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로 들어가는 상가밀집지역~
다른 여러산행지의 제의가 들어왔지만~
우선 개념도없이 산행을 하는거라 조심스럽다
그러자면 이정표가 잘 되어있는 국립공원으로 가야하는데~ㅉㅉㅉ
이추위에 산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꾼이라 왠만하면 다 가보았으리라~
이왕 이렇게 된거라면 안가본 산으로 가야 섭섭한 마음과 나오는 말이 적을것으로 예상하여
대전의 흑룡산과 길잡이대장님의 건의로 마곡사뒷편 태화산(나발봉)으로 압축하고
버스는 눈이 많은 서해안도로와 호남고속도로는 피해 경부고속도로로 향했다
그리곤 기사님과 길잡이님과 상의~ 여차저차~```
미끄러운 눈길에 마곡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07시40분이었다
식사후 산행출발시간 08시30분,12시산행완료 하산후 식사
마곡온천으로 이동13시30분,오후3시 마곡온천출발 6시30분 인천시내도착 했다 여유있는 산행이었다~``` 산행지도 산행시간도 그리고 산님들의 얼굴도~~ㅎㅎㅎㅎ 하산완료 30분전 마지막정자가 있는 나발봉에서 만찬이 벌어지고~ㅎㅎㅎㅎ
추위에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속을 달랬었다~ 매스컴~```ㅍㅍㅍ지면이든 TV이든 연속적으로 강추위를 보도했었는데 막상 산행을 하다보니 그렇게 추운줄은 몰랐었다~ 겉옷을 벗고 등산했으니~~~ㅎㅎㅎㅎㅎ 마마곡사는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년(명종 2)에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160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 김구가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대광보전(보물 제802호) 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국사당,대향각,흥성루 해탈문,
천왕문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밖에 중요문화재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보물 제270호),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동제은입사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