족이 될뿐이고  불끈 솟아오른 덕평봉의 기세는 감히 범접할수 없는
위엄이 절절하나 실제 올라보면 부드럽게 감돌아 선비샘이라는 지리의명물을 또하나 만들어 내유외강의 우리네
인정과 상통해 한층 살뜰하다.
영신봉을 오르는 긴 오르막은 은근한 인내와 결기를 시험하고 세석의 웅자는 그 덕을 멀리 고소산성 너머 악양들까지
끼쳐 거칠것 없이 흐른다.


내려서는 길이 유난히 약한 곁은 벽소령으로 걸린 미끄러운 길을 소금바리가 겨운 노총각의 걸음으로 비척거리며
어렵게 어렵게 내려선다.
늘상 걱정하던 무릎 관절에 노심초사 했으나 다행히 아프단 소리없이 잘 따라와 한결 마음이 놓인다.
작년 종주에 실패하고 하산했던 벽소령엔 역시  많은 인파로 시끌벅적해 덕평봉으로 재게 걸음을 놀린다.
완만한 오르막을 지나 선비샘에 닿으니 오줌소태에 걸린디끼 찔끔거리는 샘은 여전히 웃음을 자아내고 한바가지 길어
올리는 물은 갈증을 해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엎친김에 장가들고 덮친김에 과부 보쌈 한다고 보따리 끌러 토메이로우(두예삐들의발음)와 포도를 꺼내어 입안을
헹구어 낸다.
칠선봉까지의 팍팍한 오름길이 진력이 날 즈음 그놈의 잠이 또 폭포처럼 밀려온다.
십년 석수쟁이모냥 아무리 눈을 깜짝여 봐도  졸음은 더욱 쏟아져 거의 청맹과니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별수없이
영신봉 험한 계단을 눈앞에 두고 군것질을 우물거리며 조금 뜸을 들인다.
어기찬 계단길을 지난길은 영신봉 허릿바를 틀어올려 세석으로 넘어선다.


운무에 휩싸인 세석을 가리키며 여기가 잔돌평전 어쩌구 대충 주절거리고는 곧바로 촛대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어차피 아무겄도 뵈지 않으니 유창한 설명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
촛대봉에서 장터목에 이르는 구간은 마치 진경 산수화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구간으로 지리의 전구간중 가장 아름다운
코스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천왕봉에 거의 근접했다는 안도감이 한층 고단한 심신을 편하게 해주어 그 완숙감은 더욱 두드러진다.


장터목으로 지긋이 내려선길은 정상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듯 천길이나 제석봉으로 솟았다가 고사목 지대를
훓고서는 또다시 또다시 통천문을 지나 가파른 된비알을 지어 마지막 근력을 있는대로 짜내게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돌비알 된비알 산비알등 급경사 천지래두 통천문만 지난다면 정상은 수월하니 끝내 포기하지
말일이다.


촛대봉 고갯길을 시작하면서부터 곁의 걸음이 점차 무디어져 간다.
잠한숨 안자기야 너덜거리는 서방눔의 등살에 출발전까지 같이 고스톱을  학습한 곁도 매일반이니 어지간히
지쳐 갈만도 하겠다.
표지판이 있는 촛대봉 고갯마루에서 처음으로 좀쉬어가잔 소릴 기어이 내뱉는다.
사람들이 뜸한 바위에 올라 앉으니 다른이 전혀 의식 않고 내 무릎에 그냥 얼굴을 푹 파묻는다.
10여분을 넉넉히 쉰다음 곁이 제먼저 일어나 길을 제촉한다.


삼신봉 연하봉으로 이어지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힘들여 오르는데 어느순간 곁이 앞장을 서더니 날듯이 쫓아간다.
이런변이 있나 그래 ..
코에 단내가 나고 등짝에 누린내가 배이도록  기를 쓰고 따라 갈려니 진짜 쌍코피 터지는 고통이 예있더라.
연화봉 앞 철계단 전망대에 이러르서야 겨우 걸음이 눅어지며 멈춰선다.
허, 이 아줌마가  산삼을 카드로 긁었나, 지리산 신령께 용비늘을 빌렸나..
곱게 물들은 단풍을 뒤로하고 장터목으로 내려서니 점심을 준비하는 인파가 미어터져 나간다.


쉼없이 제석봉 가파른 돌계단을 추어오르니 영 죽을 맛이였다.
벌벌거리는 다리를 주체못해 허둥대다 제석봉 으름에서 점심 보따리를 풀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게걸스레
휘몰아 넣으니 금방 한양푼의 밥이 동이난다.
조금 쉬었다 곧바로 정상을 향해 걸음을 놓으니 아까보단 훨- 낫다.
천왕봉 오름길은 곁도 지난달  중산리에서 와본 경험이 있어 제법 아는체를 하며 수이 오른다.


통천문을 지나고 철계단과 난간을 잡고 용을 쓰니 저위로 천왕봉이 어서오라 반기며 우뚝 서있다.
곁을 앞세워 정상에 먼저 올리고 객도 뒤따른다.
인파틈을 비집어 겨우 사진 한장을 건지고는 두예삐를 걱정하는 곁의 성화에 밀려 정상의 감회를 흐뭇이 즐기지도
못하고 쫒기듯이 내려선다.
장터목으로 내려서며 슬몃 관절이 어떻냐구 물으니 놀랍게도 괜찮대네 .  그래도 혹시나 싶어 소지봉까진 천천히
내려서다 참샘에서 물한잔 마시고 돌짝길을 조금 빠르게 내려서니 곁도 쳐지지 않고 잘 따라온다.


하동바위를 지나면서 좀더 속력을 내 뛰어서 내려가니 곁도 뛰어서 따라붙는다.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사추리에 가래톳이 서도록 줄인길이 어느듯 야영장 위 조그만 철다리에 닿으면서 기나긴
백무동 길은 끝이난다.
이제껏 한팔힘이 되어준 지팡이를 다시 지리산 품에 돌려주고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곁의 얼굴을 가만히 치어다보니 촛대봉 부근에서 좀 힘들어 했을뿐 별다른 동요없이 차분하다.


그러고보니 마누라 지리종주에 쌍코피 터진쪽은 너덜거리는 서방눔이 아니던가 ?
이런 젠장할 ....
아이들을 걱정하는 곁의 덕진풍엔 막내 진주의 목소리가 차랑차랑하다.
"엄마 , 언제와.."
지애비는 보고 싶지도 않나부다.   니미럴...


                         2004년 9월26일.  끝.


#각구간별 도달거리(휴식시간 포함)

*01시50분...성삼재.
*06시25분...연하천.
*07시55분...벽소령.
*10시30분...세석.
*12시05분...장터목 .
*13시25분...천왕봉.
*
16시10분...백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