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7차 구간종주 산행기

1.산행일정 : 2002. 2.23(토)
2.산행구간 : 덕산재-삼도봉-화주봉(석교산)-우두령(24.1Km)
3.산행친구 : 나홀로
4.산행일지

- 2/23(제11소구간:덕산재-삼도봉-화주봉(석교산)-우두령:24.1Km)
04:10 울산출발
06:10 김천
07:25 덕산재 도착 및 산행시작
09:03 부항령
11:36 1,170.6봉
12:51 삼도봉 안부
13:07 삼도봉
13:35 1,089.3봉
16:25 1,175봉
17:15 화주봉(석교산)
18:23 우두령 도착

5.산행기

- 덕산재 가는 길
대간을 시작한지도 두어 달이 다 되었다. 요즘 내가 얼굴이 더 말랐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대간한다는 소문도 입으로 통해 알려져 가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거의 미쳤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상종을 못할 사람이라는 사람도 있다. 사람 정말 독하다면서 산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겁없이 혼자 다니느냐 면서 말리는 사람도 있다. 산에 호랑이가 산다느니 산돼지 같은 들짐승을 만나면 어쩌려고 그렇게 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고맙다.

배낭을 꾸리느라 저녁시간을 뺏기는 바람에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예정 기상시간 보다 한 시간 늦게 일어 났다. 아침 도시락을 챙겨 길을 나선다. 배낭이 전에 보다 무거운 것 같다. 이번 산행구간이 좀 길어서인지 괜히 마음부터 부담스러워 진다. 새벽공기는 많이 부드러워진 듯 하다. 언양IC에서 내려만 가다가 오늘은 서울쪽으로 차를 몬다. 대간길 따라 올라가듯이...

김천에서 덕산으로 가다가 해장국 집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들어 선다. 역시나 나이 지긋한 등산객 몇 분이 해장국을 먹고 있다. 어디 주말 산행이라도 가는 가 보다.
덕산재 오르는 길바닥은 미끄럼 방지용 모래가 뿌려져 도로가 어지럽다. 지난번 덕산재에서 구간종주를 마쳤을 때 무풍파출소 경찰아저씨가 차를 태워 주신다기에 이 곳 대간 길을 확인도 못하고 떠났었다.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개마루의 폐 주유소와 매점 건물 때문에 차에서 내리기가 싫다. 덕산재의 아침바람은 아직도 제법 차다. 스트레칭으로 간단히 몸을 풀고 숨 호흡을 크게하여 찬 공기를 폐부 깊숙이 넣어 바깥공기에 적응 시켜 본다.

- 물 담은 방수등산화
덕산재도 여느 대간 초입과 마찬가지다. 마루금으로 오르는 길은 몸이 덜 풀려서 인지 언제나 힘이 든다. 잡목을 헤치고 능선에 올라서니 오른쪽의 아침 햇살은 따스하게 비치고 있지만 왼쪽골짜기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봄의 길목이 아직도 멀었다는 듯 차갑다. 능선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인공으로 조성된 넓은 공터가 나온다. 양쪽으로 길도 나 있다. 임도와 소로 길을 몇 개 지나고 잡목이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면 헬기장이 있고 능선 양쪽으로 포장도로가 보인다. 부항령인가 보다.
부항령을 지나 참나무 잡목 길을 따라 얼마를 갔을까? 내리막의 능선을 조심해서 걷고 있는 데 아마 터면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안 그래도 혼자 산중이라 긴장해서 가는 데 숲속에 뭔가 시커먼 산돼지 떼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산돼지가 아니라 염소였다. 인적도 없는 이런 높은 산중에 염소가 있다니 이상하다. 어미 염소인 듯한 큰놈은 목에 줄이 매여 있고 새끼 염소 네 마리는 오히려 제가 겁먹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 본다. 1030봉 안부에서 앞서가던 세 사람의 대간꾼을 만난다. 산에서 이렇게 대간꾼을 만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서울서 오셨단다. 덕산재에서 나보다 앞서 올랐단다. 혼자 대간을 하느냐? 이 고통스런 일을 왜 시작했느냐? 무슨 계기라도 있었느냐? 집사람이 하라고 했느냐? 는 등 세 사람이 이런 저런 질문을 해댄다.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우두령까지 가면 같이 갈까 했는데 물한리 계곡으로 빠진단다. 갈 길도 멀어 앞서 지나 간다. 1030봉 오르는 길은 햇볕이 참나무 숲을 훤히 비춘다. 오르막 길은 질퍽해서 매우 미끄럽다. 숨을 헐떡이며 이 봉우리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는 대간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

1170.6봉으로 향하는 길은 힘겨운 봉우리의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1170.6봉을 지나니 갑자기 눈길이다. 무릎까지 빠진다. 스패츠도 차지 않는 등산화 속으로 눈가루가 그대로 들어가 녹는다. 양말이 젖는다. 가다가 서서 등산화 속의 눈을 손가락으로 파 내 보지만 그것도 귀찮다. 10여분을 내려 오면 헬리포트가 있는 평원이다.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임도가 나있다. 대간의 마루금이 능선 위일 것 같지만 길도 없는 잡목 숲이라 들어 설 수가 없다. 눈 쌓인 임도를 따라 조금 가면 대간으로 오르는 표지기가 몇 개 붙어 있다. 양지 바른 남쪽사면은 눈이 녹아 등산로 흙 바닥이 드러나 있다. 도시락으로 가져온 유부 초밥과 볶은 오뎅으로 요기를 한다. 응달의 북쪽사면은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 있다. 낙엽으로 덮여진 눈을 밟았다가 몇 번을 미끄러져 넘어 졌다. 한번은 앞으로 넘어져 배낭 때문에 머리까지 땅에 찧었다. 삼도봉으로 가는 능선은 잡목과 귀찮은 넝쿨나무, 싸리나무가 우거져 볼품없는 능선 길이다. 시야도 가려 조망도 할 수 없다. 이미 등산화 속에 들어간 눈이 녹아 물이 출렁거린다. 물먹은 양말 속의 발이 시리다. 스패츠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따뜻한 날씨에 양지쪽의 눈은 많이 녹았지만 북사면의 눈을 너무 얕본 것 같다.

삼도봉이 눈에 들어 온다. 몇 사람의 움직임도 보인다. 삼도봉을 빤히 보면서 내려오면 석기봉 1.5Km, 중미마을 3Km, 삼도봉 3Km 이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깊은 눈속에 파묻혀 있는 안부에 닿는다. 삼도봉 왼쪽에 삼각형 봉우리가 석기봉인가 보다.
대간을 하면서 삼도봉을 세 개나 넘는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만나는 지리산의 삼도봉이 있었고 대덕산 직전의 삼도봉이 있었다. 이 곳 삼도봉은 경상북도의 금릉군, 충청북도의 영동군 그리고 전라북도의 무주군이 합쳐지는 봉우리다. 봉우리엔 세마리의 용이 하나의 여의주를 받치고 서 있는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이 서 있다.
등산화를 풀어 양말의 물을 짠다. 방수 등산화라 한번 들어간 눈 녹은 물은 속에서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것 같았다. 여분으로 가져온 양말이 있지만 그대로 짜서 신는다.

삼도봉에서 뒤를 돌아 보면 저 멀리 희미한 지리연봉의 실루엣이 하늘과 맞닿아 있고 덕유능선 끝자락의 하얀 스키슬로프가 오징어 다리처럼 갈래져 있다. 이웃의 또 다른 삼도봉과 대덕산이 이 대간꾼의 지난 행로를 말해 주듯 가까이 서있다. 눈을 돌려 서쪽으로 보면 바로 가운데 민주지산이 있고 그 오른쪽에 각호산과 왼쪽으로 석기봉이 있다. 몇해 전 이맘 때 특전사 어느 대대가 저 민주지산에 야외훈련 나왔다가 젊은 검은베레 용사 몇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던 그 산이다. 그냥 지나치면 이름조차 기억 될 수 없는 산이지만 다시 한번 쳐다 보아진다.

오늘 구간의 중간쯤 되는 지점이지만 어려운 산행인지라 많이 지쳐 있다. 삼도봉을 내려서니 보드라운 눈이 두껍게 쌓여 있다. 25분여 눈길을 내려 오면 삼마골재에 닿는다. 왼쪽은 영동의 물한리 계곡이요 오른쪽은 김천의 해인동으로 내려서는 길목이다. 무한리에서 올라 오던 등산객 한분이 내가 메고 있는 카메라를 보고는 복수초를 찍으려 다니느냐고 묻는다. 복수초가 뭐냐고 묻자 노란 꽃이 피는 조그만 야생화란다. 눈 속에서 피는 봄을 알리는 전령이라면서 강원도 원주에서도 벌써 피었다는 말을 들었단다. 내가 카메라를 메고 있어서 혹시 복수초 찍으려 다니는 사람인줄 알았단다. 가다가 한번 찾아 봐야지...

- 대간 종주의 시험구간
삼마골재에서 대간길로 올라서자 마자 헬기장이 나온다. 백발의 나이 지긋한 멋쟁이 등산객 한 분이 우두령에서 8시반에 출발했다면서 잡목 우거진 등산로를 빠져 나온다. 오르막에 눈이 많아 스패츠는 필수이고 길도 잡목 넝쿨이라 고생을 많이 했다 면서 이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다 젖어 쓸데 없는 짓인 줄 알면서 스패츠를 단단히 조여 맨다.

삼마골재에서 1123.9봉, 1089.9봉,1175봉에 이르는 세 시간의 능선 산행은 정말 고통스런 산행인 고행의 연속이다. 오르막 사면은 눈 녹은 물로 미끄럽고 응달의 내리막은 깊은 눈이 딱딱하게 굳어 체중이 실리면 내려 앉아 진행을 더욱 어렵게 한다. 북동쪽으로 진행되는 능선 길은 더욱 힘 든다. 북서쪽 으로 부터 쌓여진 눈은 능선을 중심으로 동남쪽 부분만 녹아 북서쪽 눈은 만년설처럼 두껍게 절벽을 이룬 채 대간 길을 점령하고 앉아 있다. 雪丘의 능선이다. 눈을 피할 수 없다. 눈을 피하면 잡목 넝쿨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눈을 밟아 체중을 가하면 무릎까지 푹 빠진다. 배낭은 양쪽 어깨를 더욱더 내려 누른다. 힘이 두 배는 더 든다.

아까 서울서 왔다는 세 사람 대간꾼의 질문이 화두처럼 생각난다. 이 고통스런 일을 왜 시작했을까?
힘이 들 때 마다 스틱 집고 서서 뒤를 돌아다 본다. 힘들게 지나온 대간 연봉들. 저 멀리 있는 봉우리들도 그 때 오를 적에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세상에 힘들지 아니 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대간 첫날 몸도 가눌 수 없었던 천왕봉에 서서 읽어 내려 갔던 발원문이 생각난다. 아마도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일 거야. 대간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일 거야. 바로 이 구간이 백두대간의 시험구간일 것이야.

한참을 이렇게 씨름을 하고 나면 전망이 그저 그만인 조그만 바위 봉우리에 닿는다. 1175봉이다. 배낭을 내려 목을 축이고 떡으로 허기를 면한다. 예정보다 늦은 시간이지만 바위 봉우리에 앉아 여유있게 사방을 조망한다.
1175봉을 내려서는 길은 바위 절벽과 같다. 밧줄도 없이 깎여진 암릉은 3단으로 되어 능선까지는 30여 미터는 족히 될 것 같다. 화주봉으로 가는 길은 또 오르막이고 잡목은 계속된다.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민주지산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다. 화주봉(1,207m) 입구에 봉우리가 깎여진 무덤 하나가 반쯤 눈(雪)을 덮어 쓰고 누워 있다. 화주봉에서 오늘의 힘들었던 구간을 되새김질 하듯 되돌아 본다. 덕유산과 대덕산에서 삼도봉으로 이어 지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말없이 나를 쳐다 보는 듯 하다. 조금만 가면 시험에 통과 할 수있을 거라는 듯이 말이다.
화주봉에서 완만한 내리막으로 고도를 낮추어 간다. 눈이 쌓여 있지만 힘들지 않다. 우두령오르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꾸불꾸불 힘겹게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화주봉에서 1시간정도 내려 오니 우두령이다. 마지막 남은 당나귀 표지기 하나를 나무에 걸어 준다.
"당나구! 잘 있어! 조금만 참으면 봄이 올 거야!"


- 비상탈출
야영장비를 가져 오지 않아 민박할 집을 찾아야 한다. 우두령 반대편에 궁촌리에 민박한다는 간판이 보인다. 전화를 하려고 하니 불통이다. 후레쉬를 꺼내 지도에 있는 궁촌리를 찾아 보니 제법 멀어 가까운 김천쪽 마산리로 가 민박할 집을 찾아 보기로 하고 포장 길을 따라 걸어 간다. 하늘엔 반달보다 큰 달이 희미하게 길을 비추어 준다. 꼬불꼬불하게 생긴 길은 생각보다 길고 마산리인 듯한 동네의 불빛은 저 계곡 밑에 있다. 도대체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고 밤이 되니 물에 젖은 양말 속의 발은 제법 시리다. 오가는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민박을 해도 내일이 걱정이다. 젖은 신발이 밤새 제대로 마를지. 무엇보다도 피곤하다. 내일 추풍령까지의 구간은 오늘보다 약간 짧은 구간이지만 여전히 20Km가 넘고 시간 상으로는 오늘 구간보다 길게 잡혀 있다. 몸도 마음도 신발도 다 젖어 있다.
이건 비상사태(?)야. 비상사태 때는 비상 탈출하는 것이야. 집으로 돌아가자. 한시간이상을 걸어 묵은점이라는 마을 어귀에서 자가용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다. 사정을 얘기하고 전화를 좀 쓰자고 하니 전화가 없고 휴대폰도 해지를 했단다. 그러면 저차로 덕산재까지 태워 달라고 하니 삼촌이라는 사람이 퍼뜩 나온다.(終)

6.접근로 및 복귀로
- 접근로 : 울산-덕산재(승용차)
- 복귀로 : 우두령-덕산재(자가용영업 40,000), 덕산재-울산(승용차)

7.제8차 구간종주 계획
- 일정 : 2002. 3/1-3/3(2박3일)
- 구간 : 우두령-추풍령-큰재-신의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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