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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주차장에서 정상인 대견봉(1,083m)까지는 느긋한 걸음으로(일행 중 초심자가 있어서 보조를 맞춘 편) 1시간50분 정도면 다다를 수 있다.

 


비슬산 유가사
유가사는 신라 흥덕왕 2년(827) 도성국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천년고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비슬산의 주봉인 대견봉 밑 내산에 위치하고 있는 유가사는 천년의 역사와 더불어 고찰의 풍미를 간직하고 있으며 빼어난 산수와 절경은 참배객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유가사를 창건한 도성국사는 포산(비슬산의 옛 이름)구성의 한 사람으로 시공을 초월한 도력을 갖고 있었다고 『삼국유사』‘피은편’에 전한다. 유가사는 비슬산의 암석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님의 형상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사명(寺名)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려 시대 유가종(瑜伽宗)의 총본산으로 삼천 명 의 대중이 수도 했다고 전해진다.
유가사는 창건이후 진성여왕 3년(889) 원잠선사가 중창했고, 고려시대 문종 원년(1047)에 학변선사가 중수했다. 조선시대 문종2년(1452)에 일행선사가 중수했고 숙종 8년(1682)에 도경화상이 보수했으며 영조 51년(1776)에 밀암선사가 정조 21년(1797)에는 낙암선사가 각각중건 ·중수했다.
유가사의 당우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백화당, 동산실, 취적루, 천왕문, 나한전, 용화전, 산령각 등이있고 대웅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단아한 모습으로 경내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 조성한 이 석탑은 유가사에서 500미터 서북지점에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폐사가 된 뒤, 1920년 경 흩어진 탑재를 모아 이곳으로 이건 복원한 것으로 비레가 잘 맞고 돌을 다듬은 솜씨가 정교하다.
유가사에는 영험있는 괘불이 한점 있는데, 날이 가물때나 어려움이 있을 때 이 괘불을 법당 에 모셔두고 스님과 주민이 기도하면 불가사의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전한다. 또한 산 속에서 무서운 짐승이 나타나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일이 잦아 괘불을 대웅전 앞에 걸어 놓고 제사를 지내니 무서운 짐승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유가사 입구에서 서북쪽 2백미터 산기슭에는 낙암당대사지탑, 월호탑, 휴영당대사, 등 열다 섯분의 스님을 모신 부도군이 있다. 이부도군은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우가사의 사 력이 얼마나 깊은지 또한 얼마나 많은 고승 대덕 스님들이 이곳을 수행처로 삼아 정진했는 가를 잘 말해준다. 유가사의 산내 암자로는 수도암, 청신암, 도성암, 현풍포교당이 있다. 현재 유가사는 옛명성에 걸맞는 종합정비 계획안을 마련하여 복원 불사를 추진 중이다


 

유가사주차장에서 비슬산을 오르려면 도성암을 경유하는 코스를 택하는 게 정상적인 루트라고 생각된다. 오늘은 유가사를 들른김에 도성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유가사에서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산행로를 택하기로 했다.

 

 

유가사주차장에서 쉬엄쉬엄해서 1시간50분 정도가 걸려서 대견봉에 다다랐다.

비슬산(1,083m)
팔공산과 더불어 대구를 대표하는 명산. 산꼭대기에 신선이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의 바위가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만큼 아래서와는 완연히 다른 산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특이한 산이기도 하다. 얼핏 비슬산은 작은 동네산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상은 청도와 대구를 아우를 정도로 규모도 크고 산세도 웅장하다. 대구 달성쪽에는 유가사와 소재사. 청도쪽에는 용천사라는 명찰을 품고 있을 정도로 옛부터 명산으로 이름나 있던 곳이다.
비슬산은 사계절내내 산행하기에 좋은 곳이지만, 특히 봄 산행이 최고로 꼽힌다. 창녕 화왕산에 견줄만큼 진달래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다. 정상 일원과 조화봉 북릉 서쪽 사면은 어른키를 넘는 진달래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차 4월이면 온통 산허리에 붉은 띠를 두른다. 이에 맞추어 달성군은 매년 4월 말에서 5월초 개화시기에 맞춰 참꽃(진달래)축제를 열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비슬산 아래 특히 휴양림을 통해 오르는 길에는 울창한 수림에 쌓인 계곡이 아주 좋다. 크고작은 폭포와 소들, 제법 넓은 암반들까지 펼쳐져 있어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가을에는 정상부근에 화왕산 갈대밭에 뒤지지 않은 광활한 갈대밭이 대평원을 이루기도 한다.


 

대견봉에서 유가사갈림길 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리고, 대견사지 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보면 된다.

 

오래동안 가물었던 탓에 다가 참꽃축제에 때 맞춰서 온 수많은 등산인들로 인하여 선등자의 발길에 일어나는 먼지로 인하여 스카프로 복면을 하고 가야할 정도였다.
이 곳 유가사갈림길에서 대견사지 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리며 원점회귀 산행일 때, 일행 중 무리함을 호소하는 이가 있으면 여기서 유가사 방향으로 하산시켜도 된다.

 


 

대견봉에서 이 곳 까지는 1시간 남짓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면 되고, 이 곳에서 유가사까지는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대견사지삼층석탑(大見寺址三層石塔)-달성군 유가면 용봉리 산1
비슬산 주봉에서 남쪽으로 약2㎞의 거리에 해발 1,000m에 위치한 이 탑은 중국 당나라의 황제가 절을 짓기 위하여 명당을 찾아 헤메다 9세기 신라 현덕왕때 이곳 비슬산에 절터를 잡고 절과 삼층석탑(三層石塔)을 건립하였으며 대국에서 본 절이라하여 대견사(大見寺)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 절은 허물어져 축대와 빈터만 있으며 절터의 남쪽 절벽위에 삼층석탑(三層石塔)만 홀로 서 있다. 석탑(石塔)도 도괴되어 부제가 흩어져 있던 것을 1986년 복원하였다.
석탑(石塔)은 이중기단으로 암반을 지대석으로 하고 그 위에 1매석에 조각한 하대기단을 얹었으며 그 위에 삼대면석과 상대갑석을 별개의 석재로 다듬어 구성하였다.
각층의 옥개와 탐신은 각각 하나의 돌이며 옥개의 아래에는 4단의 받침을 위에는 2단의 굄을 조각하였다. 탑신에는 우주를 새겼고 상륜부는 결실되고 없다.
석탑의 형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유행한 것으로 석탑이 조성된 것 같다.


 


 

대견사지에서 이 곳 유가사까지는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오랜 가뭄 뒤의 단비가 촉촉이 내리는 고속도로변의 풍경을 담아봤다.




산악인으로서 산행기 작성시에 바르게 알려야 할 의무와 에티켓에 관한 小見

웹사이트에 올린 산행기들을 대하다 보면 보기가 곱지 않은 유형들을 더러 발견하게 된다.
후등자에게 참고가 될만한 내용도 그다지 없으면서 제목을 교묘하게 하거나, 어지러운 도형문자(★,■,▲,♣,▣...) 들을 써서 관심유발과 조회수를 올리려는지 얄팍스럽게 보이는 이, 수년 전의 빛바랜 산행기를 계속 올리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 기분에 들떠서 도에 넘치는 과장된 표현을 하는 이...
산행기는 본인의 회고를 위해서 또는 후등자에게 도움이 될만하게 정확한 설명에 근접해야 된다고 본다.
참된 산악인이라면 본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과다한 언어의 성찬으로 도배를 하는 이들도 많다. 후등자가 여러 번 읽으면서 메모를 해야 한다면 그 또한 불편함이 아니겠는가?
한국의 산하를 사랑하는 분들은 모범적이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비슬산의 진달래가 만개했다고 표현한 분들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으로 보다시피 1/3 정도가 피었었다고 보면 된다. 만개한 풍경을 볼려면 다음 주 부터가 절정에 가까울 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