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 2004.4.2 (금)



2. 장소 : 북한산



3. 등반코스 :
밤골매표소(09:00)-전망바위-빨래판(대슬랩)-우회계곡-?동샘-숨은벽정상(11:20/중식/12:00)-호랑이굴-직벽(12:15/13:00)-백운대정상(13:05/13:10)-위문(13:20)-백운산장(13:28)-백운매표소(14:10) (총 5시간 10분, 휴식 및 중식 포함)



4. 누구랑 : 우리 싸부(전 직장 내 신입 사원때 최초의 사수)



4월의 첫 산행입니다. 지난 주말 산행때는 너무나도 따사로운 햇살에 비지땀을 흘리며 산행을 했던 기억이 나서 오늘은 복장에 고민을 조금 합니다. 새벽비에 약간 쌀쌀한 감도 있지만 그래도 4월인데...하는 마음에 가벼운 옷차림(여름용 긴팔 집티)으로 집을 나서다 혹시 몰라 사계절용 윈드스토퍼를 걸치고 더우면 벗지 하는 생각으로 집을 나섭니다.



바쁜 3월말을 보내고 약간은 한가한 틈을 타서 평일(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한가로운 산행을 나섭니다. 바람도 쌀쌀하고 기온도 제법 내려갔는지 손이 시렵습니다. 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인파와 뒤 섞여 지하철을 타니 약간은 눈치도 보이고...



사수와 매표소에서 만납니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만나 아무도 없는 밤골 매표소를 그냥 지나칩니다. 이제는 봄 내음이 물씬나는 계곡길...이리저리 계곡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진행합니다. 바깥 기온은 여전히 쌀쌀하지만 등에서는 땀이 납니다. 어제 비온탓인지 계곡의 물소리가 수량에 제법임을 알리듯...



역시 동행자는 운동 부족임을 실감하는 듯 저만치 떨어져서 힘든 표정으로 뒤를 따릅니다. 쉬어감을 호소하는 눈빛이지만 그냥 모른체 천천히 진행합니다. 전망바위 조금 못미쳐 급경사 오름에서 결국은 주저 앉습니다. 조금 더 가면 전망 좋은 바위에서 쉬어 가자고 이야기 하나 사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듭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조금더 오르니 전망바위...따뜻한 커피를 한잔 합니다. 이곳의 경관은 정말 좋지요? 근데 오늘의 시계는 별로입니다. 이곳서 보이는 도봉의 오봉은 참으로 멋있는 경관인데...오늘은 잘 안보입니다.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아마도 영하인듯...윈드스토퍼를 놔두고 왔으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다시 진행합니다. 진행로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원래 한적한 길이고 또 평일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하며 둘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나아갑니다. 대슬랩...한번 올려다보고 미련없이 우측 골짜기로 내려와 우회합니다. 산행을 연례행사고 하는 우리 동행자는 숨은벽의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골짜기로 내려오는 곳곳에 미끄러움이 배어있습니다. 어제의 비때문가 생각합니다. 조심조심 내려와 이정목까지 내려오지 않고 왼쪽길로 횡단하여 숨은벽과 백운대 사이의 계곡 경사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백운대 방향으로 위를 보니 까마득한 절벽에 뭔가 흰색이 빛나니...이제의 비와 서리가 얼어붙은 露花(서리꽃)이군요...원 시상에 4월에 이런 횡재가...





(위) 숨은벽 정상에서 본 백운대 사면



역시 이곳 오름길은 힘이 듭니다. 왠 바람이 이리도 거센지 눈이 따가울 정도네요...좌우로 휘몰아 치는데 정녕 지금이 사월가 싶네요...속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이곳이 이정도인데 호랑이굴 통과후 슬랩의 상태는 혹시나 얼어있는 상태는 아닌가...아이젠도 빼 놓고 왔는데...



이런저런 상념에 힘든줄도 모르고 올라가는데 저 뒤에서 쉬었다가 가자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지금 쉬면 춥기도 하고 체온이 내려가니 천천히 올라가자고 닥달을 하고 이내 페이스를 최소한으로 늦춥니다. 드디어 숨은벽 V자 안부에 도달하니 바람이 더욱 거세집니다.



나는 추워 죽겠다고 하는데 우리 사수는 더워 죽겠다고 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네요...바로 호랑이굴을 통할까 하다가 슬랩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숨은벽 정상으로 향합니다. V자 안부에서 왼편 바윗틈에서 나온 나무 가지를 밟고 오르는데 여간 미끄럽지가 않습니다. 낑낑대며 오르니 여기가 숨은벽 정상...



바람이 거세게 부니 엄동설한이 따로 없습니다. 솔잎끝에는 영롱한 투명 구슬이 맺혀 있음을 보고 외기 온도가 영하임을 압니다. 게다가 바람이 합세하여 아마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정도...???그래도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족발과 막걸리 한통을 꺼내니 순식간에 동이납니다. 우리 사수는 춥지도 않은지 잘도 먹습니다. 나는 추워서 덜덜덜 떨며 먹는데...땀까지 식으니 더욱 한기가 느껴집니다.





(위) 숨은벽 정상



숨은벽 쪽에서 호랑이굴 슬랩을 확인하니 표면의 상태는 양호한것 같습니다. 저곳으로 가야한다고 설명하니 동행자는 금방 사색이 됩니다. 허나 슬랩의 상태만 양호하다면 그리 어려운 난이도는 아니기에 안심을 시켜주나 안심되는 표정이 아닙니다. 여기서 포기하고 그냥 백운산장이나 위문으로 갔으면 좋았을 것을...





(위) 숨은벽 정상



V자 안부에서 호랑이굴 입구까지 가는 길도 어제 내린비가 얼어있어서 너무나도 조심스럽습니다. 얼지 않은 곳을 일일이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진행합니다. 호랑이굴 입구에서 빙판이 있습니다. 한번 미끄러지면 큰일이기에 뒤를 돌아보며 다시 주의를 환기시키고 내가 먼저 왼쪽 굴로 들어갑니다.





(위) 호랑이굴 주위



굴 안에서 하산하는 홀로 산객을 만납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오름 상태가 어떻습니까?"

"장갑이 없으면 가시지 마시지요..., (직벽)밧줄이 얼어있어서 잘못하면 동상걸립니다."

"슬랩은 어때요? 얼어있는 부분이 있습니까?"

"슬랩은 양호합니다. 근데 잘 확인하고 가시는 편이..."



체력이 많이 떨어진 사수를 한번 바라봅니다.



'어찌할까...슬랩이 얼어있으면 못간다...또한 밧줄이 얼어있고 발 딛는 부분이 미끄러우면 체력 떨어진 우리 사수는 무리인데...'



산객에게 조심하세요 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일단은 진행 방향으로 호랑이굴을 빠져 나옵니다. 나와서 표면을 보니 발 딛는 길은 전부 양호한듯 보입니다. 빗물, 빙판의 흔적도 없고...그냥 오르기로 작정하고 동행자를 독려합니다. 요기 슬랩오르면 다온거니까...갑시다.



먼저 올라 뒤를 보며 발 딛을곳을 알려주며 같이 진행합니다. 제법 능숙한 솜씨처럼 보입니다. 중간 중간 안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는 눈은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내 외면합니다. 이미 장갑은 젖어 장갑의 구실을 못하는 듯 손끝이 아리다고 합니다.



이제 눈 앞에 보이는 7-8미터의 직벽...엄밀히 이야기 한다면 직벽은 아니지요...하지만 편의상 이렇게 씁니다. 내가 먼저 오릅니다. 역시 아까 만난 산객 말씀대로 밧줄은 얼어있습니다. 밧줄과 직벽이 접촉하고 있는 부분이 꽁꽁 얼어있어서 그것은 떼는데도 힘을 씁니다. 매듭 부분을 쥐어보니 이내 손에 쩍하고 달라붙습니다. 이 부분을 오를때 팔힘만으로 오르면 굉장히 힘들죠? 발로 딛고 팔은 단지 보조수단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발 딛는 부분이 미끄러워 도저히 발끝에 힘을 줘도 미끄러지니...이거 큰일 났습니다. 팔힘만으로 올라가야하는...그런 상황, 손끝은 감각이 무뎌짐을 느낍니다. 미끌어지면 다시 오르기가 쉽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애써 매듭진 부분을 잡고 가슴으로 끌어 당기며 오르니 홈패인 부분에 발이 닿습니다. 한숨을 돌립니다. 이제 쉽게 오릅니다. 나무를 잡고 다시 로프를 내려주니 손가락 끝이 아려옵니다. 동상걸릴까봐 서로 부벼주며 동행자에게 요령을 설명해줍니다. 이때의 시간이 12시 15분...



이제 사수의 차례입니다. 역시 미끄러짐의 반복입니다. 한번 미끄러지면 5분 이상을 쉽니다. 바닥에 널부러져서 쉬는 모습이 안까깝지만 어쩔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나무를 붙잡고 위에있는 나는 바람에 온몸이 떨립니다. 추워서 다리도 떨리고 턱도 떨리고...덜덜덜...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수 밖에...



다시 시도하나 역시 미끄러지면서 다시 바닥으로...미끄러지면서 다리를 부딪혀 피가 난다고 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절망, 좌절이 빛이 역력합니다. 다시 내려가고도 싶지만 그건 더 위함하다는 판단에 그냥 충분히 쉬었다가 오르라고 말하고...평소 상태가 좋을때는 직벽을 앞에 놓고 우측으로 보면 경사도가 조금 약한 곳이 있으나 지금은 물기가 얼어 도저히 불가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지 40분...





(위) 좌절끝에 오른쪽 바위 안착



마지막 힘을 내어봅니다. 일단 3-4미터 정도 직으로 전진한뒤 로프의 반동을 이용해 왼쪽으로 몇 발 횡으로 갔다가 오른편 경사도 약한 바위에 안착을 시도합니다. 절대로 로프에서 손을 놓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도 재차 강조해서 소리칩니다. 드디어 안착 성공...약간 쉬다가 다시 마지막 힘을 다해 기어오릅니다. 드디어 성공...아이구 추워 죽을뻔 했네...



나는 춥고 그는 덥습니다. 아니 덥다 못해 옷에서 김이 펄펄납니다. 완전히 땀으로 흑으로 옷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누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격훈련이라고 받고 온 모습 그대로입니다. 오르자 마자 조그만 공간에 벌러덩 드러눕습니다. 힘듬과 공포감으로 힘들었을 그의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웃음도 나옵니다.



이제 백운대까지는 금방입니다. 잠시 쉬다가 너무나도 추워 빨리 가자고 재촉합니다. 힘없이 일어나서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다리가 후들거림을 봅니다. 오늘 칼능을 타고 하산하려던 코스가 무리임을 생각하고 가장 가까운 탈출로로 하산하기로 합니다.



백운대에 도착하니 평일임에도 몇몇 산객님이 있습니다. 모두다 너무 추워서 오랜시간 못 있고 바로 내려들 가십니다. 정말 이곳은 한겨울이네요...만경대의 서리꽃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아까 얼듯 보니 만경대 꼭대기에 산객이 한분 보였는데 참 대단함을 느낍니다.





(위) 백운대 쇠 지지대



이제 하산길...천천히 동행자와 이야기하며 내려옵니다. 오르던 산객님들과 마주치면 우리둘의 상태 - 너무나도 다른 옷의 상태를 보고 의아해 합니다. 옷좀 털으라 했더니 털어보는데 이미 진흙물이 배었는지 안털어집니다.



(위) 위문으로 내림길



이제는 웃지만 아마도 그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을 압니다. 준비도 제대로 되지않은 상태에서 위험길로 안내한 저를 탓할만도 한데...그냥 오늘 너무 좋았다 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 똘배 - 계절을 이탈한 의외의 풍경을 보니 더욱 아름답군요..4월에 겨울 산행을 맛보시다니..참 멋있습니다.
▣ 산모퉁이 - 축하드립니다. 호랑이굴과 슬랩을 성공하셨으니... 읽다 보니 제가 긴장이 되어 혼났습니다. 저는 그날 오후에 호랑이굴 입구까지 가서 포기를 했거든요. 하지만 저도 님과 같이 멋진 서리꽃을 보는 횡재를 했으니 위로가 되었구요. 긴장감 넘치는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 JOOJOOCLUB - 이 글을 읽으니 얼마전 직원과 함께 벌벌떨며 똑같은 코스를 오르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서리꽃을 보니 더욱 실감이 납니다.
▣ 산초스 - 밧줄이 얼었을때 정말 힘들지요. 장갑을 껴도 금방 젖어버리고 손은 얼고 저도 의상봉과 운악산에서 호되게 당한적이 있었지요. 운해님 일행중에도 직벽 밧줄 5m정도에서 떨어지신 일행이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위험한 산행을 무사히 마치셔서 다행입니다.
▣ 산이좋아(another - 사부님 고생을 단단히 시키셨군요....항상 안전산행 하시기를..덤으로 얻은 숨은벽의 상고대는 정말로 멋지군요...^^
▣ manuel - 윤선배님, 相生하는 삼각사랑을 사수님과 가슴에 담아오심을 함께 기뻐함입니다. 실례되는 언급입니다만, 어려서 이 곳에 살면서 인수봉 바위를 서성거릴 때, 결국 급격한 추위에 생명을 놓은 山人에 대한 가슴아픈 기억이 제게 깊이 남아있습니다. 산사면에 일어난 담백한 자태, 간결한 숨결의 서리꽃이 제 교만한 눈동자를 사로잡네요. 희망의 4월 맞이하시길 기도합니다.
▣ 그물에걸린바람 - 사월에 상고대라 참 환상적입니다. 저는 아직 못갔습니다 숨은벽. 호랑이굴을 자세히 가르쳐주세요 어디로가는지요 항상 즐산 하세요,,,,,,
▣ 운해 - 멋진 눈 꽃 잘 보았습니다. 4일날 바람골 지나 숨은벽을 향해 골짜기 내려가는데 아직 녹지 않는 누이있어
▣ 운해 - 눈이 남아 있더라구요. 추운날 고생 많이 하셨네요? 엔터를 실수하였습니다. 이어주시고 :누이있어"를 지어주세요.
▣ san001 - 이틀후 4월4일만 해도 완전히 봄이었습니다. 참 변화물쌍한 산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김찬영 - 아~~ 하 그래서 4/4일날도 숨은벽계곡과 숨은루트에 눈이 남아있었군요 안산하시기바랍니다
▣ 빵과 버터 - 4월의 서리꽃은 횡재가 아니라 죽음의 꽃이 될뻔 했구려. 포도사랑님은 싸부님을 미필적 사망 방조(?)케 해서 평생을 멍에를 지고 괴로운 여생을 보낼뻔 했잖습니까? 에구...무서분거....산행기는 정말 실감있게 읽었지만 앞으로는 당최 그런 무모한(?) 모험은 하지 마십시오....중 늙은이 간이 오그라 붙었다 펴졌다 경황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