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일어나 곧바로 길을 나선다. 추풍령휴게소에서 컵라면과 집에서 준비한 주먹김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오늘이 지나면 금북정맥도 온전히 절반을 넘어선다.


공덕재로 올라가는 도로에 눈이나 얼음은 없다. 전날 일기예보에 많은 눈이 예상된다고 했지만 이곳의 하늘은 맑다. 옅은 구름사이로 보이는 태양은 부드럽기만 하고 겹겹이 둘러쳐진 산과 산, 능선과 능선사이에는 골안개가 솜뭉치처럼 들어앉아 있다.


채미는 사진을 찍어주고 칠갑산자락에 있는 목욕탕(찜질방)으로 향했고 나는 힘차게 능선을 밟는다. 오늘은 경칩(驚蟄)이다. 절기로 봐서는 어느 곳에선가 불쑥 개구리가 튀어나올 듯도 하건만 차가운 바람에 막나오려던 개구리가 주춤할 것만 같다. 산아래 마을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잘려 쓰러진 소나무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물론 쭉쭉 뻗어 있는 소나무도 많은데 서있는 소나무가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은 쓰러진 소나무 때문일 것이다.


사다리위로 흰색 산불감시초소가 서있는 곳 330m봉을 지나면서 청양산악회에서 붙여둔 코팅안내판을 본다. 오늘 산행은 청양을 오른쪽에 두고 청양의 외곽을 돌아가게 된다. 봉우리를 넘어서자 헬리포트가 연이어 나타난다. 오봉산(480m, 구봉산으로도 부른다.)정상에는 정상임을 알리는 나무 표지판이 서있다. 걷기 좋은 길이 계속된다.


돌무더기가 있는 작은 재를 지나는데 이곳이 구시치가 아닌가 한다. 재를 지나자 바로 오른쪽 아래로 마을까지 큰 나무가 별로 없어 시원하게 트여있다. 멀리 정자가 보이고 잡목사이로 소나무가 외롭게 서있다. 농장에서 산을 송두리째 개발을 해 두어 임도는 넓다. 도로를 내면서 베어놓은 소나무는 이미 말라비틀어진 것으로 보아 베어진지 오래 된 것 같고 길을 따라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주목인지 비자나무인지 묘목의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묘목을 지나면서 숲 속으로 들어선다.


큰골도로는 포장이 되어있고 양쪽으로는 가파르게 깎여져 있다. 송전철탑을 보면서 도로를 지나는데 햇살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진다. 비닐 속에 파란 새싹이 빨리 비닐을 벗겨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듯 하다. 움트는 봄나물의 파릇함은 생명의 힘이다. 오른쪽 좋은 길을 오르면 파평윤씨와 창원황씨의 합장한 묘지 하나가 있고 그 뒤로 표지기가 팔랑인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시장기를 달래려고 찰떡을 씹으면서 걸어가는데 임도가 나온다. 난시청해소를 위해 KBS공주방속국에서 설치한 시설물과 산불감시초소가 붙어있고 천마봉(422.2m)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다. 봉우리를 지나자 오른쪽으로 방향이 급하게 바뀐다.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스레 내려가는데 앞에 포장도로가 보인다.


차가 빈번하게 다니는 넓은 도로가 가까워 진 탓일까 그동안 좁은 산길을 따라 산행에만 집중하던 정신이 잠시 나가버리고 헛생각이 들어와 심기를 어지럽히더니 급기야 철선에 걸려 힘없이 꼬꾸라졌다. 엎어져서 몇 초가 흘렀을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다시 허둥지둥 걷는데 휴게소에서 음악이 들려오고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2차선 국도 위 여주재(해발210m)는 청양군 청양읍과 보령시 화성면의 경계를 가르고 있다. 구봉산휴게소에서 달려나온 큰 개는 진돗개를 닮았다. 나를 따라오면서 사납게 짖어대는데 나는 개에게 쫓겨 빠른 걸음으로 도로를 건너 산으로 오른다. 속으로는 여유를 부리며 걸어야지 했지만 개가 보아란 듯이 들어내놓은 흰 이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연히 걸음이 빨라진 것이다. 급한 중에도 사진은 찍었다.


여주재를 지나 산으로 오르면서 배낭 옆에 꽂아둔 감주를 먹으려 더듬어보니 감주를 넣은 병이 없어졌다. 조금 전에 넘어지면서 정신과 함께 빠져나간 것이다. 돌아갈 만큼 감주에 대한 애착이 간절하지 않다. 그냥 산을 오른다.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재를 넘어가는데 하늘이 검기울어지고 있다. 눈이 내릴 듯 하다. 1990년 청양에서 박아둔 삼각점이 있는 284.3m봉에서 휴식을 한다. 산행을 시작하고는 처음으로 앉아서 휴식을 하는 것이다. 3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다. 싸늘한 날씨가 산행을 도와주고 있다.


바르게 뻗어있는 길 위로 눈이 내린다. 감상에 젖어 신나게 걸어가는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든다. 바로 돌아서서 되짚어 간다. 100m정도 돌아가니 정맥은 능선을 버리고 슬며시 방향을 바꾸어 내리막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잠시만 딴 생각을 하면 길을 놓쳐버리는 것이 정맥 이어가기다.


용천리로 내려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있고 청수리로 향하면 비포장인 길을 건너 오분정도 걸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서니 임도가 나온다. 베어진 나무들이 길 찾기를 방해하고 방향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묘지로 들어오는 길과 묵은 밭을 지나는데 왼쪽 산아래 마을이 보인다. 임도를 따라 송전철탑이 보이고 묘지들이 이어지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서 덤불을 헤치다가 관목에 잡히면서 길은 어지러워진다. 방향은 오른쪽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지만 어느 길이 정확한지 알 수 없어 지도를 보면서 본능적으로 발을 내딛는다.


 조그만 재를 지나고 블록으로 만든 참호를 지나 산으로 오른다. 송전철탑에서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르니 소나무가 심겨져 있는 농원의 위쪽이 나온다. 두 번째 송전철탑을 보면서 넓은 길을 걸어가니 세 번째 송전철탑이 길을 안내해 준다. 세 번째 송전철탑 뒤로 산을 내려간다.


매일우유공장 철망에 막혀 정맥은 철망을 따라 왼쪽으로 가야하지만 철망이 열려있어 철망 안으로 들어섰다. 공장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친절하다. 공장 정문을 나오자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서 다시 낮은 능선을 따른다.
 
 능선의 끝자락을 깎아만든 청양장례식장 주차장으로 내려섰다. 왼쪽에는 에덴모텔이 오른쪽으로 LG정유주유소가 서있는 29번 국도 위 아리고개를 건너 학당목장 뒤로 파헤쳐진 땅을 지나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해바라기를 하며 점심을 먹는다. 주룡, 창룡, 현룡과 이어가며 통화를 했다.


** 아리고개 주변의 풍수와 전설과 인물과 역사(학댕이 서당골, 아리고개, 여의실 고목제)

* 학댕이와 독서골, 대학유치운동
학댕이라는 동네이름과 선비가 앉아 글을 읽는 형국의 독서골이 있어 공부하기에 좋은 곳으로 청양대학 유치운동에 힘을 모았던 청양읍 학당2리는 청양읍과 비봉면의 경계를 이룬다.
보기에는 야트막한 언덕 같은 아리고개(학당주유소와 에덴모텔 사이), 그러나 차령산맥(지금은 금북정맥이라고 해야겠다)이 문박산을 거쳐 구봉산, 성주산을 이어 멀리 서천, 장항까지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비봉과 청양읍을 나눴다. 그런 까닭으로 지대가 높아 한 마을이라도 이 고개에서 물줄기가 갈라지면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으며 겨울바람이 매서운 곳이다.
청양읍 학당2리는 청양교육청 앞 신호등 있는 삼거리부터 시작해 비봉면 신원리와 경계를 이루는 별장가든까지이다.
백제 때는 고랑부리현, 통일신라때는 청정현, 고려와 조선초에는 청양현, 조선말에는 청양군 서하면의 지역으로 글을 배우는 학당이 있어 학댕이라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읍동, 아리현, 건곡리와 안부동, 원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학당리라 해서 비봉면이었다가 1973년 청양읍에 편입되었다.
지금은 학당1리와 2리로 나뉘어져 있으며 2리는 방죽골, 여의실, 원학당, 안부동 등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일흔두집에 2백50여명이 살고 있다.

* 조로봉과 연안명씨들
학당2리서 큰 마을은 방죽골로 삼거리 지나 식당 ‘한우촌갈비’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여의실(건곡)과 사이에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는 동네이름이 붙은 방죽골보다는 여의실과 더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조선중엽 때 임씨들이 터를 잡았다가 지금은 연안명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여의실은 마을지형이 조랭이 형국으로 물이 있어야 좋기 때문에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함박봉과 조로(조리)봉이 있어 천석꾼이 다섯 명이나 살았다고도 전해진다.
이 동네에서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오래된 정주나무(느티나무)에 고목(古木)제를 아주 오래 전부터 지내오고 있다. 정월 열나흩날 마을의 안녕과 풍년, 무병장수를 비는 고목제를 올리며 마을 사람들간의 화합을 다진다.

* 봉황의 알이 떨어진 아리고개
원학당은 아리고개 지나 에덴모텔 안쪽 마을이다.
원학당에 있는 독서골은 선비가 탕건을 쓰고 앉아 글을 읽는 형국이라 대학유치에 큰 힘을 쏟았는데 실패해 지금 학당이 사람들의 가슴은 허전하고 서운하다고 한다.
원학당과 방죽골을 나누는 아리고개는 일설에 비봉산 봉황의 알이 이곳에 떨어졌다는 말이 있다.
학댕이 사람들이 소직이(소젖)라 부르는 곳에 지금 매일우유공장이 들어서 있으며 아리고개 줄기에 청양읍 공동묘지도 있다.
안씨들이 부자로 많이 살았다고도 하고 편안하고 부자로 사는 곳이라고도 하는 안부동은 별장가든 맞은편 쑥 들어간 마을이다.
이곳에는 안양암(주지 장삼동)이라는 30년여 된 절이 있다.

* 4대에 걸친 서당훈장
학당2리는 이제현 노인회장(71), 이상선 이장(54), 이명자 부녀회장(51), 명두식 지도자(51), 명정식 청년회장(53) 등이 마을일을 맡아 하고 있다.
청양읍에서 2~3㎞밖에 안떨어졌지만 농사를 짓고 있으며 청년회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화합이 잘되는 마을이라는 게 자랑이라고 한다.
마을숙원사업은 교육청 앞에서부터 신원3거리까지 인도가 생기는 것이다.
청양읍에서 10분이면 걸어다닐 곳을 목숨 여럿 빼앗긴 교통사고 위험성이 많아 1시간씩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고 한다.
학당2리 인물은 학당장학회를 만들어 많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명형식 원광대 법학대학장과 천안우체국장을 역임하고 정보통신부에 근무하는 명노창씨, 명태식 전군청 농산과장, 박명규 전목면 부면장, 김의환 군청 자치행정과장, 충남대 서무과에 있는 김봉현계장 등이 있다.
또 학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명노일옹(78)의 조부, 증조, 고조는 4대에 걸쳐 서당 훈장을 했다고 한다.
학당리 사람들은 대학이 들어서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쓸어내리면서도 교육청, 경찰서, 코오롱, 목우촌 등 괜찮은 기관들이 자리잡아 가고 또 자리잡아 앞으로 주목받는 동네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청양신문에서 펌)
 

다시 어두워지면서 눈이 내릴 듯하다. 너덜이 조금 있는 지역을 지난다.


송전철탑을 설치하면서 길게 메어놓은 흰색천이 길을 찾아가는데 방해가 된다. 넓게 트여진 지역을 지나 시멘트포장도로를 건너 돌계단 세 칸을 밟고 올라선다. 송전철탑을 향해 도로를 따라 올라가 철탑을 지나는데 철탑에는 345,000볼트라고 적힌 표지판이 달려있다. 왼쪽 옆에는 무덤이 있고 무덤 앞에는 비닐에 싸여진 꽃다발이 놓여있는데 꽃은 시들어있다. 찬바람이 시든 꽃잎을 스친다.


급하지 않은 오르막을 올라서니 넓게 트여진 목장이 나온다. 왼쪽으로 임도를 따라간다. 황톳길을 밟고 가는데 느낌이 뽀송뽀송하다. 다시 시멘트도로가 나오고 문박산까지 길은 좋게 나있다.


도로는 문박산 왼쪽 7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절까지 나있지만 도로를 버리고 벗겨진 문박산을 오른다. 송전철탑 위에 솔개가 철탑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먹이를 노리는지 바람칼을 세우고 있다.


문박산(337.8m)정상에는 삼각점과 파란색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녹색송전철탑이 특이하다 잡목을 헤치고 나오는데 왼쪽으로 효제소류지가 보이고 파란 못물을 배경으로 내리는 가락눈은 하늘의 소식을 가지고 내 맘으로 들어오는 겨울의 마지막 전령이다. 가락눈은 금세 함박눈으로 바뀌어 온 세상이 하얀색이 되어버렸다.


농사용 간이창고로 보이는 곳을 지나서 645번 지방도로 위 어슬티고개로 내려서려면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묘지가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서야 되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나있어 성급하게 판단하고 도로를 향해 진행을 하다가는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린다. 오른쪽으로 묘지를 따르면 왼쪽으로 도로가 보인다. 도로를 향해 바로 가면 빠를 듯 하지만 둘러 가는 것이 빠른 길이다. 어슬티고개까지 내려서면서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데 그사이 눈도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고 마음도 오락가락했다.


어슬티고개를 지나 논밭사이로 걸어가면 묘지가 나란히 11기 줄지어있다. 낮은 능선을 걸어가는데 해가 났다. 전기철선이 길을 막고 그물이 쳐져있다. 그물은 성글어 뱀을 잡기 위한 것은 아닌 것도 같은데 용도를 알 수 없다.


시멘트포장도로 분골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고 오른쪽 정자나무 밑에서 바지에 붙어있는 검불을 떼어내고 있는데 채미가 왔다.


산행을 마치고 : 아산에서 바둑동호회 정기모임이 있어 온양으로 향했다. 길가에 있는 송악저수지는 얼음으로 덮여있다. 얼음이 녹으면 호수 중앙에 자리 잡고 낚시꾼의 보금자리가 될 수상가옥들이 지금은 못 가장자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물은 가득하고 산과 못은 잘 어울려 경치가 좋다.

 약 500여년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었다는 외암민속마을을 둘러봤다. 안동 하회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훼손이 많이 되었지만 이곳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다. 관람객을 위한 전시주택을 따로 만들어 놓아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조선시대 삶의 형태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될 것 같다.
 도랑건너에서 마을을 바라보면서 동양풍수의 핵심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표본이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양온천지역으로 들어갔는데 도로가 좁고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몇 번을 돌았다.
물이 좋아 목욕 후 무척 개운했다.

목욕을 하고 나오니 아산의 모임이 대전으로 장소가 변경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내일 산행이 걱정되어 대전으로 가지 않았고 청양으로 돌아가서 여관을 얻었다. 여관은 숙박료(25,000원)에 비해 깨끗했다.

오늘 동해안과 영동지역 부산까지 엄청난 폭설로 인해 고립된 지역도 있다고 한다. 뉴스만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2005. 03. 05(토) 맑았다가 흐렸다가 함박눈이 내렸다가 종잡을 수 없이 궂은 날씨.
   아침 산행시작 할 때 기온 영하3도, 산행 중 최고기온 영상3도.
◎ 산행 기점과 종점 : 청양군 남양면과 화성면을 이어주는 610도로 위 공덕재에서 출발하여 청양군 운곡면 645번 지방도를 지나 분골고개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산행을 마침.
◎ 홀로 걸음
◎ 도상거리 : 약 18.4km
◎ 산행시간 : 6시간 45분
◎ 산행 중 통과지점과 시간 : 공덕재(08:15) - 330m봉(08:53 흰색 산불감시초소) - 돌무더기 안부(09:25 구시치로 추정) - 오봉산(09:09 구봉산이라고도 불림) - 농장임도(09:29) - 큰골도로(09:47) - 천마봉(10:11 공부방송국 방송시설 산불감시초소) - 여주재(10:30) - 돌무더기 안부(10:50) - 284.3m봉 삼각점(11:06) - 임도(11:45 용천리 쪽 포장, 청수리 쪽 비포장) - 임도(12:00 묘지 왼쪽으로 방향 바꾸어 임도를 따른다.) - 청양장례식장 주차장 아리고개(12:45) - 아리고개 지나 학당목장 위에서 점심(12:55) - 문박산을 향하는 임도(13:17) - 문박산(13:47) - 녹색송전철탑(14:00) - 645번 도로 위 어슬티고개(14:45) - 분골도로(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