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太行山(타이항산) 기행/ 한단지몽(1)
 
 
 중국은 러시아, 카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나라로 한반도의 44배나 되는 큰 나라다.
그 중국에서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태항산(太行山)을 찾아 울산, 대전, 가평과 수도권에서 모인 우리들 일행 12명은 중국에 왔다. 
예로부터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은 오악(五嶽)이었다. 오악(五嶽)이란 중국 고대 황제들이 제후를 회동하고 산신령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5 개 산으로, 오행사상(五行思想)에 따라서 중앙의 숭상(崇山), 동의 태산(泰山), 서의 화산(華山), 남의 형산(衡山 ,  북의 항산(恒山)을 말한다. 
 옛말에 '五岳歸來不看山'(오악귀래불간산)이라 하여 오악(五嶽)을 보고 나면 중국의 다른 산을 볼 필요가 없다고 하더니, 몇년 전 황산(黃山)에 갔더니 '黃山歸來不看岳'(황산귀래불간악)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황산을 보고 나면 오악도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황산(黃山)이 오악(五嶽)에 끼지 못한 것은 오악(五嶽)이란 말이 생기기보다 약 1,000년 늦은 당(唐)나라 시기에야 비로소 황산(黃山)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태항산 (858)굳굳 길과 산촌과 협곡.jpg 
오늘 우리가 가고 있는 태항산(太行山)은 중국 산서성(山西省)과 하북성(河北省)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남북 길이가 약 600km, 동서길이 250km에 걸쳐있는 험준한 산맥으로 중국인들은 중국의 그랜드캐년(Grand Canyon)으로 부르는 산들이다.
산동성(山東省)이나 산서성(山西省)이란 말은 타이항산맥(太行山脈)의 동쪽과 서쪽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말이니 이로 보아도 태항산이 예로부터유명한 산이었음을 알 수가 있겠다. 참고적으로 '하북성(河北省)' 석가장(石家장)나 하남성(河南省) 신향(新鄕)이라 할 때, '하북(河北)'이나 '하남(河南)'은 양자강(揚子江)의  북과 남을 말하는 것이다. 
태항산(太行山)에서 '行'을 '행' 아닌 '항'이라 발음하는 것은  '행'은 다나다(步)는 뜻이요, '항' 은 항렬[같은 또래]나 줄(列)이라는 뜻이니 태항산(太行山)이란 큰 산 줄기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중국 교과서에 나오는 '愚公移山(우공이산)'이라는 고사성어는 이 태항산(太行山)을 두고 생겨난 말이다.
 -중국의 태항(太行)과 왕옥(王屋) 두 산맥은 오래전엔 북산(北山)을 사이에 두고 지금과는 다른 곳에 있었다.
북산(北山)에 살고있던 우공(愚公) 이라는 노인이 높은 산에 가로 막혀 왕래하는 데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자 두 산을 옮기기로 하였다. 둘레가 700리에 달하는 큰 산맥의 흙을 퍼담아서 왕복하는 데 1년이 걸리는 발해만(渤海灣)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하는 우공(愚公)의 모습을 보고 친구 지수(智搜)가 그만 둘 것을 권유하자 우공(愚公)이 말했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고, 그들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산은 불어나지 않을 것이니, 대를 이어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산이 깎여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
산신령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옥황상제(玉皇上帝)가 감동하여 두 산을 지금의 자리로 멀리 옮겨주어 노인의 뜻이 성취되었다. 이는 도가(道家)에서 '세상이 말하는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의 기준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

*. 한단지몽
(邯鄲之夢) 
태항산 (3굽어본 밀밭.JPG
드디어 석가장 정정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비행기는 하강하고 있다.
지금은 신록이 한창인 한 여름인데 이상하게도 굽어보는 석가장의 풍경은 초록이 아닌 노란 가을빛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 고장에서는 쌀농사를 위한 논이 없고 밀농사를 위한  말밭뿐이어서 밀을 추수한 때문이었다. 밀 다음에는 저 광활한 누런 벌판에 옥수수를 심는다 한다.
 여행은 사서 한다는 말처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정년퇴직한 처지라서 형편에 맞게 저가 항공사인 제주항공(濟州航空)을 이용해서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2시간 거리인 하북성 성도(省都)인 석가장(石家庄)에서 내렸다.
왜 이름이 석가장(石家庄)이라 했을까? 다행히 15여 년 이상이나 석가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박 사장을 만나 그 긍금증을 풀을 수 있었다.

-지금은 
200만 인구가 사는 대도시 석가장은 원나라 이전에는 십(十)여 가구(家口)가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서 '十'의 중국어 한자 발음이 '石'과 같아서 석가장(石家庄)이라 했다 합니다.
또 다른 설로는 글자 뜻 그대로 돌이 많은 곳이라해서 석가장이라 했는데 시 서쪽의 징싱[井陉]에서 석탄이 개발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요.(박희성 사장에게서 녹취) 
 
석가장에서의 볼거리로는 크게 두 곳이 있다.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유비의 오호장군(五虎將軍) 중의 한 사람인 조운(趙雲)의 문묘가 그 하나다. 석가장이 조자룡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가면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제갈량과 관운장, 장비, 조운 등의 모습을 둘러 볼 수가 있다.
또다른 볼거리로는 강희 황제가 와서 쉬고 갔다는 대사찰로 중국 대륙에서도 유명한 융흥사(隆興寺) 등이다.
 
*. 한단(邯鄲) 가는 길 
한단시 지도.png  한단(邯鄲)은 하북성에 있는 시로 석가장시 남쪽 약 150km 지점에 있는 도시다. 옛날 전국시대에는 조(趙)나라의 수도였던 교통의 요지로 인구 897만여 명(2007년)이 사는 대도시로 진시황(秦始皇)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여행사 일정표를 보니 태항산 가는 길에 한단(邯鄲)에서 다음날에는 신향(新鄕)에 들려 또거기서 또 일박을 해야 태항산 구경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  한단까지만도 버스로 무려 3시간 30분 거리자라지만 현지에서 만난 가이드는 4시간도 더 걸리니 지루함을 각오하란다.
그 지루한 시간을 더욱 지루하게 한 것은 그 무료한 4시간 동안 가이드는 공항에서 차를 타고 10분 간 몇 마디로 소개말을 하더니 화장실 가는 것, 버스 하승차 등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입을 굳게 닫고 말이 없다. 
 배낭여행의 장점은 낯선 나라, 낯선 문물과 그 이국 사람들을 만나 몸으로 부닥치며 이색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에 서투르고 모험심에 손방인 나 같이 나이든 사람들이 즐겨 하는 여행은 투어여행이다.
투어여행의 장점은 저렴한 비용에다가 현지서 생활하는 가이드를 대신 만나 그 고장 그 나라에 대한 가지가지 설명을 들으면서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안내 받는 것이다. 이렇게 해외여행에서는 어떤 가이드를 만나느냐 하는것은 우리들의 여행의 즐거움과 크게 관계 되는 일이어서 늘  가이드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나는 해외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거나 서투른 가이드를 만나면 어쩌나, 아니면 너무 돈을 밝히는 가이드를  만나게 되면 여행은 잡치고 마는데 어쩌나 늘 걱정해 왔다. 
현명한 가이드라면 늘 여행객을 보살 피며 가급적 서서 개인적인 물음이 전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다 알아 듣게 마이크로 알려 주련만 우리의 가이드는 그렇지 않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도중에 만난 다른 여행자들도 나와 같은 불만을 토하는 것을 보면, 태항산 지역은 최근에 개발된 여행지여서 이곳 가이드들은 그 역할에 대하여 너무나 소홀한 것이 관행이 된 것 같았다. 
여행자들은 여행경비로 가이드에게 친절한 안내를 해달라고 일정에 따라서 팁을 지불한 사람들이고 그런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태항산 가이드들은 명심하고 시정해야 할 것이다.
 한단까지 와서 한단(邯鄲)에서 일박하면서도 한단에 대한 소개나 그 유명한 한단지몽(邯鄲之夢)의 고사성어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

 당나라 현종(玄宗)때의 이야기다. 산동(山東)에 사는 노생(盧生)라는 초라한 소년이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의 한 주막에서 도사 여옹(呂翁)이 메고 다니던 양쪽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빌어서 잠을 잤다. 꿈에 그 베게 속에 들어가서 주모가 메(黃梁) 밥을 짓는 사이에 80간이나 온갖 부귀 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다 깨었다는 고사다. 

이를
한단몽(邯鄲夢), 일취지몽(一炊之夢), 황양몽(黃梁夢)이라고도 하는 남가일몽(南柯一夢), 일장춘몽(一場春夢)과 같은 류의 이야기다.
한단지보(邯鄲之步)란 고사성어도 있다. 자기의 본분을 잊고 함부로 남을 흉내 내면 두 가지를 다 잃는다는 말이다. 

조(趙)나라의 한단(邯鄲) 사람들이 보행을 잘하는 모습을 보고,  연(燕)나라의 한 청년이 한단에 가서 걷는 방법을 배웠는데 습득하지 못하였을뿐만 아니라 고국의 걸음걸이까지도 잊어버리고 기어서 돌아왔다는 고사
                                                                    -'장자(壯子)'의 '추수(秋水)'
이 두 이야기를 살펴 보면 옛날 한단(邯鄲)은 노생이나 연 나라 청년이 꿈꾸며 살고 싶어 하는 동경의 세계라 할 정도로 화려한 도시였던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한단에 아네와 함께 왔으니 아무리 꿈을 잃은 내 나이라지만 오늘 밤은 무슨 꿈을 나는 꾸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