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45분 버스는 지난 구간의 끝 지점인 비재에 멈춰 섰다. 바로 출발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좀더 수면시간을 넉넉히 갖기 위해 버스시동까지 껐다. 그런데 아까부터 신경을 자극하는 멜로디가 있었으니, 엔진이 멈춘 상태의 그 소리는 고요속의 천둥소리 같았으며 모처럼 이룬 잠을 저 멀리 좇아버린다. 몸을 흔들고 꼬집어도 잠시뿐, 그 봄의 교향악은 장단고저가 제법 갖춰져 화음까지 맞추고 있다. 몸을 비틀며 숨넘어갈 듯 나오는 그 비음.... 조금만 더 들으면 내심장이 멈출 것 같다.

4시에 기상하여 버스 밖에 나오니 하늘은 근래 보기 드물게 맑았으며 별들이 하늘가득 총총히 빛나고 있다. 그동안 황사와 안개로 인하여 산세를 제대로 관망할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오늘은 즐거운 산행이 될 듯싶다. 풋풋한 봄바람에 심호흡을 하고나니 가슴 저 깊은 곳까지 시원해진다.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이다. 4시28분 장비를 점검하고 비재를 출발한다.

지금껏 밟아왔던 능선과는 달리 완만하고 길 또한 부드러워서 걷기에 아주 편하다. 가끔은 갈림길도 있지만 표시기도 적당히 매달려 있고 마루금이 선명하여 헷갈릴 염려는 없다. 오늘구간은 거리가 짧고 완만하기 때문에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래서인지 뒤따라오는 랜턴 불빛이 한 줄로 가깝게 붙어 있다. 뒷동산 같은 봉우리를 서너개 넘으면 암릉이 나타난다. 이곳은 짧은 우회길이 있으며, 다시 능선을 올라갈 때는 짧은 거리지만 네발로 낑낑대야 한다. 능선에 오르니 마침 저 멀리서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5시53분) 있다. 언제 보아도 가슴 뭉클한 그 붉은 빛, 아무리 기운 떨어지고 맥 풀려도 저 강렬한 빛을 대하고 나면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잠시 후 일행은 봉황산(740m)에 도착했다(5시56분). 이곳은 넓지 않았으며 그 가운데에 정상비가 세워져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앞에는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데 내리막길이라 25분 정도 걸으면 도달할 수가 있다. 화령재로 갈수록 산의 고도는 더욱 낮아지고, 등산로는 오솔길과 같이 굽이굽이 돌고 있다. 아까부터 이름모를 산새들이 제철을 만난 듯 훨훨 날아다니며 고운소리로 지저귀고 있다.

7시6분 화령재 도착. 잠시 착각을 하고 신봉리 마을로 들어가다 길을 잘못 든 것을 알고 되돌아 나온다. 이곳은 사거리로서 25번 국도가 지나는데 이 도로를 따라 상주방향으로 10여분 가다보면 팔각정이 나온다. 도로 옆에는 간간히 표지기가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가 쉽지 않아서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팔각정 바로 직전에 오른쪽 축대에 올라서서 능선에 붙으면 다시 대간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20여분정도 걸으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5분 정도 임도를 따라가면 왼편으로 능선길이 있다.

길을 가다보면 땅위에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황량했던 나무에는 어느새 잎들이 피어나 제법 녹음을 형성하고 있다. 산 좌우에 고개를 살짝 들어올린 고사리와 취나물은 계절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 주변에 피어난 복사꽃과 살구꽃들을 바라보면 메마른 정서와 감성을 더한층 풍요롭게 해준다. 다시 얼마간 완만한 길을 가다보면 갑자기 커다란 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이 바로 윤지미산인데 제법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그간의 무사 안일함에 일침을 가하 듯 헐레벌떡 거려야 한다. 높은 산은 아닌데 워낙 바닥에서부터 오르기 때문에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8시56분 윤지미산(538m) 도착.



능선은 다시 부드러운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걸음걸이도 산보처럼 가볍다. 별로 힘들지 않아도 나무 그늘이나 좋은 쉼터가 보이면 저마다 주저앉아 가져온 먹을거리를 꺼내놓고 간식을 즐긴다. 한여름에, 별로 일하기도 싫을 때, 이런 나무그늘 아래에서 오수를 즐길 수 있다면 신선이 부럽지 않을 것을.... 한참을 이런 산줄기가 산세를 이루다가 무지개산을 바라보며 약간의 비탈길이 나타난다. 그러나 무지개산정상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우측 즉, 남서방향으로 길을 꺾는다(10시30분).

이제부터 내려가다 보면 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듬성듬성 나타난다. 그리고 논도 있고 조금 더 가다보면 밭둑을 지나게 된다. 그런데 밭에서 씨앗을 뿌리고 비닐을 덮는 농부를 바라보니 왠지 그 분들께 죄송스럽기까지 하다. 열심히 일하는데 띵까띵까 배낭 메고 다니는 것이 곱게 보일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출신성분이 시골이기 때문에 더 그런 듯싶다. 거기다 등로가 밭 끝부분에서 횡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눈치가 보인다. 작은 야산을 몇 개 넘으면 오늘의 종착지점인 신의터재에 도달한다(11시48분). 총산행시간 7시간20분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