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22차 구간 종주 산행기(3)

1.산행일정 : 2002. 7.27 - 7.29(2박3일)
2.산행구간 : 진고개-구룡령-조침령-한계령(61.0 Km)
3.산행동지 : 여전히 혼자
4.산행여정
- 7/29 : 제32소구간(조침령-북암령-단목령-점봉산-망대암산-한계령 : 20.2 Km)
07:00 조침령 출발
09:28 1,186봉
09:44 북암령
10:50 단목령-11:50 출발
14:57 점봉산(1,424.2m)-15:25 출발
15:50 망대암산
17:20 1,157.6봉
19:40 한계령
(총 산행시간 : 12시간 40분)

5.산행기

- 드디어 설악을 보다
눈을 뜨니 5시 27분이다. 4시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고 말았다. 허겁지겁 일어나 배낭을 꾸리고 민박집을 나선다. 밭고랑을 따라 심어진 큰 고추밭에 고추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려 있다. 울에 갇힌 큰개 두 마리가 길 떠나는 낯선 이방인을 잡아 먹을 기세로 짖어 댄다. 조침령을 오르는 황톳길 옆 계곡엔 물이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침엽수림은 길 따라 잘 심어져 있고 그 사이로 엷은 아침 안개가 걸쳐져 있다. 어제 내려온 길을 따라 조침령 표지석에 당도하니 텐트 두 동이 쳐져 있다. 일시 종주자 들이다. 기훈씨는 이미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하고 있고 영미와 현선은 아직 식전이란다. 나도 옆에 앉아 라면 하나를 끓여 먹고 같이 출발한다.

조침령을 출발하고 나란히 붙인 연곡과 현리 지도를 설악과 속초 지도로 바꾼다. 위도 38도선을 넘는다.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구입한 5만 분의 1지도는 이제 딸랑 3장만 남았다. 진행을 방해하는 잡목과 수풀의 능선 길을 돌고 돌아 934봉을 지나고 1,186봉 직전의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 선다. 구름 고깔을 쓰고 있는 점봉산과 멀리 설악산이 시야에 들어 온다. 가슴이 뛴다. 뒤따라 온 영미는 좋아라고 고함을 지른다. 설악을 보고 막 달려가고 싶단다. 일시종주자가 설악산을 보고 북받치는 감정이야 오죽 하겠는가!

발길은 다시 북암령을 지나 단목령으로 향한다. 단목령이 다가 오자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스레 들린다. 바로 옆을 지나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조금을 더 나아 가면 백두대장군이라고 쓰인 장승 2개가 서 있고 단목령(檀木嶺)이라고 쓰여진 고풍스러운 이정표가 나무 위에 걸려 있는 안부에 도달한다. 앞으로 나아가면 점봉산이요, 오른쪽으로 내려 서면 오색이다. 왼쪽으로 조금을 가면 어젯밤을 보내려고 작정했던 설피마을이다.

물이 찰찰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웃통을 벗어 등목도 하고 발도 담근다.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물도 보충하고 라면을 끓여 점심도 먹는다. 대간 길에 동행자가 있으니 여유가 있어 좋다. 혼자였더라면 아마 쫓기듯 단목령을 지나쳤을 것이다. 이 곳까지 오면서 늘 마음 속에 품어 왔던 설피마을을 들리지 못해 못내 아쉽다. 다음을 기약하며 점봉산을 향해 먼저 떠난다.

길을 잃기 쉬운 펑퍼짐한 숲속의 능선 길을 한참을 가다 갑자기 급경사 길을 따라 오른다. 점봉산이 가까워 지고 있는 것이다.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배낭을 맨채 허리를 굽혀 쉬면서 지도라도 볼라 치면 땀은 안경에도 떨어져 시야를 흐리게 하고 지도 위에도 줄줄줄 물 흐르듯 떨어진다. 하도 힘들어 혼자 쉬고 있는 틈을 이용해 기훈씨를 뒤따라 영미 일행도 도착한다. 영미는 30분이면 점봉산에 도착할거라고 한다. 힘든 길을 거친 숨 몰아쉬며 점봉산(1,424m)에 오른다.

제법 널찍한 공터가 있고 큰 점봉산 표지석이 서 있다. 그 옆에는 들꽃들이 어지럽게 피어 있다. 먼저 도착한 영미와 현선은 어느새 신발을 벗고 바위 위에 앉아 설악의 뭇 군봉(群峰)들을 감상하고 있다. 배낭을 벗고 불어 오는 바람을 안고 선다.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사방이 트여 전망도 좋다. 지나온 대간과 나아갈 대간이 점봉산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망대암산 너머 암봉들은 칠형제봉이라고 현선이가 일러 준다. 귀여운 다람쥐 한 마리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영미는 기겁을 한다.

기훈씨, 영미와 현선이, 나는 제각각 바위에 앉아 상념에 잠겨 있다. 지나온 대간에 비해 보잘 것 없이 남아 있는 백두대간. 힘들고 외로웠던 긴 여정이 이젠 불과 2-3일 이면 끝이 난다. 나를 제외한 일시종주대인 세 사람은 8월 1일이면 백두대간을 완주한다. 젊은 날 백두대간을 종주한 그대들은 어떠한 역경이 가로 막더라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나서 침묵을 깬다. 영미보고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을 불러 달라고 주문한다.



저 산은 네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버리라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백두대간 일시종주자. 강릉대 산악부 소속의 자칭 감자(강원도)인 김영미는 지리산을 출발한지 47일만에 도착한 점봉산에 앉아 한계령을 내려다 보고 있다.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모두들 한계령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그 한계령을 내려다 보고 부르는 노래 '한계령'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미어지게 만든다. 숨소리가 가빠지며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머물고 싶지만 가야할 먼길이 있어 먼저 자리를 뜬다. 3일을 같은 목적으로 같은 길을 걸었던 젊은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울산오면 꼭 연락을 하라고 당부하고 한계령으로 내려 선다. 망대암산에 와서 점봉산을 쳐다보며 크게 함성과 함께 손을 흔들어 보지만 대답이 없다. 멀리 동해 바다가 구름과 맞 닿아 있다.

점봉산에서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은 자연휴식년제에 묶여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경고판이 중간 중간에 서 있다. 그래서 인지 표지기도 뜸한 편이다. 키가 제법 큰 산죽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1,157.6봉에 오른다. 오른쪽으로 암봉들이 나타나며 길은 더욱 험해진다. 급경사를 내려서니 큰 암봉이 가로 막고 섰다. 길은 왼쪽 계곡으로 이어 지는데 나침반으로 방향을 가늠해 보니 남쪽으로 향한다. 한참을 내려갔다 이상해서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나니 힘이 쭉 빠진다. 오른쪽 계곡으로도 희미한 우회로가 있는 듯 해서 내려서 보니 길이 없다. 도대체 어찌하란 말인가? 배낭을 내려 놓고 앉아 혹시 올지도 모를 영미 일행을 기다려 본다. 불러 봐도 기척이 없다.

여기서 해가 지면 곤란하니 결정을 하자. 나침반만 믿고 북쪽으로 무조건 길을 뚫자. 군에 있을 때 한두 번 한 것도 아니데 뭘..이제는 올 만큼 다 왔으니 반대 방향으로야 갈 수가 있나! 길도 없는 계곡을 따라 길을 만들며 한참을 내려 간다. 포장도로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물어 보니 필례약수 가는 도로이고 한계령은 위로 가야 한단다. 지친 몸을 이끌고 포장도로를 따라 한계령휴게소에 이른다. 3일간의 힘든 대간 길도 접는다.(終)

- 세상사는 맛
예정보다 많이 늦었다.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손을 들어 세워 보지만 그냥 지나친다. 많은 차들을 지나 보내고 계속하여 내려 온다. 하얀 포터 트럭 한대가 손을 드니 세워 주신다. 양양까지 좀 태워 달라고 하자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자리를 만들어 준다. 좁은 자리에 큰 배낭까지 안고 올라 탄다. 부부는 강릉에 살면서 인제 장날이라 장사를 하고 돌아 온단다. 아저씨가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없는 재산도 다 털어 먹고 인근의 강원도 장날을 전전하면서 장사를 한단다. 트럭은 꼬불꼬불한 한계령 고갯길을 능숙하게 내려 온다.

애들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벌이가 시원찮아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주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프단다. 서울에 살다가 애들만 남겨두고 강릉으로 내려 오셨단다. 나도 강릉에서 심야버스로 내려 가야 된다고 하자 배낭을 짐칸으로 옮겨 준다. 세상사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양양을 지나 강릉까지 편안하게 온다. 버스터미널앞에 나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를 향해 행복하시라고 고개숙여 인사를 한다. 힘든 산행 끝에 정말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마음이 흐뭇하다. 행복하다.

6.접근로 및 복귀로
- 접근로 : 울산-강릉(기차 20,200), 강릉-진고개(택시 38,000)
- 복귀로 : 한계령-강릉(히치 하이킹), 강릉-부산(버스 28,100), 부산-울산(승용차)
- 민 박 : 쇠나드리(40,000)

7.제23차(마지막회차) 구간 종주 계획
- 일정 : 2002. 8.4 - 8. 6(2박3일)
- 구간 : 한계령-대청봉-마등령-미시령-진부령(36.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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