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구간

한남정맥

산행일

42번국도~문수봉~우리랜드앞

(21km, 9시간30분)

2007년 8월 11일(토)

 흐린 후 맑음


 

<산행 기록>

42번국도-부아산-함박산-무네미고개-9번홀-망덕고개-문수봉-우리랜드앞도로

  5:40         7:30    8:45         9:20        10:15   13:15     14:30          15:10

 

송전탑을 따라 이어가는 산줄기

 

  칠장산을 향하여 막판 스퍼트를 남겨놓고 날짜를 잡느라 부산하다. 남은 거리는 46km, 대략적인 셈법으로 25km와 21km인 두 구간으로 나눈다면 이론상 완주가 가능하나 날씨가 변수가 된다. 폭우와 폭염에 시달리는 여름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여름휴가가 시작되는 8월 1일은 비가 온다는 예보에 포기하고 2일은 새벽까지 비가 억수같이 내려서 포기했다. 장마가 끝나자 더 많은 비가 오는 이상날씨에 짧은 코스라면 우의를 입고서라도 가겠는데 25km를 가야하는 거리다. 비가 오면 더 난감한 것은 벼락이다. 얼마전에 북한산에서 벼락으로 등산객이 사망한 경우도 있어 주눅이 들어 있는데 오늘 가야하는 구간은 송전탑이 산줄기와 나란히 가는 코스다.

  결국 8월 11일까지 날짜가 밀리고 말았다. 10일 금요일까지 비가 왔는데 토요일은 안 올 가능성이 높다는 예보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새벽 3시에 출발한다.

<용인정신병원위 42번국도>

  5:40

  해가 좀 짧아졌나 보다. 5시 30분이 지나자 훤해진다. 42번국도 주유소 아래쪽에 주차를 하고 자동차가 뜸해진 틈을 이용하여 도로를 횡단한다. 절개지를 따라 올라가는데 수풀이 물에 젖어 있다. 될 수 있으면 신발이 물에 젖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면서 능선에 올라서니 숲은 짧은 여름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부지런한 거미는 벌써 거미줄을 쳐놓고 포식을 기다린다. 스틱을 바로 세우고 위아래로 운동을 시킨다. 거미줄을 치워가며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가의 송전탑이 아침인사를 한다. 거미줄을 치워가며 올라오는 한 인간을 대하는 송전탑은 돌 굴러가는 듯한 소음까지 내면서 위압적이다. 비가 올 듯한 날씨에는 송전탑의 전선에서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소음까지 내는 것을 처음 듣는다. 65번 송전탑을 지나면서 약간 헛걸음을 한다. 옆길로 새는 바람에 20분을 까먹는다. 능선상에서 제일 잘 난 길을 따라가면 문제가 없는데 괜히 의심해서 옆으로 지나친 것이다.

<영진골프랜드앞 도로>

  42번 국도에서 출발한 지 1시간 20분이 지나자 영진골프랜드앞 도로에 닿는다. 그동안 송전탑을 몇 개나 지났는지 헤아릴 수 없다. 비가 오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정면의 절개지를 따라 오르는데 우거진 수풀 때문에 옷이 젖어 온다. 신발도 젖는다. 좁은 산길은 웬 놈의 거미줄이 그렇게 많은지 얼굴에 걸린 것만 여러 번이다. 한 손은 얼굴에 걸린 거미줄을 떼어내고 또 다른 손은 막대기로 길을 연다. 부아가 난다.

  그래서 부아산인가? 부아산 정상(403m)에 닿는다. 팔각정과 통신용 안테나가 있고 휴식하라고 긴 나무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부아산 정상>

  7:30

  부아산은 이동면 천리쪽에서 보면 산 모습이 아기 업은 형상이라서 이름이 그렇게 불리고 있단다. 또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편에는 ‘주몽의 곁을 떠난 비류와 온조가 열 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부아악에 올라 도읍이 될 만한 곳을 찾았다’고 하는데 일부 사학자들은 이 ‘부아악’이 부아산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잠시 물을 마시면서 쉴려고 했더니 모기가 달라붙는다. 안되겠다싶어 출발한다. 통나무 계단길을 내려가니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는데 잠시 후에 도착한 곳은 부이산이다. 지형도에는 340m봉으로 나온다. 부이산 정상의 삼거리에서 용인대 방향의 왼쪽길로 내려간다.

<동물이동통로가 있는 하고개>

  내리막길에 만나는 송전탑은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묘지를 지나면 동물이동통로와 맞은편 사면이 보이는 하고개에 닿는다. 학고개라고도 불리는데 넓은 공터를 지나 건너편 사면으로 올라가서 돌아보면 오른쪽에 용인대가 자리잡고 있다.

  서울시와 가깝고 경치가 좋은 이점을 탐내어서 일찍이 자리잡은 대학들이 이곳 용인 땅에는 많다. 한국 외국어대, 경희대, 명지대, 강남사회복지대, 경찰대와 더불어 용인대도 그 중 하나다.

  그 뿐만 아니다. 용인시는 타고난 지형 조건과 큰 도시에 가까이 있는 덕분에 도시 사람들의 놀이터 구실을 톡톡히 한다.  “자연을 원상태로 보존해서 자라는 후손에게 그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버려진 땅을 일구어 과학영농과 축산단지를 조성, 식량증산에 기여하겠다”라고 하는 갸륵한 구호를 내걸고 1976년에 문을 연 용인자연농원은 포곡동 땅의 3분의 1을 차지하면서 나라 안에서 가장 큰 인공 관광지로서 사시사철 구경꾼이 드나드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고, 기흥읍에 있는 한국 민속촌도 나라 안팎의 구경꾼이 부지런히 드나드는 인공 관광지이다.

  8:45

  함박산 정상(349m)에 도착한다. 나무기둥에 쓰여진 함박산이라는 글씨가 요즘의 여러 정상표지석에 비하여 초라하게 보이지만 소박한 모습이다.

  함박산은 옛날 큰 홍수가 천지를 개벽할 때 용인의 산과 들이 물에 잠겼는데 부아산에서 호동으로 이어지는 산이 묻혀버렸고 물 위로 남은 곳은 노루실 뒷산 꼭대기만 함박만하게 남아 있어 그때부터 이 산을 함박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산이 무너져 고개가 생겼다하여 무너미고개라는 이름도 생겼다고...

   

<함박산 정상>

  모기의 극성에 다시 출발한다. 능선길은 송전탑이 길안내를 하고 거미줄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가 하면 날파리가 얼굴 전면을 맴돌아 임시 부채를 만들어 쫓기에 바쁘다. 그 와중에 어느덧 신발속으로 물이 들어가 양말을 적시고 있나 보다. 오늘 두창리 고개까지는 가야 하는데 진행을 가로막는 적이 너무 많다.

  함박산 표지목을 뒤로 하고 10m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간다. 잠시 후에 49번 송전탑 밑을 통과하고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망향의 대성동산이라고 씌어 있는 묘지군을 지나고 84번 송전탑을 지나면 신설도로의 절개지 상단부에 닿는다.

  

<무네미고개와 철계단>

  9:20

  무네미 고개에 도착한다. 이동면과 용인 시내를 잇는 신설된 45번국도인데 정맥꾼들은 주로 이곳을 시작과 구간종료 지점으로 이용한다. 도로따라 왼쪽으로 300m쯤 내려서면 굴다리 지하통로가 있다고 하는데 차량이 뜸한 틈을 이용하여 횡단하고 건너편 철계단으로 올라간다.  배낭을 내려놓고 생수를 꺼낸다. 500ml 생수를 6개나 가져왔는데 벌써 4개째다. 구름이 살짝 걷히면서 습도 높은 더위는 시작된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이 그나마 위안이다.

 

  고개 상단부에는 리본이 잘 보이지 않고 길이 없다. 그래서 은화삼CC까지 능선을 뚫고 내려간다. 잠시 후에 구45번 국도를 만나고 한우촌식당 앞에 골프장 입구가 나온다. 골프장 경비실앞에서 어찌어찌하면 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선답자의 산행기를 참조하여 도로를 올라가는데 잔디깎는 일꾼이 길이 없다며 돌아가란다.

  쫓기듯 도로로 돌아나와 연화사 방향으로 올라간다. 연화사 닿기 전에 능선으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리본이 있어 올랐더니 송전탑이 나오고 9번홀까지 길이 잘 나있다. 능선의 정점에 있는 골프장 9번홀에서 숲속으로 들어간다.

<운동시설이 있는 능선>

  10:45

  무네미 고개에서 1시간 30분이 지나자 주민들의 운동시설이 있는 능선에 도착한다. 이곳은 천리 주민의 산속 쉼터인 것같다. 능선 왼쪽으로 한강수계인 운학천을 끼고 길은 이어지는데 운학천 안쪽은 옛날 호랑이가 다녔다고 해서 호동이다.

  잠시 휴식한 후 출발한다. 또 하나의 송전탑을 지나고 급경사의 절개지를 내려가니 콘크리트 옹벽이 가로막고 있는 시멘트 길에 내려선다. 염치다.

  염치(鹽峙 )는 소금고개다. 옛날 소금장수가 지게에 소금을 지고 고개를 넘다 힘도 빠지고 배도 고파서 지게를 뻗치고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데 멀리서 바가지 긁는 소리가 나더란다. 쳐다보니 숲속에서 묘지에 하얀 여우가 사람의 해골을 긁다 머리에 쓰면 사람으로 변하고 벗으면 여우로 다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침착하게 여우를 살펴 따라가 보니 아랫마을에 결혼식을 올리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소금장수는 이 집에 변고가 있을 것을 예감하고 집 근처에서 집안을 주시하는데 밤이 깊어지자 신부가 기절해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소금장수는 지게 작대기를 들고 신부방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작대기로 때려잡으니 백여우로 변해 죽어 있었다. 주인은 소금장사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많은 선물을 주고 소금장수는 즐겁게 고개를 넘었다하여 염치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옹벽이 있는 염치>

  염치를 지나 무성한 잡풀들이 막고 있는 길을 헤치고 나가니 노란색의 한강수변구역 NO 경안천이라고 표시된 시멘트기둥이 나오고 또 하나의 송전탑을 지나니 292m봉으로 추정되는 무명봉에 오른다. 무명봉을 지나 34번 송전탑을 지나면 374m봉으로 추정되는 무명봉을 지나게 되고 계속되는 오름길의 끝에 교회십자가 철탑이 우뚝 서 있다. 저 밑으로 골프장과 함께 용덕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우뚝 솟아있는 십자가 철탑>

  12:30

  십자가탑에서 조금 올라가니 무명봉이 또 하나 나오는데 344m봉이다. 무네미 고개에서 3시간째 지나고 있는 것을 보면 꽤 긴 능선을 통과하는 있음을 알 수 있다. 되돌아보니 까마득하게 이어진 능선을 따라 송전탑도 길게 도열해 있다.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송전탑>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땀흘린 고생뒤에 맞는 한 줄기 바람은 그동안의 힘든 산행길을 잊게 한다. 신발을 벗는다. 양말까지 다 젖어버린 신발 속은 열이 나서 금방이라도 불이 날 것처럼 덥다. 발이 참 고생이구나.

<능선상의 거미>

  다시 길을 간다. 산행길이 7시간째 계속되고 있지만 등산객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길을 막고 서 있는 건 거미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거미는 형태가 징그럽고 요물스러운 동물로 생각하여 사람으로 환생하였다거나, 천자를 탄생시켰다는 신비성과 실을 뽑는 신기한 재주를 인식한 남도 시집살이 민요 등이 전해지고 있다. '서경잡기'에서도 '아침 거미는 기쁨, 저녁거미는 도둑' 이라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며, '본초강목'에 보면 거미줄은 인간의 기억이 도망가는 것을 그 망으로 막아 소생시키는 방어망이기도 한데, 7월 7일 칠석날 거미줄을 걷어 두었다가 건망증이 심한 부모님의 옷 갈피 속에 몰래 넣어두거나 관모속에 숨겨 넣어두면 기억력이 도망가려다 그에 잡히고 만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등 거미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망덕고개비>

  13:15

  망덕비가 있는 고개에 도착한다. 바로 해실이 고개(망덕고개)다. 비석엔 ‘성 김대건 신부의 생전에 사목활동 길, 순교 후 유해운구 길 3872m’ 라고 적고 있다. 우리나라 첫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운구 길에는 세 개의 고개가 있는데 별미고개(신덕고개), 거문정고개(애덕고개), 그리고 이곳 망덕고개다. 열일곱살 소년이 새남터에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들쳐업고 밤새 200리 길을 도착했던 곳이 양지배매실이다. 배매실은 신부가 어려서 자라난 곳으로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 양지면 남곡리에 숨어 살던 곳이다. 지금은 형제봉 골짜기 해곡동에 신덕고개, 용해곡에 망덕고개, 거문정에 에덕고개를 통하는 미리내 성지로 삼덕고개를 잇는 성지순례길이 됐다.

  비석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감옥에서 하신 김대건 신부님 말씀’도 새겨져 있다.

  “오늘 묻고 내일 묻어도 오직 이 같을 따름이요

   때리든지 죽이든지 또한 이 같을 따름이니

   어서 때리고 어서 죽이시오.

   이제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나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이 시작하려 합니다.“

  

  망덕고개를 출발하여 다시 산길을 간다. 삼각점이 있는 무명봉을 지나고 오르막으로 오르니 사각정자와 긴 나무의자가 있는 쉼터에 닿는다. 오른쪽 길은 쌍용산, 시궁산으로 이어지고 왼쪽 길은 문수봉 가는 길이다. 쉼터에서 지도를 펴놓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더듬어본 후 문수봉으로 향한다. 왼쪽으로 한국석유공사의 용인 석유비축기지가 보이고 철망을 따라 마지막 스퍼트를 하니 문수봉 정상에 닿는다.

<문수봉 정상>

  14:30

  문수봉 정상(403m)은 팔각정이 있는 넓은 공터에 자리잡고 있다. 녹음이 우거진 8월이라 사방이 가려져 조망은 시원하지 않다. 문수봉 한쪽에 ‘묵리 학일리, 곱든고개’ 이정표가 있다. 곱등고개는 임꺽정의 스승 병해대사가 기거하던 한남정맥의 종착지 칠장사를 가다 가짜 임꺽정을 만나 이뤄지는 스토리를 가진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곱등고개를 향하면 한남 앵자지맥과 독조지맥 길이 된다.

<문수봉 아래에 있는 문수사지마애불>

  문수봉에서 오래 쉬지 못한다. 바람이 잦아들어 산야가 더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9시간째 접어들고 있는 산행시간에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목표지점인 두창리 고개가 가물가물한다. 기록사진만 몇 장 찍고 하산을 시작하니 잠시 후에 마애불상 안내문이 있어 방문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0호인 문수사지마애불은 자연석에 북쪽과 서쪽 방향에 보살상을 새겨놓은 용인의 유일한 마애불이다.

  계속 내려가니 산죽이 길가에 우거져 있고 마애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옻샘약수터가 나온다. ‘옻샘터’는 쉼터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물도 받고 쉬어가는 곳이다. 바위에 맷돌자국 개복숭아 나무가 많고 참옻나무 아래로 흐르는 옻샘은 이 주위에서 잘 알려진 샘이다. 운동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많은 주민이 애용하는 듯하다. 시원하게 물을 마신다.

<하산길에 만난 산죽>

  하산길에 중기개발원 갈림길을 지나고 완만한 능선길을 계속 가면 사암리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직진하면 매봉재 가는 길이므로 왼쪽으로 꺾어 사암리 방향으로 내려가니 공원이 나오고 원두막도 보인다.

  공원과 원두막을 왼쪽에 두고 능선길을 계속 내려가니 오른쪽에는 제법 크게 지은 사찰이 나오고 잠시 후에 2차선 도로에 내려선다. 미리내마을이라고 부르는 안골도로다. 도로에서 왼쪽으로 200m 내려가니 우리랜드 정문이 나온다.

  우리랜드는 한미 FTA 등으로 위축돼가는 우리 농업을 시민들이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용인농업기술센터에서 설립한 전원형 가족공원이다. 3만 6000평 규모에 농경문화전시관 및 각종 체험장을 마련해 농촌생활의 이해와 교육 및 수확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단지로 2005년에 조성했다고 한다.

  15:10

  우리랜드앞 도로에서 4km 거리에 있는 두창리 고개까지 가야한다고 처음부터 속으로 다짐했지만 산행을 끝내기로 했다. 21km를 9시간 30분에 걸쳐 걸어오면서 많은 악조건을 이겨내느라고 힘겨운 산행을 한 하루다. 지난 밤에 내린 비로 젖은 수풀이 일찌감치 신발과 양말까지 젖어 버렸고 산행 끝까지 거미줄은 수차례 얼굴을 덮쳐왔다. 거기에 능선길은 모기와 날파리가 번갈아가며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즐거웠던 산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즐겁게 간다. 남은 구간은 25km,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지 않으면 어찌 할 것이냐. 남은 것은 한남정맥만이 아닌 것이다.

<우리랜드앞 2차선 도로>


 

참고문헌>

한국의 발견<경기도편>...뿌리깊은 나무(1983년)

사람과 산 2007년 8월호<한남정맥2구간>

영진 5만지도...영진문화사

용인시청 홈페이지

산경표 마룻금을 따라 홀로 걸어가는 산꾼의 산행이야기<한남정맥8구간>...성봉현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