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속리산 구간)


 


2004. 4. 3/5


 


첫날:    비재-형제봉-천황봉-문장대-늘재(21km)(11시간10분)


둘째날: 버리미기재-장성봉-구왕봉-은타재(8시간 20분)


4:00  비재출발


5:40  형제봉


6:20  피앗재


7:30  식사


9:30  천황봉


12:00 문장대


14:30 밤티재


15:10 늘재


7:10  버리미기재(이튿날)


15:30 은티마을


 


부담스런 거리 때문에 비재 들머리에 서면서부터 숨이 차는 듯하다. 지레 겁부터 먹은 것인가..


보름달이 휘영청하니 넉넉한 보살핌을 줄 것 같아 사뭇 흥분과 기대를 갖게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며 초장부터 헐떡대기를 10여분, 이제 능선길로 들어서는가 했더니 다시 또 한 동안을 치고


오른다. 만만치않다 생각은 했지만 수문장같던 대궐터산을 비켜서도 역시 속리산구경하기가 그렇게 호락호락치


않는 모양이다.


 


지난주 청계산에 길이 덜든 등산화를 신고 갔다가 양발에 불어터지는 상채기를 입었는데 미쳐 아물기도 전에


오늘 이렇게 길고 험한 여정이라니, 내리막만 서면 혹시나 덧내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가뜩이나 머나먼 길이 그저


까마득할 뿐이다.


서사면에 서면 아직도 달이 중천에서 노송가지에 가렸다 바위뒤로 숨었다 하며 조잘대는 친구가 돼주니 불원천리


이언정 구름에 실려 바람에 날려가는 기분이다.


 


눈여겨 보자했던 못재도 지나쳐 어느새 형제봉에 올랐다.


어둠이 가시면서 드러나는 조망이 붉게 물드는 여명과 어우러져 근사하다. 지난번에 지나온 봉황산도 또렸해졌고


대궐터산도 우락스럽게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어디쯤에서 일출을 보려는지 제발 조망좋은 곳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아직 상처입은 발이 별 징후 없이 버텨주니 천만다행이다.


 


 


 


 



드디어 나타나는 일출, 오늘따라 더 화려해보이는 것이 지리산 천왕봉 일출만치나 장관이다. 날씨도 청명해서


그림같은 일출을 만나고 보니 우리는 복 받은 과객들이다.


아침햇쌀 받은 능선길이 천황봉도 보여주고 정상의 암석들도 번뜩이는 것이 모두들 하루 일과가 시작이라도


된 것처럼 분주해보인다.


영겁의 시간을 그 자리에서 속리산을 지켜온 터줏대감들, 우리가 묵묵히 서있는 그대 곁을 자나가고 있다.


 


곳곳에 나타나는 전망대바위들은 이름만치나 속리의 장관을 각인시켜주기위해 준비된 것처럼 우리를 잡아


세워 휴식도 주고 볼거리도 준다.


점점 더 험해지는 천황봉의 위용도 보이고 가파른 정상밑엔 잔설이 깊은 겨울인 듯 조릿대숲을 덮고있다.


 


 


 


 


 


                                  (가운데 뾰족한 봉이 문장대)


 


9:30 천황봉


태고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세월과 비바람이 마름질해 빚어놓은 기암들이 줄줄이 박혀있는 속리산의 비경,


여성다운 아름다움도 있고 남성다운 웅장함도 있는 듯 그 모습들이 기기묘묘하다.


문장대에만 서너 번 올라왔다가 법주사로 장암으로 내려갔던 일이 벌써 몇 년전이다. 그 이후 천황봉오는


길은 신비롭게 묻어두었는데 지금에서야 그 실체를 보니 그 동안 봉사 단청구경만 한 셈이다.


 


천황봉삼거리가 삼파수의 분기점이라서 유심히 살펴보니 문장대가는 능선길로 금강과 한강을 가르고


지나온 대간능선이 낙동강을 또 가른다. 중화지대를 지나면서 수없이 봐온 분파수이정표의 종착점도 여기다.


 


삼거리의 나머지 한 갈래, 한남금북정맥길을 외롭게 남기고 잔설이 수북히 쌓여있는 북사면길을 따라


내려서서 석문을 지나 입석대에 이르도록 줄줄이 늘어선 기이한 암석들을 감상하는 것은 재미있는


기행이고 신선대에 이르러 마시는 탁주한잔은 운객의 유화주 쯤 되려는지 대원(김종환종지)이 가져온


문어다리 한 쪼각으로 입가심하기엔 너무나 여운이 남는 인절미에 조청 찍는 맛이다.


 


 


 


 


 


 


 


 


 


 


 


 


 


 


 


 


 


 


 


 


 


 


 


 


 


 


 


 


 


 


 


 


 


 


 


12:00 문장대


다시 등짐메고 일어나 문장대에 이르니 문장대암봉이 청천하늘로 솟구쳐 오르려는 듯이 표효한다.


북적대는 휴일산객들옆에 우리일행도 자리를 잡고앉아 막걸리한잔을 두서없이 따라 벌컥 들이킨다.


신선대의 탁주맛 만치나 알싸하니 전신에 짜르르 전율을 일으켜 6시간여의 지루한 오르막산행에 녹초된


육신들을 쌈박하게 소생시킨다. 산장지기와 술갑흥정을 하며 잔치국수를 청해 빵빵하게 한 그릇 하고


길을 떠난다.


 


 


 


 


 


 


 


 


 


 


헬기장밑으로 잡목을 헤치며 대간길로 들어서 고행이 시작된다.


몸을 낮춰 기고 매달리고, 줄 잡고 늘어지고 바위잡고 버티고


배낭을 벗어 넘기고 부축 받으며 바들바들 떨고


 


사랑하는 사람이면 이참에 한번 안아줘도 탈 없고 서먹서먹하면 꼭 잡아 좋은 스릴넘치는 하산길이지만


대간길 최고의 난코스인지라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문장대에서 칠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동북능선은 아직 잔설이 남아 암능의 진수를 변화무쌍하게 보여주고


서남쪽능선길도 기암들의 아름다움을 줄줄이 달고 내려간다.


오가는 이 없어 한산하기만 하니 이 길은 이래저래 대간꾼들이 덤으로 받는 즐거움이다.


 


14:30 어느덧 밤티재에 닿는다.


도로공사로 절개된 사면을 따라가다가 능선길에 들어서도 급경사는 한없이 계속된다.


탈진되어가는 몸에 또 다시 700여고지라니 산모의 고통이 이만할까?


땀바가지를 뒤집어쓰고 692봉에 오르니 가까이서 본 모습도 구석구석 절경이었지만 멀어져가는 문장대 아래


능선길도 흠잡을데 없는 장관이다.


그 동안 고생했으니 잘 가시라고 인사라도 건네려는 듯이 정들어 보인다.


 


해가 어느새 기울어가고 있음인지 찬바람이 얇은 옷깃을 스며든다.


일행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허기진 신호를 보냈더니 바로 밑에서 응답이 온다. 인적이 드물다고 인기척이


그렇게도 반가울까?


 


노랑제비꽃이 마른 솔잎속에서 옹기종기 피어나있고 진달래는 아직 일른 듯 색깔진한 꽃봉우리들을


잔뜩 키우고 있다.


 


늘재에 이르니  성황당 옛터에 수령많은 엄나무가 지친 대간꾼들을 하나씩 맞아 보다듬고 있다.


 


 


 


 


7:00 이튿날 아침,


어제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은 채 다시 급경사를 치고 오른다. 속리산 다음구간(대야산)을 잇지 못하고


한 구간을 건너 버리미기재로 들러선 것이다. 어제의 긴 구간 뒤 일행의 원활한 행보를 위하여 계획된 것


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제 아침만치나 가파르게 올라 50여분만에 첫 봉인 장성봉에 오른다. 대야산과 둔덕산의 조망이 훌륭하게


이어져오고 있어 한층 미련이 남는다.


 


비교적 잛은 구간이라해서 마음의 여유를 궂이 가져보려해도 걸음은 따로 제 갈길을 간다.


구봉산까지는 그럴 것 같다. 상처난 발바닥은 이미 감각이 무뎌져 이렇다 할 증세가 없으나 허한 무픞관절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앞세우고 겸사해 좀 쉬려해도 찾는 복수초는 커녕 속리산에 그 많던 노랑제비꽃도 종적이 없고


발목을 푹푹 덮는 낙엽만 무성할 뿐이다. 이따금 얼음꽃이 땅속을 뚫고 나와있어 꽃소식을 연신 전하는


남쪽과는 거리가 있음을 실감한다.


이래저래 걸음은 시나브로  양지마당에 씨암닭처럼 한가롭다.


 


잠시 후 삼거리에서 대간길에 조망을 보태준다는 악휘봉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한다. 자그마한 암봉에서 갈


길과 온 길을 시원스레 비춰주니 가히 훌륭한 조망이다.


이어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구봉산 방면으로 진행하면서 아기자기한 암릉을 지나고 하늘로 솟은 고사목도


한 컷 하고나니 휘양산 앞으로 높다란 두 봉우리가 있는데 주치봉이고 구봉산이렸다너무 가혹한 것 같아


하품하던 입이 멈춰버린다.


 


 


 


 


은티재에서 은티마을로 질러가는 유혹을 뿌리치고 주치봉으로 오른다. 하늘 높은 줄만 알고 뻗은 낙엽송


숲속으로 봉암사 가는 길이 있는지 목책을 쌓아놓고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표시를 매달았다.


주치봉에서 점심을 거나하게 먹으며 하나 남은 구봉산을 위하여 전열을 다듬는다.


 


구봉산정산 그늘진 바위에 소풍나온 마을 주민(부부)이 세월좋게 않아 점심을 들다가 인기척에 반가웠던지


먼저 인사를 건넨다.  고생 많으십니다


네에, 나들이들 나오셨군요?


, 물이나 좀 들고 쉬어가세요


 


그지않아도 그럴려는 참인데 귀신같네 흘러가는 물도 떠주면 공이 된다고 촌로의 세련된 인사에 배낭을


스르르 벗어내려 반듯한 바위에 얹고 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마시느라니 일행이 줄줄이 올라와 금새 소란


스러워진다.


 


잠시 내려오니 희양산을 바라보는 천길벼랑위에 조망바위가 나타난다.


마지막 휴식처인 듯 아래는 끝은 알 수 없는 천길 벼랑이고 맞은편엔 희양산 암봉이 인수봉만치나 시원스럽게


다듬어져 눈앞에 다가서고 있으니 그 조망이 가히 절경이라.


 


모양 좋은 노송까지 한 그루 바위끝에 붙어있어 품세를 돋보이고 카메라를 작동시켜보니 희양산자락 아래


봉암사가 고즈넉하게 있어 속인의 발길을 금하고 있으니 해탈하고자 하는 스님들의 심오한 불경소리가 항시


들리는 듯 하다. 그제서야 여기가 심산유곡 문경 땅임이 실감난다.


 


지체되고 있는 듯해서 서둘러 조망을 끝내고 벼랑길을 내려선다. 뚝 떨어진 지름티재에 닿기를 계속 돌뿌리와


나무뿌리를 잡고 돈다.


지름티재에서 솟꾸친 희양산 가는 마루금은 봉암사 스님들의 간곡한 시위로 진입할 수가 없고 돌아가야 한다니


차라리 다행스럽다.


 


털털 계곡을 따라 내려와 은티마을에 이르니 은티재에서 탈출해온 후미가 선두가 되었으니 우리는 졸지에


꼴찌가 되어 선착한 일행들의 열열한 환영을 받는다.


고진감래라.., 은티재 마을 정자나무 밑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이 이틀간의 고행길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줄을


 


마을입구에 늘어선 노송들의 배웅을 받으며 기억에 선한 은티마을을 빠져나온다.


 


 


 


 


 


 


 


 


 


 


 


 


 


 


 


 


 


 


 


 




▣ 최윤정 - 기암과 산자락에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어쩜 이리 아름다운지요..간결한 문장이며 깔끔한 글씨체에 생동감 넘치는 산행기록 보게 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항상 좋은 산행 되시어요..잘 보았습니다.^^
▣ 박현숙(산가족) - 아이들과 다녀왔는데 원래는 묘봉을 가려고 했었지요. 입산통제 기간이래서 하는수 없이 경업대로 해서 신선대, 문장대로 내려와
▣ 산가족이어서 - 는데 천와봉으로 가려했더니 통제표시가 되어 있더군요. 아이들이 무섭다는게 막혀있는데 가면 안된다고 해서 그냥 문장대로 향했지요.. 천왕봉쪽을 가고 싶었는데...산행기 잘읽고 산에서 만났던 이쁜 야생화들 보고 기분좋아 갑니다
▣ 운해 - 속리산 백두대간 코스 종주 하셨군요? 축하 드립니다. 저도 지난 번 다녀 왔는데.. 님의 산행기에서 눈에 읶는 사진들을 보니 반갑네요. 줄산 하기기 바랍니다.
▣ ** - 최윤정님, 박현숙님, 운해님, 격려 감사합니다. 아직 이른 봄이라 좋은 봄소식이 못돼 아쉬웠습니다.
▣ 산초스 - 언제봐도 아름다운 천황봉~문장대 구간과 봄꽃까지 정말 잘 봤습니다.
▣ 불암산 - 고생하셨습니다. 무척이나 힘든 코스인것으로만 기억되는데, 사진을 보니 반갑기 그지 없네요. 즐산하시고 항상 안전에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시구요.......
▣ ** - 산초스님, 불암산님, 격려 감사합니다. 초행길인만큼 선배님들의 고견을 많이 참고하겠습니다.
▣ 이송면 - 속리산 여늬산 보다 더 훌륭한 산인데 워낙 사람들로 북적대니 자연 소원해 지는 곳입니다. 님 덕분에 조용히 잘 감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요.. 카메라가 디카인지요? 해상도가 좋아서... 어느정도 화소수인지 궁금해서 여쭈어 봅니다. 제가 지금 디카를 맘에 두고 이리저리 물색을 하는 중이라서... 좀 알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 - 문장대를 제외한 대간길은 한산했습니다. 500만급인데 휴대성과 기능성을 고려하심이... 정보가 필요하시면 e-mail주소를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 이수영 - 김석기님의 사진은 언제 보아도 훌륭하군요 덕분에 아름다운 속리를 즐감했습니다. 사진을 찍다보니 제일 안되는 것이 일출과 석양의 사진을 찍는 것인데요 님의 첫번째 사진을 보니 일출이 멋있게 표현이 되어있군요. 노출을 어떻게 하면 저런 멋진 사진이 나옵니까? 물론 자동은 아니겠고..
▣ ** - 읽어보셨군요. 노출을 최대한으로 열면(s.speed는 적당히 맞춤) 됩니다. 노출이 작으면(노출값이 크면) 빛은 별모양으로 찢어지거나 퍼집니다. 다른조건도 적당히 맞춰야겠죠. 아직 저도 배우는 중이라 어쩌다 잘나올때도 있네요. 감사합니다.
▣ 김명광 - 안녕하십니까? 지난가을 설악 공룡을 같이하였던 25시 산악회 김명광 입니다.
▣ 김명광 - 선배님의 대간 산행기를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대간종주를 마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