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8  

봄비는 왜 소리 없이 내릴까.

 

 

 

 

 지난겨울 내내 근육질을 드러내보이던 산줄기들이 어느덧 싱그러움으로 단장되고 가슴 시리도록 화사하게 피었던 봄꽃들도 신록의 향연에 밀려나 아쉬움만을 남긴 채 망각의 시간 속으로 서둘러 달려가는 계절의 문턱에서 덧없이 흐르는 세월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무엇인가를 붙잡으려고 몸부림치고 무심코 흘러가버린 나날들을 반추하면서 한잔 술로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텅 빈 마음을 위로해보지만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으로 달려갑니다.

 

 그동안 봄 가뭄이 극심해 산길마다 먼지가 많아 호젓하게 한적한 곳을 걷고 싶어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담양 금성산성을 일주하기로 마음먹었으나 아침부터 괜스레 게으름을 피우다가 뒤늦게 출발을 서둘러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길을 바쁘게 달려 산행 첫들머리인 담양온천리조트에 도착하니 오르는 길목이 대나무 테마파크공원 진입로 조성공사로 먼지가 자욱해 걸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자동차로 오르다가 임도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의용소방대원들이 입구에서 산불방지 캠페인을 벌리고 있다. 수없이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는 것이 봄철 산불방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순간적인 실화로 말미암아 애써 가꿔온 산림자원이 순식간에 소실되어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산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산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산불방지 파수꾼이 되어 생명의 숲 가꾸기에 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산성이 시작되는 남문을 향해 오르는 길목에 가족 산행에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기상 예보가 있어 발걸음에 가속도를 더하니 동행한 친구들이 천천히 가자고 자꾸만 보챈다. 보국문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망루인 내남문에 도착한다. 복원이 이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고풍스런 맛이 배어나지 않지만 이곳에 서면 무등산이 마주보이고 사위가 훤히 트여 쉼터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담양 추월산 건너편 산성산에 있는 금성산성은 유래가 깊은 산성이다. “사적 35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성 입암산성, 무주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이며 길이가 7㎞ 정도로 한바퀴 둘러보는데 3~4시간 소요된다. 몇 년 전만 해도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성문을 새로 짖고 성곽을 축조하는 등 꾸준한 보수관리로 이제는 제법 위엄 있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성 일주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성곽을 따라 걸어가든지 반대 방향으로 가더라도 원점회귀 산행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좌측코스를 택하기로 한다.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담양호를 내려다보고 추월산을 마주보면서 산성 위를 걷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깔스러운 맛과 흥취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중한 문화유적을 밟고 산행하기 때문에 항상 조신한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지 않으면 훗날 수많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인 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담양호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노적봉 위에 서니 답답한 가슴이 확 트인다. 푸른 호수 건너편에 기암괴석으로 다져진 추월산이 눈앞에 우뚝 다가서고 가파른 벼랑에 힘겹게 얹혀있는 보리암의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이처럼 풍광이 뛰어난 곳에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면서 차 한 잔을 마시다보니 뻐금함이 저절로 사라진다.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속담의 의미가 얼굴에 잔주름이 늘어가는 지천명의 길목에 서니 어렴프시나마 가슴에 와 닿는다.


 

 얼마 전까지도 생기발랄했던 봄날은 게 눈 감추듯 어디론가 실종되고 요사이 초여름 같은 무더위가 계속되어 조금은 짜증스러웠는데 이곳에 오르니 심신이 너무나 상쾌하다. 그동안 천공된 고막이 빨리 재생되지 않아 당분간 지리산을 접어두고 근교 산행으로 울적한 심사를 달래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다. 그러나 조바심을 버리고 마음으로 지리산 연가를 읊조리면서 다시 찾을 그날을 학수고대하며 산 꾼들의 산행기나 읽어보련다.


 

 서문은 이곳 산성 중에서 가장 낮은 지대인 계곡하류에 있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폐허로 방치된 성곽을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새롭게 축조되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스럽게 느껴지는 성곽을 끼고 북문을 거쳐 연대봉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꽤나 가파르다.

 

 그러나 외침(外侵)을 이겨내기 위하여 수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이곳에 城을 쌓았던 민초들의 애환과 처절한 절규의 몸부림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힘든 발걸음을 한걸음씩 내디뎌오르니 강천사 계곡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연대봉에 다다른다.


 

 오롯이 모진 곳에서 억척같은 생명력을 발휘해 뒤늦게 화사한 꽃을 피어낸 벚나무가 하얀 꽃잎을 눈처럼 휘날려 메마른 나그네의 가슴에 애틋한 감정의 불씨를 지핀다. 그러나 점심을 준비하지 않아 이곳에서 지체하기 어려워 옛 추억을 되새기며 감상에 젖는 사치스러운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아쉬움을 남겨둔 채 서둘러 추억의 장소를 벗어나버린다.


 

 이곳 산성에서 가장 멋있는 운대봉을 지나 동문에 도착하니 지름길로 곧장 내려가자는 친구들의 성화를 무시하고 시루봉 쪽으로 발길을 내딛으니 허기가 져서 못가겠다고 울상이다. 그러나 조금만 고생하면 일주할 수 있다고 설득하여 아주 힘 있게 우뚝 솟아오른 암봉으로 오른다.

 

 조금 힘들다고 쉬운 길로 간다면 어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는 자세가 필요하다. 요즘 세태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는 3D현상이 만연되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모두들 걱정이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3시간 조금 못 걸리게 마라톤 하듯 산성을 한바퀴 돌아서 망루에 다시 서니 일주했다는 성취감에 가슴이 뿌듯하다. 불행한 역사의 길목에서 피바람이 스치고 간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한 현장이었건만 그 자취를 찾을 길 없고 오히려 호젓하고 고즈넉해 정감이 우러나는 곳이 금성산성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을 때에는 언제나 참배자와 같은 심정으로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역사를 인식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짓눌린 마음의 번뇌를 山頂에서 훌훌 털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기 때문인지 되돌아오는 길은 어딘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버렸기에 시장 끼를 달래기 위해 식당으로 달려가 담양을 대표하는 맛있는 떡갈비로 주린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오니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왜 봄비는 소리 없이 내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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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새기는 어느 봄날의 꿈은 이렇게 허망하게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리나! (끝)



▣ 김현호 - 내남문,보국문!! 북한산의 그것과 이름이 같네요~ 금성산성? 하나 배우고 가네요 늘 건강하시길..


▣ 이수영 - 제목이 마음에 들어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산행기라기 보다 수필에 가까운 것 같네요..아쉽습니다. 최소한 산행코스와 시간대는 적어 놓으시는 것이 산행기의 기본이 아닐까요?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미시령 - 금성산이 담양에도 있나보지요? 미시령 어릴적 학교교가가 '금성산 정기어린~"으로 시작하는데... 정말 담양 금성산에도 내남문, 보국문이 있고, 얼마전에 들른 가덕도의 연대봉도 금성산에도 있고... 참... 이상한... 하기야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물의 이름이 한글 두 글자로 이루어지니 같은 게 부지기수일밖에요... 잘 읽었네요.


▣ 첨단산인 - 담양에 있는 금성산성이 있는산은 산성산이며 금성산은 나주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금성산성의 철마봉쪽으로 가는길은 추월산과 담양호를 바라보면서 진행하는 참으로 멋진 코스이며 철마봉후에는 내리막길에서 다시 북문으로 올라가야 하는 인내심을 요하는 코스지요 송락바위에서 아스라히 바라보이는 강천산의 계곡과 주황색의 현수교와 제2강천호를 보면서 가파른 철사다리를 내려가서 강천사로 이어지는 길과 북바위 밑에서 비룡폭포를 거쳐 강천사로 가는길 시루봉에서 광덕산을 거쳐 현수교위 신선대로 이르는길 여러코스가 있으니 한번더 둘러보셔도 좋을 산인것 같군요


▣ 김정길 - 현촌님의 좋은 산과 명승유적 소개에 감사합니다. 한가지 질문은요? 산행 첫 들머리인 담양온천리조트는 금성면 월률리에 있나요? 또 한가지는 온천리조트에서 망루까지의 거리나 오르는 시간은 어느정도 인지요. 위 두가지 질문에 꼭 답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글로 싫으시다면 전화나 메시지로 알려주시기를..


▣ 현촌 - 여러 가지로 지적해주시고 격려의 말씀 감사! 감사드립니다. 담양온천 리조트는 금성산성 초입부인 담양군 금성면 원률리에 최근에 생긴 시설입니다. 온천에서 산성 망루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어 임도를 거치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1시간 정도) 그러나 산 중턱까지 꽤 넓은 임도가 나있어 평일에는 임도를 이용하시면 쉽게 망루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20-30분 정도)내) 임도 종점에 주차장이 조성되어있고 커피파는 곳도 있습니다. 한번 다녀가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언제나 즐거운 산행이어가시기를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