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본가 모친이 집에 오셨다.

일욜이라고는 하지만 무었이 그리도 바쁜지 자식놈은 산으로 줄행랑을 놓은지가 한나절이 지났고 며느리는 능력없는 부실한 가장을 탓하며 꿰미돈을 벌겠노라 회사로 품을 팔러 떠난지가 식전이니 집에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두예삐만 남았것다.

이미 칠십 고개를 넘긴 노구건만 너저분한 집안 살림을 일일이 꼼꼼히 살피시고는 입맛이 까다로운 자식놈을 겨냥해 시골서 손수 재배해 가져오신 소채로 몇가지 찬을 만드신다.

“함머니  함머니,,”

갑자기 축농증에라도 걸렸는지 두예삐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지할머니를 주막 강아지 마냥 졸졸 따라 다니며 귀찮게 하다 결국은 용돈을 챙기고서야 할머니를 풀어준다.

봄비에 죽순커디끼 쌍둥이처럼 쑥쑥 크는 두손녀를 보면서 저놈들중 한놈만이래두 고추를 달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탄식을 해보지만 아들은 교육비다 뭐다 지능력으로는 못낳는다며 딱 버티고 왼고개를 치니 그저 허망할 따름이다.

황매산에 해가 걸릴 즈음에서야 며느리가 황급히 들어선다.

“어머니 오셨어예.”

문을 열고 들어서는 며느리를 보자 또 마음이 스산해진다.

갓 시집 왔을 때 하도 몸이 허약해 보여 근삼년을 끼고 살면서 맏며느리에게도 안해준 보약이다 뭐다를 눈치껏 멕여 겨우 통통하게 만들어 놓았으나 글쎄 다이튼지 뭔지로 꼴사납게 설치더니 또반쪽으로 돌아가 이래저래 속이 상한다.

“쑥이 좋더라, 애비 오거든 뎁혀 밥주그라. 난 한숨 잘란다.”

늙은 모친은 베개를 끌어당겨 자리에 눕고 오늘은 일찍 들어오겠다던 아들놈은 여전히 코빼기도 뵈지 않는다.

일찍이 십수년전에 아들이 허리가 아파 병원에 택시로 실려갈땐 얼마나 놀랬던지 두고두고 가슴앓이로 남았다.

간암으로 영감이 제먼저 저세상으로 갈때도 그리 놀라진 않았다.

“비러물 자슥,,, 껌껌한데 댕기다가 우짤라꼬,,”

진작에 끊여놓은 쑥국은 대주를 기다리며 식어만 간다.


 


 

영알 환주를 끝내고 조금 미진한게 지룡 문복 고헌산을 둘러보지 못한 불찰이  남아있어 이원호 선생님과 또다시 걸음을 맞추게 되었다.

객은 지룡-문복-옹강산의 원점회귀를 바랬으나 통큰 선생님은 기왕 시작한거 엎친김에 과부 보쌈이라며 고헌산까지 한번 까무러쳐 보자 한다.

당이 결심했으면 우리는 한다(북한의 구호)는 말처럼 한번 가보자 작심하고 운문사 삼거리인 염창에서 진달래 곱게 핀 능선을 이리저리 굽돌아 오른다.

얼마 오르지 않아 거대한 암봉이 길을 막는데 표지기는 어지러이 달려 있으나  아무래도 역발산 기개세가 부족한 객으로서는 자신이 없어 사면의 우회로를 택해 나아간다.

님들의 산기를 감해보니 어떤분들은 암봉으로 곧장 치솟아 우화등선(오르면 신선봉이니) 하였으나 만에 하나 실수가 있어 진짜 우화등선 한다면 궁둥짝 큰 내자와 먹성 좋은 두예삐는 어쩌란 말인고,,

시어미 무서워 서방질 못할년이란 비아냥이 귓등을 간질이지만 애써 무시하고 암벽 턱밑을 돌아 신선봉과 지룡산의 좁은 갈피로 기어올라 능선에 선다.

돌탑이 있는 신선봉에서 호연지기를 가다듬고는 자그만 둔덕을 올라서면 지룡산 정상이다.

지형도상의 정상과 달라 시비가 있기는 하나 우리 산하의 이두영 회장님의 정성이 배인 정상석이 반갑고 흐뭇하다.

정상을 떠난길은 안부로 내려 섰다가 도상의 지룡산을 지나치고 곧바로 운문사 전망이 참으로 좋은 칼방구 능선으로 떨어졌다가 810봉의 된비알로 어기차게 이어진다.

땀 한줄금을 오지게 흘리고서야 810봉 헬기장에 닿는데 중화 자리로는 봄 겨울엔 이견이 없겠더라.

편평히 이어지는 능선은 사리암 갈림길인 돌탑봉을 남겨두고는 배너미 고개로 급전직하 하여 천문사 목탁소리를 길라잡이 하여 문복산으로 흐른다.


 


 

삼계리 칠성슈퍼에 아예 좌판을 깔고선 동동주와 파전으로 걸판진 새참을 즐긴다.

내심 산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여기서 술추렴이나 계속했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든다.

문복산은 계살피 계곡을 따르지 않고 마을 회관에서 밟고 오르는 능선길을 택했는데 술잔이 과했는지 당최 기력에 신명이 나지 않아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잔을 들때는 문복산쯤이야 난쟁이 턱차기요 아이놈 볼따구 밥풀 떼먹기 정도로  여겼는데 막상 올라보니 저승명부에 목을 건 놈처럼 온몸을 들까불며 들숨날숨에 마련이 없더라.

헬기장 두어개를 지났고 밑터진 바위도 구경했고 반석이 좋은 곳에서 다리쉼도 하고나니 계살피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며 정상으로 연결 된다.

문복산은 가야할 고헌산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얼마 머무르지 않고 곧장 멀리 보이는 외항재로 장달음을 놓는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길은 운문령 갈림길인 894봉까지 편안하게 이어지고 894봉부터는 낙동정맥을 따르게 된다.

외항재로 쉼없이 내려선길은 다시 오를 생각에 온몸이 피로로 젖어 들지만

그래도 가야 할길이 기에 묵묵히 땅만 나려보면 걷는다.

고헌산 초입은 울창한 수림으로 삼림욕의 기분을 내지만 산중턱으로 허리를

틀어 올리면 되먹지 않은 방화선으로 인해 치도곤을 단단히 맛본다.

위성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더 근사해 한참을 앉았다가 일어선다.

고헌산은 객에게 참으로 다감한 곳이다.

이제는 귀천하신 장인 어른의 묘소가  바로 여기 고헌산 산자락에 드셔 계신다.

곁이 막내라 그리 오래 모시지는 못했지만 단한번도 큰소리를 내시는걸 본적이 없다.

고헌산 정상에 서니 더욱 간절히 뵙고 싶어진다.


 


 

조선 왕조에서 가장 큰 환란이 임진난 이였다면 역사에 되물림되는 가장 큰 국치는 아마도 삼전도의 치욕 즉 병자호란임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드물 겄이다.

일찍이 이경여가,

“하늘을 떠받드는 큰 절개요(김상헌)

 한시대를 건져낸 큰공적일세(최명길)”

라고 칭탄한 지천 최명길은 주지하다시피 인조 반정의 주역으로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광해주와 친분이 두터운 청을 터부시해야 할 그가 어찌해 주화론자로 돌아선겄일까 ??

이 얘기 역시 앞서 얘기한 서애 유성룡의 일화와 상통하는 유사점이 강한데 오늘은 지천의 일화가 수록된 대동기문 두어장을 살펴보자.

지천이 출사하기전 안동 부사로 계시는 외숙을 뵙기위해 ,험한 문경 새재를 홀로 넘고 있을때였다.

때는 바야흐로 춘삼월 호시절이라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고 범나비와 꾀꼬리는 짝을 희롱하며 재주를 부리는데 고갯마루를 지날 즈음 농염미가 물씬한 중년 미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같이하게 되었다.

당시엔 내외가 워낙 엄했던 터라 쉽사리 말을 붙일 입장은 아니였으나 지천은 어쩐지 회가 동해,

“댁은 뉘시관데 홀로 심산궁곡에 들어 선비의 길을 어지럽히는 게요?”

지천이 타박 비슷이 말꼬리를 올리니,

“니예,, 웬만한 사람은 첩을 알아보지 못하는데 저의 본색을 감지 하시니 아

 마도 보통분이 아니신가 합니다.”

미부가 살짝 웃음을 짓는데 붉은 입술에 고른 치열이 잘익은 석류처럼 빛이난다.

“첩은 여기 새재를 지키는 성황신이옵니다.  얼마전 어떤 사람이 첩을 위해 치마 저고리 한 벌을 성황당에 걸어 두었는데 안동의 좌수 한놈이 욕심을 내어 자기딸에게 거두어 입혔습니다.   그래 괘씸한 마음에 그 좌수놈의 딸을  훼하러 가는 길입니다.”


 


 

이에 지천이 놀라,

“안동은 시생의 외숙이 치민을 하시는 곳인바 내가 그 좌수에게서 옷을 찾아다 줄테니 그만 용서하시구려.”
“상공께서 그리만 해주신다면 첩이 무슨 억하심정을 더 고집하리까, 분부 받잡겠습니다.”

미부가 공손히 대답을 개어 올린다.

안동 부중에 들어서자 여태 같이 오며 말잡이가 되어주던 성황신은 홀연히 사라져 지천이 심중에 대혹 하면서도 그가 지목한 좌수의 집에 당도하니 에고데고 하는 곡소리가 대문밖에까지 훤히 들려온다.

지천이 통자도 넣지 않고 내정 돌입을 감행하여 불문곡직 좌수를 불러서는,

“댁의 따님이 명재경각인줄 내 알고 왔으니 휘하지 말고 이실직고 하시오.

 전에 새재의 성황당에서 치마 저고리 한 벌을 가져온적이 있을 겄이오,

 그렇지 않소?”

주먹만한 유자코의 좌수는 사색이 되어,

“예에,, 제가 그때 무슨 맘이 들어선지는 몰라도 허어,,”

“이 사단의 소종래가 그 물건 탓이니 어서 그 옷을 태워 성황신께 다시 돌려 주시오. 그러면 무사하리다.”

유자코 좌수는 콩이야 팥이야 서둘러 정한곳에 자리를 잡아 북어쾌에 술잔을 올리고 소지를 태워 부정을 제한 후에 성황신의 옷을 사르며 용서를 비니 좌수의 딸은 자다 일어난겄처럼 금새 기력을 회복한다.

지천이 점잖게,

“모름지기 선비는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래두 남의것은 함부로 탐하지 않으니  차후는 마음을 다스려 견물생심의 화를 자초하지 않기를 바라오.”

그리고는 총총히 동구밖을 벗어난다.

지천이 외숙을 모시고 달포를 머물며 회포를 푼후에 귀로에 들어 다시 새재를 넘는데 고갯마루에서 전일 만났던 성황신과 또다시 조우한다.

그러나 이번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초조한 빛이 역력하다.

“일이 아주 급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급하다는게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성황신의 말에 지천이 적이 놀라며 물으니,

“지금 막 만주에서 천자가 태어났는데 하느님께서 모든 성황신들을 불러 그를 보호하라 명하기에 저도 그리로 가는 길이랍니다.‘

“천자라니 누구를 말함이요?”

“네, 성은 애신(청태종)인데 이사람으로 인해 명은 반드시 망할겄이고 또 대군을 휘몰아 조선을 침략할겄인즉 그때는 화친 이외는 다른길이 없을 겄이니 상공께서는 깊이 새겨 두셨다가 일을 그르치지 마소서. 훗날 상공께서 만세후에  첩이 모시러 가겠나이다.”

그리고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훗날 과연 청태종은 1636년 12월 10만 대병을 이끌고 질풍같이 남하해 삼전도의 치욕을 뒤집어 씌우고는 삼학사와 소현 봉림 두왕자를 볼모로 데려간다.    그 이후는 국사책에 나오는 그대로이다.


 


 

고헌산에서 한참을 쉬었다가 고헌사로 내려선다.

엔간히 지쳤는지 자꾸만 돌부리에 발끝이 채이고 갈짓자로 내려서는 길은

끝간데 없이 이어져 간다.

어드메쯤 고헌사 풍경 소리가 들릴법 한데도 사방은 진달래 망울 터지는 소리뿐  고헌사의 용마루는 참아 뵈지 않더라.


 


 

                 2007년 3월 25일  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