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이 만개한 낙동정맥 첫구간(백양산-만덕고개-산성고개-금정산-계명봉)

"개금동-삼각산-애진봉-백양산(641.7m)-불웅령-만덕고개-산성고개-동문-원효봉(687m)-북분-고담봉(801.5m)-장군봉(735m)-계명봉(601.5m)-지경고개"산행기(부산 진구 북구·경남 양산 /2002년 4월 13일(토)/날씨 : 맑음/총 산행시간 : 9시간 44분, 휴식시간 : 2시간 32분 )

◎ 참석자 : 강환구, 문창환, 바랭이, 이사벨라, 안일준(이상 5명)

◎ 산행코스
개림초교-삼각산(454m)-애진봉-백양산(641.7m)-불웅령-만덕고개-518m-제 2망루-산성고개-동문-제 3 망루-제 4망루-의상봉-원효봉(687m)-북문-고담봉(801.5m)-장군봉-계명봉(601.5m)-지경고개(도상거리 약 22km)

◎ 산행일정
06 : 00 개림초교 출발
06 : 55 삼각산(454m)
07 : 21 애진봉
07 : 31 백양산(641.7m, 휴식 : 10분)
08 : 31 불웅령
09 : 17 만덕고개(휴식 : 5분)
09 : 50 금정산 역사 탐방로 안내판(휴식 : 10분)
10 : 07 제 2망루(휴식 : 8분)
10 : 34 산성고개(아침 : 36분)
11 : 15 동문
11 : 35 제 3망루
11 : 53 제 4망루
12 : 08 원효봉(687m, 휴식 : 13분)
12 : 31 북문(휴식 : 10분)
13 : 07 고담봉(801.5m, 휴식 15분)
13 : 50 억새평야 안부(휴식 : 13분)
14 : 22 소 장군봉(715m)
15 : 02 계명봉(601.5m, 휴식 : 12분)
15 : 44 지경고개

◎ 개 요
태백산맥의 구봉산(九峰山:太白弟)에서 남쪽으로 뻗어 부산 다대포(多大浦)의 몰운대(沒芸臺)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길이 370km.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백병산(白屛山)·백령산(白嶺山)·주왕산(周王山)·주사산(朱砂山)·운주산(雲柱山)·사룡산(四龍山)·단석산(斷石山)·가지산(加智山)·취서산(鷲捿山)·원적산(圓寂山)·금정산(金井山)·몰운대로 이어진다.
그 줄기는 낙동강 동쪽에 위치하는데, 그 산줄기의 동쪽으로는 동해안의 울진·영덕·포항·경주·울산·부산, 서쪽으로는 태백·봉화·영양·청동·영천·경산·밀양·김해 지역과 이어진다.
▶몰운대 : 부산 사하구 다대동(多大洞)에 있는 명승지.
낙동강 하구 최남단에 있다.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몰운대(沒雲臺)와 함께 주변 바다와 산의 경치가 아름다운데다가 곱고 부드러운 흰 모래사장이 전개되어 좋은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또한 사적이 있어 관광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다대포진(多大浦鎭)이라 해서 압록강변의 만포진(滿浦鎭)과 함께 국방의 요충지를 이루었다.
이곳 아미산(峨嵋山)의 응봉(鷹峰)에는 당시 봉화를 올렸던 봉수대가 남아 있다.
몰운대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선봉장으로 이곳 앞 바다에서 순국한 충장공(忠壯公) 정운(鄭運)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서 있다.
그 밖에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윤흥신(尹興信)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는 윤공단(尹公壇)이 있다.
▶백양산 : 옛부터 이산에 흰빛이 나는 수양버드나무가 있어 인근 주민들이 백양산이라 하였다. (삼각점:641.5m)
부산 부산진구(釜山鎭區)와 북구(北區) 사이에 있는 산으로 다대포(多大浦)에서 끝나는 낙동정맥(태백산맥) 말단 부에 솟아 있는 산으로 동쪽 기슭의 성지곡(聖池谷)을 끼고 금정산(金井山:801.5m)과 마주한다.
성지곡 일대는 어린이대공원으로 개발되어 조림에 의한 삼나무 ·전나무를 비롯한 수림이 울창하고, 남쪽 기슭에 가까운 산허리에는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선암사(仙岩寺)가 있다.
산록 저지대는 개발이 되어 시가지 화한 곳이 많다.
▶불웅령 : 불태령이라고도 부르며 옛날 이 봉우리에 봉화를 올린 곳이라서 불태운령이라 부르던 것이 불태령이라 변하여 칭하게 됨.
▶원효봉 : 금정산 산성에 있는 687m(삼각점)로 행글라이더 활공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금정산성 : 사적 제215호. 길이 1만 7336m, 면적 21만 6429평. 동래온천장의 북서쪽 해발고도 801m의 금정산정에 있는 한국 최대의 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약 4km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산성의 위치 ·규모로 보아, 신라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증보문헌비고》와 《동래읍지》에는 1703년(숙종 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석축으로 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수축하였고, 1808년(순조 8)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동문(東門)을 신축하고 성을 보수하였으며, 1824년 부사 이규현(李奎鉉)이 성내에 건물을 짓고 진장(鎭將)을 배치하였다.
1970년에 4 개 성문 중 동 ·서 ·남문이 복원되었다.
▶금정산 : "산 위에 있는 큰 바위에 샘이 있는데, 물빛이 금빛 같다하여 금정산이라 함."
부산 금정구와 경남 양산시 동면(東面)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801.5m. 낙동강 지류와 동래구를 흐르는 수영강(水營江)의 분수계를 이루는 화강암의 봉우리이다.
산의 산정으로부터 남쪽으로 ㄷ자형을 이루는 금정산성(金井山城:사적 215)이 있는데, 1000년 전에 축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성지는 한국 옛 산성중 규모가 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의 북동쪽 계곡부에 범어사(梵魚寺)가 있으며, 주변 기슭에는 금강공원(金剛公園) ·성지곡공원 등이 조성되었다.
금강공원에서 산성고개에 이르는 케이블카가 있고, 이 산은 민속촌 ·어린이공원 ·휴가촌 ·골프클럽 등을 갖춘 관광단지로서, 부산시민의 휴식 ·소풍지가 된다.
▶계명봉 : 신라시대때 하늘에서 이 산으로 천계(天鷄)가 내려와 울었다하여 계명봉이라 하며 그 천계는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표고점:601.7m)
▶지경고개 : 부산과 양산의 경계가 된다 하여 지경고개라 함.

◎ 산행후기
오전 내 비가뿌리고 바람이 몹시 불며 일기가 좋지를 안았다.
오후 4시쯤 되어 비는 뿌리지를 안으나 구름이끼어 무언가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 낙동정맥 첫 출정 산행을 나서려니 꾀가 살살 나기 시작한다.
안 갈 수가 있는 방법이 있나하고 낙서판에 가기실은 데 방법을 알켜달라고 글을 올리니 첫 번째로 미친사람이 염장을 질러 놓으니 뒤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 몽창 염장을 지른다.
산행준비를 하여 가지고 동대문 히테에 나가니 이미 킬문, 미친사람, 바랭이, 이사벨라님이 오셔서 히테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조금 있으니 오늘 아침부터 맛이 가 헤롱헤롱하여 못 올 것 같았던 단풍님이 나타나신다.
바랭이님의 깜짝쇼로 낙동정맥 종주대장 문창환님에 대한 기념품 증정식으로 18년산 죠니워커 골드가 증정되고 뒤이어 미친 사람의 낙동 참가자에 대한 기념품 스카프 증여가 있었다.
바랭이님이 임페리얼을 또 꺼내어 맥초, 양초 쨤방으로 마신다.

23 : 00 광인님의 열렬한(?) 환송 속에 차는 동대문을 출발하여 미끄러지듯이 고속도로를 달린다.
안성휴계소를 지나니 청주의 심산 아우님으로부터 전화가 와 죽암 휴게소에서 잠시 만나자고 한다.
죽암휴계소에 당도하여 조금 기다리니 보기만하여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잘 생긴 우리 심산님이 뭘 그리 많이 장만을 하여 가지고 오셨는지-----!
보고픈 사람들 본 것만 하여도 기분이 좋은데 첫 출정을 환영하는 마음으로 막걸리, 족발, 돼지고기, 순대 무지하게 준비하여 온 것이다.
차안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배 이배하며 잔을 돌리고 심산 아우님의 환송 속에 죽암 휴게소를 빠져 나온다.

차는 어느덧 부산에 도착하고 어둠은 가시며 여명을 밝히고 있다.
물어물어 개금동 LG APT와 한효 아파트를 찾아서 개림 초등학교에 오니 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을 돌며 아침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06 : 00 정문에서 아스콘 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오르며 낙동 첫구간의 발길을 옮긴다.
아스콘 도로가 끝나고 우측으로는 예비군 훈련장에 오르는 세멘 도로와 추차장이 있고 좌측의 나무 계단을 밟으며 산줄기를 오르기 시작한다.
능선을 한참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LG apt와 한효apt 사이의 길이 확연히 들어나 보인다.
등로변의 진분홍 꽃이 만개하여 우리의 첫구간 산행을 반겨주고 있어서 진달래려니 생각하였는 데 너무나 색깔이 진해 자세히 보니 철쭉이 만개를 한 것이다.
잠시 오르니 서쪽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있고 이곳이 끝 지점인 곳에 올라선다.
그곳에는 임도를 따라 건강공원 1.2km, 북쪽으로 삼각산 2.3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철쭉이 만개한 바위등로를 따라서 계속 오르니 전망이 좋은 소나무 있는 바위봉에 올라서 옷을 여름 T-shirt로 갈아입고 철탑이 바로 아래 있는 암봉에 오른다.
온 길을 되돌아보니 남쪽 건너편에는 좌측으로 수정산과 엄광산이 조명되며 그아래 산자락과 구릉으로 수많은 아파트와 집들이 꽉차 있다.
다시 올라서며 서쪽을 바라보니 낙동강과 막힘이 없는 넓직한 김해평야가 펼처져 시원하게 보인다.
우측의 등로에는 정맥꾼들의 표시기가 바람에 휘날리고들 있다.
이곳 능선 끝자락부터 오르지 않고 예비군 교육장 도로를 따라 오르다 사면으로 처 올라오는 등로로 보인다.
바위봉들을 올라서며 앞을 막고 있는 암릉을 우회하지 안고 그대로 처 올라오니 이 암릉 서쪽은 수직 절벽인 낭떨어지기다.

조금 더 암릉길을 오르니 삼각산(454m)에 도착한다.
지금까지는 계속 북쪽으로 올라섰으나 이곳부터는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행한다.
서풍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무언가 날려 버릴 듯이 불고 있다.
그곳을 내려서며 철탑을 지나고 비석이 없는 큰 봉분의 묘를 지나 어느 곳으로 넘나드는 곳인지 모를 안부 십자로를 지나 내려서니 산줄기 한가운데 둔덕위에 있는 묘를 지나고 묘 3기가 나란히 있으며 입산금지 깃발 2개가 휘날리는 곳을 지나서 돌무덤이 있는 봉에 올라선다.
다시 내려섯다 올라치며 송림과 초원지대를 지나 돌무덤이 있는 곳에 오른다.
산불초소와 돌탑이 있는 곳을 넘어서 봉에 오르니 백양산 터널 입구가 남동남쪽으로 내려다보이며 많은 차량의 왕래를 볼 수가 있다.
그곳을 내려서니 아름답게 단장한 공원에 도착한다.
넓은 마당에 큰헬기장도 있고 철쭉 화단에는 진분홍의 철쭉이 만개하였으며 중앙의 화단에는 愛鎭峰 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동남쪽으로는 이곳에 오르는 잘 다듬어진 임도가 있다.
공원 주위에는 쉬어 갈 수가 있도록 벤치가 준비되어 있는 잘 가꾸어 놓은 곳이다.
그곳에는 백양산 경관 조성림 표시판이 있는데 1990년 12월24일 산불로 민둥산이 되어 1996년부터 2년에 걸처 철쭉등 10여종의 수종을 식수하여 조성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인지 그곳의 소나무는 모두 내 키 비슷한 정도이다.
우측의 임도를 버리고 능선을 오르며 서쪽의 낙동강을 바라보니 부산과 김해를 잇는 낙동대교 4개가 걸쳐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의 오름 뒤에 돌무덤 중앙에 머리만 내민 표지석이 있는 백양산(641.7m)에 오른다.
돌무덤 둘레에 벤치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동쪽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불 초소가 있고 멀리 어린이공원 위락시설과 돔 모양의 부산 종합 운동장의 모습이 눈에 확 뛴다.
이곳에 올라오며 보니 등산로는 아주 잘 발달되어 있고 부산사람의 거친 모습을 보듯이 우리가 산에 다니며 볼 수가 있는 돌탑이 아니고 돌을 그냥 쌓아 놓은 무덤 형태의 것이고 요 아래 돌탑도 섬세하게 쌓아놓은 것이 아닌 미완성의 거친 작품이다.
북쪽으로 내려서며 봉우리를 하나 넘어서고 초원지대를 지나서 서북쪽으로 능선이 뻗은 돌탑이 있는 분기점에서 북동쪽으로 내려서는 등로는 우마차도 충분히 다닐 수가 있는 좋은 등로다.
돌무덤이 있고 산불초소가 있는 곳에서 북북동쪽으로 한없이 무지막하게 내려선다.
삽시간에 고도를 340m를 내려선 것이다.
만남의 숲이라는 표시판이 있는 체육공원에는 편의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고 십자로 이정표(E:어린이공원, W:만덕, S:백양산, N:남문)가 있는 곳을 지나서 십자 안부에서 우측 등로를 따라서 가니 향토순례 표시석이 있는 불웅령이다.
백양산에서 이곳까지는 고도를 370m나 낮추었다.

순례길을 버리고 나무 가드레일 사이로 들어가 영구 막사와 같이 세멘으로 만든 만덕 산불 초소를 지나서 오르니 능선이 북북서에서 남남동쪽으로 뻗은 능선에 올라서 휴식을 10분간 취한다.
오늘은 나만 빼 놓고 컨다션들이 별로 안 좋은지 단풍님도 맛이 완전히 가버려 뒤에서 처지고 그 불사조 같은 킬문님도 앞서지를 못하고 있다.
어제 밤에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일가?!

북북서쪽으로 기수를 바꾸어 묘가 있는 둔덕을 넘어서고 내려서며 묘를 지나니 안부에 망향비(황해도 해주 벽성군민회)가 있는 안부에서 산책로를 버리고 능선을 올라서 철탑을 지나며 북동쪽으로 내려서 나무 레일과 철탑을 지나 밀양 박공 쌍묘를 지나 오르니 묘와 송신탑이 있는 삼각점에 오른다.
내려서는 등로 변에는 많은 묘들이 있고 철탑을 지나 내려서니 삼각점이 있는 바위 전망대에서 만덕고개 도로가 보인다.

만덕고개로 내려오니 1965년 2월 6일 부산시장 김현옥씨가 개통하였다는 표시석이 있고 "여기부터는 북구입니다." 표지판이 반겨준다.
도로를 건너서 좌측의 산책로를 버리고 송림숲으로 들어가 동래 정공 묘와 묘 2기를 더 지나고 십자 안부를 지나 올라서니 좌측으로는 부전교회 부활동산 묘역이 있고 너덜 능선 길을 오르니 물이 흐르고 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 물의 근원지인 약수터에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못하듯 약수터를 들여다보니 수량도 풍부하고 물을 떠서 목을 축이니 물맛이 좋았다.
다시 가파르게 올라서 송림지대에 있는 돌탑(456m)를 내려서고 암봉을 올려처 송림을 지나서 오르니 봉우리가 간이 음식점으로 바뀐 518m에 오른다.
남동쪽으로는 케이블카 있는 곳으로 내려서고 그곳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서니 안부 사거리 이정표(E:휴정암, W:남문마을, S:케이블카, N:산성고개)가 있고 "여기부터는 금강공원입니다"안내판이 반겨주고 있다.
이곳까지는 차량이 통행을 하는 도로이고 간이음식점에 물건을 실 고온 차량들이 눈에 뛴다.
산책로 임도를 따라 오르다 좌측의 등로로 들어가 안부 사거리를 지나고 금정산 역사 탐방로 안내판(북문:6.2km, 동문:2.6km, 남문:0.3km, 케이블카:0.5km, 온천장 2.4km)이 있는 곳에 이른다.
이곳에서 뒤에 오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잠시후 548m 제 2망루에 도착하여 서북쪽의 상계봉과 파리봉을 조망하여 본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산성을 따라가면 상계봉 파리봉를 거처서 서문을 지나서 금정산에 오를 수가 있는 코스다.
오늘은 정맥코스라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잠시 올라서는데 왠 찦차가 나타나더니 경적을 울린다.
요즈음 세월이 좋아저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이런 바위 지대까지 4HW 차량을 몰고 올라온다.
등로 변에는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쓰레기들이 버려저 있어서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파리가 있기 마련이듯이 화창하고 좋은 일기에 파리떼와 함께 하는 산행이다.
우리네 같았으면 마당같이 평평하다고 하여 마당바위라 불렀을 곳인 평평바위를 내려서 암봉인 대륙봉을 찍고 내려서니 산성고개다.

산성고개에 내려서니 많은 행락객들이 있고 자동차간이 음식점이 있어서 산성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아! 그 맛이 광인이 제일 좋아하는 초 맛이다.
맛이 시다고 이야기를 하여도 처마시려면 마시고 말라면 마르라는 식으로 묵묵 부답이다.
그곳에서 때늦은 아침 식사시간을 갖는다.
광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이곳의 상황을 알려준다.
오늘의 기자로서의 소명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식사와 간담을 끝내고 산성고개를 가로질러서 잠시 오르니 동문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어느 회사에선가 단체로 와서 극기 훈련을 하는지 그룹별로 모여서 구호를 외치며 시끌벅끌하기 짝이 없다.
이런 것에 익숙지 않아 미간이 찌그러진다.
그러고 보면은 서울 주변에는 이런 곳이 없는데 서울 사람의 산행문화가 한걸음 앞선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산책로로 가다가 산성로로 가다가 왔다갔다하며 제 3망루를 지나고 초원지대를 거처서 제 4망루에 오른다.
동쪽으로는 희동 저수지가 조망되고 서쪽으로는 낙동강과 그주변의 아파트 단지들이 조망된다.
의상봉과 무명암 사이의 암봉을 지나고 계속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원효봉(687m)에 이른다.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더위에 흐늘해진 몸을 일켜 세운다.
뒤에 처져서 오는 바랭이와 이사벨라님은 그렇다 치고 단풍은 완전히 물이 가 눈은 게슴츠레하며 앞으로 나설 줄을 모른다.
산성을 따라서 암능을 오르내리며 산죽지대를 지나서 내려서니 넓은 평야가 펼처진 북문에 도달한다.

이곳까지도 산책로를 따라서 차량 통행이 가능한 곳이다.
간이 매점에서 커피들을 마시며 잠시 쉰다.
오늘 산행은 너무나 쉬는 시간이 많다.
이곳은 신불산 억새 지대와 같이 넓직한 초원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런 평원이 있는 곳을 경기도와 강원도만을 주로 다니는 나로서는 별로 볼 수가 없는 곳이다.
그러고 보면 남북의 산의 형세가 나타난다.
북쪽은 어린아이의 약오른 고추모양 오똑하고 뾰족하여 오르내림이 힘이 드는데 이곳은 나이 먹은 노인네 모양 흐물하여 산이 높아도 오르내림이 완만하여 산행이 조금도 힘들지가 않은 곳이다.
그곳의 간이 식수대가 있어서 꼭지를 틀어 물맛을 보니 시원하고 무미, 무취, 무색의 아주 양질의 약수다.
하기야 이 높은 곳에서 철철 흐르는 생수니 오염을 생각하여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에는 또한 늪지가 형성되어 있어서 조금만 비가 오면은 물이 고여 있을 만한 곳이나 지금은 너무나 가물어서 말라 있었다.
이곳에서 산성을 따라서 고담봉에 오를 수가 있으나 우리는 우측의 늪지로 들어가 졸졸 흐르는 물길을 건너서 고담봉 동쪽의 바위들을 치고 올라간다.
바위를 치고 올라서 장군봉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서 고담봉에 오르는 암릉 사이에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진달래꽃을 볼 수가 있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그러고 보면은 나의 마음 어느 구석엔가 흐르는 세월을 잡고 싶은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은연중에 본심이 드러나니 나만은 그렇지 안다고 항시 말하여 온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바줄을 2군데 통과하여 고담봉(801.5m)정상에 오른다.
고당봉 정상엔 거대한 화강함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봉우리는 하늘 아래에서 천신인 고모(姑母)할머니가 내려와 산신이 되었다 하여 그 이름에서 유래 하였는 데 이는 그 때의 신선 사상에 기초하였다 볼 수 있다.
금정산 고당봉은 10여봉 중 최고봉으로 그 가슴에 해당하는 곳에 용머리 형상의 용두암(龍頭岩)이 있고, 북으로 장군봉(735m), 남으로 상계봉(638m)을 거쳐 성지곡 뒷산인 백양산(641.7m)으로 연결된 금정산의 주봉이다.
정상에서는 동서남북이 시원하게 모두 터져 있다.
남쪽으로는 우리가 거쳐온 정맥 능선들이 아름되고 바로 아래는 북문이 있는 억새 평야 지대와 이곳으로 오르는 산성로가 있고 그곳으로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낙동강과 그 유역 김해평야가 펼 처지고 동쪽으로는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회동저수지의 물결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바로 앞에 우리가 거처야할 장군봉과 계명봉이 보이며 다음 구간인 철마산, 백운산이 보인다.
정상 표지석 뒤에는 이은상 선생이 지은 시가 각인 되어 있다.


돌우물 금빛 고기 옛 전설 따라
금정산 산머리로 올라왔더니
눈앞이 아득하다 태평양 물결
큰 포부 가슴속에 꿈틀거린다.


이곳 까지 산행을 하면서 대구의 이한성님께서 4/5일 산행을 하였다하여 흔적을 찿았으나 찿을 수가 없고 대구의 호연지기님의 3/10산행한 표시기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금정산을 부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방치하는 줄 모르겠다.
내가 다녀본 산중에서 계방산과 금정산이 가장 더럽혀저 있는 산이다.
가깝게 옆에 있을 때에 소중한 줄 알고 가꾸어야지 다 버려지고 난 뒤에는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들기 인것을------!
7분여 뒤에 문창환님이 올라오시고 나머지 사람이 올라 올때를 기다려도 올라오지를 않아서 추위가 느껴저 다시 올라왔던 북쪽의 가파른 곳을 내려선다.
가파른 곳을 내려서는데 창호지 한 장크기의 왠 방패연 큰 것이 떨어저 있어 그것을 주워들고 내려선다.
"새천년"이라고 붓글씨로 쓰고 낙인까지 찍어 놓은 것으로 보아 정월 대보름에 액운을 실어 날려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데 창호지의 상태가 색이 바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얼마 전의 것으로 추측된다.
단풍이 무척 힘이 드는 모양이다.
정상에 오르지도 앟고 이곳에 앉아서 기다리니 말이다.
하기야 초에는 천하장사가 없는 법인데 하구한날 젓어 있으니 몸이 망가지는 모양이다.
이곳도 역시 산업의 원동력인 철탑이 지나가고 있다.
철탑을 지나고 내려서는 길 좌측으로는 마애여래입상으로 가는 등로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지나서 소나무 숲을 지나고 철탑을 지난 후에 억새풀안부 평야지대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이제는 앞을 막고 있는 장군봉을 오른 후 동쪽의 계명봉만 오르면 오늘 산행은 끝이다.
지도로 가름해 보니 약 3km 정도가 남았다.
현재 시간이 13 : 50이니 쉬엄쉬엄 널널하게 가도 2시간이면 뒤집어쓴다.
이사벨라님이 주신 선식을 물에 타서 시음하여 보고 그곳에서 여유 자작하게 13분을 쉬었다.
고담봉에서 내려와 철탑을 지나면서 등로는 오솔길로 바뀌어 정겨움을 느껴지게 한다.
장군봉을 오르는 등로는 가파른 억새 숲 사이로 가는 것이다.
오르다 보면 서쪽으로 등로가 갈라지는 곳이 있는데 계명봉 정맥을 타려면 무조건 우측의 등로로만 가야 한다.

드디어 민밋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서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이보다 더 조금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이곳에서 완만히 평야 같은 신불산 억새풀 지대를 연상케 하는 안부에 내려섰다가 올라서면 되는 그곳이 장군봉(735m)이다.
우리가 서있는 곳도 고도계가 715m를 가리키는 곳이고 북쪽으로는 우리가 가야할 절개지 및 도로가 보이며 우리는 이곳에서 동쪽 안부로 내려서기 시작한다.
무척이나 내려간다.
내려가는 등로가 계명봉 방향이 아닌 남동방향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다.
급하게 내려서다 북쪽으로 등로가 있는 좀 넓은 공터에 앉아서 새 신발이라서 길이 안 들어 발가락이 아파서 신을 벗고 양말을 더 신어 본다.
내려설 때면 엄지발가락이 신 앞 코에 닿아서 무척이나 아프다.
좌측으로 소로를 버리고 계속 넓은 등로를 따라서 교통호 같이 푹파인 곳을 건너뛰니 안부 십자로가 나온다.
남쪽으로는 범어사로 내려가는 등로고 북쪽은 지경고개 쪽으로 내려가는 계곡 등로다.
이곳을 지나 동쪽으로 가파르게 올라서며 마지막 힘을 쏟는다.
오늘 컨디숀이 좋아서 힘은 별로 안드나 발이 아퍼서 괴롭다.
바랭이 님이 뒤에 처져서 힘든 듯 천천히 오르고 있다.
얼만큼 오르니 평평한 오름이 있더니 또한 차례 발목을 당기는 가파른 오름 뒤에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돌무덤이 있는 계명봉에 당도한다.
돌무덤 상단에는 누군가 조그만 불상을 앉혀 놓았다.
남쪽으로는 범어사를 둘러싸고 있는 금강암, 대성암, 내원암을 비롯하여 멀리 원효암까지도 아주 잘 보이고 이곳 금정산이 불교의 성지임을 느끼게 하여준다.
북동쪽으로는 도로와 부산 칸트리 크럽의 잔디 골프장이 보인다.
참으로 낙동정맥 첫 출정을 하늘도 축복하듯이 맑고 깨끗한 일기다.
북쪽으로 가파른 암릉을 내려서고 사람다닌 흔적이 많지 안은 등로를 따라서 쌍묘를 지나서 철탑을 자나며 능선을 따라서 내려서니 우측으로는 묘가 있고 좌측으로는 민가와 밭이 있는 곳에서 농부가 능선을 타고 내려서는 우리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듯하다.
절개지 축대 옆으로 1077 지방도에 내려서니 아니 이곳이 지경고개 인줄로 알았더니 100m 서쪽에 민가있는 언덕에 고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철탑에서 능선을 따라서 내려서지 말고 서쪽으로 조금 진행하여 내려가야 정확한 정맥 줄기를 밟는 것이다.
도로를 따라 100m 올라가니 부산시와 경남 양산시 경계표시판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지방도 북쪽으로는 아래로 뚝 떨어져 달리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고 고속 도로를 건너 골프장 쪽으로는 육교가 이쪽능선에서 저쪽능선으로 잘라진 산줄기를 연결하여 놓았다.
고개에 대기중인 차량으로 이동하여 오늘 산행을 마치며 부산에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하여 일광쪽으로 오라하니 너무 교통이 불편하니 민락동으로 오라한다.
도시고속도로를 타면 쉽게 갈 것을 지리가 어두워 시내를 통과하여 광한리 민락동 회쎈타에서 만나 파도가 출렁이는 광한리 앞 바다를 내려다보며 도미, 우럭, 민어등으로 대접을 받고 거나하게 참초에 취하여 후배의 환송속에 낙동정맥 첫 출정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부산을 떠난다.
다시 이 자리를 빌어서 출정 시작에 참여하여 늘펀한 환송 출정식을 차려준 광인님과 밤 01시가 다되어 죽암휴계소까지 주안상을 차려와 힘을 복돋아준 심산아우님과 무사 산행을 축하하여주며 물고기를를 대접한 후배 이기조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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