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지맥 답사기◈

 

 

[제 7지맥]

 

제 2구간

 

[27번국도불로치-대명산-차일봉-15번국도]

 

2008. 12. 18(목) 날씨 : 맑음

 

산행(종주)거리

도상 약 12km

 

산행(종주)시간

09 : 30 - 15 : 45(총 6시간 10분 소요)

 

산행(종주)코스

불노치(호남고속도로 및 27번국도)→대명산(498.3m)→420봉→헬기장 및 임도→울산김씨묘지→

차일봉(666.9m)→643.9봉→620봉→550봉→450봉→헬기장 및 산불감시초소→15번국도(성덕고개)

 

위치 : 전남 곡성군, 삼기면, 석곡면, 겸면, 오산면, 화순군 북면 등 접경

 

※일정정리

07 : 30 전주출발

09 : 15 남원, 곡성 경유 전남 곡성군 삼기면 불로치 도착(산행준비 15분)

 

시간별 진행

09 : 30 27번국도 유풍관광농원입구 불로치(약 200m)

09 : 45 호남고속도로 우회 반대편 고개마루

10 : 25 무명묘지(2기)

10 : 37 대명산(498.3m), 삼각점(독산426, 1985재설)

10 : 57 십자로 안부

11 : 10 420봉

11 : 20 헬기장 및 임도

11 : 31 울산김씨묘지

12 : 05 차일봉(666.9m), 삼각점(독산422, 1985재설)

12 : 23 암봉전망대(1), 중식(37분)

13 : 00 중식후 출발

13 : 11 암봉전망대(2)

13 : 26 643.9봉, 삼각점(독산304, 1980재설)

13 : 46 620봉

14 : 10 550봉

14 : 31 헬기장

14 : 51 450봉, 삼각점(독산416, 1985재설)

14 : 57 무명묘지(안부)

15 : 27 헬기장 및 산불감시초소

15 : 40 15번국도(성덕고개)

 


 


<다른이름으로 그림저장(S)>하여 보면 원본파일을 볼수 있읍니다.
 


 

<다른이름으로 그림저장(S)>하여 보면 원본파일을 볼수 있읍니다.

 


 



 


 

 

 

★산 행 후 기

 

 

≪심청전 설화와 유서깊은 관음사와 민족상잔 비극현장인 백아산이 있는 지역을 찾아서

 

 


<27번국도에서 본 대명산(뒷쪽)> 
 


<27번국도 불로치 유풍관광농원입구> 
 


<27번국도 불로치 : 삼기면 방향> 
 


 <27번국도 불로치 : 석곡면 방향> (국사봉이 조망됨)

 

 

09시 30분 제법 매서운 기류가 고개마루를 맴돌며 허리를 파고들어와 추위를 느끼게 하는 호남고속도로변 27번국도 유풍관광농원입구 불로치에서 섬진7지맥의 2구간종주를 이어간다.

 


 


<호남고속도로 근촌육교>

 

 

호남고속도로를 우회하기 위하여 좌측으로 돌려 27번 국도를 따라 200여m정도 가다보면 호남고속도로 와 27번국도가 교차하는 터널(근촌육교)이 나타난다.

 

터널을 빠져 나오면 정면에 전형적인 산골마을인 삼기면 근촌리의 수금마을 등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국사봉 기슭에 위치한 골짜기와 숲으로 둘러 있어 풍치가 좋아 수금(繡錦)이라 부른다고 한다.

 

다시 우측으로 붙어 시멘트 도로를 따르다 보면 2-3분후 근촌저수지가 왼쪽에 나타나고 5분정도 더 오르면 녹색콘테이너 박스가 있는 고개마루에 선다.


 


<터널을 통과하여 우측으로 이동> 
 



 <근촌저수지>

 


 <시멘트 도로따라 오름>

 

09시 45분 조금전 유풍관광농원입구에서 호남고속도로를 우회하는데 15분정도 걸려 다시 반대편 고개마루에 도착하여 농장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들어간다.


 


 <양쪽에 철조망을 끼고 좁은길로 오름>

 

7분정도 오르면 길가 우측에 청송심씨낙승공파합동제단(묘지)이 나오고 뒤를 돌아보면 지난번 내려온 통명산(765m)이 제법 우뚝 솟아 품위 있게 보인다.


 


<청송심씨 낙승공파 합동제단> 
 


<청송심씨 묘지에서 바라본 통명산> 
 


 <당겨본 통명산>

 

다시 밤나무과수원으로 오르는 임도를 따라 5분정도 오르면 임도가 좌측으로 돌아가는 분기점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붙어 올라야 되기 때문에 독도에 주의해야 된다. 초입은 길이 희미하고 잠시 밤나무과수원 가운데로 나있는 길을 따라 오른다.

 

서서히 뚜렷한 등산로가 나타나며 10여분정도 오르면 우측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는데 그곳을 조금 지나 전용 등산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붙어 길도 없는 능선을 고집하여 한동안 빡세게 오른다.

 

조금 전의 전용등산로를 따라 우회하며 올라도 되나 그러면 작은 골짜기를 건너 즉 물을 건너야 되기 때문에 그대로 희미한 능선을 따라 가뿐숨을 몰아쉬며 고도를 높인다.

 

10시 25분 한바탕 힘든 오름을 마치고 무명묘지 2기가 있는 곳에 올라본다. 조금전 우측으로 보냈던 전용등산로와 다시 만나고 좌측으로 돌려 조금 따라가는 척하다 직진로를 버리고 곧바로 우측으로 돌려 무명묘지 뒤쪽으로 나있는 호젓한 장송 숲을 따라 10여분이상 한참 더 오름을 계속한다.

 

 

 

<대명산 도착전 만나는 무명묘지> 
 

10시 37분 잡목과 가시나무가 천국인 대명산(498.3m)에 올라본다. 주변조망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고 삼각점(독산426, 1985재설)도 낙옆 속에 꼭꼭 숨어있어 보물찾기 하듯이 어렵게 찾아본다.


 


<잡목과 가시나무천국인 대명산정상(498.3m)> 
 

 

<대명산 삼각점>

 

 

지맥은 다시 삼각점 있는 곳에서 10여m정도 후퇴하여 우측(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계속된다. 서서히 내림길로 이어지고 잠시후 정면에 차일봉이 눈앞에 바짝다가오고 우측(부쪽)에 농소소류지와 삼기면이 최악산(697m)이 시야에 들어온다.

 

 

 

<차일봉>

 

10시 57분 대명산에서 15분정도 내려와 좌측(남쪽)에 무명묘지 1기가 있고 그쪽으로 내려가면 곡성군 삼기면 수산리 서편, 동편, 수산동방면으로 내리서는 안부를 지난다.

 

가로질러 오르면 잡목이 조금 나타나고 벌목되어 아무렇게나 널 부러진 소나무시체들이 곳곳에서 보행을 방해하고 있다.

 

11시 10분 잡목이 무성한 420봉에 올라 좌측으로 돌려 나간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지릉을 따라가면 삼기면 반석마을과 호남고속도로 곡성IC쪽으로 탈출할 수가 있다.

 

다시 제법 성가시게 하는 잡목과 씨름을 하며 10여분정도 내려오면 갑자기 눈앞에 시야가 터지면서 헬기장과 너른 임도가 나타난다.



 


 

11시 20분 50평정도의 잘 관리된 헬기장을 지나 바로 옆에 있는 임도에 내리선다. 임도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고 남쪽 삼기면 수산리 서편에서 북쪽 의암리 쇠미골을 잇는 임도인 것 같다.


 

 

<임도 남쪽 : 수산리 방향> 
 


 <임도 북쪽 : 의암리 방향>

 

고개를 가로질러 오르려하는데 잡목들의 기세가 너무도 완강하여 도저히 뚫을수 없어 임도에서 약간 좌측으로 내려와 장송사이로 무조건 치고 오른다.

 

조금 오르면 좌측에는 장송이 우측에는 키 큰 삼나무군락이 등로 양쪽에서 극명의 대조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 나타나고 20여분정도 뚜렷하고 양호한 등로를 따라 차일봉을 향해 서서히 오름을 계속한다.

 

11시 31분 울산김씨묘지를 지나 위쪽으로 오른다. 잠시후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대명산과 그뒤로 통명산, 멀리 지리의 반야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좌측에는 지척에서 국사봉이 떡 버티며 서있다. 곧이어 산죽군락이 나타나는데 키를 넘는 산죽과 터널은 거의 끊임없이 차일봉 정상부근까지 앞으로 25분정도 정말 지겹도록 이어진다.

 


 


<차일봉 오름길에 본 통명산(뒤쪽) 및 대명산(앞쪽)> 
 


<당겨본 통명산 및 대명산> 
 


<차일봉 오름길에 본 지리의 반야봉> 
 


<당겨본 반야봉> 
 


<국사봉> 
 


<20여분 이상 계속되는 지겨운 산죽터널> 
 


 

 

12시 05분 여기도 잡목천국이고 삼각점(독산422, 1985재설)만이 홀로 앉아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차일봉(666.9m)에 올라본다. 힘들었던 발품에 대한 보답은 아예 잡목들에 의해 기대를 져 버려 그냥 그 자리를 떠나 걸음을 계속한다.

 

 


<차일봉 정상(666.9m)> 
 

 

 

<차일봉 삼각점>

 

여기서 지맥은 좌측으로 돌려 643.9봉까지 잠시 북서진하다 643.9봉을 지나 15번국도 성덕고개까지는 계속 남서진하며 이어진다.

 

그리고 차일봉에서 5분정도 걸음을 되돌려 남진하면 분기점이 나타나는데 동쪽로선은 지금까지 답사해온 섬진 7지맥의 통명지맥이고 분기점에서 그대로 직진(남진)하면 섬진 7지맥의 모후지맥이다.

 

여기서 직진(우측)하여 지릉이 갈라지는데 그쪽으로 내려가면 쇠미골과 의암저수지가 나온다. 쇠미골은 의암 저수지 윗쪽 주변의 산이 소가 누워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 우음(牛飮)마을 또는 쇠미골이라고 부르고 있다한다.

 

차일봉에서 기수를 좌측으로 돌려 나가면 또다시 산죽군락이 나타나 심기를 불편케 하고 있다. 다행히 산죽군락이 길지 않아 다소 안도감이 들지만 조금전 차일봉에 오를 때의 키를 넘는 홈통숲 그리고 반듯이 서서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몸을 반절 엎드린 채 거의 기다시피하며 뚫고 지나가야 하는 산죽군락은 여간 고역이 아니기에 산죽이 나타나면 썩 기분이 좋지 않다.

 

12시 23분 사방으로 시원스런 조망을 선사하는 암봉전망대에 올라본다. 저 멀리 지리의 반야봉이 육중한 체구로 단연 시선을 압도하고 그 앞으로 통명산도 제법 산세와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우측에선 지척에서 차일봉이, 좌측에는 거대한 암봉군의 최악산이 각각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전망대는 오늘 산행구간의 가장 하이라이트 인 것 같다. 오늘도 때를 지나 바람을 피해 한쪽에 앉아 도시락을 풀고 점심을 때운다.

 

 

<최악산(697.1m)의 암봉군>

 



 


<통명산(765m)> 
 


<지나온 차일봉 정상> 
 


<당겨본 지리산 반야봉> 
 


<지리산 반야봉능선(북쪽)> 
 



 <지리산 반야봉 능선(남쪽)>


 

 

<삼기면 주변풍광(원경)>



 

 

<주변풍광(통명산군)>

 

 





 

13시 00분 점심을 끝내고 암봉전망대를 출발하여 가다보면 곧이어 능선에 돌로 쌓아 무너진 석축(울타리)이 종종 나오는데 과거에 어떤 성터흔적처럼 보인다.



 



 


13시 11분 호남정맥의 최고봉인 전남 광양 백운산(1,218m)에 이어 두 번째 주인격인 광주의 진산 무등산(1,187m)이 한눈에 쏘옥 들어오는 두 번째 암봉전망대에 올라본다. 그리고 좌측에는 화순의 백아산(810m)도 시선을 붙잡아 카메라에 함께 담아본다.


 


  


<전망데에서 본 백아산(좌측) 및 무등산(중앙)> 
 


<무등산의 위용> 
 


<당겨본 무등산> 
 


 <백아산>

 

13시 26분 한차례 올라 잡초 속에 삼각점(독산304, 1980재설)이 숨어있다 산객을 보고 물끄러미 모습을 드러내는 643.9봉에 올라본다. 여기도 조망은 뛰어나는데 지리의 반야봉과 지척의 최악산이 잘 조망된다.


 


<643.9봉 삼각점> 
 


<최악산> 
 

 

<당겨본 최악산> 
 

643.9봉을 출발하면 2분후 능선분기점이 나오는데 여기서 지릉이 분기되는데 북서쪽으로 갈라지는 지릉은 검장산(485.7m)쪽으로 이어지고 섬진7지맥은 방향을 서서히 남서쪽으로 틀면서 이어진다.

 

기수를 좌측으로 돌려 2-3분정도 내림을 하며 진행하다보면 왼쪽에 화순군 북면 방리 송탄 2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데 햇살을 듬뿍 받은 저수지는 마치 금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휘황찬란하기만 하고 그뒤로 보이는 백아산의 위용 또한 근엄한 모습으로 시선을 끌고있다. 그리고 발아래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인 방리의 방촌마을이 너무도 평화스럽게 내려다 보인다.

 

방리(芳里)의 지명은 방촌(芳村)마을명을 취하여 지은 것이고, 방촌마을(芳村)의 뜻은 산 아래 형성되어 있어 곶모실이라 하였는데 후에 산을 의미하는 곶자가 곶<<芳(방)으로 와전 한자로 표기되어 방촌이라 한 것이라 한다.


 

 

<백아산군>

 


 

<당겨본 백아산> 
 


<금빛찬란한 송탄 2저수지> 
 

13시 46분 한차례 올라 620봉에서 좌측으로 돌려나간다. 송탄2저수지가 더욱도 가깝게 내려다 보이고 이어지는 등로는 준마가 달릴수 있는 평지성의 호젓한 송숲길로 이어져 모처럼만에 너무도 쾌적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유유자적한 산행을 계속한다.

 

앞에서는 무등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며 어서 오라 손짓을 하고 있고 왼쪽에는 백아산이 새로운 면모를 들어내며 유혹하고 있다.

 

 

▲백아산(白鵝山: 818m )

 

위치 : 전남 화순군 북면 이천리, 원리, 수리, 송단리, 노치리, 용곡리 등 접경

 

☛소개(1)

 

백아산(白鵝山)은 호남정맥상의 연산(連山:508.1m)에서 남동으로 갈라진 지맥에 솟아있는 수려한 명산이다. 절벽 위에 넓게 조성되어 있는 마당바위와 천불봉 정상인 매봉을 잇는 능선은 석회석으로 된 흰색 암봉과 암벽 및 기암이 솟아 절경을 이룬다. 안부에는 철쪽군락지가 있으며 백암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고 5월에는 철쪽제를 지내고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마당바위와 정상 암군에 오르면 무등산, 강천산, 모후산, 지리산 등의 조망이 뛰어나고, 남쪽 산록 계곡변 일대에는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숙박시설과 취사도구, 체련장 등이 마련되어 있고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지형도상 『白雅山』 한자 표기는 화순군지를 근거로 『白鵝山』 으로 바로 잡았다(雅:바를아 →鵝:거위 아).

 

☛소개(2)

 

무등산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에서 잠시 벗어나 솟아 있다. 가까운 서쪽의 무등산과 멀리 동쪽의 지리산 천왕봉까지 조망될만큼 시야가 트여 있다. 산이 석회석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흰 거위떼를 보는 듯 하여 백아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 큰 규모가 아니나 산릉이 흰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소나무 숲길과 산죽나무 길을 따라 산행하는 중 볼거리가 많다. 마당바위 부근과 남쪽 능선의 암릉이 대표적이며 철쭉 군락지도 있다.

 

백아산은 무등산과 지리산을 잇는 요충지라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유격대가 진지를 세우고 병기공장을 지어 은거했다. 유격대가 천연 초소격으로 이용했던 마당바위 등 백아산 일대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자세하게 묘사되었다.[1]

 

가까운 거리에 화순온천이 있고 썰매장 등을 갖추어 일대가 광주광역시의 배후 휴양지로 이용된다. 백아산 자락에는 친환경 농업으로 재배한 토산품인 불미나리 인진쑥즙 생산지가 있다.[2]

 

 

☛소개(3)

 

암봉과 철쭉의 절묘한 조화 전남 화순 백아산

http://www.simonsearch.co.kr/story?at=view&azi=44852

 

-자료종합-

 

 

 

 

<화순군 북면 덕고개 부근에서 본 백아산의 풍광 - 답사후 촬영> (아래전부)

 

 

 

 

 

 

 

14시 10분 또 한차례 올라 550봉에서 직진하여 나간다. 1분후 능선분기점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지릉이 분기되는데 그쪽으로 진행하면 남진을 하며 곧장 송탄2저수지 제방쪽으로 빠지게 되어 결국은 지맥을 이탈하므로 독도에 주의해야한다.

 

따라서 능선분기점에서 우측(남서진)으로 돌려 내림질하며 진행해야 된다. 곧이어 우측에 오산면 선세리 동구마을과 검장산 아래에 자리한 심청전설화로 유서깊은 관음사도 내려다보인다.

 

 

★관음사(觀音寺)

 

소재지 :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27

 

☛소개(1)

 

관음사는 곡성군 오산면 선세 마을에서 계곡을 타고 5km쯤 더 올라간다. 이 관음사 뒤에 검장산이 있고 동남쪽에 성덕산이 있는데 이 두 산맥이 선세리 부락까지 나란히 뻗어 5km가량 좁은 계곡을 이루어 놓고 있다.

 

관음사는 백제 분서왕 3년(300년)성덕보살이 전남 벌교에서 금동 관세음보살상을 모셔와 봉안하여 창건한 남한 제일의 백제 고찰이며 내륙 유일의 관음성지로서 그 가치가 크다.

 

6·25당시 공비들이 오래도록 이곳에 남아 관음사를 기지로 삼자 이를 없애기 위해 이 사찰에 불을 지르게 됐고, 그로 인해 국보 제 273호로 지정되어 내려오던 고려조 건물 원통전(圓通殿)이 타고 그 안에 보존된 국보 제 214호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불에 타 머리 부분만 남아 있다.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존 건물 8채 중 3채는 타지 않고 남은 건물이고 4채는 1954년 박창운 스님이 이 절 1km쯤 위에 있던 대은암(大隱庵)을 이축한 것이다.

 

관음사는 고대소설 심청전의 원류로 추정되는 관음사사적기(원홍장설화)가 순천 송광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관음사는 문화재자료 제 24호이다.

 

 

☛소개(2)

 

 

1. 위치:전남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뒤에 검장산,동남쪽에 성덕산이 있는 곳

 

2. 창건과 내력: 백제 분서왕 3년(AD300년) 성덕보살이 전남 벌교에서 금동관세음보살상 을 모셔와 창건한 남한 제일의 백제의 고찰이며 내륙 유일의 관음성지며, 6.25때 국보 273호로 지정되어 온 고려조 건물 원통전이 소실되었고, 그 안에 보존된 국보 214호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불에 타 머리 부분만 남아 있다.

 

3. 창건설화:고대소설 심청전의 원류로 추정되는 원홍장 설화가 전해 온다.

대흥이란 고을에 상처한 장님 원량(元良)이라는 사람이 원홍장(元洪莊)이란 효녀 딸과 살고 있었는데 홍법사(弘法寺) 화주승 성공대사를 만나게 된다.

 

"소승이 금강불사의 원을 세워 지성으로 백일기도를 봉행하여 마지막 회향하는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부처님께서 현몽하시기를 " 내일 기도를 마치고 길을 나서면 반드시 장님을 만날 것이다. 그는 이번 불사에 대단월(大檀越: 큰 시주)이 될 것이니라 하셨으므로 이렇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원봉사는 말을 잊고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겨우 입을 열어 "집에는 곡식 한줌 없고 밖에 나와봐야 내땅 한뼘 없는 처지인데 무슨 수로 시주를 할 것입니까? 다만 나에게 딸린 것이 있다면 딸자식 하나가 있을 뿐인데 이 아이로써 금강같은 불법에 선근 인연이 되고 혹시 대작불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데리고 가서 좋은 도리를 생각해 보시오..."

 

라고 하였다. 홍장의 나이 이때 불과 열 여섯이었다.

 

아버지 원량을 눈물로 이별하고 소랑포에 쉬고 있는데 붉은 배 두척이 나타나 "참으로 우리 황후마마이십니다." 라면서 진나라의 사신인데 왕이 왕비를 잃고난 뒤 현몽하기를 "백제 땅에 황후 될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 태워오라."는 바에 따라 자기들은 왕의 분부를 받고 왔으며 갖고 온 금은보화 등을 내려 놓는 것이었다.이리하여 원홍장은 아버지를 위하여 선근종자(善根種子)가 될 결심을 하고 진나라에 가서 황후가 되었다.

 

그 후 신심이 깊은 황후는 관음상을 조성하여 배에 실어 백제로 보냈는데 이를 성덕이란 처녀가 발견하여 지금의 관음사 자리에 관음상을 모셨고 관음사가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개(3)

 

<성덕의 연기 설화>

 

옥과(玉果·현 곡성군 옥과면)에 살던 성덕(聖德) 여인이 산책할 겸 해변에 이르렀을 때 바다에서 한 척의 돌배(石船)가 점점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배안에서 무언가 찬란한 빛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배 안에는 관음금상이 실려있는 게 아닌가. 관음금상에서 광채가 빛나고 있었음을 확인하고 범상치 않은 일이라고 여기며 모셔야할 곳을 찾으려고 관음불상을 등에 업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무게는 마치 솜털처럼 가벼웠다. 모실 곳을 찾아 길을 떠나는데 한 곳에 이르자(지금의 성덕산)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지자 모실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라고 판단하고 터를 잡아 원불로 모셨으니 그곳이 지금의 관음사 이다. 이리하여 성덕은 관음사의 개산조(開山祖)가 되었으며 후세 사람들은 성덕여인의 이름을 따서 성덕산(聖德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관음사 뒤로는 검장산이 동남쪽 방향에는 성덕산이 관음사를 보듬어 안고 있다. 관음사 전화는 061-362-4433.

 

<찾아가는 길>

옥과IC→국도15호선 화순 동복방향→심청효심공원→성지 관음사 표석→선세마을→성덕마을→관음사

 

<주변 볼거리>

심청의 얼이 깃든 효심공원=곡성군은 '효'의 표상인 효녀 심청의 효심을 선두로 효자·효부·열녀가 500명 이상이나 포상되어 내려오고 있는 효행의 고장이기도하다. 광주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옥과 IC를 빠져나와 화순방면 15번 국도를 달려 오산면 소재지를 지나 4분정도 가면 선세 마을을 들어가기 전 관음사 입구삼거리에 있는 심청공원에 이른다.

 

심청 이야기 마을=성덕마을을 지나 관음사길로 향하여 달리면 왼편으로 선세마을이 포근히 자리한 마을풍경은 마치 수채화 같다. 송정(松亭)마을 골짜기 길을 10여분 올라가면 인적이 끊겨 이끼와 먼지로 뒤집어쓴 가옥 몇 채만 남아있다. 이곳이 바로 심청이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산과 산 중첩 마디마다 숲의 침묵뿐 되돌아오는 건 빈 메아리뿐인 완전한 오지이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 순수함의 완연한 푸르름은 도처마다 질펀하다.

 

 

 

 

<관음사 입구 표석 및 목장승 >


 

 

 

<관음사와 심청소개 안내판>



 

<계곡을 잇는 관음사의 누교>

 

 

<측면에서 본 관음사 누교>

 


<관음사 경내>


 


<관음사 경내>


 



 

<우리나라 유일의 어람관음상(漁藍觀音像)>

 

 

-자료인용(※관음사관련 사진자료포함)-

 

 

 

 

 

14시 31분 헬기장을 지난다. 다시 조금 올라 6분후 무명묘지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는데 곧바로 왼쪽에 간벌지역이 나타나고 그뒤로 백아산의 암봉군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14시 51분 한바탕 오름을 극복하고 삼각점(독산416, 1985재설)이 있는 450봉에 올라 곧바로 내림질한다.


 

 

<450봉 삼각점>


 

급비탈을 내려오는데 수북히 쌓인 낙옆이 너무 미끄러워 아예 제동을 포기하고 엉덩이를 땅에 대고 신나게 눈썰매마냥 낙옆 썰매를 타고 내려오며 모처럼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에 빠져보는 여유도 부려본다. 잠시후 우측에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마을과 성덕저수지가 가깝게 내려다 보인다.

 

성덕(聖德)마을은 관음사 골짜기에 성덕봉(聖德峯)이라고 하는 봉우리가 있어 그 지명을 따라 정하였으며 관음사 연기설화의 주인공인 성덕처녀의 전설이 전하는 마을이라 한다.

 

14시 57분 무명묘지가 있고 좌측(남쪽)에 화순군 북면 원리쪽으로 탈출할수 있는 안부에 내리선다. 누군가가 묘지위에 10m이상 되는 큰 소나무를 무참히 베어 그대로 눞여 방치해 놓은 것이 너무도 안쓰럽기만 보인다.

 


 



 


직진하여 다시 희미한 길을 치고 들어가면 곧바로 하늘을 받치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 적송이 너무도 멋지게 보인다. 안부에서 3분정도 오르면 묘를 이장한 너른공터가 나오는데 여기서 북쪽으로 작산(588m)이 지척에 보이고 남쪽으로 백아산 그리고 정면에 무등산이 차츰더 가까이 다가온다.

 

 

 

<작산:588m)> 

 

 

<오뚜기 바위> 


남도 강진의 덕룡산을 닮은 백아산은 신비롭게만 가슴에 다가오며 한번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이어지는 등로는 또다시 훤칠한 체구의 장송들이 앞에서 도열하며 길안내를 하고 있고 수북히 쌓인 낙엽을 가르며 신나게 진행해 나간다.

 

 

 

<가까히 당겨본 백아산> 

 

 

 

 

 

 

 

15시 07분 방치되어 어린소나무를 식재한 헬기장에 올라 우측으로 진행하는데 길목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잡목세계에서 제법 명성이 나있는 맹감넝쿨이 위아래에서 포위를 하며 진로를 방해하고 있다.

 

뚫고 나가면 하늘을 향해 승천을 시도하려는 용(龍)처럼 매끄럽게 쭉쭉 뻗은 장송들이 너무도 기개 넘치게 보인다. 한참 후 임도가 나타나고 1분정도 따르다보면 헬기장과 산불감시초소가 기다리고 있다.


 



 



 



 


 

15시 27분 100여평 정도의 너른 헬기장과 한켠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을 지나 직진하여 들어간다. 곧이어 우측에 고개마루로 오르는 차량들의 힘겨운 함성소리가 귓전에 들려오고 5분정도 희미한 송숲길을 따라 내려오면 갑자기 눈앞에 산허리를 절단하여 도로를 만든 아찔한 급절개지가 나타나 우회하여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15번 국도 성덕고개에서 본 호남정맥 괘일산(뒷면 좌측) 및  설산(뒷면 우측)>

 


<15번 국도 성덕고개 : 화순군 북면 원리 방향> 

 


 <15번 국도 성덕고개 :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방향> 

 

 

15시 40분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에서 화순군 북면 원리를 잇는 15번 국도 성덕고개에 내리서서 섬진 제 7지맥의 2구간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여 모든 답사산행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