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간

한남정맥

산행일

보구곶리~문수산~것고개

(11km, 4시간50분)

2007년 3월 25일(일)

 맑음

 

 

<산행기록>


 

보구곶리 초입 - 문수산정상 - 22번도로(쌍용대로) - 56번도로 - 12번도로(금파가든) - 것고개

    8:50               10:10               10:50                     11:30         12:25                  13:40      

  

  

사방이 '탁 트인' 문수산, 한남정맥을 시작한다


 

  자명종 소리와 함께 5시 30분에 일어난다. 한남정맥을 시작하는 3월 25일 일요일이다.

문수산에서 출발하여 칠장산까지 도상거리 180km를 동행할 친구는 캠스, 진행구간을 미리 정하지는 않았다. 날씨와 상황을 봐 가면서 정하기로 하였다.

  의정부에서 7시 15분에 만나 경기도 김포로 향한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기는 하지만 차량운행에는 그리 불편하지 않다. 송추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 올라간다. 아직까지 사패산구간이 완성되지 않아서이다. 이후로는 교통로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고 교통량도 적어서 빠르게 김포를 지나고 통진을 거친다. 통진을 지난 것고개가 오늘의 산행마무리 지점이다.

  강화대교에 진입하기 직전에 성동삼거리를 만나고 여기서 우측 성동리로 들어간다. 4.6km 정도 거리에 보구곶리 마을회관이 있고 조금더 들어가면 산행들머리가 나온다.

  

<산행들머리-오른쪽으로 들어간다>

  8:50

  산행의 시작이다. 어제 내린 비로 땅은 축축히 젖어있고 활짝 갠 날씨가 상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해서 조망은 흐리다.

  선답자의 산행표지기가 길안내를 맡았고 뚜렷한 산길은 많은 정맥꾼의 흔적을 보여준다. 완만한 능선을 꾸준히 오르니 운동복을 입은 해병대 사병들이 아침운동을 하는지 산을 오르고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황해를 만나는 이곳을 조강이라 하는데 강건너편이 개성직할시 판문군이라 휴전선이 닿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보구곶리로 들어가는 왼편의 염하는 철조망이 쳐져 있고 조강가의 몇몇 마을은 사람이 살 수 없고 농사만 지을 수 있는 출입영농지역이다. 정맥초입 건너편에는 검문소까지 있다.

 <성동리와 강건너 강화도>

  능선을 오르면서 작은 봉우리를 만나고 성동리에서 용강리로 넘어가는 사거리 안부도 지난다. 멀리 강화도가 내려다보이고 강화도와 김포를 갈라놓은 내인 염하도 한눈에 드러난다.

  염하는 물살이 세다. 본디 염하는 삼남의 조세를 실은 배들이 서울 마포의 경창까지 지나는 길이었고 고려말 몽고 침입때는 고려 고종이 난을 피해 배를 타고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이 곳을 지나다 그 배의 사공인 선돌이 자신을 죽이려고 일부러 그런 곳으로 배를 저어 갔다고 믿어 선돌의 목이 떨어졌는데 그래서 손돌목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름까지 남아있는 곳이다.

문수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등산객도 자주 만난다. 북문갈림길을 지나자 복원된 산성이 능선길을 따라조성되어 있다.

  문수산을 중심으로 바다쪽으로 둘러싸인 문수산성은 1866년 병인양요때 산성남문까지 쳐들어온 프랑스군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곳이다. 그런데 이 산성은 김포군의 방위를 위하여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강화의 들목인 갑곶리가 마주 보이는 곳으로 조선의 숙종 임금때에 강화 들목을 지키려는 목적에서 강화 덕포진과 함께 세운 것이다.

< 문수산성>

  10:10

  드디어 정상에 섰다. 376m의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과 정상비석이 우리를 반긴다.

  조선 세종때의 학자인 서거정은 문수산 정상에 서서 사방이 “탁 트였다”고 했으며 이 곳의 좋은 풍경들을 ‘통진 팔영’이란 말을 써서 묘사하였다고 하는데 그 말이 일리가 있다 싶다.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조망이 안개만 아니라면 서해바다가 품에 들어올 듯싶다.

 < 문수산 정상 >

  문수산 정상은 단체산행객들로 왁자하다. 정상표지석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줄을 서야 할 지경이다. 흘린 땀을 식히고 간식을 들면서 휴식한 후 산행을 계속한다. 남쪽방향으로 정맥능선은 이어진다. 정맥능선으로 접어들자 초등학생 소풍같던 왁자함이 사라지고 갑자기 고요함이 찾아왔다.

  10:50

  문수산을 떠난지 30분이 지나자 22번군도를 만난다.

  북쪽 오른편으로 쌍용대로란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의 오른쪽 산길로 들어간다. 이제는 계속 산길을 따라 진행한다. 군데군데 선답자의 표지기가 매달려 있어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선답자의 표지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쉽지는 않지만 나는 두 가지 상식을 가지고 접근한다. 하나는 나침반을 가지고 방위를 정확히 확인하여 방향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고,

 

<쌍용대로 표지판-오른쪽 길로 들어간다> 

   둘째는 정맥길을 1:50000 지도에 표시하여 큰 산줄기를 찾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출발전에 지형을 익히고 선답자의 산행기를 여러번 읽어둔다.문수산을 지나자 이제는 100-200m의 야산이 이어진다.

  잠시후에 105m봉을 지나고 군철조망을 만나면 좌측으로 직진하여 곧장 내려가서 포장된 56번 지방도를 만난다.

  11:30

  56번지방도를 만나면 오른쪽으로 100m정도 진행한 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간다. 시멘트 포장길이다. 꿩요리 샤브샤브 간판도 있고 군부대 출입문도 지나면 에덴농축 입간판이 있다.

<에덴농축 입간판-간판뒤편 오른쪽산길로 들어간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통진현이 “서남쪽으로 갑곶을 등지고 동쪽으로 세 봉우리를 바라본다”고도 했다. 서남쪽의 갑곶이란 강화로 들어가는 강화대교가 걸쳐져있는 월곶면 포내리를 가리키고 세 봉우리는 월곶면의 문수산과 대곶면의 수안산인데 나머지 하나는 애매하다. 양촌면의 학운산과 검단면에 가현산이 있는데 어느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봉우리을 제외하면 김포는 예로부터 평야지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포읍 일대가 중심이 되는 김포평야는 평택평야와 함께 우리나라의 두 곡창지대에 드는 경기평야를 이룬다.

 

<2007년 김포시 현황>

  에덴농축 간판을 지나 우측 산길로 들어가면 80m봉에 오르고  다수의 묘지가 있는 곳을 지나 비포장도로가 있는 안부를 지나면 12번군도를 만난다. 절개면을 따라 내려가지 말고 좌측으로 이동하여 농가를 지나 금파가든 건물방향으로 도로를 건너는 편이 좋겠다. 도로변의 철망으로 여름철에는 지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2:25

  12번 도로에 내려섰다. 금파가든에서 점심식사라도 할까 했는데 쉬는 날이었고 쉬지 않는다해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식사메뉴는 아닌듯 했다. 금파가든 마당을 지나 곧장 올라가면 고정리 지석묘가 있어서 점심을 여기서 해결하기로 하고 앉는다.

<고정리 지석묘-경기도 기념물 제91호>

  물이 가까운 김포의 평야지대는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도 안성마춤인 땅이었던 모양이다. 고인돌이 이를 말해준다. 이 고인돌은 받침돌이 없는 남방식 고인돌로서 이곳에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준다.

  20여분간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출발한다. 이제 것고개까지 마지막 여정이 남아 있어 힘을 내기로 한다. 산길을 따라 전진하는데 군부대철망을 만나고 T자형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길은 비교적 순탄하고 잘 나 있다.

  잠시후 한동안 고심했던 갈림길이 나타났다. 순탄한 내림길을 버리고 오른편으로 선답자의 표지기가 대여섯개 붙어 있었던 것이다. 직감적으로 이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길을 찾았는데 뚜렷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찾아 헤메다 방향감각마저 잃고 아까 지나왔던 길을 찾아 다시 한바퀴 빙돌아 제자리에 서고 보니 오른편에 군철조망이 있고 그곳이 수상했다. 길은 그 철조망따라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고 언덕을 넘어가면 선답자의 산행기에 ‘승룡아파트’라고 불리는 후문이 있었다. 승룡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푸른미르2차라고 되어 있고 후문을 통과하여 군부대정문을 지나치면 통진교회가 나오고 것고개와 만나게 된다.

  13:40

  것고개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시간을 헤아려보니 8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한 지 꼭 4시간 50분이 소요되었다. 물론 휴식시간을 포함한 시간이다.

<것고개 버스정류장앞-강화방향>

  통진 콜택시에 전화를 했더니 ‘예’하더니 오지 않는다. 통진읍과 두 정거장거리밖에 되지 않아서일까.

  어쩔수 없이 강화방향버스를 탔는데 버스기사가 김포대학까지만 간다고 했다. 그래서 옆손님의 도움말을 받아 군하리에서 내려 택시를 갈아탈 수 있었고 정맥들머리까지 갈 수 있었다.(택시요금 7000원)

  오후 5시경이면 강화에서 서울방향으로 차가 밀린다하여 속히 김포를 벗어났다. 

  

 

참고문헌>

한국의 발견<경기도편>...뿌리깊은 나무(1983년)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1)...황금나침반

영진 5만지도...영진문화사

산경표 마룻금을 따라 홀로 걸어가는 산꾼의 산행이야기<한남정맥1구간>...성봉현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