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지맥 답사기◈

  

[제 3지맥]

 

제 3구간

 

[17번국도-고덕산-683봉-임실성수산휴양림]

 

 

2009. 3. 15(일) 날씨 : 맑음(약간 흐림)

 

산행(종주)거리

총 산행거리 : 도상 약 21km

(섬진지맥 18.2km, 삼봉산 왕복 1.3km, 휴양림탈출 1.5km)

 

산행(종주)시간

07 : 20 - 17 : 53(총 10시간 33분 소요)

 

산행(종주)코스

17번국도성수고개→KTF JB성수 기지국→전주-광양간 신설고속도로→721지방도→350봉→379.3봉→420봉→고덕산정상(625m)(제1암봉)→제2암봉→제3암봉→제4암봉→능선분기점(460봉)→삼봉산(529.4m)→능선분기점(460봉)→구암고개→500봉→30번 국도→520.5봉→남계재 →성황당고개→

능선분기점(580봉)→683봉, 삼각점→안부(성수산 자연휴양림 탈출로)→임실 성수산 자연휴양림

 

위치 : 전북 임실군 임실읍, 성수면, 관촌면, 진안군 성수면, 백운면등 접경

 

시간별 진행

07 : 20 17번국도 성수고개

07 : 30 KTF JB성수 기지국

07 : 53 임도

08 : 15 전주-광양간 신설고속도로 공사현장

08 : 29 전주이씨(창수)묘지

08 : 33 후촌고개

08 : 52 남원양씨 가족묘지

08 : 55 721지방도

09 : 18 350봉

09 : 35 379.3봉, 삼각점(임실 309, 1984재설)

09 : 45 능선분기점

09 : 55 420봉

10 : 12 능선분기점(고덕리 하산로)

10 : 32 고덕산정상(625m)(제1암봉)

11 : 05 제2암봉

11 : 35 제3암봉

11 : 47 제4암봉

12 : 04 능선분기점(460봉)(중식 20분)

12 : 24 중식후 출발

12 : 40 삼봉산(529.4m),삼각점(임실 433, 1984재설)

12 : 55 능선분기점(460봉)

13 : 10 구암고개

13 : 30 500봉

13 : 45 30번 국도

14 : 05 무명묘지

14 : 26 520.5봉, 삼각점(임실431, 1984재설)

15 : 18 남계재

15 : 25 성황당고개

16 : 39 능선분기점(580봉)

17 : 08 683봉, 삼각점(임실 429, 1984재설)

17 : 22 안부(성수산 자연휴양림 탈출로)

17 : 53 임실 성수산 자연휴양림(하산끝)

 

☛섬진 제 3지맥의 개요

오수천과 섬진원류를 가르고 호남정맥의 팔공산(1,151m)에서 분기되어 마령치-구름재-성수산(875.9m)-683봉-고덕산(619m)-27번고속국도임실IC-17번국도임실주유소-말치-봉화산(467.6m)

-노산봉(546m)-되재-응봉(606.5m)-번화치(745지방도)-490.9봉-무제봉(555m)-배재-지초봉(571m)-원통산(603.5m)-334.3봉-717지방도(어치고개)-무량산(586.4m)-백이산(531m)-추동고개-284.2봉 등의 산과 고개, 도로를 지나며 전북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남마을부근에서 오수천과 만나면서 섬진강에 꼬리를 내린다(도상거리 약 61.5km) (신산경표의 성수지맥)

 

☛제 3구간 특기

○고덕산정상에서 북동쪽으로 암봉 3개를 연속으로 오르내려야 되는데 로프등 안전시설이 거의 설치되지 않아 극히 주의를 요함. 특히 적설시 또는 우천시는 가급적 산행자제요망.

○이 구간도 능선분기점이 종종 나와 헷 갈리는 곳이 많으므로 독도에 유의해야 되며 잡목구간도 많아 하절기 산행시는 많은 주의를 요함.

 

 

 

 


 

★산 행 후 기

 

≪조선 태조 이성계가 머물다간 임실 성수산의 상이암을 찾아서...≫


 


 

<17번국도 성수육교>


 


 

07시 20분 싱그런 햇살이 대지에 내리앉아 겨우내 움츠리고 미동도 하지 않은 식물들을 다시 잠깨워 약동케 하고 있다.

 

그리고 들녘에는 이제 서서히 영농철을 맞아 농부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역력히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오름길에 본 17번국도 성수고개 및 지맥 남쪽>

 

봄기운이 충만된 임실군 성수면 17번국도 ‘성수면 고향사랑회’ 표석이 있는 성수고개에서 표석위로 올라서며 맥을 이어간다. 조금 오르면 좌측(북쪽)에 임실군 성수면 당당리 마을이 평화롭게 내려다보인다.

 

당당리(堂堂里)는 1406년 조선조 초엽 홍민규라는 사람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하는데. 홍씨는 비파를 잘탔다 하며 그 때마다 산허리에서 메아리쳐 ‘당당당’하고 소리가 났다고 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홍씨는 산울림이 나는 곳을 찾아가보자 햇볕이 잘 들고 지세도 아름다워 당당리(堂堂里)라는 지명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곧이어 빼곡한 송림을 치고 들어가 잠시 후 빠져 나오면 우측에 너른 밭이 나오고 정면에는 기지국이 나타나 어서 올라오라며 길 다란 손을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07시 30분 조금 올라 KTF JB성수 기지국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돌려 나간다. 8분후 풍산심씨 묘역을 내려와 잠시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북쪽으로 정면에는 전주-광양간 신설 고속도로가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임실 관촌의 고덕산이 넘어다 보인다.


 


 

<고덕산 조망>


 


 <당겨본 고덕산>

 

곧이어 우측에 임실군에서 설치한 무연고자 분묘(66기)등이 있는 묘역이 나오고 좌측에는 너른 밭이 나타난다.

 


 


 


 


 


 


 

밭가에 커다란 장송 한그루가 벌목된 채 넘어져 있는데 이런 소나무는 싯가 몇 백만원 또는 1천만원 정도는 충분히 나갈 것 같다.

 

차라리 필요한곳에 기증을 하거나 아니면 팔면 지금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 다소 도움이 될 텐데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곧바로 청주한씨 묘지를 지나 우측으로 돌려나간다.

 

07시 53분 임도를 따라 잠시 오른다. 4분후 통천최씨묘지가 있는 봉에서 좌측으로 돌려나간다. 좌측에 작은 소류지도 내려다보인다.

 

곧바로 고속도로 공사현장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여기서는 고속도로육교(다리)를 깃점으로 하여 좌측으로 내리서야 된다.


 


 
 


 

<전주-광양간 신설고속도로현장>

 

08시 15분 절개지를 조금 내려와 전주-광양간 신설고속도로 공사현장을 가로질러 절개지를 치고 오른다. 곧바로 묘목 조림지가 나타나고 그 위로 올라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돌려 나간다.


 


 


 


 

휴일임에도 고속도로 현장에는 많은 중장비들이 동원되어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굉음이 온 천지를 뒤 흔들어 그저 정신이 혼미스러울 뿐이다.

 

08시 29분 전주이씨(창수)묘지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좌측으로 돌려 나간다. 3-4분후 우측에 무명묘지가 있는 십자로 안부를 가로질러 다시 1분정도 진행하면 고개마루에 내리선다.

 

 


 <후촌고개>

 

08시 33분 좌측에 임실군 성수면 도인리 후촌마을과 우측에 양지리를 잇는 시멘트도로가 나있는 후촌고개를 가로지른다. 빼곡한 송숲으로 이어지고 10분후 320봉에서 우측으로 돌려나간다.

 

후촌리(后村里)는 면소재지 뒤에 있다하여 후촌(後村)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조선조 때에는 효자, 효부가 많이 나와 임금님으로부터 상을 받은 일이 많았다고 하며 임금님의 고마움을 길이 남기기 위하여 후(後)자를 (后)자로 고쳐 부르기로 하였다 한다.

 

08시 52분 좌측에 너른 밭과 남원양씨 가족묘지가 있는 안부를 지나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우측에 성수면 왕방리 영대산(666.4m)과 오봉산 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08시 55분 임도를 따라 내려와 2차선 포장도로인 721지방도로에 선다. 여기서 우측으로 약 1.5km지점에 임실군 성수면 소재지인 양지리가 있다.


 


 

<721지방도>

 

다시 가로질러 희미한 숲을 치고 오른다. 선답자들이 위에서 내려오면서 확실한 길을 찾지 못해서 그런지 표지기가 전혀 안 보인다. 하지만 아래에서 위로 오르는 데는 무조건 직진하여 치고 오르면 되기에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09시 18분 한차례 올라 350봉에서 우측으로 돌려 나간다. 7분후 십자로안부를 지나 한차례 오름을 개시한다.

 

09시 35분 잡초속에 삼각점(임실 309, 1984재설)이 있는 379.3봉을 지난다. 주변에 잡목이 많아 조망은 콱 막혀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등로는 평지성의 호젓한 송숲길로 변하여 일사천리로 걸음을 계속한다.


 


 <379.3봉 삼각점>

 

09시 45분 좌측에 지릉이 분기되는 능선분기점에 선다. 남쪽으로 도인저수지가 지척에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임실읍내도 시야에 잘 들어온다.


 


 

<도인저수지>


 


 

 <임실읍 전경>

 

여기서 지맥은 곧바로 우측으로 90도 돌려 내림길로 이어지므로 길을 잘 찾아 내려와야 된다. 다시 조금 내려와 안부에서 또 한 차례 오르면 420봉이다.

 

09시 55분 좌측에 벌목지대가 나오고 우측에 삼봉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420봉에 올라본다. 정면에서 고덕산이 근엄한 풍채로 시선을 압도하고 어서 올라오라고 하며 굽어보고 있다.


 


 

<고덕산군:아래전부>


 


 


 


 


 


 


 


 

10시 12분 좌측에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 고덕마을 쪽으로 하산하는 능선분기점에서 직진하여 나간다.

 

운수리는 고덕마을과 구암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운수리에 있는 고덕산에 구름이 끼어 비를 내리면 그 물이 여러 마을에 덕을 베푼다 하여 운수리(雲水里)라고 불리우고 있다 한다.

 

구암(龜岩)은 마을에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그 옆에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구암은 장수 팔공산에서 성수산으로 이어진 태평재(대운재)분기맥 이라하여 동산으로 가고 서향하여 고덕산이 이루어 졌다 한다.

 

고덕산을 앞뒤로 ‘성수’라 한 것은 반드시 성스럽고 인자한 마을을 만들고 후덕하여 창생제도를 이루고자 물줄기도 남북으로 갈리운다고 한것에 연유가 있다한다.

 

곧이어 급한 오름길로 이어지고 15분 정도 한차례 된비알을 극복하면 이정표(제1봉 660m, 도착점 1,300m)와 철사다리가 나타나 마지막 시험대임을 알려주고 철사다리를 붙잡고 조금더 오르면 고덕산 정상이다.


 


 


 


 


 


 

10시 32분 우뚝 솟은 암봉으로 된 고덕산정상(625m)에 올라본다. 사방으로 둘러보는 전경은 정말 막힘없이 후련하게 터진다. 맑은 날씨이지만 개스가 많아 원거리 조망이 안 되는 것이 조금 아쉽다.

 

북쪽으로 가까이 내동산(887.4m)이 훤칠한 용모로 시선을 압도하고 북동쪽으로 덕태산(1,113m), 동쪽으로 선각산(1,110m), 진안 성수산(1,059m)과 동남쪽으로 장수 팔공산(1,151m), 등 1천미터 이상 고봉들이 서로 뒤지지 않으려고 경쟁을 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임실 성수산(876m)도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내동산>


 


 

<당겨본 내동산(887.4m)>


 


 

<진안 성수산(1,059m)>


 


 

<중앙좌측:덕태산(1,113m),중앙우측:선각산(1,110m)>


 


 

<장수 팔공산(1,151m)(뒷쪽)>


 


 

<삼봉저수지>


 


 


 


 


 


 


 


 

조망을 마치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암릉을 앞으로 약 1시간 정도 암릉을 타며 오르내려야되는데 지금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된다.

 

조금만 방심하면 황천행으로 갈수가 있으므로 성급하게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최대한 인내하며 조심스럽게 암릉을 타야만 된다. 행정당국에서 이런곳에는 로프설치등 충분한 안전시설을 해놓아야만 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안보인다.

 

조금 지나면 석문이 나오고 석문을 지나면 계속 암벽을 내려오며 또한 오르내려야 되는데 로프도 없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가느다란 슬링줄만 한곳에 매여져 있어 정말로 위험천만하기만 한다.

 

 


 


 


 


 


 


 


 

11시 05분 고덕산 정상(제1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제2봉을 지난다. 다시 급경사의 심한 내리막 암릉길이고 여기도 로프나 안전시설도 전혀 없어 극히 안전에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삼봉산(529.4m)>


 


 

<뒤돌아본 재2봉>

 

11시 35분 한차례 뚝 떨어졌다 다시 올라 또 다른 암봉인 제3봉에 선다. 왼쪽에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의 염북 마을등이 내려다 보인다.


 


 

염북 마을은 충목정(忠木亭)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마을인데 마을의 이름도 임금님이 계시는 북쪽을 생각한다는 충성의 뜻으로 생각 염(念)자와 북녘 북(北)자를 붙혀서 염북(念北)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또다시 고도가 급하게 한동안 뚝 떨어지고 안부에 내리서면 다시 빡센 오름길이다.

 


 


 <뒤돌아본 고덕산군>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일대>

 

11시 47분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제4봉에 올라본다. 서서히 암릉은 없어지고 등로도 조금 완만해진다.

 

7분후 좌측에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 구암마을(앞에서 소개함)과 우측에 성수면 삼봉리를 잇는 임도를 가로질러 오른다.

 

좌측 구암리쪽에서는 산판을 하고 있고 중장비가 산판을 한 목재들을 한곳에 모으고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460봉 오름길에 본 내동산>

 

12시 04분 한차례 올라 능선분기점인 460봉에 선다. 여기서 우측으로 15분정도 가면 삼각점이 있는 삼봉산(529.4m)이 나온다. 지맥은 여기서 좌측으로 돌려 나가야 되므로 독도에 주의하며 헷갈려서는 안된다.

 

한 켠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하며 허기를 채우고 난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삼봉산을 한번 다녀오기로 하고 그쪽으로 향한다(12시 24분).

 

12시 40분 삼각점(임실 433, 1984재설)이 있는 삼봉산(529.4m)에 선다. 주변은 거송들이 포진되어 조망이 되지 않아 다시 걸음을 되돌려 조금 전의 능선분기점으로 향한다.


 


 

<삼봉산 정상부>


 


 <삼봉산 삼각점>

 

12시 55분 삼봉산에서 되돌아와 460봉 능선분기점에서 우측(동쪽)으로 기수를 돌려 내림을 하면서 진행한다.

 

우측에 고개로 오르는 30번국도가 가까이 내려다보이고 잠시후 남원양씨 가족묘지를 내려와 안부에 내리선다.

 


 


 

13시 10분 좌측(북쪽)에 임실군 관촌면 운수리 구암마을에서 우측에 30번 국도를 잇는 임도가 나있는 구암고개를 가로지른다.


 


 <구암고개>

 

곧이어 가파른 오름길로 이어지고 고개에서 고도를 150여m정도 한바탕 된비알을 극복하며 오르면 500봉이다.

 

13시 30분 구암고개를 출발하여 20여분정도 코가 땅에 닿을 것만 같은 급 오름을 해치우고 힙겹게 올라 500봉을 지난다.

 

거목이 포진되어 조망은 없어 곧바로 우측으로 돌려 내리선다. 좌측에 꼭 군부대 막사처럼 보이는 파란색의 조립식건물이 많이 내려다보인다.


 


 

13시 45분 한참 내려와 남쪽에 임실군 성수면 태평리 에서 북쪽에 진안군 성수면 원구신 및 백운면 남계리 오정마을을 잇는 30번 국도에 내리선다.


 


 

<30번국도(진안군 백운면 방면)>
 


 <30번국도(임실군 성수면 방면)>

 

태평리에는 대운마을과 양암마을 등이 있는데 대운마을은 이성계가 이마을을 지나가는데 마을의 집들이 상서로운 구름에 쌓여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양암마을은 해가 뜨면 마을 앞 커다란 바위에 가장먼저 햇빛이 비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원구신(元九臣)은 마을이 왕(王)이 충신을 구하는 혈의 형국이라 해서 구신리(求臣里)라 불렀고, 이 구신리 관내에서 맨 먼저 형성된 마을 이라해서 원구신(元求臣)이라고 했다 한다.

 

그리고 오정마을은 조선중기때 당시 극심한 한해로 말미암아 식수난을 겪고 있던 중 이곳에 우물을 팠더니 신기하게도 맑고 깨끗한 물이 솟아 나와 마을이 차츰 형성되고 번창하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5개의 우물이 보존되고 있어 문자 그대로 오정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한다.

 

고개마루에는 진안군을 홍보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공원쉼터가 있어 오가는 차량들에게 잠시 쉬어가라며 편의 제공을 해주고 있다.

 

30번 국도를 출발하여 위로 오른다. 10여분정도 올라 480봉 어깨에서 정상쪽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돌려 나간다.

 

임도가 시작되고 잠시 후 조망이 터지면서 좌측(동쪽)에 선각산과 성수산등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개스 때문에 뚜렷이 잡히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다.


 


 

<진안성수산(좌),소덕태산(중),선각산(우)>


 


 

<소덕태산(좌), 선각산(우)>


 


 

<당겨본 진안 성수산>


 


 

 <당겨본 소덕태산(좌) 및 선각산(우),중앙 뒷쪽에 덕태산 조망>

 

14시 05분 무명묘지에서 좌측으로 돌려다가 곧바로 직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돌려나가야 되기 때문에 독도에 주의해야 된다. 임도는 끝나고 호젓한 산길로 이어지며 곧바로 전의이씨 묘지를 지난다.

 

14시 26분 한차례 올라 삼각점(임실431, 1984재설)이 있는 520.5봉에서 좌측으로 돌려 나간다. 등로는 여전히 소나무를 베어 임도를 내놓아 안부까지 내림 길이 아주 편안하고 좋다.


 


 <520.5봉 삼각점>

 

15시 18분 좌측(북쪽)에 남계리로 탈출할 수 있고 지척에 남계저수지가 있는 남계재 십자로안부에 내리선다.


 


 

<남계리 일대 및 남계 저수지>

 

남계리는 원남과 분퇴 등의 마을이 있는데 원남 마을은 지금으로 부터 약 2백년전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소위 금계포란(金鷄抱卵)의 형국으로 흐르는 계곡의 상류부락이었다 하여 원남이라 하였고,

 

분퇴마을은 처음에 원남 마을을 구성했던 씨족간에 서로 대립과 갈등이 있어 그중 한분이 분가하여 분퇴 마을을 이룩했다는 설화도 있다고 한다.

 

다시 가로질러 올라 7분후 임도가 양쪽으로 잘나있는 성황당고개를 지난다. 잡목들의 천국이 계속되고 그들의 텃세가 만만치 않다. 곧이어 시야가 열리면서 우측에 잠시 벌목지대가 보인다.


 


 

<성황당고개>

 


 


 

<잡목구간>

 

15시 59분 조금 올라 고스락에서 우측으로 돌려나간다. 여기도 잡목들의 기세가 등등하고 길이 희미하다. 계속 오름길로 이어지고 한동안 묵묵히 발품을 팔며 꾸역꾸역 오른다.

 

580봉을 10여분 남겨두고 아주 빡센 된비알로 이어지고 수북히 쌓인 낙옆들은 눈이 녹아 꽁꽁 얼어붙은 빙판과 같아 너무 미끄러워 위로 오르기가 너무 어렵다. 잡으면 금방 끊어지는 잔가지와 나뭇가지를 붙잡고 겨우겨우 한참동안 힘들게 위로 오른다.

 

16시 39분 한바탕 진땀을 빼고 좌측(북쪽)으로 능선이 분기되는 580봉에 올라본다. 이렇다 할 특징도 없고 중키의 소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며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580봉 정상부>

 

다시 출발하여20여분이상 진행하다 한차례 오르면 아무런 표식도 없는 670봉에 서고 또다시 2분정도 더 진행하면 683봉이다.

 

17시 08분 삼각점(임실 429, 1984재설)이 있는 683봉에 올라본다. 여기도 거목들에게 포진되어 조망은 없어 그대로 직진하여 나간다. 10분후 또 다른 봉우리를 지나 4분정도 내려와 안부에 닿는다.

 


 


 

<683봉 정상부>


 


 <683봉 삼각점>

 

17시 22분 우측(남쪽)에 성수산 자연휴양림으로 탈출할 수 있는 안부에 도착하여 오늘의 종주산행은 여기까지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곧바로 우측으로 돌려 내림을 계속한다.


 


 <성수산 휴양림 내림길 안부>

 

급경사 내림길을 지그재그 하며 3분정도 내려오면 임도에 내리서고 임도를 따라 10분정도 내려오면 또 다른 임도3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직진 임도를 버리고 곧바로 좌측으로 돌려 성수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리서는 임도를 따라 내림질한다. 다시 15분정도 내려오면 성수산 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안부에서 2분정도 내려와 만나는 임도, 게속 휴양림까지 임도따라 내려옴(30분소요)>


 


 


 


 


 


 

<여기서 직진 임도를 보내고 휴양림 거봉산장을 향해 다시 임도 따라 내려옴>


 


 

<성수산 휴양림 산림욕장>


 


 


 


 

17시 53분 지맥의 능선안부에서 30분정도 내려와 임실 성수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하여 섬진 3지맥의 제3구간 답사를 모두 완료하고 마지막 1구간만 남겨 놓은 채 귀가 길에 오른다.


 


 

 


 


 


 


 


 


 


 


 


 


 

<임실 성수산 휴양림 본관건물>


 


 

<나무할아버지 기념탑>
 


 


 


 


 


 


 


 

<임실 성수산 상이암:아래전부>


 


 


 


 

<조선 태조 고황제 어필 삼청동 비각 중수비>


 


 


 


 


 


 

<삼청동 비각>


 


 


 


 


 


 


 


 

전주김의 산행정보방   http://cafe.daum.net/sanjulgi(산줄기를따라서)

 

  

 

 

※☞조선태조 이성계와 관련 깊은 전북 임실군 성수면 마을명소개

 

☞성수리(聖壽里)

이태조가 성수산 상이암에서 100일기도를 올리던 중에 성수만세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 하여

성수리 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왕방리(枉訪里)

이태조가 성수산으로 백일기도를 드리러 가면서 이 마을에 들려 쉬어갔다고 하여 왕방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조치리(朝峙里)

이태조가 성수산에서 백일기도를 할 때 아침에 이재를 넘었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마을이 재 밑에 있다 하여 아침재 라고 불리워졌다 한다.

 

 

≪성수산과 상이암 설화 ≫

성수산은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가 얽혀 있는 명산으로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되어 장안산과 사두봉, 신무산을 지나 팔공산을 솟구친 후 팔공산에서 북쪽으로 진안의 성수산과 마이산, 부귀산등으로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을 보내고 서쪽으로 가지를 뻗어 첫 번째로 만나는 산봉우리이다

 

산의 높이가 876m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울창하며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나다. 성수산이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면서 야영시설과 취사시설, 산림욕장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관광객들에게 역사체험과 더불어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성수면 성수산 상이암에는 고려와 조선의 개국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말기 도참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도선스님이 성수산의 산세가 비범하여 천자를 맞이할 성지인 것을 알고 왕건에게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대망을 성취할 것이라 권하였다.

 

백일기도를 마쳤는데도 별다른 일이 없자 왕건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에 목욕재계하고 다시 3일간 간절히 소망을 빈 끝에 마침내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았다. 크게 기뻐한 기뻐한 그는 그곳을 환희담(歡喜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왕건은 태봉의 궁예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어 신라를 복속시킨 뒤 국호를 고려라고 고치고 태조가 되었다. 도선스님은 이를 기념하여 그 자리에 도선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고려 왕건의 건국설화에 이어 조선건국의 태조 이성계도 이 성수산에 얽힌 건국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가 쇠퇴하던 말기,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하는 대공을 세우고 남원을 지나 전주로 가던 중 도참설의 대가이던 무학대사는 야심에 찬 그를 도선암에 안내한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간절히 기도한 끝에 용이 나타나 자신의 몸을 세 번 씻어주는 길몽을 꿨다. 그는 크게 기뻐하여 붓을 들어 그곳 바위에 삼청동(三淸洞)이라고 썼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이곳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하여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자신이 삼청동이라고 쓴 바위를 어필각(御筆閣)을 지어 보존하게 했다고 한다.

 

 

≪상이암[上耳庵]≫

전북 임실군 성수면(聖壽面) 성수산(聖壽山)에 있는 암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고, 1394년(태종 3)에 각여(覺如)가 중수하였으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불탄 것을 1909년 대원(大圓)이 중건하였다.

 

그뒤 의병대장(義兵隊長) 이석용(李錫庸)이 이 절을 근거지로 삼아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왜병(倭兵)에 의해 소실(燒失)되었다가 중건되었는데,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 상이암재건위원들이 세운 것으로, 당우(堂宇)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