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08년5월17일(음력4월13) 날씨: 맑음


 

산행지:백두대간 32구간


 

산행자: 한산님, 그대로님. 나


 

산행코스: 구룡령~갈전곡봉~왕승골~조침령~그리고 한계령까지...

 

산행거리 :44.34km(구룡령~조침령=21.25km , 조침령~한계령=23.9km)

 

  산행시간:22시간 (구룡령~조침령=8시간57분 , 조침령~한계령=13시간03분)

 

쇠나드리 나무꾼과 선녀(저녁식사 및 휴식)5시간14분

 

소요시간 27시간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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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 번 구간은 이름만 들어도 정다운 우리말로 가득한 구룡령에서 한계령 까지이다.

방태천 환주도(3둔 5가리골)


 

구룡령을 지나 갈전곡봉에 이르러 방태산으로 가지 줄기를 보내고 조침령을 지나 점봉산에서 곰배령 줄기를 보내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한계령(산경표에는 한계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지금은 한계령을 중심으로 점봉산을 포함하여 남설악이라 한다)에서 인제방향으로 가리산 줄기를 보낸 후 설악산으로 마루금은 이어진다.


 

갈전곡봉에서 서쪽으로 보내는 가지줄기에는 삼봉약수로 유명한 가칠봉을 지나 갈전곡봉에서 남서방향으로 개인산과 침석봉과 숫돌봉으로 보낸 후 서쪽으로는 주억봉을 지나 방태산과 수리봉을 보내 내림천에서 산줄기를 내리게 한다.


 

갈전곡봉에서 북진하는 백두대간은 황소도 날려 보낸다는 바람으로 지명을 얻는 쇠나드리를 지나 조침령에서 쉬어가다 북암령과 단목령까지 산줄기를 낮추었다가 점봉산을 일으켜 세운다.


 

점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가지줄기에는 작은점봉산을 지나 야생화 천국으로 유명한 곰배령을 낳고 잿목을 지나 가칠봉(인제)솟구친 후 방동교 아래에서 방태천으로 산줄기를 내린다.


 

이러한 산줄기를 연결하는 내경에 이르기를 십승지 중 가장 오지에 속한다는 3둔5가리[정감록에는 3둔4가리로 적혀있다]가 있다.


3둔은 홍천군 내면 미산리에 있는 골의 이름으로 (달둔.생둔.월둔)일 말하고 5가리는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와 진동리 사이의 방태천 따라 이루어진 아침가리.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곁가리(확실한 위치파악이 안 되고 있음)를 말하는데 모두 깊은 골짜기를 이름이다.(3둔4가리로 보는 것은 곁가리에 대한 위치를 알지 못함이나, 주민들은 곁가리와 적가리를 같은 곳으로 보고 있다)


 

“달둔.생둔.월둔“의 둔(屯)은 산자락으로 보았으며 오가리의 “가리”의 뜻은 사람이 농사를 지을만한 골(계곡)이나 밭을 개간할만한 산비탈을 일컬음이다.


 

 방태산을 중심으로 남사면인 구룡령 방향(숫돌봉아래)에 “3둔“이 자리하고 북쪽의 방태천 주변으로 5가리가 있다.


 

5가리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아침가리는 밭뙈기가 너무 좁아 아침 해가 들 때쯤이면  밭을 모두 갈아버릴 수 있어 “아침가리“라 하고 한자로“朝耕洞”이라 쓰며 예전에는 정감록의 풍수지리사상을 신봉하는 함경도와 평안도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 화전을 일으키며 20여 가구가 살았으나 무장공비 사건으로 소개(疏開)되어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단 한 가구(사재봉씨 거주)만 남아 있다.


 

조경동계곡에는  20여가구의 자녀들을 위한 조경분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교되어 여름철이면 휴양소로 쓰이고 있으며 명지가리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는 계곡길은 천혜의 비경으로 첩첩산중이라 여름철 트래킹으로 최고의 코스를 자랑한다.


 

또 한 이곳에는  많은 약수터가 있는데 방동리의 방동약수. 가칠봉의 삼봉약수.방대산 대개인동의 개인약수. 명지가리의 명지약수.갈전곡봉의 갈전약수,응복산의 불바라기약수,구룡령의 구룡약수.등이 있으며 이 중에 개인약수가 가장 유명하다.


 

여기는 유테스코가 지정한 우리나라 최대의 생태계 보로구역으로 야생화의 천국이다.


 


 

산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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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다 하고(하늘이 높다고 하더라도)


 

 발저겨 서지 말며( 발꿈치를 돋 우고 서지 말고)


 

땅 이 두텁다고(땅이 두텁다고)


 

마이 밟지 말을 것이며(마구 밟지 말아야 하리)


 

하늘 따 높고 두터워도(하늘과 땅이 높고 두텁다고 하더라도)


 

 내 조심하리라 (나는 조심을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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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조선 숙종 때의 정치가이면서 가객으로 이름 높았던 주의식(朱義植·연대 미상)의

글이다,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군자의 몸가짐임을 깊게 강조한 것이다)

[출처] [백두대간 대장정 제22구간 / 갈전곡봉] 지명|작성자 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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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전 구룡령에까지 어떻게 갈까?

하는 고민은 의외로 쉽게 해결 되었다.

 

원래 목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막차를 이용 해 양양까기 가서 새벽녁에 콜~밴으로 구룡령에 가기로 하였으나

동해에 거주하시는 동해바다님이 상경, 제사를 모시고 내려가는 길에 픽업을 해 주겠다고 하여 서울대전철역1번출구에서 당일새벽1시30분에 만나 구룡령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먼 길을 태워다 주신 동해바다님께 감사의 말(&&**$$)전하면서 산행기록을 정리하고자 한다.


구룡령

아쉬운 작별은 한 장으로 남기며 05시05분 산행을 시작한다.

 05시29

출발부터 순조로운 산행은 주능선에 오르기 까지 야생화의 환영과 오랫만에 보는 일출로 넋을 잃게 한다.

 오른 쪽 하단의 꽃 이름은 !

   솔나루님께서 알려 주실려나~~

 이번 구간에는 기묘한 형태로 자란 나무들이 유난히도 많다.

 관중

 

현재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는 구룡령의 신도로는 일제 강점기에 자원찬탈을 목적으로 개설 된 도로이며 옛 날 사람들이 넘나들던 구룡령 옛 길은 1421봉과 갈전곡봉 사이 안부에서 양양군 서면 갈천리와 홍천군 내면 명지리를 이어주던 고개로 구룡령이라 하였다.

05:37

구룡령  옛 길!

유래를 살펴보면 아홉 마리의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 갈천약수와 명지약수에서 물을 마시며 쉬어가던 고개라 하기도 하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갯길이 용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하여 구룡령, 아홉마리의 용이 구름을 뚫고 하늘로 승천한 고개라 하여 구룡령이란 지명을 얻었다고 전해 져 오지만 이 곳의 울창한 원시림을 신성시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갈전곡봉

갈전곡봉까지 이어 지는 등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산행하기 좋은 코스이다.

06:36

갈전곡봉(葛田谷峰)


 

양양군.인제군. 홍천군의 경계를 가르는 삼각고지인 갈전곡봉의 원 지명은 “치밧골봉“이며

“치밧“은 ”칡밭”의 변음으로 한자로 갈전(葛田)으로 쓰고 “谷“은 골짜기를 말하고 ”溪”로 나타낸다.


 

갈전곡봉에서 가칠봉~응복산~구룡덕봉~방태산(주억봉)~깃대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원시림지대로 한계령~가리산~주걱봉~삼형제봉~장수대로 이어지는 능선과 함께 여름산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07:26

갈전곡봉을 기점으로 가칠봉과 848봉의 산줄기 사이로 골뱅이골을 만든다.

08"01

왕승골갈림길


 흰(하얀)철쭉!

자원찬탈에 굴하지 않고 백의민족의 기상을 나타내는 친구이다.

 

단!

 

         열흘만..........

   화무는 십일홍이라고..

 08:15 

대간꾼들의 산행기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평해손씨의 무덤.

주변에는 둥글레 화원이다.

 08:32

새로운 공부는 아니고....

치밭골이다.

 

 

 08:33

윗 사진의 이정표를 정리한 삼각점.

 구슬봉이

용담과는 하나로 통일되었다고 하는데...

무식한 나로서는 무슨말인지도 모르겠다..

09:48

연가리골 샘터

진행방향에서 왼 쪽으로 250보 아래(계곡물)

 이제는 세월 가기만을 기다리는 꾼 들의 리본이 어지럽게 한다.

진부령이 얼마 남지 안했기에...

 쥐오줌풀..

진부령이 군락지인데...

 11:01

1037봉을 거느리고 있는 홀애비이다.

자기를 만나러 올려면 땀 께나 쏟으라 하여 나무계단길도 만들어 놓고...

1037봉 갈림길에는 나무의자도 만들어 놓아 10m  전방의 삼각점도 무시하더라.

 

우리는 여기서 "요기"를 했나?

기억이 흐려지기 시작하네~~

요^^**

 11:26

1080봉 정상을 지나 연가리골 가는 내리막 길은....

 에~고~~오~~이~~다...

 11:36

단풍군락지로 이어지는 안부

 

참고!

대간길 뚜렷하여 길 잃을 염려 없지만 오름과 내림의 반복은 심하기에 우습게 보면...

코 자게 된다"

 12:23

방태천과 윗서림리를 가르는 안부. 

 미나리냉이?


13:18 

옛조침령

 현재의 조침령길(최초에는 소금어 나르는 길이었고~~그 다음에는 일제강점기에 자원을 찬탈하는 도로였고~~~유신 전에는  고관대작의 정원을 꾸미는 조경수나 원석을 싫어 나르기 위한  도로로 사용 되었을 이 길도 지금은 무용지물 되어 있다,

 "김재규의 命으로 3공수단 장병들이 다듬이 했던 두 번째 조침령길도 현재는 그 아래 터널이 개통되어 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길은  또 다른 이름표를 달고 있다.

 웃 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목교를 통과하면 조침령 가는 김재규 도로를 만나는데....

"혜"가 여기에 오면 무슨 생각을 할까...

.

.

.

아부하던 재...

늘름하던 규...

?.

?.

?.

앞 에 "근"자를 뺀 것은 허경영이 꼴 될까? 봐서리...

 쇠나드리 방향

 임도와 만난다.

14:02

 여기에 도착 해 따가운 허리 띠 부근 살펴 보니...

진드기 붙어 있고..

 

떨어지기 싫어하는 그 놈들 혼 내주고..

나무꾼과 선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데...

 

일제 때

 삼판 장을 오르 내리 던 십이발 제무시 닮은 세렉스 올라 오는데..

돌기~돌기 망가 진 외향이 기겁하게 하더라... 

 

연장자로...

화물칸에 타면서 앞 좌석 타라고 양보하는 후배님들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었지만..

주인장의 넋두리를 듣는 줄거움도 또 다른 맛이다.

 14:59

 

우리는

20여년 전에 백두대간을 완주하신 주인장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손 수 키운 토종닭백숙(:50.000)을 시키고 도토리묵무침에 소주 한 잔! 그리고 저녁을 겸한 취침까지 ..그렇게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광고: 20여년 전 그러니까 남난희의 대간이 있기 전 72일간의 일정으로 비박을 하면서 백두개간을 완주 하신 밀양의 최(당이 27세의 여인이었다고 함)00씨를나무꾼님이  보고 싶어 합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그 분은 따님과 함께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19:16

대한국민의 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죄인이 되기 싫어 멧돼지보다 못 한 야간 산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

.

.

 

조침령

산경표에 “曺寢嶺”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현재의 이정표에는 새(鳥)을 써 鳥寢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고개는 예로부터 영서와 영동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던 고개이며 한계령(산경표에는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음).

미시령.진부령과 함께 대동여지도 등 에도 표기되여 있다.


(새들도 자고 넘어서 비록된 이름)이라 설명하고 있으나 (고갯길 험하여 무리를 지어 자고 넘는 고개)라

 풀어 쓴 산경표의 뜻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멋대로 지명을 바꾸는 일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장산

 점봉산의  해!

지는 데...

 

우리는 길을 떠 나야 한다...

 

그 후로..

 

이틀 남은 보름달이

"방향타"였다!

 1018봉

요기까지는 지껄여도 잡아 갈 사람 없다.

 미국놈들도..

백의민족 기상을 나타내는 하얀 철쭉은 가져가지 않했다.

 

좋게 생각하면

천해서(많아서) 그랬을까??

 

참고로 제주도 철쭉으로 불리기도 한다.

 헷 갈리네!!

 

갈전곡봉은 어서가라 재촉 해 준다.

 19:21

"단상"이란 표현은 아무때나 쓰는 것이 아닌데...

니그들은 여유일지 모느나...

 

나는

레드~캡들과 전쟁을 해야 하니께..

어서 ~가자 하지만..

 

내 마음 알아 줄 날 언제일지...

 943봉

 20:12

 21:40

875봉 지나 한계령 까지는 산행글 생략 하기로 한다.

멧돼지 보다 못 한 주민증을 가지고 있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한계령 필레약수터에 도착 했을 때 어떤 공단 직원이 하는 말.

국립공원 내 도로는 사람이 걸어 다녀서는 안 되는 길이란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분의 고뇌를....

22:01

북암령

 양양군 북암리와 인제군 진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북암리와 미천골의 선림원지 북쪽에 있는 암자의 이름에서 유래 했으며

다른 이름으로 "북애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23:05 

 단목령

박달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檀木嶺"이라 하며 순수 우리말은 박달령이다.

 

그러나 이 곳에는 와전 된 이야기가 전해 져 오는 곳이기도 하다.

점봉산과 북악령 사이의 안부로 인제군 진동리와 양양군 오색을 넘나들던 고개로 1217년(고려고종4년) 김취려 장군이 거란군을 제천과 원주에서 추격하여 이 곳에서 격퇴하였다고 전해 져 오지만 김취려장군이 거란군을 격퇴한 장소는 제천의 박달령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령"이라 하는 것 같으며 박달나무 단(檀)과 나무 목(木)을 써 단목령이라  지명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백두대간 상 남한구간에는 선달산과 옥돌봉 사이에 있는 박달령과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에 있는 박달령이 유명하며

 밝고 큰 고개라 하여 "박달령"이란 지명을 가지고 있다.

 

1:09

홍포수막터.

홍씨 성을 가진 사냥꾼이 살았다고 하여 홍포막수처로 불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포수의 수발을 들던 수하가 홍포수 행세를 하며 마을에 들락거리자 사람들이 그를 포수로 착각하여 "홍포수"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전해 져 온다.

 

 1;30

오색의유래

훙포수막터 아래에 있는 오색은 "오색화의 전설에서 기원한다.

부처의 가르침을 뜻하는 청색·황색·적색·백색·주황색이 "오색"이라는 지명을 얻은 유래가 되었다고 전해지며

 "오색석사"역시 같은 뜻을 가지고 세웠다고 전해지며 "오색석사"에 들리면 "오색화"을 볼 수 있다.

03:04

점봉산

이 산은 조선시대에 산골짜기에서 어떤 사람이 몰래 엽전을 만들다가 들켰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 근처에서는 꽹과리 소리를 가리켜 ‘덤붕산 돈 닷 돈, 덤붕산 돈 닷 돈’ 한다고 한다.

이 산을 한자로는 점봉산(點峰山)이라고 하지만, 원래 둠 계통의 산이름인 덤붕이다. 아마도 다른 산에 비해 그리 험하지 않고 산머리가 둥글게 보여 이런 이름이 나왔으리라고 본다. 즉, 점봉산은 둥금(圓)의 뜻인 둠을 취했음을 그 산세를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선인지 덤붕산이나 둠붕산이란 이름이 그 산모습에 아주 잘 어울린다.

누군가는 말했다. “설악이 화려한 재주와 마력을 두루 갖춘 대부쯤 된다고 보면 점봉은 속 깊고 온화한 여인의 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굳이 국어 학자가 아니라도 덤붕산이 한자로 점봉산으로 소리옮김되었을 것이라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다.

덤+붕(蜂) = 덤붕 > 점붕(+산) → 점봉산
점봉산의 유래는 (한국 땅 이름학회 배우리님의 글을 옮겨적음)

 이 곳에는 이제 야 한 참이다.

 03:51

 

망대암산

주전골에서 위조 화폐를 만들 던 무리가 망을 보던 곳 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망대암산으로 지명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곳의 온 갓 기암들은 남설악을 대표하는 점봉산과 더 불어 또 하나의 화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 주전골은 흘림골과 함께 조선시대 위조화폐를 주조하던 도적들의 소굴로 알려 져 있다.

 에~그

세월 ~좋다..

 05:25

멀리서 보면 악어!

가까이서 보면..

거북이

 참으로 좋으나..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는 여기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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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1

 한계령을 부른 가수는 여기를 와 봤을까?

 08:19

 한계리까지 픽업 해 주신 인천의 인일산악회에 감사 드린다.

 한계리(미시령과 한계령의 갈림길)에서 황태구이에 아침을 먹는데..

이 때부터 쏟아지기 시간하는 빗 줄기에 설악에 든 산님들 걱정 되고...

 

주인장의 호의로 원통까지 픽업되어

터미널 건너 편 순대국 집에서 또 한 잔~

참으로 좋았다.

 

한계령

택리지에서 이중환은 강원도에는 이름난 여섯 개의 령이 있는 바 함경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철령"

그 아래의 "추지령.금강산의 "연수령" 설악산의 "오색령" 그 아래에 "대관령" 과 "백복령"있다고 했다.

 

대동지도 설악권(서울대 규장각 소유)

그 중에 으뜸으로 알려 진 오색령은 설악산.점봉산.오색을 이어주는 삼각추 구실을 하는 고개로 오색령이라 하였으나.

현재 한계령으로 불리고 있으며 한계령의 뜻은 산경표에 가리산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봉우리를 설악으로 표기한 다음

"한계산"으로 정리 해 놓은 것으로 보아 한계령으로 고쳐 부른 곳으로 보인다..

 

한계령 설악루에서 오색방향에서 솟아 오르는 안개와 흰구름 떠 가는 모습이 장관이며

우측으로 조망되는 망대암산의 기암괴석은 천하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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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부활시켜야 한다.

 

도립공원의 입장료는 지금도 징수되고 있지만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폐지 되어 있다.

입산을 하는 사람들의 넉넉함을 빼앗아 버린 몇 천원의 호의는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게 하였고..

진정어린 산꾼들의 양심은 나물이나 약초꾼들의 행위에 포함되어 도매로 넘어간 지 오래 되었다.

 

이제라도

양심이 살아 나 부끄럽지 않은 파수꾼의 역할을 맏았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