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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에서 바라본 탐정호, 관촉사의 石彌勒(돌미륵)-




梅竹軒(매죽헌), 논산 단맥 (금남기맥) 자투리 잇기

2016128085호                2016-12-25()


자리한 곳 : 충남 논산시

지나온 길 : 매죽헌단맥 자투리 = 은진임씨공원묘지입구-박우리산-시랑봉-구명봉-갈마산-호남고속도로-탐정호 -밸리피싱휴게소 = 4시간 32(08:17~12:49) 총거리 : 7.7km(고속도로우회포함)

논산단맥 자투리 = 관촉사-반야산-수랑골(충남체육고교) = 1시간 10(13:34~14:44) 총거리 : 2.1km

거리및시간: 6시간 27(08:17~14:44) 총거리 : 9.8km(택시호출 및 이동시간 45분포함 : 7.7km+2.1km)

함께한 이 : 3(신경수님, 고송부님 그리고 계백)

산행 날씨 : 기온 포근했으나 시계는 불량


10개월만에 자투리 잇기에 나선 梅竹軒(매죽헌)단맥

새벽잠이 없기로 평판이 자자한 새벽형 인간"의 대표주자 고송부선배께서 새벽 5시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샤

워하느라 불을 밝게 밝혀 조금 더 누워서 뒹굴며 늦잠을 즐기고 싶었으나 그리지 못하고, 새벽에도 영업하는 음식점을 찾아가 꼭두새벽 부터 소주 한 병씩의 해장술을 겸해 돼지국밥으로 조반을 끝내고, 어제 이용했던 택시를 전화로 불러 금년 3.1(03:01)날 일몰시간으로 자투리를 남겼던 梅竹軒(매죽헌) 단맥을 완성하고자 10개월만에 산행에 나선다.


낡아빠진 50.000/1 지도에 막힘없이 마루금을 그리는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

50.000/1 지도를 막힘없이 읽어내며 산줄기의 맥을 찾아 마루금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산줄기의 달인으로 신경수 선배를 인정하고 대접해야 하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함은, 언어를 솜씨 있게 잘 구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는 증거이며, 현대사회의 복잡한 매일 매일의 인간관계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는 당사자로, 말이라는 것은 그러한 인간관계를 보다 성숙된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것처럼, 산꾼중에 산꾼으로 한마디의 말이 경우에 따라서는 그 어떤 폭력보다 더한 상해를 입히기도 하겠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을 생의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산꾼이라 옛날부터 전해오는 秘記(비기)라고 나는 주장한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하고 부인에게 이혼까지 당한 뒤 그만 자살할 결심까지 하게 되었고,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에게 마지막 남은 선택이라고는 죽음밖에 없어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어느 날, 우연히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단다.“성공한 산꾼의 행보는 처절하고 참담할수록 최고수준의 산꾼으로 인정받다.”는 명언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는 말에 용기를 얻어, 새로운 삶을 지금도 모범적으로 살고 있다.

개인적으론 오래전 접었던 산줄기산행을 수동적으로 재개했으나 기억에서 잊혀진 기억이 떠오름은 신선배의 낡아빠진 어지러운 지도위에 익숙하게 그려낸 마루금은 최고의 전문가만 해낼 수 있는 영역이라 인정하며 마음에서 경의를 표하며 은진임씨공원묘지(논산시 가야곡면 강청리 산 65)입구 도로 푯돌(도로 한가운데)이 자리한 공터에서 하차해 산행을 준비한다.(08:11)


미완성의 梅竹軒(매죽헌)단맥 완성을 위해 첫 번째 발음을 시작한다.

11시 방향의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표시기를 기점으로 올라서자 논산시에서 탐정호 둘레길이라 관리하고 있어 비교적 가지런하게 정리된 능선을 따라 오르자 벌써 거친 숨이 목까지 차올랐고 그때 다행히 안부에 도착해 다리쉼하도록 의자가 설치된 박우산(232m)이다. 한쪽 나무허리에 걸려있는 정상판이 산뜻하다.(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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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죽헌 단맥의 발음하기 까다로운 봉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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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 나무와 나무를 밧줄로 이어진 뚜렷한 능선을 따라 시랑봉(240m)을 경유해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하다 만난 삼등삼각점(논산309 / 1980 재설)과 삼각점 안내판이 자리하고 펑퍼짐해 언덕 같은 봉우리에 구명봉(212m)이란 정상판이 걸려있는 둔덕에 닿는다.(09:33)

등고선은 좌측으로 이어지는 갈마산(175m)을 진행하라 칡넝쿨과 가시잡목지대가 앞길을 막아서고, 두루뭉술한 지형인데 비슷한 능선으로 불분명한 마루금이라 가시잡목이 조금이라도 덜하고 편한 곳을 찾아가며 진행하다보니, 묘지가 나오고 바로 수목장안내석 능선에 이르자, 시원하게 뻗어있는 호남고속도로를 막힘없이 질주하는 차량을 바라보며. 시멘트포장농로와 68번지방도를 경유해 안전하게 호남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우측 2차선 도로를 따라가다 도로가 갈라놓은 마루금으로 복귀하려고 좌측 과수원으로 들어가 밭과 산사이의 계단식으로 길게 형성된 묘지상단부에 이르러 간단한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며 늘어지게 휴식한다.(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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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를 통과해 도착한 탐정호-


예상보다 잡초목과 벌목해 방치한 나뭇가지들 때문에 성가신 구간

묘지를 뒤로하고 야트막한 야산이라고 가볍게 봤다가 큰코다친 구간으로 묘지에서 가파르지만 무난히 능선으로 올라서나 했는데, 벌목과 가지치가한 잡목들을 그대로 방치해 널브러진 나뭇가지들의 무차별 태클로 지옥구간을 탈출하느라 이마에 땀이 흘러내리고 힘들어 의자앉아 잠깐 다리쉼한다. 펑퍼짐한 능선이라 어디가 마루금인지 분별하기가 어렵지만 바위산(152m) 정상으로 추정되는 둔덕을 넘어서자 갑자기 길이 트이고, 좌측으로 이런저런 묘지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이 조망되는 탑정호 풍경이 장관이라 생각하는데, 어느덧 낙엽이 소복하게 쌓여있어 푹신한, 거목들 사이로 탑정호가 내려다보이는 68번지방도에 내러선다, 드넓은 인공호수에서 梅竹軒(매죽헌)지맥 자투리 잇기를 10개월 만에 완성하고 택시를 부른다.(12:49)

 

논산 단맥 자투리 관촉사를 품은 반야산을 찾아가다

어제 일몰시간이 임박해 남겨두었던 자투리구간으로 논산단맥을 잇기 위해 달리는 택시에서, 신선배와 고선배의 산줄기를 정의하는 생각이 조금 달랐으나 빠르게 합의점을 찾아, 신선배는 고집스럽게 마루금을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을 존중해 동지마을입구고개에서 내려 답사하고, 고선배는 非山非野(비산비야)에다 여기저기 개발해 걸물이나 사유지로, 진행도 어렵고 의미가 없다는 주장대로 관촉사를 돌아보고 반야산을 종주하기로 합의했으니, 나의 선택이 남아 있는데, 내주장을 펼쳐야할 이유가 특별하게 없어, 고선배의 결정에 따라 처음으로 유명한 石彌勒(돌미륵)불을 알현하고자 천년고찰 관촉사에서 하차한다.(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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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C214D5866E7610CD6EA-관촉사 풍경-


灌燭寺(관촉사) :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 般若山(반야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968(광종 19) 혜명(慧明)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조성한 은진미륵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은 100여 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목종 9)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 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瑞氣)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하였는데, 그 광명의 빛이 촛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이름을 관촉사라 하였다.

이 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삿갓을 쓴 승려)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1386(우왕 12) 법당을 신축하였고, 1581(선조 14) 거사(居士) 백지(白只)가 중수하였으며, 1674(현종 15)지능(智能), 1735(영조 11)성능(性能)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음전과 삼성각(三聖閣사명각(四溟閣해탈문(解脫門현충각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18호로 지정된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과 보물 제232호인 석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배례석(拜禮石),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인 석문(石門), 오층석탑·사적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배례석은 너비 40, 길이 150의 장방형 화강암 위에 팔엽(八葉)연화 3개가 연지(蓮枝)에 달려 있는 듯이 실감나게 조각되어 있다. 또 해탈문인 석문은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던 것 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다또한 이 절에는 1499(연산군 5) 가야산 봉서사(鳳栖寺)에서 개판한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몽산법어(蒙山法語)·심우십도(尋牛十圖)등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이는 범어사의 영명(永明)이 옮겨 보관한 것이었으나, 그 뒤에 해인사로 옮겨갔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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般若山(반야산) : 충청남도 논산시의 관촉동에 있는 산이다관촉사가 소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은진)"반야산(般若山)은 현 북쪽 7리 거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자료에 "반야산에 관촉사(灌燭寺)가 있고 그 안에 돌미륵[石彌勒]이 있는데, 높이가 54척이나 된다. 세상에 전해오는 말에 고려 광종 때에 반야산기슭에 큰 돌이 솟아오른 것을 혜명(慧明)이 쪼아서 불상을 이루었다 한다. 이색(李穡)이 지은 시에 '마읍(馬邑) 동쪽 100여 리, 시진 고을에 관촉사가 있네. 큰 석상 미륵불은 내 나온다, 내 나온다 하고 땅에서 솟아났단다. 눈같이 흰 빛으로 우뚝하게 큰 들에 임()하니 어찌 구전(口傳)만이랴. 국사(國史)에 실려 있다오.'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서(은진)"반야산은 건 지산의 서북쪽 기슭에서 뻗어 온다."라고 되어 있다. 같은 자료에 "반야산에 관촉사가 있다."라고 되어 있다.                         -한국지명유래집-


간이 넉넉하니 차분하게 관촉사를 돌아보고 반야산 산책길 따라 논산여중고교, 논산공고, 1번국도사거리, 23번국도 배수장 지나 논산시가지의 한가운데로 진행해야 하지만 개발로 인해 형태를 찾을 수 없어 콘크리트 숲을 걷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에필로그

충남체육고등학교 앞 음식점에서 한방족발을 안주로 하산주를 나누려하지만, 아직도 마루금을 종주하시느라 수고하고 계신 신선배께 전화로 하산하시라고 은근하게 압력을 행사하고, 잠시 기다리자 신선배께서 도착해 즐겁게 하산주를 나누다, 고선배의 발언으로 특별한 사항이 없다면 짝수월 둘째주말을 정기산행일로 정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열차표를 예매하려고 가격은 비싸지만 배차간격이 조밀한 KTX열차를 스마트폰으로, 예약을 시도했으나 매진으로 예약이 불가하다는 정보를 믿었는데 논산역에 도착해보니 좌석이 있었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타고 있는 객차에 국한됐겠지만 70%이상의 좌석이 비어있다. 서대전역에서 많이 타겠지 긍정적인 믿음으로 서대전역에 도착해 고선배를 배웅하느라 다른 칸으로 이동했으나, 역시 30%도 못되는 승객으로 종착역(용산)까지 운행했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으로 하차해 경의중앙선전철로 환승해 디엠씨역에서 신선배와 작별해 귀가한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찾아서~


2016-12-31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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